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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노포의 밤
노포의 뜻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이다. 명동 프린스호텔에 머물면서 을지로 일대와 종로의 노포들을 찾아다니는 작가를 만났다. 그 작가와 다른 작가들과 몇 군데의 노포를 찾아갔다. 1953년에 오픈한 중국집을 시작으로,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있는 가게와 '이름 없는 분식'까지 갔다. 우리를 안내한 작가는 노포의 역사를 말해주었다. 우리 일행은 '이름 없는 분식'을 찾느라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깊숙한 골목의 한 귀퉁이에 간판이 없는, 말 그대로 '이름 없는 분식'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쑥전을 뜯어 먹으며 옛 감성을 유지하고 있는 노포에 감탄했다. 70년간 대를 이어 한 곳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일행 중 한 분은 하와이에 거주하며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1985년에 이민 가서 지금까지 머물렀다니. 그의 삶은 노포와 전혀 다른 삶이었다. 그 작가의 삶은 여기 적지 않아도 서러움이 가득 묻어남을 짐작할 것이다. 그 작가는 하와이 이민사로 장편 소설을 썼고 그 작품이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그 옆에 앉은 작가는 한국 격동의 시대 학생운동을 하고 '이름 없는 분식' 같은 곳으로 뛰어 들어와 숨어 있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민자의 삶을 산 작가가 미안해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던 시절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채감과 죄책감을 느낀다고. 대신 작가는 미국에 부적응 중인 이민자의 삶을 그렸다고 말했다. 노포처럼 한국에서 40년을 넘게 살아온 나에게 '떠돈다'는 의미는 여행이지만, 이민자에게는 인종차별과 언어의 장벽과 서러움을 담보로 한다.타국인의 삶도 한국인의 삶도 아닌 이방인의 삶.그 삶을 글로 풀어 적는 일은 자신의 서러움을 푸는 일을 넘어서 이민자의 삶을 기록하는 일이 된다. 그 작가는 고국을 떠나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조선 밖으로 버려지고, 보내지고, 돌아올 수 없었던 한인들의 이민사를 찾아보았다. 하와이 이민사는 1902년에 시작된다. 고려인의 공식적인 이민사는 1864년이다. 1919년 최초로 프랑스에 도착한 이민자는 35명이었다고 한다. 또 어딘가에서 이민자의 삶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잘못 불리면, 나는 '조선인'이라고 고쳐 말해주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은 없다'는 답을 듣고 남몰래 울었을 그들의 삶. 소설가가 찾아내고 기록해야 할 이민자의 삶은 얼마나 많을지. 불러줄 이름은 얼마나 소중할지. 봄꽃이 만발했지만 쌀쌀해진 봄밤에 을지로의 노포 '이름 없는 분식'에 앉아, '이름 없이' 어딘가에 묻혀 있을 '조선인'들을 불러보았다.박지음〈소설가〉박지음〈소설가〉
2023.03.30
[문화산책]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는 병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보면, 어머니는 집 앞 신천을 두고 고향 경북 청도를 떠올리곤 하셨다. 산을 배경으로 두고 마을과 가까운 곳에 흐르는 신천의 풍경은 어머니가 유년을 보낸 옛집 앞의 청도천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신천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방아쇠가 되었다.화가에게도 추억은 그 자체로 작품 영감이 되고 고향 풍경은 주요 소재가 된다. 한국화의 대가 남천 송수남도 수평선이 주는 편안한 느낌을 통해 어릴 적 고향 전주의 산천을 떠올렸다. 평생을 수묵의 현대적 조형성에 천착한 그는 이윽고 '남천산수'로 불리는 수묵 산수 연작들을 통해 독창적 화풍을 완성했다. 네덜란드 화가 마인데르트 호메바 역시 고향 마을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대표작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에는 가지치기를 하는 농부,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지평선에 놓여 있는 교회와 마을의 집이 그려진다. 이런 장면들은 감상자에게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정취를 전한다.이호우 시조 '살구꽃 핀 마을'에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라는 표현이 있다. 송수남의 풍경에 등장하는 전주와 네덜란드 남부 마스강 어귀의 작은 마을 미델하르니스 또한 방문한 적이 없어도 낯설지가 않다.