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어릴 땐 '주산王'

  • 입력 2008-08-29   |  발행일 2008-08-29 제34면   |  수정 2008-08-29
1등 효자 "용돈 주면 간식 사먹고 남는 돈은 부모에게 돌려주던 착한아이였죠"
주산 1등 "초등학교때 대회 나가서 여러번 1등 했어요…남다른 재능 있었죠"
최민호(김천·유도 金)
新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어릴 땐
초등학교 시절 주산대회에서 1등을 한 최민호 선수(오른쪽)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동생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상식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와, 라면부터 끓여 먹었다는 아드님 소식 들으셨나요?"

"그럼요. 그날 밤 전화통화로 얘기하더라고요. (웃음) 먹성 좋은 아이인데, 대회 출전으로 7㎏이나 체중을 뺐으니…."

지난 25일 오후 김천시 모암동 132번지 좁다란 골목길. 발길이 닿는 곳마다 상인들의 따뜻한 미소가 뿜어져나온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판승으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긴 최민호 선수(29·한국마사회소속)의 고향이다. 흥분과 환호로 가득한 작은 골목길은 행인의 발걸음마저 멈추게 했다.

골목 좌측에 살포시 자리잡은 한 의상실. 최 선수의 어머니 최정분씨(58)가 운영하는 맞춤복 전문 의상실이다. 최 선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운영, 옷 잘 만들기로 입소문난 의상실은 요즘 개점 휴업 상태. 연중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재봉틀 리듬도 고요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날 빛바랜 사진첩 속, 티 없이 웃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소녀처럼 들떠 있었다. 아들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던 어머니는 "참으로 자상한 아이였다"며 말문을 튼다.

◇…식성 특히 좋아, 어릴때부터 음식 남긴 적 없어

"도시락 반찬이 매일 똑같아도 반찬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 아이였지요.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러운 면이 많았고요."

올림픽 국가대표팀 첫 금메달 주역, 최민호 선수의 가족은 모두 4명. 아버지, 어머니, 최 선수, 남동생. 최 선수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네식구는 한 집에 살았다. 어린시절부터 맏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는 최 선수는 동네에서도 대장이었다고. 동네 아이들간의 싸움이 일어나면 중재하거나 시비를 가려주는 등 통솔력이 뛰어났다. 어린시절 최 선수가 가장 무서워했던 유일한 존재는 귀신. 귀신을 빼곤 겁나는 게 없는 소년이었다.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에요. 항상 미소를 머금은 표정이지만 어렸을 적부터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그런 성격이었죠." 180㎝를 훌쩍 넘는 작은 아들에 비해 유난히 작은 체구를 가진 큰 아들. 최씨는 그 사연을 털어놓는다.

"민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유도를 시작했어요. 대회 앞두고는 그램수까지 따져 먹어야 하는 운동이라 한창 자랄 때, 실컷 먹이지 못한 게 가장 마음 아파요." 아들의 작은 키가 제대로 먹이지 못한 자신 때문이라며 질책하는 최씨는 체격이 좋은 둘째 아들(26)을 보노라면 더욱 마음이 아프단다. 키 크는 주사라도 맞히고 싶었지만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시도하지 못했다. 최 선수의 키(163㎝)는 중학교 때 이후로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1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골격과 근육은 커져만 갔다. 매경기 10㎏에 이르는 극심한 감량의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체격이었다.

우연히 사촌 형을 따라 유도장에 놀러갔다 유도를 시작하게 됐다는 최 선수. 김천 모암중, 경산 진량고를 거치는 그의 10대 시절은 오로지 훈련·체중감량·대회출전으로만 채워졌다. 전국 소년체전 등 수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선 '뼈를 깎는 훈련'과 '체중조절'은 필수. 어머니 최씨는 체중조절로 고생하는 아들의 10대 시절이 가장 마음아팠다고 전했다. "민호를 키우면서 편식하거나 도시락 반찬 투정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못했어요. 심지어, 누구나가 한 번쯤 겪는 사춘기 성장통도 보이지 않던 착한 아들이었죠." 호박잎에 된장을 발라 한입 '꿀꺽' 먹는 아들 모습이 제일 뿌듯했다는 최씨는 잠시 회상에 잠긴다.


