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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태 화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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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소설가 |
영남일보는 오늘부터 스토리텔링 뮤지컬 '왕의 나라’ 원작을 매주 1회(수요일), 총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왕의 나라’는 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한 공민왕이, 고려왕조의 안정을 되찾기 위한 교두보를 안동에서 마련한다는 스토리를 주요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여기에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애틋한 러브스토리와 전란(戰亂)의 긴박한 상황이 더해져 극의 긴장감을 높일 예정입니다. 고려개국 공신인 삼태사(김선평, 권행, 장정필)를 비롯해
여랑, 홍언박 등 안동출신의 인물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고, 스토리텔링화해 흥미를 더합니다.
스토리 마이닝(발굴)은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이 맡고 원작은 소설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씨가 집필합니다. '왕의 나라’는 영남일보와 <재>안동영상미디어센터가
공동으로 제작하고 경북도와 안동시가 후원하는 스토리텔링 뮤지컬로 오는 8월 무대에 오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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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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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국공주 |
“왕이시여, 복주로 행하시옵소서."
“복주? 그곳이 어디냐?"
“그곳은 일찍이 태조께서 안어대동이라 칭하신 왕의 땅이며 고려의 반석입니다."
“오, 다행이고 축복이로다. 어서 그곳으로 향하자!"
“왕이시여, 이 비에게는 오직 왕께서 곁에 계시는 그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당신의 그 명정(明正)한 뜻과 굳건한 의지는 한 여인을 넘어 인간으로서 하늘처럼 사랑하게 합니다."
#1. 하늘이 열리다, 고려의 개국
서기 927년, 후백제의 왕 견훤은 신라의 수도 경주를 공격한 뒤 경애왕(景哀王)을 협박해 자진(自盡)하게 하고 왕비를 겁탈하니, 견훤의 부하들은 따라서 비빈들을 난행했다. 이때 고려 태조 왕건은 군사 1만으로 신라를 구원코자 하였으나, 지금의 대구 인근 공산(公山)에서 신숭겸과 김낙 등의 장수를 잃고 패하였다.
930년, 날로 쇠약해 가는 신라를 보듬으며 견훤과 한반도의 패권을 다투던 왕건은 지금의 안동 땅인 고창군(古昌郡)에서 결전을 치르게 된다. 한편 이미 신라 조정의 통치력이 상실된 상태에서도 3년 전 경애왕에 대한 견훤의 만행을 잊지 않은 채 불공대천(不供戴天)의 원수로 여기던 고창군 성주 김선평(金宣平)은 권행(權幸)·정필(貞弼)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킨다. 열세에 몰려있던 왕건군은 김선평 군사의 도움으로 병산(甁山)전투에서 대승한다. 더불어 김선평은 군(郡)을 들어 고려에 귀부(歸附)하니 왕건은 나라의 터전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 2년 뒤인 935년, 신라의 경순왕 또한 무고한 백성의 참혹한 죽음을 피하고자 투항하고 나라를 들어 고려에 귀부했다.
936년, 고려 태조 왕건은 고창군을 '동쪽에 있는 평안한 땅’이라는 뜻의 '안어대동(安於大東)’이라 칭하고, 안동부로 승격했다. 또한 훗날 김선평·권행·정필 등 세 사람을 태사(太師)로 추증하니, 이들이 안동 태사묘(太師廟)에 배향된 삼태사(三太師)다.
천년의 명(命)이 다하고 새 하늘이 열렸다. 고려의 하늘이다.
부처님의 자비는 백성의 눈물을 거두리라. 재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왕의 위엄은 나라의 반석이다. 다시 천년을 이어갈까, 반 천년은 태평하리라.
안어대동의 땅이다. 나라의 기틀이 된 땅이다.
삼태사의 충의는 왕을 보위했다. 안어대동의 백성은 나라를 보위하리라.
왕의 땅이다. 나라의 땅이다. 백성의 땅이다. 대대손손 영원할 안어대동이다.
고려는 찬란한 영화 속에서도 수많은 고난을 맞닥트렸지만,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헤쳐나가 반 천년 사직을 지켜갔다. 거란의 침입에 맞서는 귀주대첩의 승전보를 울렸고, 여진을 정벌해 국경을 안정시켰으며, 몽고의 침입에는 '팔만대장경’ 인류문화유산을 꽃 피우며 삼별초의 항쟁으로 맞섰다. 그리고 1351년, 원나라에 볼모로 들어갔던 왕전(王 )이 돌아와 충정왕의 뒤를 이으니 그가 고려 31대 공민왕이다.
10년 볼모 세월을 겪고 돌아온 공민왕은 나라의 면모를 쇄신하기 위한 일대 개혁을 단행한다. 원의 풍습인 변발을 없애고 원의 연호 사용을 중지한 것 등은 민족적 자주정신의 발현이었고, 압록강 서쪽 땅과 쌍성총관부 옛 땅을 회복한 것은 국력의 확충이었으며,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토지개혁을 단행한 것은 민생을 살피고 부국강병의 터전을 닦으려는 것이었다. 공민왕의 이러한 국정쇄신에 지지기반이 된 것은 외사촌형 홍언박 등 외척세력과 원나라 볼모시절 시종했던 김용·이숙 등 측근세력이었다.