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보편적 풍경이 감상자에게는 '낯익은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사람은 그림 속 공간이 자신과 직접 인연이 닿지 않는 곳이라도 따뜻한 정경, 반가운 이의 몸짓, 익숙한 집 등의 내밀한 장치들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그 여행은 지금의 나를 위로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기억과 이미지는 현재의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되어준다. 물론 과거의 모든 시간이 꼭 사람에게 행복했던 날들인 것만은 아니다. 과거에 두고 온 어린아이, 찬란했던 장면들이 대변하는 되돌아갈 수 없는 순수함, 두고 온 가능성 뒤에는 초라한 젊음, 실패와 실수의 연속으로 점철된 일상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기억의 다락방에서 먼지 쌓인 상처와 고통의 상자는 더욱더 후미진 구석으로 처박아두고, 오롯이 반짝이고 예쁜 상자만 꺼내게 된다. 시간은 모든 고통을 해결하는 유일하고 가장 효과적인 처방인 까닭에 망각과 선택적 기억은 오늘을 살아갈 힘을 준다. 그래서 향수는 병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는 병. 정연지 (작가)정연지 (작가)
2023.03.28
[문화산책] 초현실적인 나의 골목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기형도(1960~89)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시작(詩作) 메모 중 일부분이다. 거리의 상상력은 왜 그토록 고통이었을까? 요절한 시인을 떠올리며 봄빛으로 가득해진 창문을 바라본다. 무작정 거리를 걷고 싶어진다. 걷다가 은은한 불빛이 보이는 어느 가정식 백반집에 들러 밥 한 그릇을 비우면 다시 걷고 싶어진다. 일상이라는 벽에 균열이 생겼을 때, 낯섦이 필요할 때, 골목이 보이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겠다. 골목 모양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고, 쓸쓸해 보이지만 정겹다. 필자는 거리에서 뻗어간 골목을 더 사랑했다. 1970년대생인 필자는 태생적으로 골목 또한 집의 영역이었다. 집에서 나는 최초 아기의 울음소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 탄생의 신호탄이었다. 또한 조등이 걸린 집에서 죽은 자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것 또한 이곳을 통해서였다. 어린 시절 나를 키운 것의 팔 할은 골목이었다. 동네 골목에서 잔뼈가 굵어진 소년들은 학교에서 익힌 지식과는 다른, 보다 유연한 흐름을 체화할 수 있었다. 특히 집과 집 사이를 이어주는 담벼락을 따라, 옥상과 옥상을 건너, 새롭고 낯선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과 지혜를 터득했던 것 같다. 길은 꼭 바닥에 있지 않았다. 대칭적이거나 균형적인 공간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곤 했다.이기성 시인의 시 '골목'은 "햇빛을 꽉 물고 있는 골목의 반은 컴컴하다."로 시작한다. 골목에는 봄날도 있고, 겨울도 있으며, 행복과 아픔의 시간들이 뒤섞여 창조적 공간이 된다. 어떤 몸이 되어간다. 초현실주의 연구가인 미셸 카라수는 "초현실주의가 궁극적으로 영원한 창조와 발명 상태에 있는 재통합된 인간을 추구한다"라고 했는데 어쩌면 필자 또한 골목의 변화무쌍한 변화와 소리들, 골목의 하늘과 환상의 몸짓들, 그 속에 녹아있는 삶의 파편들이 콜라주 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 '포비든 앨리'라는 TV 프로그램도 있듯이 '사라져 가는 숨겨진 골목'이 많아졌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옛 골목을 산책하는 것은 탐험적이며 초현실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여전히 낯선 발견과 고통까지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담과 담(譚)이 이어진, 거리의 상상력을 가진 기형도 시인처럼 말이다. 권기덕 (시인)권기덕 (시인)
2023.03.27
[놓치면 후회!]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우리동네 생활문화 지원사업 참여단체 모집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생활문화 지원사업인 '우리동네 생활문화Ⅰ'과 '우리동네 생활문화Ⅱ' 참여 단체를 오는 4월5일까지 모집한다.'우리동네 생활문화Ⅰ'은 생활문화 공간 발굴 및 활용을 통해 주민 중심의 커뮤니티 공간 구축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공모대상은 대구에 소재하고 있는 생활문화 활동이 가능한 시설(공간)이며, 1개 단체당 최대 400만원까지 지원한다. '우리동네 생활문화Ⅱ'는 올해 신규사업으로 아동·청소년, 청년 등 신규세대 유입 또는 생활문화 비활성화 지역을 주제로 한 지역 밀착형 생활문화 활성화 프로젝트를 공모한다. 공모대상은 대구에 있는 문화콘텐츠 관련 예술가, 기획자,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단체이며 프로젝트 그룹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 최종 선정 단체에는 1개 단체당 700만~1천만원을 지원한다.