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균 경북연구원장
지금 불타고 있는 것은 파리만이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산업 자본주의는 성장 한계에 달했고 지능 자본주의는 양극화 성장으로 달려간다. 그로 인한 자산 불평등, 지역 불평등, 전쟁, 고물가, 공급망 불안정이 세계 곳곳을 뒤흔들고 있다.
한국도 걱정이다. 현재의 폭등한 집값에 더하여 반도체 호황의 이익이 추가로 부동산 시장에 유입될 전망이다. 갑자기 유입된 방대한 자본을 소화하지 못해 환율과 물가가 왜곡되고 국가 경제가 무너진 사례는 16세기 후반의 스페인, 1960년대의 네덜란드, 1970년대의 이란, 2000년대의 베네수엘라 등 얼마든지 있다.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잃었다. 이들은 대다수의 인간 노동이 AI에 의해 대체되리라는 불안에 전전긍긍한다. 직장도, 직업도, 노동 분업도, 생산성 중심의 사회 구조도 다 무너지고 나는 기본소득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는 사회의 피부양자가 되지 않겠는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자식을 교육시킨다는 생각도 허망한 일이 아닌가. 청년들의 번민은 심각하다.
온갖 진통 속에 문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AI 혁명의 거대한 충격을 이해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AI를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해답의 일부'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2022년 말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가 출시되었다. 그 후 미국과 중국의 대형 언어 모델 경쟁이 빠르게 전개되었고 거의 모든 산업이 언어를 이해하고, 콘텐츠를 생성하고, 코드를 작성하고, 문제를 분석하는 인공지능에 익숙해졌다.
그러다가 2025년 초 마누스(Manus)라는 최초의 AI 에이전트가 나왔고 2026년 초에는 오픈클로우(OpenClaw)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생성형 AI'에서 '행동형 AI'로 변하는 역사적인 대도약이었다.
일찍이 산업혁명의 위대한 순간은 기술의 발명이 아니라 기술이 인프라로 변하는 시점에 나타났다. 즉, 증기기관이 혁명이 아니라, 증기기관의 기계 동력이 모든 분야에서 값싸게, 대규모로 사용된 것이 혁명이었다. 2026년에는 행동형 AI가 그런 위대한 순간이었다.
경북연구원은 실리콘밸리와 선전이라는 변화의 중심으로부터 아득히 먼 경북 예천의 지방정책연구원이다. 2023년 경북연구원은 지역 문화유산인 신라왕경을 홍보하고자 AI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주 적은 예산으로 '만명과 서현' '페르시아 왕자' 등 8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들은 국내외의 각종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각본상, 최우수 감독상 등 71개의 상을 받았고, LA 국제단편영화제의 공식 초청작이 되었으며, 로스앤젤리스 중심가의 리걸 라이브 극장에서 유료 상영되는 영광도 얻었다.
그러나 'AI 혁신을 통한 지방 소멸 대응'이라는 목표를 생각하면 AI 영화는 문화 홍보라는 단일 분야에 제약된 과업이었고 그 이상의 확장이 어려웠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클링 AI나 시댄스 같은 외국의 영상 생성 AI에 의존해서 신라 고유의 유물이나 문양, 건물을 삽입하는 기술을 추가한 것이었기에 독자적인 학습 경로를 만들 수도 없었다.
이런 한계를 돌파하려고 몸부림치면서 경북연구원은 어쩔 수 없이 2026년 행동형 AI 개발로 떠밀려 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비 지원을 받고 대학,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해외 관광객이 AI에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경북의 관광 정보가 들어간 여행 계획이 출력되도록 해주는 행동형 AI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북연구원은 행동형 AI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과제이며 생성형 AI와는 전혀 다른 발전 단계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생성형 AI는 우리가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똑똑한 대답을 출력해서 조언해주는 존재였다. 우리는 과거에 하던 업무를 그대로 하면서 어느 한 부분에서 AI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행동형 AI는 업무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의 운영을 대신하는 존재였다. 생성형 AI가 간헐적 보조였다면 행동형 AI는 장기간 상주였다.
경북연구원은 행동형 AI가 산업의 미래이며 지방 소멸과 청년 세대의 해답이라고 믿는다. 행동형 AI는 지역에 쌓여 있으면서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지식과 경험을 실제 작동하는 서비스로 바꾼다. 행동형 AI는 여행 계획을 제안하는 데서 나아가 교통과 숙박의 이용 가능성을 확인하고, 여행자의 동의를 받아 예약을 실행하며, 현장의 변화에 맞춰 일정을 조정한다. 그리고 그 실행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책임을 지는 이상 행동형 AI는 지역 내의 여러 기관의 AI를 조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과정에서 행동형 AI는 지역을 아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청년들은 오래된 관광 정보를 바로잡고, 골목의 이야기를 발굴하며, AI가 추천한 동선이 실제로 가능한지 검증한다. 나아가 생성, 이해, 추론, 프로그래밍이라는 서로 다른 유형의 역량들을 조합한다. 청년들은 AI가 현실에서 제대로 일하도록 만드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경력을 요구하면서 첫 일의 기회를 주지 않는 모순을 지역의 행동형 AI 실증 현장에서부터 풀어갈 수 있다.
산업화 시대에 사람들은 제품을 샀고, 정보화 시대에 사람들은 정보를 샀다. 지능화 시대에는 사람들이 작업 결과를 산다. 그 작업 결과란 인간이 행동형 AI를 부려서 만든 것이다. 고도로 복잡한 지능 세계에서 AI가 작업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완수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AI의 생산성 향상이 기업의 범주에만 머문다면 위기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행동형 AI는 본질적으로 서비스가 미치는 사회의 시스템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청년 세대가 성장할 기회가 있다.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AI 정책은 이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행동형 AI가 저절로 해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의 문제를 풀고 누구에게 기회를 줄 것인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가 가져올 미래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지역과 청년이 그 미래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도록 길을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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