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행정통합 ‘다중심’에서 길을 찾다⑧] 대만 진산만유와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의 협력마케팅

  •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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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04 09:27  |  발행일 2026-10-04
대만 진산에서는 작물에 다업종 연계…지리산권은 6개 시·군 협업 마케팅

■진산구 통합브랜드 '진산만유'

고구마 농장 승계한 라이자화씨

IT업계 일하다 동생들과 귀향

이웃 고구마農과 관광 등 결합

브랜드 '진산만유'로 부가가치

■국내의 대만 진산구 유사 사례

18년 된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

영호남 기초지자체 뭉쳐 하나로

지리산 이름 함께, 사업은 각자

구미의 라면축제 등도 닮은꼴

대만 북부 해안지역에 위치한 진산구의 지역활성화 모델인 진산만유는 지역 특산물인 고구마의 생산·가공과 인근의 여러 체험 서비스를 묶어 상품화했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대만 북부 해안지역에 위치한 진산구의 지역활성화 모델인 '진산만유'는 지역 특산물인 고구마의 생산·가공과 인근의 여러 체험 서비스를 묶어 상품화했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대만 신베이직할시 진산구(金山區)는 고구마의 땅이다. 고구마 농장을 물려받은 형제가 지역 브랜드 '진산만유(金山漫遊)'를 키웠다. 이웃 소농의 고구마를 묶어 함께 내놓고, 그 고구마에 '체험과 도시락' '온천과 여행'을 결합했다. 우리나라 지리산 자락에도 비슷한 길을 걷는 곳이 있다. 전북 남원·장수, 전남 구례, 경남 하동·산청·함양 등 6개 시·군이 꾸린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이다. 도(道) 경계를 넘어 지리산이라는 이름을 함께 쓰며 18년째 지리산 일대의 관광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다.


진산이 한 작물에 여러 업종을 연계했다면, 지리산권은 여러 시·군을 하나의 조합(명칭)으로 묶은 구조다. 그러자 흩어져 있던 것들의 가치가 오르며 시너지를 창출했다. 저마다 가진 것을 한데 묶어 가치를 끌어올린 두 사례는 각 지역이 저마다의 중심이 되는 '다중심(폴리센트릭)' 거버넌스의 기반 조건에 부합한다. 2028년 대구경북특별시 출범을 목표로 행정통합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는 대구·경북이 앞으로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진산만유의 최고운영책임자 라이자화씨가 진산만유의 탄생 과정과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진산만유의 최고운영책임자 라이자화씨가 진산만유의 탄생 과정과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고구마 줄기처럼 엮은 지역활성화


진산은 대만 북부의 해안지역에 위치해 있다. 화산재 토양과 바닷바람, 큰 일교차 덕에 진산 고구마는 높은 당도와 부드러운 질감을 갖는다. 그러나 가을부터는 차고 건조한 바람 탓에 생산량이 줄어든다. 이 문제를 해결한 이는 라이자화(賴家華)씨다. IT업계에서 일하다 동생들과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인 고구마 농장을 승계한 그는 가을·겨울철 적은 생산량을 극복하기 위해 고구마를 굽고 말려 가공하는 한편, 밭을 캐는 체험을 팔면서 고구마 하나하나의 값을 올렸다.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그러다 같은 고민(계절별 생산량 차이)을 하고 있던 이웃 농가와 소상공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2018년 '청년지식논단'을 열고 고구마 농가들과 함께 진산의 관광자원을 연계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2020년 운영법인을 설립하고, 2022년 통합브랜드 '진산만유'를 출범시켰다. 라이자화씨는 현재 진산만유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를 맡고 있다.


진산만유의 서비스는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됐다. 하나는 같은 작물끼리 묶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촌 체험, 제철 식재료 도시락, 온천 족욕공원, 그리고 여행사까지 연계하는 것이다. 진산만유가 지역을 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체험을 마케팅으로 연결한 점이다. 라이자화씨는 "처음에는 장점들을 모아 같이 발전하고자 했다. 지역활성화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는데, 돌아보니 우리가 하고 있던 일이 지역활성화였다"고 말했다.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은 영·호남 3개 도, 6개 시·군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운영비는 6개 시·군이 똑같이 부담하고 인력도 3명씩 파견한다.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 제공>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은 영·호남 3개 도, 6개 시·군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운영비는 6개 시·군이 똑같이 부담하고 인력도 3명씩 파견한다.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 제공>

전북 남원에 위치한 지리산관광개발조합.