특히 올해는 2018~2023년 역대 선정된 생활문화공간의 교류 기회 마련을 위해 '우리동네 생활문화 주간'을 오는 10월 중 운영한다. 행사에서는 각 공간에서 시민 참여형 체험 프로그램을 동시 개최할 예정이다.2023 생활문화육성지원사업 공모에 지원하고자 하는 단체는 4월5일 오후 6시까지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NCAS)의 단체대표 가입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대구문화예술진흥원(www.dgfca.or.kr)·대구생활문화센터(www.dccc.or.kr)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053)430-5614 최미애 miaechoi21@yeongnam.com
2023.03.24
[문화산책] 나는 걸림돌이 되리라
동거차도는 전남 진도 서망항에서 배를 한 시간 타고 가면 나오는 섬이다. 지난 주말에 나는 동거차도에 갔다가 목포 세월호 선체 내부를 보는 기행을 촬영팀과 다녀왔다. 나는 진도 출신으로 진도에서 열아홉 살까지 자랐지만, 진도를 다 모른다. 세월호 관련 장편을 쓰는 중 세월호 내부를 보고 싶어서 동행한 여행이었다. 동거차도는 세월호를 인양할 때 유가족들이 인양 과정을 지켜본 섬이며, 문지성 학생이 발견된 곳이다. 나는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와 촬영팀 일행과 동행했다. 동거차도로 향하는 길은 비가 내리고 쌀쌀했다. 동거차도에 도착해 수풀과 대나무숲을 헤집고 가파른 길을 오르자 소녀의 조각상과 학생증이 보였다. 일행은 묵념했고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는 비명을 질렀다. 바다를 향해 지르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비명은 일행을 숙연하게 했다. 나는 지난주에 '서울 위안부 소녀상'의 손목을 잡아 보았듯이 소녀의 조각상을 더듬었다. 희생자의 흔적과 조우할 때마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아픈 일들을 찾아다니며 눈감고 지나치지 못할까. 이 생각을 품고 나는 목포로 향했다. 다음 날은 비는 오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었고 더 추웠다. 세월호 내부는 서늘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서늘함은 날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3년 동안 바다에 잠겨 있던 배는 녹이 슬었고 거대한 따개비 껍데기가 올망졸망 붙어있거나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구르는 따개비 껍데기를 주었다. 따개비는 원래 손톱만 한 크기로 바위에 들러붙어 자란다. 그런 따개비가 돌멩이처럼 커지는 시간이 3년이었다. 나는 따개비 한 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픈 장소의 돌멩이라도 쥐고 있으면 소설이 잘 써지는 것은 나만의 비법이다. 일행 중 한 분이 말했다. 나는 걸림돌이 되리라. 촬영팀과 동행한 분들은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했던 사람들이다. 그분의 말은 내가 내내 품고 다니던 의문의 답이었다. 작가인 내 앞에 희생자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은 내가 걸림돌이 되길 바라서가 아닐까. 문학이라는 것은 현상의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제도권에서 덮고 지나가려는 사건들에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권력의 쪽에서 보면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분에게 그 말을 내가 써도 괜찮냐고 물었다. 그분은 흔쾌히 수락했다. 작가는 권력과 제도권의 디딤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걸림돌이 되어야만 한다. 나는 주먹만 한 따개비를 손에 쥐고 4월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박지음 (소설가)박지음 (소설가)
2023.03.23
[문화산책] 선생님, 비밀인데요
넷플릭스 영화 '수업시대'는 수천 년 이상 전해 내려온 인도 전통음악인 '라가'를 배우는 24세의 샤라드라는 전통음악가의 고민과 여정을 그리고 있다. 비주류 전통음악을 계승하는 예술가의 길은 고독한 수행자의 길과 다름 없다. 현실적인 것을 뒤로하고 성공을 기약할 수 없는 전통음악의 길로 일생을 바쳐야 하는 전통음악 계승자의 고뇌를 여실히 보여준다.나라마다 고유의 전통문화가 있고 그 한편에는 전통음악이 있으며 이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인도의 전통음악 '라가'의 문하생인 샤라드, 국악의 '서도소리'의 문하생인 필자를 비롯한 많은 전통음악가들이 대중적인 관심을 크게 얻지 못하면서도 저마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유이다. 따뜻한 봄을 알리는 개나리가 만개한 교정은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필자는 7년 차 국악 선생님이다. "국악은 무엇일까요?" 