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스토리텔링 밥상 (상)

  • 입력 2011-02-25   |  발행일 2011-02-25 제42면   |  수정 2011-08-26
"밥상에 스토리를 입혀라" 지자체 개발 경쟁…경남-전남- 충남 `이순신밥상` 3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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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가 지난해 4월 문을 연 통선재에서 선보이고 있는 방풍탕평재, 좁쌀죽, 대합구이, 해초류 등으로 소박하게 차려진 이순신 밥상 ◇사진제공=경남도청

'스토리텔링밥상을 만들어라!'

요즘 전국 지자체장들이 가장 눈독들이는 아이템 중 하나다. 타 지역 사람들을 자기 고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멋진 '미끼'로 본 것이다. 볼거리에 맞먹는 먹을거리가 없다면 더 이상 관광인프라의 성장동력을 얻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에서 기인한다.

전주비빔밥은 그동안 한국 한식 시장을 주도한 것도 사실이다. 세몰이는 하고 있지만 엄격하게 말해 그 메뉴는 스토리텔링밥상의 범주에는 들지 못한다. 일종의 음식 그 자체의 레시피만 특화해 성공시킨 경우다.

스토리텔링밥상이란 특정 지역의 위인급 인물이나 덴마크의 인어상 정도의 랜드마크를 역이용한 일종의 문화관광상품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 음식이 이순신과 무슨 연관이 있냐고 따지고 들면 관계자들도 딱히 할 말이 없다.

현재 이순신밥상이 가장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경남도 뿐만 아니다. 이순신과 연관이 있는 전남 여수, 이순신의 고향인 충남 아산도 비슷한 밥상을 제시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갈등으로 보도했지만 기자가 보기에는 '이순신밥상의 춘추전국시대'로 긍정적인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순신 밥상에 대해 따지고 들면 궁색한 변명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냥 이순신과 연고지 특산물을 설득력있게 구성한 한식이라 보면 된다. 전남 강진에서 다산 정약용 밥상이 존재할 수 있으며, 충남 뿐만 아니라 9년여간 유배지였던 제주도에서도 추사밥상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 이순신밥상 3파전

경남 -'이순신', 전남 -'충무공', 충남 -'현충밥상' 내놔

장군 식단자료 전무한 상태…특산물 웰빙이라 비슷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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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이 개발한 도토리비빔밥·나물밥상 등으로 이뤄진 대장경 밥상(위)과 충남농업기술원이 개발한 올갱이와 은어를 축으로 한 추사 김정희 밥상. ◇사진제공:충남농업기술원과 경남 합천군청

◆ 경남도 1호점 '통선재'오픈

전국에서 가장 먼저 스토리텔링밥상으로 주목받은 건 영양의 음식디미방과 안동의 수운잡방 밥상이다.

'음식디미방'은 안동에서 태어나 영양으로 시집간 정부인 안동장씨(장계향)가 1670년에 지은 국내 최초의 한글 조리서(요리 146종)이고 '수운잡방'은 안동 군자마을의 김유 선생이 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한자 고조리서로 불린다. 최근 영양과 안동이 관련음식을 재현해 내고 있다.

이런 흐름에 예의주시한 경남도가 지난해 4월9일 경남 통영시 용남면 화삼리에서 오픈한 '이순신 밥상' 1호점인 통선재(055-645-6336)를 통해 음식을 팔고 있다. 이곳은 1592년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한산도 견내량이 내려다보이는 포인트다.

이순신 장군이 즐기던 장국밥, 방풍탕평채·태면·대합구이 등으로 차려지는 이순신밥상, 통영 향토 나물 및 해조류를 이용한 통영골동반, 대구껍질누루미·연포탕·수어찜 등 코스 요리인 통제사 밥상 등 4종류.

이순신밥상은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에 의뢰해 난중일기에 나오는 여러 음식 재료들과 덕수 이씨 종가음식, 음식디미방, 난중일기 등 조선 중기의 음식문헌 등을 토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7종 77가지 음식이 태어났다. 통선재 입구에는 음식모형도 전시돼 있다.

