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 건천 오봉산 여근곡

  • 입력   |  수정 2011-12-02  |  발행일 2011-12-02 제면
[최원식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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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음부를 닮은 여근곡. 오전에 봐야 그 생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유학사-(7분)-옥문지-(20분)-쉼터 갈림길-(15분)-주능선 갈림길-(20분)-전망바위-(25분)-정상-(7분)-마당바위-(35분)-주능선 갈림길-(15분)-쉼터갈림길-(20분)-유학사

 

뺨을 스치는 아침 공기가 차갑다.

마지막 가을 산행이라 계획하고 찾은 곳이 오봉산(해발 632m)이다. 오봉산은 경주시 서쪽 건천읍과 서면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낙동정맥이 지나는 단석산 줄기와는 약 1.5㎞거리에 있는 산이다. 오봉산보다는 여근곡(女根谷)으로 더 알려진 산이다. 여근곡은 산의 형상이 여성의 음부와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가운데 작은 계곡이 흐르고, 좌우로 작은 능선이 계곡을 감싸듯이 아래로 뻗어있다.

제대로 보려면 산 전체가 푸르른 여름보다 적절히 단풍이 든 계절이 좋다. 가까이에서는 형상을 볼 수 없으며, 마을 입구인 신평리 들판에서 봐야만 그 생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예부터 산 아래 마을주민들은 이 희귀한 지형을 신성시해왔다. 삼국유사 ‘선덕여왕 지기삼사 善德女王 知幾三事’에 앞날을 예지하는 능력을 가진 신라 선덕여왕과 관련된 일화가 기록돼 있다. 선덕여왕은 영묘사(靈廟寺)의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가 3일 동안 울었다는 보고를 받고는 신하에게 “정예병사 2천명을 모아 서쪽의 여근곡을 찾아가라. 그곳에 반드시 적병이 숨어 있을 것이니 습격해서 죽이라”고 지시했다.

이에 2천의 날쌘 병사들이 여근곡에 가보니 여왕의 말처럼 과연 백제군사 500명이 매복하고 있었다. 신라군은 이들을 모두 죽이고 남산에 숨어있던 백제 장군 우보와 부하들까지 모조리 무찔렀다. 백제군사가 여근곡에 숨어있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하던 신하들에게 여왕은 “개구리는 눈이 불거진 모양이 성난 형상이니 군사를 상징하고, 옥문이란 여근이며, 여자는 음(陰)인데 그 색은 희고 흰색은 서쪽을 상징한다. 그래서 서쪽의 여근곡임을 알았으며, 남근(男根)은 여근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므로 쉽게 잡을 수가 있다”고 했다.

여근곡이 있는 마을인 신평리 일대의 들판은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샙들’로 표기돼 있다. 그러나 이 마을주민들은 여근곡 아래의 들이라 하여 듣기에 민망한 ‘X들’이라 부르고 있었다.

산행 들머리는 이 샙들을 지나 여근곡의 회음부에 해당하는 위치에 자리 잡은 유학사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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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정상 아래에 자리잡은 주사암.
대웅전 앞마당에 선 3층석탑을 지나면 정면으로 리본이 주렁주렁 걸린 곳으로 진입한다. ‘옥문지,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있다. 7분정도 거리의 길섶에 앙증맞은 옹달샘이 있다. 저수지가 아닌 이 옹달샘을 두고 옥문지라고 부른다. 이 길은 여근곡의 왼쪽 능선을 따라 목재 계단으로 오르도록 정비해뒀지만 비탈이 가팔라서 매우 까다롭다.

밤사이 후려친 바람이 마지막 남은 잎까지 다 떨어뜨려 바닥이 융단처럼 깔려있다. 발로 툭툭 걷어차듯 낙엽을 밀어내며 오르는데 뒤에서 한 무리 산객이 따라붙는다. 관광버스로 온 30~40명의 무리가 먼저 오르도록 길을 터주고 이내 뒤를 따른다.

수북하던 나뭇잎은 길이 되어 있었다. 채이고 밟혀 바스락거리며 부서진 낙엽은 길이 되며, 또 하나의 생명을 위한 거름이 된다. 여근에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하듯 지금의 이 길. 여근곡이 꼭 우주를 닮았다. 경사가 완만한 지점에 벤치와 이정표가 서있다. 직진방향의 오르막은 주능선을 올라 정상으로 가는 길, 오른쪽은 유학사 방향이다.

이번 산행은 여근곡 좌우 능선을 고루 더듬어 보기로 계획을 잡았기에 이곳이 하산 길 갈림목인 셈이다. 무덤 몇 기를 지나고 주능선까지는 갈지(之)자로 오르는 길이라 크게 힘든 구간은 없다. 윙윙대는 바람에 떠밀려 주능선에 올라서니 건너편으로 목장이 보인다. 고랭지 채소밭은 산 중턱까지 개간되었고, 아직 빛이 들지 않은 골짜기에 아담한 절 하나가 터를 잡고 있다.