첫 시간, 학생들에게 던지는 단골 질문이다. 몇 년 전 수업 때는 "잘 몰라요"로 일관했는데, 요즘은 "장구" "옛날 노래" 등의 답변이 제법 나오는 것을 보면 국악 수업 효과의 덕을 톡톡히 보는 듯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전문 예술 강사를 파견하는 사업을 시행하며 소정의 검증과정을 통해 선발된 국악 전공자들이 학교에서 심도 있는 국악 수업을 가르친다. 세대를 불문하고 서양음악의 대가인 베토벤, 모차르트의 이름은 익숙하나 전통음악의 대금 명인 박종기, 판소리 명창 김소희를 모르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게다가 1970년대생 세대까지 배웠던 국정교과서의 오류로 인하여 해금을 아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는 교과서에 30% 이상이 전통음악을 싣고 있다. 또한 최근 국악교육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국악계의 반발로 무산되었던 일도 있었다. 헌법 제9조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함일 것이다. 전통음악을 강권해서는 안 되지만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국가 차원의 문제이다. 확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계음악을 수용하고 응용해 나간다면 '독창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갖추고 문화적 융합의 선순환구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 학생에게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 비밀인데요, 제가 꿈이 생겼는데 선생님 같은 국악인이 되고 싶어요." 예술행위자이자 예술교육자로서 빛이 보이는 순간이다. 이 학생이 전통음악 계승자의 길을 걷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훗날 서게 된다면 필자보다는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단희<국악인·서도소리꾼>김단희
2023.03.22
[문화산책] 봄이다, 이제 봄이다
눈 덮인 세상을 뚫고 생명이 피어난다. 언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매화의 생장은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선비의 지조와 닮았다. 그래서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불린다. 조선 후기 중인화가 조희룡은 매화그림을 즐겨 그렸다. 추사의 제자인 그는 유배지에서 매화를 그려 서화 수장가 유최진에게 보냈다. 이때 "그림을 걸어두고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을 것"이라는 편지를 동봉했다."날씨가 추워진 이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다는 것을 안다.(知松柏之後凋)"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발문이다. 추사는 절해고도 제주에서 9년간의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이 그림을 그렸다.겨울은 춥고 시린 고난의 한때를 상징한다. 방에서 혼자 누군가를 기다리는 외로움의 계절이 겨울이라면 봄은 다르다. 봄은 따뜻하고 밝으며 함께하는 이가 있는 충만한 시작이다. 문학평론가 노스럽 프라이는 "봄은 희극적 구조를 가진다"고 했다.아직 오지 않은 봄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사람은 겨울로부터 잠시 해방되기도 한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떠올려 보자. 그는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파란 잔디가 언덕을 덮듯 새 생명으로 가득한 미래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가수 김윤아의 노래 '봄이 오면'도 마찬가지다. 봄이 오면 만물이 깨어나 붉은색, 연둣빛 등 본래의 색을 되찾는다. 다정한 당신과 손을 잡고 들녘과 연못을 향하는 나의 심정은 시름으로 가득 차 있던 겨울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기타와 처연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여전히 현실이 겨울에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노래는 오지 않은 봄을 되뇐다.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봄이 오면…." 인생의 계절은 자연의 사계와 달리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 겨울 뒤에 꼭 봄이 오는 것도 아니고, 여름 앞에 반드시 봄이 있지도 않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래도 사람은 겨울이면 봄을 기다린다. 계속되는 봄도 없지만 영원한 겨울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춘분이다. 얼음은 깨졌고 곧 하늘이 맑아진다. 온종일 밤과 같았던 겨울을 걷어내고 해가 하루의 절반을 차지한다. 덩달아 꽃도 핀다. "봄이다! 이제 봄이다!"정연지〈작가〉정연지〈작가〉