그러나 공민왕 즉위 초 이미 이민족 원나라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한족 반란군 홍건적은 원의 군사에 밀리자, 그 방향을 고려로 틀어 압록강을 건넜다. 원이라는 저물어가는 세력을 사이에 둔, 한족 반란군과 자주독립을 꿈꾸던 고려의 이유 없는 전쟁이었으니, 아! 절치부심한 개혁군주 공민왕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1359년, 1차 침공한 홍건적은 이방실·안우 등의 맹렬한 반격으로 4만 군사 중 겨우 300명 만 살아 돌아갔으니 고려의 대승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분탕질로 고려 백성들의 피해와 국력 손실 또한 적지 않았으니, 공민왕의 개혁은 발목을 잡혔다. 무엇보다도 홍건적에 대한 반감은 친원(親元)세력의 발호에 빌미가 되었으니, 내부의 혼란이 우려되었다.
1361년, 홍건적은 다시 10만의 군사로 고려를 침공해왔으니…….
한편 안어대동의 땅은 1197년 성종조에 김삼(金三)·효심(孝心) 등이 봉기하여 도적질을 할 때 그들의 평정에 공을 세워 대도호부로 승격했다가, 1308년 충렬왕 대에는 복주목(福州牧)이 되어 있었다.
#2. 파천(播遷), 어디로 가야 하나!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넌 10만 홍건적의 공세는 둑을 터트리고 쏟아져 나온 물살 같았다. 이미 1차 침공 때도 잠시 개경(開京)을 비우기는 했지만, 이전처럼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공민왕의 고민이 깊어지자, 우려했던 내분이 고개를 내밀었다.
김용 등 친원파는 왕후 노국공주를 압박했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위왕(魏王)의 딸로, 공민왕이 원나라 연경(燕京)에 있을 때 혼인한 정비(正妃)였다. 친원파는 노국공주가 원나라 사람임을 내세워 자주독립의 기치를 내리고, 다시 원에 의탁하여 구원을 청하도록 왕을 설득하라는 것이었다. 나라의 위기를 기회로 자신들의 득세를 도모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노국공주의 의사는 명확하고 단호했다.
“무슨 말씀들이오. 나는 이미 한 지아비의 아내이며, 고려국의 왕비입니다. 왕께서 이미 자주국의 기치를 세웠는데, 어찌 신하된 자의 도리로서 그 거룩한 뜻을 저버리려 하는 것입니까."
“왕후마마,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입니다. 적들이 바로 코 앞에서 개경을 엿보고 있습니다."
“천년왕국 신라를 이어, 이미 반 천년을 지켜온 고려입니다. 위난이 닥친다고 무릎을 꿇어서야 어찌 사직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나는 왕후로서 왕의 뒤를 따를뿐입니다."
“중원 땅의 아버님을 생각하십시오. 더구나 홍건적은 아버님 나라의 적이기도 합니다. 이런 왕후님의 뜻을 아신다면 아버님께서 뭐라 하시겠습니까?"
“아버님과 황제께서는 다른 뜻으로 나를 혼인하게 했을지라도, 그것은 그분들의 뜻일 뿐입니다. 내가 왕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늘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친원파의 김용 등은 노국공주의 완고함에 혀를 찼다. 사랑이라니! 기껏 그까짓 사랑 때문에 어찌 권력과 목숨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해야 좋다는 말이오. 아직도 원을 추종하는 자들은 왕후까지 압박하고 있으니……."
공민왕의 고뇌에 홍언박 등이 나섰다.
“왕이시여! 왕후마마의 뜻은 강고합니다. 흔들리지 마소서. 일시 개경을 비운 뒤 다시 도모하여 되찾으면 되는 일입니다."
“파천을, 이태 전의 그 수모를 다시 겪어야 한다는 말이오?"
“이번에는 10만의 군사입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왕께서 안정하시고 다시 깃발을 드시면 고려의 신민들은 모두 목숨을 걸어 나라를 보위할 것입니다!"
“오, 나의 백성들이여! 하지만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오?"
막상 파천은 결정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가 막막했다. 지금 당장 반도 땅 어느 곳에 10만 군사를 방어하고 물리칠 여지가 남아있겠는가. 동짓달 찬바람 가운데 왕의 어가가 길을 헤매야 할 것을 생각하면 홍언박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배어나올 지경이었다.
“아, 노국공주여, 나의 왕후여! 그대의 지극한 사랑에도 나는 그대에게 평온함조차 주지 못하니……."
“왕이시여, 이 비에게는 오직 왕께서 곁에 계시는 그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당신의 그 명정(明正)한 뜻과 굳건한 의지는 한 여인을 넘어 인간으로서 당신을 하늘처럼 사랑하게 합니다."
왕과 왕후의 고뇌에 홍언박은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빈과 여랑.
무빈은 오랜 세월 뜻을 같이한 막역지우고, 여랑은 이미 어린 시절 홍언박의 가슴에 여인으로 아로 새겨진 사람이었다.
“왕이시여, 복주로 행하시옵소서."
“복주? 그곳이 어디냐?"
“그곳은 일찍이 태조께서 안어대동이라 칭하신 왕의 땅이며, 고려의 반석입니다."
“오, 다행이고 축복이로다. 어서 그곳으로 향하자!" <계속>
글 = 김정현 <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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