정현인 선산읍 이문리 이장이 마을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마을 일처리를 위한 서류가 책상에 쌓여 있다. 박용기 기자
"마을행사나 크고 작은 일을 마무리한 뒤 주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정현인(50)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 이장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주민들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다. 단순한 인사라기보다 자신이 한 일이 주민들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어서다.
올해로 9년째 이문리 이장을 맡고 있는 정 이장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젊은 시절에는 고향을 떠나 구미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했고 체육관도 운영했다. 후배들에게 체육관을 넘기고 새로운 일을 생각하며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15년 전이다. 이후 새마을지도자를 비롯한 지역단체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일을 맡게 됐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을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이문리 마을회관 사무실 문은 여러 차례 열렸다. 주민들은 농협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묻고 읍사무소와 관련된 업무를 상의했다. 한 주민은 공원 화장실에서 물이 새 문을 잠가 놓았다며 화장실 열쇠와 수리 문제를 이야기했다. 주민이 돌아가고 나서야 잠시 끊겼던 인터뷰가 다시 이어졌다.
마을방송만으로 정보를 전하던 시대도 지났다. 직장에 나가 있거나 문을 닫아 방송을 듣지 못한 주민들에게는 문자로 다시 안내한다. 바쁠 때는 하루 수백 건의 문자를 보낼 정도다. 특히 연초 각종 농업·지원사업 신청이 몰리면 마을사무실은 사실상 주민들의 생활민원 창구가 된다.
정 이장이 챙겨야 할 일이 많은 데는 이문리의 규모와 역사도 한몫한다. 이문리는 옛 선산읍성 서문 밖에 자리한 마을로, 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고 해 '이문(里門)'이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마을 자료에는 2024년 2월 기준 872가구, 1천798명이 사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이문사거리는 선산의 중심지였다. 넓은 공터와 농협 창고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고 장이 섰다. 정 이장의 기억 속 이문리도 구미공단으로 출퇴근하는 통근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놓던 북적이는 동네였다. 저녁이면 퇴근한 사람들이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술 한잔을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1970년대 구미공단 조성 이후 도시의 중심이 이동하고, 1995년 도농통합으로 선산군이 구미시에 편입되면서 마을 풍경도 달라졌다. 이문리 중심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빈집이 눈에 띈다.
정 이장이 길을 걷다 가리킨 한 건물은 한때 어린이집이었지만 지금은 어르신들을 위한 시설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은 줄고 어른들은 많아졌잖아요."라는 짧은 한마디에는 농촌마을이 겪고 있는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현인 선산읍 이문리 이장이 인터뷰 도중 주민들이 알려준 고장 난 화장실을 살펴보고 있다. 박용기 기자
그럼에도 이문리에는 아직 '마을'이라는 울타리가 비교적 단단하게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안녕기원제다. 과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던 동제의 맥을 현대에 맞게 이어온 행사다. 청년회와 부녀회가 천막을 치고 음식을 장만하면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을과 가정의 안녕을 빈다. 함께 음식을 먹고 노래와 놀이를 즐기며 세대가 어울린다.
정 이장은 작은 마을 시설 하나를 바꾸는 일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최근 설치한 정자에는 어르신들이 끌고 다니는 보행 보조기구를 세워둘 수 있도록 한쪽에 별도 공간을 마련했다. 인터넷에서 다른 지역 사례를 찾아본 뒤 시공업체에 제안했다. 비가 올 때 보조기구도 함께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학교 쪽으로 이어지는 길의 경관개선 사업을 추진하면서는 단순히 아스팔트만 깔지 말고 색을 넣어보자고 제안했다. 이왕 하는 사업이면 학생들이 오가는 길을 조금 더 보기 좋게 만들어보자는 이유에서다.
정 이장은 "젊은 사람이 하면 인터넷도 찾아보고 다른 지역에서 잘한 사례도 금방 볼 수 있다"며 "기동력이나 새로운 생각, 추진력에서도 장점이 있어 젊은 사람들이 이장을 더 많이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현인 선산읍 이문리 이장이 장원방 인물 기록비 앞에서 과거급제 인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장원급제자가 많이 나오는 마을'이라는 뜻의 장원방은 옛 선산읍 영봉리(선산읍 이문·노상·완전리)로 서당 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선산 출신 과거 급제자 38명 중 15명이 장원방에서 나왔다. 박용기 기자
하지만 정작 그의 가장 큰 걱정도 '젊은 사람'이다. 정 이장이 처음 청년회에서 활동할 당시 80명가량이던 회원은 지금 30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 새로 들어오는 후배가 적다 보니 원래 일정 나이가 되면 청년회를 떠나야 하는 회원들의 활동 연령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는 "잘할 것 같은 사람에게 이장을 한번 해보라고 이야기해도 선뜻 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젊은 사람을 키워 다음 이장을 맡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논농사를 짓는 정 이장에게 인구 감소는 농촌 일손 문제와도 직접 연결된다. 감자·양파 등 규모가 큰 농사는 외국인 인력 없이는 어려울 정도지만 계절근로자를 데려오려면 숙소와 이동수단 등을 갖춰야 해 농가의 부담도 적지 않다.
그는 늘어나는 빈집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정 이장은 "빈집을 시에서 매입하거나 임대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농촌에는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한쪽에서는 빈집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선산의 인구를 늘리는 문제 역시 결국 일자리와 연결된다고 봤다. 일하며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들어온 사람들이 다시 마을 공동체에 참여해야 지역도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 이장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함께 챙기고, 사람들이 계속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이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용기
경북부에서 구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게 묻고, 진실하게 기록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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