2023.03.21
[문화산책] 사람다움의 어떤 방식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그래, 절경만이 우선시가 된다. 시, 혹은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결국 사람 구경일 것이다." 고인(故人)이 되신 문인수(1945~2021) 시인의 시집 '배꼽'(2008)에서 '시인의 말' 부분이다. 대구의 선배 시인이자 가장 인간적인 따뜻함을 베풀어 주셨던 선생님이 그리워 가끔 자전거를 타고 시인이 살던 동네를 배회하곤 한다. 봄이 왔으니 어쩌면 시인의 집 맞은편 담벼락에는 개나리꽃이 환하게 폈을지도 모르겠다. 절경을 찾아 일부러 먼 거리를 나서지 않더라도 눈길 가는 곳이 있다. 바로 편의점이다. 사실 재미있게 읽었던 김호연 소설 '불편한 편의점'(2021)의 영향도 크다. 소설은 편의점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의 삶을 섬세히 엿보게 해주며, 주변 세상을 반추하게 만든다. 시적 소재로 삼을 만한 절경 또한 그런 곳에 있지 않을까? 필자는 동네 단골 편의점에 자주 간다. 절경을 찾기 위해, 컵라면을 먹으면서 랩 하는 중학생과 만나면 일단 경청. 이웃과 만나면 "원 플러스 원 음료수 어때요?", 간혹 재미있는 발상이 떠올라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도 한다.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면 나 자신이 어떤 특별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우리의 일상을 잔잔히 담백하게 받아적고 싶어진다. 그런 시를 쓰고 싶어진다. 문인수 시인처럼 말이다. 어쩌면 팬데믹 시대로 인해 더더욱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사람다운 이해와 공감의 방식을 시인은 미리 제시하고 가셨을지도 모른다.절경을 찾아 걸었던 지난겨울에는 대구미술관도 있었다. 특히 2022년 11월과 2023년 1월 사이에 전시된 유근택 화가의 '또 다른 오늘'(2021~2022·한지에 수묵채색·153점 설치) 작품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화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병원에 계신 아버지께 어떤 '대화'의 방식을 생각해 냈다.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사진 형식으로 매일 병원의 간병인 휴대폰으로 전송하는 것이었는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담긴 풍경들은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또한 못다 한 말들을 남긴 채 이 세상을 건너간 우리네 아버지 생각에 필자는 전시된 그림들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줄 몰랐다. 이 화가가 가진 대화의 방식은 정서의 감동과 함께 사람다움을 환기하는 매개가 된 것 같다.하루를 마친 오늘, 산책길에서 만난 이웃과 편의점에서 '원 플러스 원' 음료로 대화를 해보자. 그러다 고마웠던 누군가를 떠올려 지금 내가 보여주고 싶은 풍경 하나를 스마트폰으로 전송하자. 따뜻한 문장과 함께. 사람다움의 소통 방식으로. 권기덕 (시인)권기덕 (시인)
2023.03.20
[놓치면 후회] 전국 문화도시 기획자 심포지엄 '경북에 나타난 문화기획자들'
영천시가 주최하고 <사>인디053, 아트랜스파머 사회적협동조합, 예술의성 협동조합이 협력 주관하는 전국 문화도시 기획자 심포지엄 '경북에 나타난 문화기획자들'이 18일 오후 3시 경북 영천청년센터에서 열린다. '경북에 나타난 문화기획자들'은 경북 도내 각 시·군 단위 문화 현장들이 가진 현황을 공유하고 2030 청년 문화기획자들과 활동가들이 지역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의 현장을 함께 교류하는 자리이다. 본 행사에선 먼저 김아영 코뮤니타스 대표가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경북의 청년'이란 주제로 발제한다. 이어 사례발표로는 경주시에서 활동 중인 한승엽 태종기획 대표가 '을로서 살아가는 문화기획', 구미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신애 <주>생활예술콘텐츠연구소 프리즘 대표의 '예술가 또는 문화기획자', 영천시의 강구민 도시사람콘텐츠랩사회적협동조합 대표가 '결핍에서 온 관계의 비즈니스'를 주제로 이야기한다. 사례발표 후에는 발제자들과 참여자들이 함께 팀을 이루어 영천시를 여행하며 참여자 간 교류 시간을 갖는다. 심포지엄 관련 자세한 정보 및 참여 방법은 인디053 홈페이지(http://www.indie053.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미애 miaechoi21@yeongnam.com
2023.03.17
[문화산책] 무아경(無我境)