못말리는 독종 대회 앞두면 밤 늦게까지 아버지와 '연습에 또 연습'

한맺힌 키 163㎝ 체중조절 때문에 굶기 일쑤…중학교 이후 성장 멈춰

태몽은 밭 걷고 있는데 빛깔 고운 파란고추가 대롱대롱 달려 있는 꿈 꿔

◇…태몽? 넓다란 밭 한 가운데 매달린 파란 고추

"아직도 태몽이 잊히지 않아요. 넓다란 밭을 걷고 있는데, 빛깔 고운 파란 고추가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거예요. 어찌나 예쁘던지…." 최 선수의 태몽과 관련해 어머니 최씨는 "넓은 세상 속에서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지금 돌아보니 올림픽 금메달을 예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아이의 적성을 파악하기 위해,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교육을 시도했다. 주산, 피아노, 컴퓨터, 태권도, 음악 등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만큼은 절대 아끼지 않았다. 첫 아들인만큼, 학교에서 충분히 살리지 못한 '끼와 재능'을 마음껏 펼치게 하기 위해서였다. 본격적으로 유도를 시작하기 전, 최 선수가 특출한 재능을 보인 것은 바로 주산. 초등학교시절 주산암산대회에서 여러번 1등을 차지하는 등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중학교 시절부터 훈련 독종이었던 아들. 야간훈련 상대로 아버지와 함께 밤늦게까지 업어치며 기술을 익혔다. 잦은 대회 출전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아들을 위해 어머니 최씨가 할 수 있었던 건 묵묵히 마음속으로 격려하는 것. "혼자 견뎌내야 하는 패배와 좌절의 아픔은 누가 위로해 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민호 스스로 극복해나가길 기도했지요." 천주교 신자인 최씨는 지난 11년간 단 하루도 빼놓지않고 아들을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해왔다. 지금도 시계추가 숫자 4를 알리면, 습관적으로 일어나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다른 선수들처럼 값비싼 보약는 못 먹여도, 마음의 보약은 어떤 부모 못지않게 깊고 진했지요."

◇…대학시절 한달 용돈 30만원, 간식만 사먹고 대부분 저축해

금메달을 손에 거머쥔 채 끊임없이 흘린 최 선수의 눈물. 그 속에는 과거 어려웠던 집안사정도 녹아있다. 남편이 아이스크림 대리점을 하던 시절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최 선수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가세가 기울었다. 살던 집과 아이스크림 대리점이 넘어갔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사업실패로 생활이 어려워져도 아들은 불평 한번 없었다. 오히려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가는 아들을 보며 부부는 다시 일어섰다. 중·고등·대학교 재학시에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으로 부모의 학비 걱정을 덜어준 착한 아들이었다. 대학시절 최 선수의 한달 용돈은 30만원. 간식을 사먹는 것을 제외하곤 고스란히 모아, 다시 부모에게 전달했다.

아들은 작은 규모의 국내 대회에도 부모님을 경기장에 오지 못 하도록 했단다. '부모님을 보면 평정심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체중이 빠지지 않을 때면 저를 찾았지요. 옆에서 그저 지켜봐 주기만을 바랐던 거죠." 아들의 대회 전날 밤이면 비상대기를 하곤했다. 조마조마한 순간이었다,

그런 최 선수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파리오픈. 60㎏급 1위에 오른 대학교 재학시절에 이어 2003년에는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를 석권, '경량급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훈련독종 아들 최민호에게는 유난히 상복이 없었다. "크고 작은 대회 때마다 3등, 동메달에만 그쳤지요. 두배로 훈련하는 녀석인데, 얼마나 마음 아팠겠어요." 2002 부산아시안게임, 2004 아테네올림픽, 2007 리우세계선수권 등 메이저대회에서는 1등의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매번 대회 시상식이 끝난뒤에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아직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요." 최씨는 "아들이 오늘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리에 서기까지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번 주말,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아들 최민호를 위해 쇠고기국과 갈치구이를 준비하겠다는 최씨. 그녀는 아들이 잠시라도 체중 감량 지옥에서 벗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新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어릴 땐
중학교 수학여행 중에 들른 부산해운대에서 한 컷
新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어릴 땐
의상실을 운영하는 어머니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멋쟁이 꼬마'로 불렸다는 최민호 선수.
新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어릴 땐
중학교때 증명사진(왼쪽사진)과 최민호 선수의 돌잔치. '쭈쭈바'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앙증맞다.
新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어릴 땐
대회 우승후 부모님과 함께
新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어릴 땐
다섯살 되던해 설날 유치원서
新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어릴 땐
중학교 졸업식날 어머니와 함께.
新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어릴 땐
고등학교때부터 각종 국제대회 참석을 위해 해외를 자주 찾았던 최민호 선수(맨 오른쪽).
新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어릴 땐
최민호선수의 어머니 최정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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