이순신밥상의 가장 큰 특징은 뭘까.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모든 음식에 고추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료의 철저한 고증에 따른 결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는 고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장군의 애환이 깃든 메뉴가 나오는 데 그게 바로 좁쌀죽이다. 장군은 진중에서 자주 곽란(급성위장병)을 겪었다. 이는 임진왜란과 백의종군 과정을 겪으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생긴 병이다.

통선재에는 네가지 메뉴가 있다. 이순신밥상, 통제사밥상, 장국밥, 통영골동반. 이순신밥상은 수군이 훈련할 때 먹던 음식과 백의종군할 때 먹었던 음식,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모친상을 당한 후 소상을 근거로 차려진다.

통제사밥상은 삼도수군통제사가 접빈을 위해 차려냈던 상으로 여기에는 통제사밥상과 접빈상, 그리고 해전 승리 후 먹던 음식의 장단점을 조화시켜 상을 차려낸다. 물론 고증음식들이다.

통제사 밥상은 최소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장국밥은 덕수 이씨 종가에서 내려오는 음식으로, 이순신 장군이 즐기던 음식이다. 장국밥은 주식과 부식을 한 그릇에 담아 한 끼 식사로 만들어 내는 일품요리다. 통영골동반은 제사를 지낸 뒤 제사음식을 비벼먹는 통영의 관습을 그대로 살린 비빔밥으로 통영골동반에는 숙주·시래기·무나물· 시금치·고사리·도라지 뿐만 아니라 통영에서 나는 홍합, 새우, 김, 파래, 까시리 등 해산물이 들어가있다.

이순신밥상은 1인 기준 2만원, 통제사밥상은 1인 기준 5만원이며, 일품요리인 장국밥과 통영골동반은 각각 1만원이다.


◆ 여수와 아산의 반격

전남 여수시도 만만치 않은 반격을 시작했다.

여수시는 학동 선소(거북선을 처음 만든 곳) 등 네곳의 식당에서 충무공 밥상, 수군 밥상, 전라좌수사밥상 등 네가지 메뉴를 개발했다. 여수시 보건위생과는 난중일기는 물론, 주보산림경제,규합총서 등 조선시대에 집필된 조리서 등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밥상을 복원했다.

여수시는 '이순신과 거북선'이란 주제로, 여수 스토리텔링 1차사업이 진행됐다. 벌통수박은 '이순신 벌통수박'으로 내년에 특허출원해 2011년부터 본격 판매할 계획인데, 화양면 창무리에서 생산되는 수박을 이용하기로 했다. 여수의 돌산갓김치에 이은 대표적인 농산물로 만들 것이란다.

해초 주먹밥은 '이순신 통쇠밥통' 해초 주먹밥'이란 이름으로, 흥국사 산사 프로그램에 넣는다는 복안이다. 우슬차는 이순신 우슬차와 이순신 우슬주로 상품화된다.

하지만 상표등록은 어려울 전망이다. 특허청 상표심사정책과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이순신이라는 이름은 특허청 상표심사 때 고려하는 저명한 고인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정한 개인·단체·기관에 독점권을 부여하기 어렵고, 따라서 '이순신'이라는 상표 자체는 어느 누가 써도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이순신 장군이 어릴 적 성장했던 충남측도 연고권을 주장한다. 충남농업기술원은 2010년 3월 이순신 장군을 앞세운 '현충밥상'을 비롯해 다섯 가지 푸드스토리텔링 밥상(이순신, 김정희, 무령왕, 심훈, 안견) 프로젝트를 담은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현충밥상은 난중일기에 나타난 이른바 '전쟁식단'을 토대로 한 것. 오곡밥, 귀류탕, 적어총법, 설하멱방, 아주까리나물, 추로수, 설기 등 옛 문헌에 등장하는 전통재료들을 중심으로 상차림을 재현했다는 것이다. 충남도는 이 현충밥상을 대중적인 세트메뉴로 개발 중이다.