우리의 전통음악은 선조의 삶과 철학, 역사, 종교 등을 담고 있는 결정체이자 그들만의 이야기를 오롯이 후손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함께해 온 불교는 전통음악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는데, 예를 들면 사물(四勿)도 원래 불교의식에서 쓰인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의 악기를 일컫던 말로써 현재는 북, 장구, 징, 꽹과리의 네 종류의 민속타악기로 연주하는 음악과 그 놀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16일 오후 7시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리는 대구시립국악단 208회 정기 연주회의 제목인 '무아경(無我境)'도 불교 용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무아경(無我境)이란, 어떤 일에 집중하여 마음이 온통 한 곳에 집중되어 나의 존재마저 망각한 듯한 상태를 의미한다.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시간의 정각을 알리듯 음악이 시작된다. 지휘자가 내리는 손짓과 동작에 따라 연주자들은 한 음마다 섬세하게 연주하며 자신의 내면에 빠져들어 예술적 감성과 열정을 표출한다. 그들의 연주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 전체적인 연주를 만들어내는데 그 소리는 실로 방대하다. 이를 통해 관객은 지휘자의 호흡과 손끝의 움직임, 연주자들의 합주에서 나오는 악기 소리에 집중하고 몰입하며 서서히 음악에 빠져든다.이러한 무아의 경지로 우리를 안내할 이번 무대는 먼저 웅장한 국악관현악 곡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지하철 환승곡으로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관현악 연주와 함께 한국무용이 어우러지며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더한다. 뒤이어 필자가 무대에 올라 서도민요 2곡을 협연한다. 자연의 경관과 사랑에 관한 노랫말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스한 3월과 어울리는 곡이다. 그리고 대망의 클라이맥스로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이 함께 어우러져 박진감 넘치는 연주를 펼치는데 전 악장을 연주한다. 40분 가까이 달하는 긴 곡이다. 총 3악장으로 이루어지며 악장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보통은 3악장만 연주되며 전 악장을 연주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타악기와 관현악의 시원한 연주를 통해 관객들의 시각과 청각을 만족시킬 것이다.이번 공연을 이끄는 대구시립국악단은 대구를 대표하는 국악관현악단으로 4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명실공히 국악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필자에게 70여 명의 훌륭한 단원과 함께 이번 공연을 꾸밀 기회가 주어진 것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다. 필자는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무아경에 빠져들 수 있는 멋진 공연을 선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내일 밤, 무아의 경지로 초대하고 싶다. 김단희〈국악인·서도소리꾼〉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2023.03.15
[문화산책] 물멍, 잠시 쉬어갑니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바위에 엎드려 유유자적 물을 응시하는 선비를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배경을 이루는 이파리와 바위는 간단히 묘사된다. 감상자의 시선을 중앙으로 끌어당기는 그는 온화하고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다. 공자의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물은 동양철학의 궁극적 개념을 설명할 때 상징적 은유로 나타난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방향을 잃지 않는다. 넘치면 평평히 자리를 되찾는다. 또 새롭고 깨끗한 것을 받아들여 교화된다. 그래서 노자는 '도'를, 공자는 '군자'를 물의 속성에 빗대어 설명했다. 산수화는 형상을 빌려 정신을 드러낸다. 즉 풍경을 통해 그림의 주제를 말한다. 시(詩)·서(書)·화(畵) 삼절로 인정받던 강희안이 노자와 장자를 몰랐을 리 없고,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도를 표현해야 한다는 재도적(載道的) 회화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고사관수도'는 사색하는 선비의 자화상이자 사람이 추구하는 이상적 공간의 형상화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인은 군자나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여느 시대보다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가는 까닭에 물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장자는 "성인이 고요히 있는 것은 고요한 것을 좋은 것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만물 중에 마음을 어지럽게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 했다. 