지도를 살폈더니 ‘용화 만교사’로 적혀있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을 따라 성벽이 이어진다. 사적 제25호인 경주부산성(慶州富山城)이다.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서라벌의 서쪽 방어를 위해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성이다. 산성은 1300여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너지고 흩어져 그저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왜구나 백제군사의 침입도 없으니 팽팽하게 긴장한 채 서있을 이유를 잃은 것이다.

성벽이면서, 주능선인 길을 한번 가파르게 치고 올라서면 건천읍 일대와 남산, 토함산 자락이 시원스럽게 조망되는 전망바위다. 이후는 내리막길이다가 싱겁게도 시멘트 포장길을 만난다. 신평리에서 주사암까지 연결된 도로다. 소형차가 지나갈만한 폭으로 정상 아래까지 이 길을 따른다. 포장길을 4분쯤 걸으면 오른쪽으로 다시 능선을 만난다. 능선에 코끼리 모양의 바위를 지나면 한달음에 오봉산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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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석으로 불렸던 마당바위. 뒤로 팔공산 능선이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정상 바위 아래에 산불감시 초소가 있고, 집채만한 바위 위에 685m라 적은 표석이 놓여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상에는 632m로 표기된 봉우리다.

정상에서 진행방향으로 내려서면 약 50m 거리 바위 아래에 주사암이 돌아 앉아있다. 따로 일주문이 없이 양쪽 바위 사이로 들도록 되었다. 아담한 암자 마당으로 들자 묵언 수행중인 절처럼 쏴하다. 볼이 얼얼할 정도로 불던 바람도 암자를 지날 때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주사암에도 설화가 전해지는데 서라벌 반월성에 왕의 총애를 받던 궁녀가 밤마다 이상한 기운에 홀려 정체불명의 바위 아래로 갔다가 새벽이면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이 궁녀에게 “오늘밤에는 바위에다 주사(朱沙)로 표시하라”고 명했다. 다음날 군사들이 오봉산을 뒤져 붉은색 흔적이 있는 바위를 찾아냈다. 병사들이 잡으려하자 노승이 주문을 외웠고, 수만의 신병(神兵)이 나타나 막았다. 이에 임금은 부처님이 비호하는 스님이라 여겨 노승을 국사로 삼았다. 그 후 바위 옆에 절을 지어 주사암이라 했으며, 바위벽에는 붉은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주사암 마당 아래 계단을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맞은편에 넓은 바위가 보인다. 마당바위로 불리는 바위인데 김유신 장군이 보리로 술을 빚어 병사들에게 먹였다는 지맥석으로 불리던 바위다. 최근에는 드라마 ‘선덕여왕’ ‘동이’의 촬영장소로 알려지면서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마당바위에서는 직선으로 약 40㎞ 거리에 팔공산 주능선이 선명하고, 단석산과 영천 쪽의 산들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하산은 올랐던 길을 되돌아 나와 여근곡을 오르면서 눈여겨 보았던 쉼터에서 직진방향의 능선을 따른다. 시작부터 끝까지 가파른 계단길이다. 다 내려서면 장단지가 탱글탱글할 정도로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바로 여근곡의 위력이겠다.

대한산악연맹 대구시산악연맹 이사·대구등산학교 강사 apeloil@hanmail.net

■ 오봉산은…

◇…오봉산은 다섯 개의 낙타 등 같이 생긴 봉우리가 솟았다하여 붙은 이름이며, 경주 서쪽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부산성이 말발굽처럼 생긴 산 능선을 따라 둘러져있다. 산성의 둘레는 약 8㎞로 경주 외곽의 산성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오봉산에서 유명한 것은 여근곡으로, 건천읍 신평리에서 바라보면 희한하게 가운데가 오목한 골짜기를 하고 있어 흡사 여성의 국부를 닮은 형상이다. 오후에는 산 그림자로 선명하지 않고 제대로 보려면 오전이 좋다.

천년의 설화가 깃든 오봉산은 여러 곳의 산행코스 중 여근곡 코스를 으뜸으로 꼽는다. 들머리인 유학사에 식수가 있고, 정상아래 주사암에서도 식수를 구할 수 있다. GPS수신기의 산행거리는 6.15㎞로 소요시간은 휴식을 포함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 교통

◇…대구에서 경부고속도로 영천IC를 빠져나와 경주방향의 4번 국도를 따르다 아화(경주시 서면)를 지나 구 도로로 향한다. 신평2리 입구에 ‘여근곡’이라 적은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 진입. 경부선 철로 건널목, 경부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차례로 지나면 유학사가 나온다. 건천IC에서는 영천 방향의 구 도로를 따르면 된다. 대형버스는 건널목 지나 왼쪽의 넓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유학사까지 도보로 15분가량 걸어야한다. 자가 운전자는 내비게이션으로 유학사를 검색하면 된다.

■ 볼거리

△금척고분군= 건천읍에서 경주 방향으로 약 1㎞ 위치인 금척리 국도변에 ‘금척고분군’이 있다. 크고 작은 50여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이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으로 만든 자(금자)를 숨기기 위해서 40여 개의 가짜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성테마박물관= 산행 들머리인 원신마을에 수석, 목각 등 370여점의 성(性)과 관련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성테마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여근곡이 정면으로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054)751-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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