전북 남원에 위치한 지리산관광개발조합.

◆경계를 넘어 18년 이어진 행정


국내에도 대만의 진산과 유사한 사례가 있다. 영·호남이 도 경계를 넘어 하나의 조직으로 뭉친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이 그것이다. 2008년 지방자치법에 근거한 지방자치단체조합으로 설립됐다. 기초지자체 간 조합으로는 전국에서 처음이다. 6개 시·군의 부단체장이 조합의 위원을 맡아 운영 사항 전반을 의결한다. 운영비는 6개 시·군이 똑같이 부담하고, 각 시·군에서 벌이는 사업의 비용은 해당 시·군이 낸다. 파견인력도 3명씩 보낸다.


사업은 각자 운영하고, 지리산이라는 이름은 함께 쓴다. 한 시·군의 관광지가 알려지면 옆 시·군의 길도 함께 알려지는 구조다. 진산이 한 작물에 다른 업종을 묶었다면, 지리산권은 여러 시·군을 한 이름으로 묶은 셈이다.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 본부장 직무대리 이성근 관리과장은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은 6개 시·군이 오랜 기간 다져온 단단한 신뢰와 유기적인 협업 시스템을 기반으로 지리산권 관광 활성화를 이끌어 왔다"며 "앞으로도 현장 중심의 소통을 강화하고 각 지자체의 행정 역량을 하나로 결집함으로써 지자체 간 경계를 허물고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 라면·경산 복숭아…같은 출발선


대구·경북에도 같은 출발선에 선 축제가 있다. 구미라면축제는 공장에서 시작했다. 1991년부터 라면을 생산해 온 농심 구미공장의 '갓 튀긴 라면'에 착안해 2022년 첫 축제를 열었다. 라면 한 품목에 산업투어, 이색 라면, 구미역 앞 도심 상권을 연계했다. 경산 카페축제는 과수원에서 시작했다. 신비복숭아에 지역 로스터리 카페 20곳을 연결했다. 경산시 농산물가공지원센터와 카페가 공동으로 복숭아 메뉴를 만들었고, 올해는 배달 앱과 손잡고 전국 기획전을 열었다.


구미의 라면축제는 산업에서, 경산 카페축제는 농업과 카페문화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대만 '진산만유'와 같이 한 품목에 다른 업종을 붙여 부가가치를 창출해 냈다. 축제와 체험은 지역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소프트웨어다. 진산만유처럼 경산과 구미도 지역의 특성을 마케팅 아이템으로 삼았다. 2028년 출범을 목표로 하는 통합 대구경북특별시는 이 소프트웨어 마케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현재 경산과 구미의 축제는 각 지자체의 예산으로 따로 알린다. 대구시가 자체 예산으로 경북축제를 알리기도 쉽지 않은 상태다. 예산은 그 지역 주민을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특별시가 되면 대구의 소비시장과 경북의 생산지가 한 예산 안에 들어온다. 대구 도심에서 경산 복숭아와 구미 라면을 알리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일이 된다.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 측도 "도 단위 지자체가 참여한다면 예산 확보가 좀 용이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예산 확보 측면에서의 광역 지자체의 이점을 언급했다.


문체부는 올해부터 주제가 같거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축제를 관광지와 묶어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여러 시·군의 축제를 한 묶음으로 기획할 수 있는 특별시는 그 흐름에 올라타기도 쉽다. 균형발전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향 평준화를 목표로 한다. 대구시민은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얻고, 경산과 구미의 축제는 도시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 소비가 고루 퍼지는 선순환이 이어지면서 상향 평준화의 균형발전이 이뤄진다.


진산만유와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이 보여준 것처럼 축제와 브랜드가 자리 잡을 때 도시는 성장한다. 축제가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소비를 퍼뜨리고, 퍼진 소비가 돌아와 다시 축제와 브랜드를 키운다. 시·군이 이 순환을 자체적으로 굴리는 동안 특별시는 신공항과 광역교통처럼 더 큰 판을 깐다. 큰 판은 더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순환은 한 바퀴 더 커질 것이다. 나눠서는 만들 수 없는, 함께 올라서는 선순환이다.


대만 신베이직할시에서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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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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