현충밥상을 보자.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난중일기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텍스트에 충실한 콘텐츠를 발굴하고자 노력하였다. 여기에는 충남을 대표하는 특산물인 자라와 이순신 장군이 무과 시험 당시 낙마 스토리에 연관된 버드나무, 그리고 전통보양식 재료인 잉어를 함께 끓인 음식인 '귀류탕'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가장 이미지가 흡사하며, 보양식 위주의 식단으로 용맹스러운 장군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먹었음직한 설하멱방과 적어총법, 난중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추로수와 설기떡으로 메뉴를 정한 명품밥상이다.

주메뉴는 오곡밥, 귀류탕, 설하멱방, 적어총법, 아주까리나물, 시래기나물, 호박고지나물, 동지, 추로수, 설기(호박, 쑥, 밤).


■ 추사·대장경 밥상도 등장

충남 예산 추사밥상, 은어와 올갱이 요리가 주축

합천 팔만대장경 밥상은 오신채 없는 사찰 음식

◆ 충남의 추사밥상

충남농업기술원은 추사 김정희 한시 작품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음식 하나 하나를 스토리텔링해 냈다.

추사(김정희)밥상은 예당저수지 등의 저수지나 강에서 산출되는 올갱이와 은어 등의 재료를 활용한 것을 주메뉴로 한다. 여기에다 예산 주변 곳곳에 있는 덕숭산, 가야산, 도고산 등의 높은 산에서 산출되는 더덕, 고사리, 취나물, 표고버섯 등의 향긋한 산나물들로 가을을 표현함으로써 예산지역의 향토색과 계절색을 가미시켰다.

조선시대 당시에는 매우 귀한 음식으로 양반가 혹은 일부 사찰에서나 먹을 수 있던 두부로 만든 추사전골은 명문가의 고급스러움이 배인 충남 명품음식이라 할 수 있다. 추사 역시 '대팽두부과갱채(좋은 반찬이란 두부, 오이, 생강, 나물)'라 하여 두부를 좋은 음식의 첫 번째로 손꼽았다. 주메뉴는 율무밥, 올갱이부추국, 추사전골, 멧돼지적, 은어구이, 세모승냉채, 취나물된장무침, 더덕직화구이, 표고버섯전, 고사리나물, 호박고지나물, 호박죽, 배추김치, 국화동동주.

◆ 경남 합천의 대장경밥상

경남 합천군은 팔만대장경을 겨냥, '대장경밥상'을 선보였다. 합천군은 대장경밥상 개발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갖고 군 대표 먹을거리로 대장경밥상을 확정했다. 군은 오는 9월 열리는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축전기간 중 합천을 방문하는 국내외 내방객에게 특화된 지역 먹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대장경밥상을 개발했다.

이 밥상은 도토리비빔밥, 채식위주의 나물밥상, 대장경한정식 등 세가지로 구성됐다. 도토리비빔밥은 외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한국 대표음식인 비빔밥을 도토리묵과 버섯, 달래부추 장으로 재구성한 식단으로 별도의 음식을 추가하면 손님접대에도 손색이 없는 비빔밥세트 메뉴도 선보일 예정이다.

채식위주의 나물밥상은 오신채·육류를 사용하지 않고 해인사 일원에서 생산되는 산채, 버섯, 장아찌로 이루어진 메뉴다. 성인병에 노출된 현대인의 몸을 개운하게 만드는 웰빙 밥상이다. 대장경한정식은 향긋한 자연산 송이버섯으로 만든 신선로와 쇠고기육전, 칡물로 찐 흑돼지 수육의 풍미를 살린 밥상으로 영양 면에서 손색이 없는 풍성한 한정식이다. 군은 어린이를 위한 쇠고기덮밥과 파프리카볶음밥도 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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