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푸드] 와인야담(6)-"유럽은 오크통…의성은 '옹기'에서 숙성됩니다"

  • 입력 2008-05-30   |  발행일 2008-05-30 제38면   |  수정 2008-05-30
향토와인 순례 '의성 사과와인 (주)애플리즈'
숱한 좌절끝에 2005년부터 미국시장 진출…세계 7개국 수출
사과와인 등 모두 17종 출시…2005년부터 와인체험투어 실시
[와인&푸드] 와인야담(6)-

◇…공학도가 사과와인 전도사가 된 이유는

(주) 의성 애플리즈 한임석 대표는 그동안 철저하게 언론을 멀리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을 만든 배용균 감독처럼 한 대표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사과와인을 빚었다. 거의 24년간 언더그라운드 와인 제조자로 살았다.

70년대 일반인들은 엄두도 못냈던 비행기를 타고 세계적 종합건설사 캐나다 벡텔 등에서 고액봉급자로 살던 그가 와인에 손을 댄 이유는 뭘까?

1976~80년 업무차 프랑스에 왔다가 칼바도스 지역에서 사과와인인 시드르(Cider)와 사과브랜디 칼바도스한테 충격을 받는다. 포도와인도 아니고 사과와인이라? 그가 사이다의 유래를 설명한다. 와인 본산지에서는 사과를 원료로 술을 제조할 때 탄산가스를 넣어 용해시킨 걸 시드르라 하는데 이게 일본을 통해 한국에 유입됐을 때는 특정회사의 청량음료수로 전락했다.

의성군 단촌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사과와 함께 뒹굴며 살아왔다. 생식용 사과밖에 몰랐는데 그걸 갖고 술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는 1967년 경산에서 국내 첫 애플와인 파라다이스가 출시됐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후 그가 천신만고 끝에 주류면허를 따고 무려 16번의 크고 작은 실패를 거울삼아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중국 등 세계 7개국으로의 수출라인을 갖게 되기까지 거의 홀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가양주만 보고 아무나 술을 만들어 팔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술사업 면허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았다.

고향으로 오자마자 프랑스에서 익힌 사과와인기술을 갖고 농주 같은 와인을 만들어 동네사람들과 나눠먹었다. 와인사업을 위한 워밍업이었다.

빗장을 풀지 않던 정부가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민속주 제조면허를 부활시켰다. 와인에 손을 댄지 10년 넘어 비로소 농림부로부터 96년 제조면허를 딴다.


◇…사과와인 원천 기술을 배우다

사과의 역사를 공부했다. 그러던 중 애플와인파라다이스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윤세훈씨가 경기도 부평에서 동물병원을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갔다. 윤 원장은 1880년대말 함경남도 원산 부근에서 사과 과수원을 꾸민 윤동수씨의 손자였다. 윤 원장은 일본 와세다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 국내 첫 사과와인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그가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사과발효에 특출한 효모인 메스실린더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한 대표의 노하우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순간이었다.

단번에 (주) 애플리즈가 탄생된 건 아니다. 96년 영농조합법인으로 출발했다가 2006년 주식회사로 간다. 98년 현재 자리에 주류공장을 건립했다. 공장이 지어지고 나서 2년만에 첫 제품을 출시했다. 그는 대박을 예상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3만병을 만들었다. 와인 병부터 촌스러웠다. 정종병에 담는 무례를 범했다. 참패였다. IMF외환위기와 맞물려 불안해진 조합원들이 빚잔치를 요구했다. 해외시장으로 나갔다. 2000년 6월 독일 베를린 식품박람회와 이듬해 파리 박람회에 참가했다. 그런데 그의 부스 앞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속으로 이제 대박이 터졌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현지의 한 관계자가 "저들이 부스앞으로 몰려오는 건 당신 와인이 대단해서 그런게 아니고 들어보지도 못한 아시아의 한 국민이 와인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니 매출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요지의 조언을 줬다.


◇…독자적인 병을 만들어라

실패의 원인이 뭔가를 면밀히 분석했다. 일단 와인이 돋보이게 독자적인 병을 개발해야 되겠다고 맘을 먹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유명 주류회사가 만든 병을 구입해 그 안에 와인을 넣어 팔 수밖에 없었다. 소주병에 와인을 담아놓으면 그게 멋있어 보이겠는가. 그는 감각있는 디자이너를 동원, 병을 만들 금형을 무려 13개나 만들었지만 모두 실패였다. 또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04년 뭔가 조짐이 좋았다. 그래, 한국적 이미지가 담긴 병을 만들자. 한복을 입고 원무를 그리는 형상을 병으로 만들었다. 그제서야 촌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5년 미국 시장을 뚫었다. 일단 애플리즈를 세상에 알리는 건 성공했다.