맑은 물이 세상을 제대로 비출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림처럼 하늘이 맑고 바람이 선선했던 어느 날 추억이다. 오랜 친구 내외가 몸이 아파 쉬고 있는 나를 일으켜 근교로 이끌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산 하양 어귀의 작은 시냇가였다. 경치를 구경하는 동안 친구의 남편은 집을 지었다. 텐트로 만든 임시 거처와 접이식 가구들로 이뤄진 조촐한 살림이었지만 며칠은 머물 수 있을 만큼 세간살이도 꽤 갖췄다. 물가에 저마다의 작은 집을 짓고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고요히 내 눈을 사로잡았다. 물은 하늘과 산과 떠다니는 새를 모두 담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방향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고 소란이 없었다. 내 마음속 불안과 머리를 어지럽히던 걱정도 자연스레 사라졌다.정연지〈작가〉정연지〈작가〉
2023.03.14
[문화산책] 사물과 눈을 맞추는 시간
평소 가까이 지내는 문학인이 많지는 않지만 필자에게도 아주 특별한 소설가 A와 시인 B가 있다. 문학적 순결성과 진지함으로 봤을 때 문학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나 담론들이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물에 관한 탐구 시간이 가장 많다. 예를 들어 각자가 수집한 사물의 성능이나 가격, 디자인, 쓰임새, 에피소드 등을 열렬히 풀어놓는다. 그러다가 배치 공간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그들의 대화에 심취해서 사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서서히 사물이 오히려 나를 불러준다. 필자는 스피커, 인형, 피규어, 손목시계, 머그잔, 텀블러, 슬리퍼, 이어폰, 열쇠고리, RC카, 마이크, 드론 등 세상의 사물들이 말하고 행동하며 노래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사물은 사랑의 눈빛으로 다가온다.사물도 생명이 있는 걸까? 사물을 개그 소재로 활용한 개그맨도 있었지만 사물은 인간에게 필요한 도구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도 소설가는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얽어 이야기를 만들 것이고 시인은 사물의 입을 빌려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할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이자 인문학자인 함돈균은 "시의 사물 이미지를 '문학적으로' 직관하고 '철학적으로' 따지며 역사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해 보는 비평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사물의 철학' 중)으로 사물에 관한 글을 썼다.때로는 사물을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곳 너머 상상의 세계로 나가게도 해준다. "걸어 다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들이 보인대요// 시계 문이 걸어가고/ 책 문이 걸어가고/ 음식 문이 걸어간대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시 나오면/ 자신도 어느새 문이 되어/ 누군가 들어간대요// 나는 어떤 문이 될까요?"('걸어가는 문' 중) 필자는 실제로 이 동시를 쓰면서 다양한 문을 오랫동안 응시했고, 제멋대로의 자유로운 상상에 푹 빠졌던 경험이 있다.사물을 통해 사랑했던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이현승 시인의 '친애하는 사물들' 시 제목처럼 이미 사물 또한 친밀히 사랑하는 존재다. 사랑하는 일은 "내 손으로 새를 보호하는 일이면서 내 손으로부터 새를 보호하는 일"(신형철의 '인생의 역사' 중)일 것이다. 필자는 가끔 사물과 눈을 맞추고 있던 그 소설가 A와 시인 B에게 사물이 새처럼 변했다가 다시 사물로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물 또한 기꺼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는 듯 보였다.권기덕〈시인〉권기덕〈시인〉
2023.03.13
[놓치면 후회!] 대구문화예술회관, 2023 제2기 예술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대구문화예술회관은 2023 제2기 예술아카데미 수강생을 모집한다. 이번 예술아카데미는 전통예술아카데미(가야금, 사물놀이, 한국무용, 해금, 판소리), 예술실기아카데미(배우체험-연극 배우기, 다이어트 현대무용, 오페라&가곡) 등 다양한 강좌를 실시한다. 4월4일부터 6월30일까지, 3개월간 총 12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강사로는 대구시립예술단 단원들을 위촉했다. 한국무용 등 수업의 수준별 분반(기초·중급)을 통해 맞춤 강의를 제공한다. 가야금, 사물놀이, 해금 강좌는 악기를 무료 대여한다. 배우체험-연극 배우기는 저녁 시간대 수업을 운영해 직장인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교육은 대구문화예술회관 예련관 일원에서 진행된다. 신청은 오는 13일부터 개강일 전까지 선착순 모집한다. 전화 및 방문 접수로 신청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대구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053)606-6345 최미애 miaechoi21@yeongnam.com
