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부겸에게 부치지 못한 청구서 한 장

  • 김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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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15 22:53  |  발행일 2026-07-15

정치에도 애도 기간이 있다. 선거가 끝나면 승자는 축하받고 패자는 위로를 받는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품격이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김부겸에게는 독촉장이 날아들었다. 낙선했지만 약속은 지키라는 요구였다. 지역사회 일각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참 야속하게 들렸다. 상실의 고통이 채 아물기도 전에 나온 책임 요구는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패배를 대하는 민주적 태도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어떤 선거에서 승자는 절반을 조금 넘는 지지를 얻었는데 권력은 전부를 가졌다. 그렇다면 책임도 승자가 모두 지는 것이 상식 아닌가. 절반 가까운 지지를 받고도 권력은 한 톨도 갖지 못한 패배자는 책임을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그게 지금 우리의 나랏법이다. 민주주의에서 책임은 권한의 다른 이름이다. 권한 없는 책임은 도덕률일 수는 있어도 정치의 원리는 아니다. 낙선한 사람에게 당선자의 책임까지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말이 마뜩잖으면 제도를 고쳐야 할 것이다.


사실은 나도 김부겸에게 보내려고 써 둔 청구서 한 장이 있었다. 그가 당선되면 꼭 해달라고 부탁하려던 것이다. 다른 어떤 일보다 소중하고, 다른 어떤 요구에도 앞서는, 단 한 장의 청구서는 바로 '비례성을 제고하는 선거제도 개혁'이다.


나는 그것이 수조 원짜리 메가 프로젝트보다 더 중요한 지역사회 과제라고 믿는다. 돈이 지역을 바꾸는 힘일 수 있겠지만, 정치제도는 지역의 운명을 바꾼다. 이번 선거에서는 모든 후보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피력했는데, 선거제도 개혁은 그러한 대규모 사업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대규모 사업은 결국 중앙정부로부터 자원을 끌어오는 일일 텐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잘 운용할 우리 내부의 혁신 역량이다. 그 역량이 없으면 모든 게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혁신 역량의 기초는 다양성과 경쟁이라는 역동성이다. 지역의 경쟁력은 예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쟁이 있어야 혁신이 생기고, 경쟁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정치적 다양성은 사람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가 만든다. 그래서 선거제도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인프라라고 하는 것이다.


'비례성을 제고하는 선거제도 개혁'은 지역혁신의 필수 과업이다.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혁은 지역에 정치적 다양성을 가져올 것이고, 정치적 다양성은 경쟁을 낳고, 경쟁은 긴장을 만들며, 긴장은 혁신을 만든다. 혁신하는 지역만이 인구 유출을 막고 기업을 끌어들이며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단언컨대, 선거제도 개혁은 필수 지역혁신 전략이다.


그런데 이런 선거제도 개혁은 여태껏 국민의힘이건 민주당이건 기존 정치 기득권이 받아들이지 않아 답보 상태다. 각 정당은 특정 지역을 텃밭 삼아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이 상태를 즐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정치적 다양성의 실현은 늘 벽에 부딪혔다. 나는 김부겸이 당선되면 이 기득권을 돌파할 힘이 생길 것이라 보았다. 그는 기존 정당의 기득권 카르텔 때문에 늘 고생한 정치인이었고, 그것을 혁파하는 것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아온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김부겸이라면 능히 할 거라는 기대를 했지만, 일단은 접어야 할 것 같다. 그가 당선되지 않아 정치개혁의 꿈도 현실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포기할 이유는 없다. 이 청구서는 애초에 특정 정치인 한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에 보내는 청구서이기 때문이다. 민심의 모양이 그대로 의석에 반영되어 민주성, 대표성, 비례성이 실현되는 나라,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지 않고 국민주권의 원리가 제대로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라는 청구서다.


이 청구서는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에 관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에 관한 것이다. 동시에 지역혁신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지금 청구서는 책상 서랍 속에 있다. 아직 부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그 청구서를 받아 들 정치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때 우리는 예산을 더 가져오는 정치보다 지역의 경쟁력을 키우는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정치의 구조다. 예산은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정치제도는 지역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정치제도는 정치인만을 위한 규칙이 아니다. 한 지역이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를 품고,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며, 얼마나 오래 혁신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사회의 운영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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