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철강연대의 호소는 사실상 절규(絶叫)다

  • 마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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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22 11:02  |  발행일 2026-04-22
마창성 동부지역본부장

마창성 동부지역본부장

철강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자 제조업의 근간이다. 흔히 '산업의 쌀'로 불리며 우리나라 발전을 견인해왔다. 기간산업의 하나인 셈이다. 그런데 국내 대표 철강도시 포항의 밤이 예전 같지 않다. 불야성을 이루던 제철소의 불빛이 겉으로는 여전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보통 일이 아니다. 용광로가 철강산업의 뜨거운 심장을 상징함에도 불구, 차가운 냉기가 흐를 지경이다. 세계 철강 시장의 현실에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보호무역 장벽은 높아지고, 중국발 저가공세는 거세지며, 탄소중립 규제는 비용 부담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산업용 전기요금 급등까지 겹치며 한국 철강업계는 사면초가의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포항에서는 이례적인 장면이 주목을 받았다. 국내 철강 산업의 양대 축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노조가 손을 맞잡고 '철강연대'라는 이름으로 공동 행보에 나선 것이다. 평소 결이 달랐던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 포스코 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현대제철지회가 단일 대오를 형성한 것은 현재 철강업계의 위기가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전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철강연대의 탄생 배경은 지극히 현실적이다.우선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녹색 파고'에 직면해 있다. 굴뚝 산업의 상징이었던 철강은 이제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을 강요받고 있다. 둘째는 지역 소멸의 위기다. 10만 철강 가족의 생존권 붕괴는 곧 도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섬뜩한 내용이 포함돼 있음을 경고한다. 셋째는 실효성이 부족한 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이다. 정부가 내놓은 'K-스틸법' 등은 현장이 기대하는 속도와 강도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판단이다.


철강연대는 선언적 의미를 넘어, 6·3 지방선거에 나선 포항시장 후보들에게 정책토론회를 공식 제안했다. 이는 철강 산업의 위기를 더 이상 정치권에 맡겨둘 수 없다는 절박함이자 실행력 있는 지방 행정을 요구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의 요구 중 핵심은 산업용 전기요금 문제다.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철강업에서 전기료는 곧 생산 원가를 구성하는 중요항 부분이다. 최근 급등한 요금은 채산성을 무너뜨렸고,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라는 자조 섞인 탄식까지 뱉게 한다. 이는 생산 축소와 고용 불안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 나온 호소의 주체가 '경영진'이 아닌 '노조'라는 점은 새삼 눈여겨 볼 대목이다.


통상, 노조는 임금과 근로조건을 앞세운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 생존을 먼저 외친다. 일자리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복지도 의미 없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제철소가 무너지면 협력업체는 물론 지역 상권과 노동자 가정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리고, 이는 국가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정부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 에너지·탄소중립·산업정책이 엇갈리며 현장의 혼란만 키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정 산업에 대한 특혜는 경계해야 하지만 철강처럼 국가 기간산업에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차등 요금제와 한시적 지원,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과감한 투자 검토가 불가피하다.


철강연대의 등장은 정부와 사회에 보내는 구조 신호(SOS)다. 위기의 징후는 늘 현장에서 먼저 나타나며, 이를 외면하면 골든타임을 놓친다. 노사가 함께 "도와달라", "살려달라"고 외치는 지금, 침묵은 방관이다. 이제 책임은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포항의 심장이 멈추기 전에 철강연대의 절박한 외침에 실질적 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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