새로운 수요층을 만들기 위해선 와인공장을 투어상품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2005년에 싱가포르 우송, 포시즌 등을 움직여 국내로 오는 동남아시아 관광객의 인바운드 관광코스에 애플리즈 견학 프로그램을 끼워넣도록 했다. 열대 지역에선 열대 과실이 일상이지만 사과는 충격의 과일일 거라고 믿었다. 예상이 적중했다. 그들은 사과에 매료됐다. 1인당 1만2천원만 내면 과수원에서 사과 따서 먹고, 즙도 먹고, 채썰어 애플파이, 준비된 빈병에 와인을 주입해 기념사진을 상표처럼 붙여 갈수있도록 했다. 지난해 모두 2만5천300명이 거길 찾았다.


◇…와인에 대해 쓴 소리 한 마디

우린 민속주와 와인을 동급으로 치려고 한다. 민속주와 와인은 별개의 세계다.

우리 와인이 세계 시장에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일단 정부에서 와인개발 경쟁을 잘 유도를 해야 된다. 우리는 뭔가 돈이 된다고 하면 모두 거기로 몰려든다. 그럼 과당 경쟁 때문에 덤핑 등으로 인해 모두 죽게 된다. 대외적 이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유럽에선 도저히 구할 수 없는 복분자의 경우, 정부와 관계자들이 조금만 신중하게 대했으면 한국의 꼬냑으로 특화시킬 수 있었다. 복분자가 된다고 하니 모든 지자체에서 다 덤벼들었고 정부도 과당경쟁을 부추겼다. 브랜드에 대한 집중과 분산이 안되면 명품 와인은 요원하다.

와인은 그냥 음식이다.

와인을 먹으면 마치 신선이라도 될 듯이 떠들면 안된다. 와인을 마신다고 생각하지마라. 지역을 마신다고 생각하라. 주지몽을 마시는 건 바로 의성을 마시는 것이다. (054)834-7800


#애플리즈 와인은?

알코올 기운 못느끼면서 취한다
조만간 '이슬람권'으로 진출 계획

와인명도 처음엔 사과주, 마루스, 좋은 느낌 등을 거쳐 지금의 주지몽(酒之夢)이 된다. 사과와인이 첫 출시될 시점 국내 주류관계자들은 와인에 대해 무지했다. 거의 국내산 와인을 과실즙에 알코올을 섞은 '과실주'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7종의 와인이 개발됐다. 물론 사과·석류와인이 대표주자.

사과와인은 도수별로 3종류(11·15·40도), 석류와인은 지난해 '류몽'이란 이름으로 2종류(12·16도)가 나왔다. 지난 4월에는 의성 산수유 마을 산수유를 갖고 산수유와인을 만들었고 이에 앞서 수박과 마늘로도 와인을 양조했다.

의성은 전국적 사과 주산지다. 특히 '의성 사과벨트'로 불리는 단촌·점곡·옥산 3개면은 의성 옥사과의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13%를 차지한다. 외국에선 오크통을 고집하지만 여기선 항토 옹기독을 사용한다.


#애플와인 제조과정을 어떨까?

일단 상태가 양호한 걸 세척해 에어브러시로 수분을 제거한다. 파쇄기로 으깨 과즙과 박을 분리한다. 당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당은 효모의 먹이이기 때문이다. 여기선 사과속 수분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18~20브릭스를 유지한다. 발효과정에 잡균의 번식을 예방하기 위해 멸균처리를 한다. 사카로마이세스속의 효모를 투입한다. 이 과정에 고도의 숙련도가 요구된다. 너무 많이, 또는 적게 들어가거나 대기중 잡스러운 화학물질이 스며들면 잡냄새가 나고 탁해진다. 다음은 발효과정, 사과즙을 15~20℃에서 2주간 주발효를 진행시킨다. 이때 발효액은 투명하고 호박색을 띤다. 앙금질을 통해 앙금과 발효액을 분리한다. 맑은 액만 갖고 8~10℃에서 2~3개월간 옹기독에서 후발효시켜 1년 정도 지나 병입할 수 있다.

과정은 이렇지만 실제는 지역과 상황에 따라 너무나 많은 제약조건이 있다.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애플리즈 사과와인의 매력은 술냄새가 전혀 없으면서도 먹고나면 감쪽같이 취기가 얼굴로 번진다. 여느 화이트 와인과 달리 혀끝에 역한 술기운이 붙지 않아 술에 약한 여성에게 인기 짱이다. 조만간 이슬람권으로도 진출할 예정이다.

[와인&푸드] 와인야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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