2023.03.10
[문화산책] 삼천만의 열망이 만들어낸 기적
딜쿠샤는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 1923년에 머릿돌을 올리고 앨버트와 메리 부부가 머물던 종로구 행촌동의 가옥이며, 현재는 기념관으로 복원되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기미 독립선언문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나는 딜쿠샤를 소재로 단편소설을 썼다. '너는 어디에서 살고 싶니'라는 제목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UPI(United Press International)'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 종로에서 집회가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택시를 탔던 나는 길이 막혀 진땀을 흘렸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뛰어서 딜쿠샤로 향했다. 독립문역에서 내렸을 때 내가 걷는 길이 대부분 독립운동과 관련된 길임을 알게 되었다. 독립군 로드를 만들면 어떨까. 종로에서 독립군 로드를 걸어서 딜쿠샤까지 올라오면, 후손들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뜨거워지겠구나. 뛰면서 생각했다. 딜쿠샤에 도착하자 UPI 기자님들이 세 분이나 나와 계셨다. 사진기자님 한 분, 신입 기자님과 담당 기자님이었다.앨버트 테일러가 전한 기미 독립선언서를 최초 보도한 것은 AP통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3일 전, 다른 신문에서 보도했으며 앨버트 테일러는 UPI의 전신인 UP 기자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충남 아산의 독립기념관에 기록이 남아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이 내 앞에서 드러나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딜쿠샤의 머릿돌은 1923년이고 내가 딜쿠샤를 찾은 날은 2023년이었다. 백 년이 된 그 집의 진실이 소설가 앞에서 밝혀지고, 백 년 전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일인가. 나는 벽난로를 중심에 두고 그 집에 살았던 테일러 부부 세대와 내 소설 속 부모 세대,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현재의 세대에 관하여 얘기했다. 메리의 가족이 있던 공간에 집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고, 이제는 후손들이 관람하러 온다. 나는 우리가 찾아내고 지켜야 할 독립운동가들의 공간을 생각했다. 내가 과거의 테일러와 메리였다면, 기미 독립선언서를 세상에 처음 나온 내 자식의 이불 밑에 숨길 수 있었을까. 그 용기는 그때 전국 팔도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던 삼천만의 열망이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었을까. 그 생각을 하자 나는 가슴이 뜨겁게 일렁였다. 현실의 공간은 작품 안에 들어오면서 상상력으로 인해 무한히 확장된다. 가끔은 좁은 집 안에 수만의 사람을 모아 놓고 독립운동을 할 수도 있다. 그날 나의 딜쿠샤에는 삼천만이 모여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박지음〈소설가〉박지음〈소설가〉
2023.03.09
민중음악 토크콘서트…11일 음악감상실 녹향
<사>한국국제합창협회(KICA)와 음악감상실 녹향이 공동 주최하는 '민중음악 토크 콘서트'가 오는 11일 오전 11시 음악감상실 녹향(대구 향촌문화관 지하 1층)에서 열린다.이날 토크 콘서트는 장영목 KICA 이사장의 개회 인사, 윤덕홍 전 교육부 총리의 축사, 도용복 KICA후원회장의 격려사, 주제 강연, 자유토론 순으로 진행된다.주제 강연은 정유하 작곡가(합창지휘자·민중음악가)가 '민중음악의 특성'을 주제로 강의한다. 정 작곡가는 전남대 예술대학 외래교수 및 전남대 5·18연구소 전임연구원,광산구립합창단 지휘자를 역임하고, 현재 푸른 솔 합창단 지휘자를 맡고 있다.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정유하 작곡가.
2023.03.08
기획
[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 사람 소리 가득했던 '전통시장' 역사 속으로…주상복합·아파트 '빌딩숲'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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