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은 얼어, 흰 눈에 덮였다.
걸으면,
스벅스벅, 소리로 맞이하던 모래사장도
흰 눈에 덮였다.
한번씩 ‘꺽꺽’ 하며 감정을 드러내던
자갈밭은
역시 속이 뜨거웠던가.
점점으로 제 모습 드러내며 하늘을 본다.
흙빛의 갈대밭이 햇살에 반짝거린다.
강과 모래사장과 자갈밭과
갈대들 속에서
사람의 작은 실루엣들이 움직인다.
뭍에서 바라보는 저 먼 아래 청령포,
검푸른 노송의 숲이 스산하다.
◆청령포 겨울 숲
배는 강과 함께 얼어, 나는 강 위를 걷는다. 해빙의 시간처럼 조급하고, 살얼음처럼 조심스럽다. 깊은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 들리는 듯도 하다. 강 위에 눈사람 하나 서 있다. 눈이었다가 사람이 된, 그것은 머지않아 강이 되겠지. 눈사람과 사진을 찍은 이들의 모습이 먼 옛날의 풍경처럼 애잔타.
단종어가의 후면으로 난 남쪽 숲길로 들어선다. 잠시, 담장 너머 사람들의 웅성임이 길을 따라 사라진다. 어가를 향해 읍소하는 나무들은 여전히 온 몸을 기울이고 있다. 평평한 대지위에서 솟구친 소나무들은 진시황의 용병보다 신비롭지만 나타나고 사라지는 환영 같은 사람들보다 구체적이다.
![]() |
| 어둠과 빛이 갈마드는 겨울 송림에선 어떤 영혼을 만난대도 놀랍지 않은 일이다. |
서쪽 암벽으로 가까워지자 그만 멈춰서고 만다. 천천히 암벽의 사면으로 오르는 나무들, 천천히 암벽을 타고 내려오는 나무들이 먼저 멈춰 서 있다. 서쪽 암벽의 어둠과 남쪽의 태양이 숲을 떠돌고, 나무들은 영혼과 기원과 역사와 전설로 숨쉬는 토템의 기둥처럼 서있다. 흐트러짐 없는 정적 속에서 고래의 영혼들과 만나는 어떤 통로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영혼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오직 혼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산을 방황해야 하는 인디언의 전통 의식이 있다. 이 천년의 수림으로 걸어들어가 어느 나무 둥치 아래 가만 서 있으면 나의 영혼을 만날 것 같은 격정적이고 소름끼치는 감정이 든다. 단종이 청령포에 온 것은 1457년 6월, 여름이었다. 두 달을 이곳에서 지낸 단종은 청령포의 겨울을 지내지 않았다. 그것만은 다행이 아닐까. 청령포의 겨울은 너무 스산하다.
숲을 빠져나와 강변에서 건너편을 바라본다. 문득 깨닫는다. 선착장 부근에 성큼 서 있던 두 그루의 커다란 수목이 보이지 않는다. 무성하였던 덤불숲도 보이지 않는다. 그곳엔 콘크리트로 미장해 놓은 커다란 벽이 있다. 회색빛 벽은 너무 미끈해서 청령포의 스산함을 오히려 사라지게 만든다. 그것은 감정이 없고, 바라보는 이의 감정도 미장해버린다. 콘크리트처럼 굳어버린 감정에 조금 상처 받는다. 자연은 작은 것에서 큰 상처를 받는다.
◆유배가던 단종이 쉬어갔다는 바위
청령포로 가던 단종이 쉬어갔다는 곳, 그곳엔 엄청난 바위가 우뚝 서 있어서 어린 왕은 말했다 한다. “신선 같구나.” 유배길, 하늘도 서러워 소나기를 내렸다는 해발 320m의 소나기재에서 100m쯤 오솔길을 걸으면 벼랑 끝에 닿는다. 그러면 저 아래에서부터 쑥 솟아오른 커다란 바위가 지척에 보인다. 신선같은 바위 신선암, 입석이다. 층암절벽에서 단칼에 베어진 듯 간격을 두고 선 바위에는 수목들이 자라나 그 강한 뿌리로 바위를 쫙 잡고 있다.
절벽과 바위 사이로 눈부신 서강이 흐른다. 강변엔 구획된 밭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촌락들이 평온하게 펼쳐지고, 숲들을 이리저리 에둘러 그어진 길들이 먼 곳으로 간다. 옛날에는 선돌 밑으로 길이 있었다고 한다. 1905년 고종은 시멘트와 석벽을 쌓아 그 길을 확충했는데, 당시의 공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선돌 아래에는 깊은 소가 있는데 그곳엔 자라바위가 있다. 옛 장수가 싸움에 패해 투신하자 자라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옛 길도, 자라바위도 보이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는 전부를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 |
| 강은 어찌 흘러 한반도 땅을 만들었을까. 오랜 시간 절벽을 깎아 한반도를 만든 강의 힘을 본다(왼쪽). 눈 덮인 강도 꼭 한반도 땅 모양이다. |
◆강이 만든 땅,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서강 물길에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이곳에서 새삼 강의 힘에 놀란다. 지도를 펼쳐 놓은 듯, 한반도를 꼭 닮은 땅. 절벽과 무성한 숲으로 조합된 단순한 땅인데 시 도를 구분짓는 뼈대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얼어 눈 덮인 강조차 선명한 한반도의 모습이다. 한반도면 옹정리, 강도 땅도 한반도다.
한반도의 동해에는 선암마을이라 알려진 한반도 뗏목마을이 자리한다. 옹정리의 자연 부락들은 밭농사를 위주로 살아가지만 뗏목마을은 뗏목을 이용한 마을 사업을 한다. 2008년부터라니 꽤 오래되었다. 뗏꾼이 되어 보기도 하고, 뗏목을 타고 강 위에서 영화를 보기도하고,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탐사해 볼 수도 있다.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뗏목을 타고 흘러보는 경험, 강의 흐름을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는 시간일 터. 언 강이 녹아 흐를 때 그 힘 받으러 다시 찾고 싶은 풍경이다.
>>>여행정보
영월은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 영월역에서 버스로 청령포 등지로 가려면 배차간격이나 정류장의 위치 등 불편한 점이 많다. 현지에서도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할증을 요구하기도 한다니 미리 투어 가격을 정해 움직이는 것이 좋다. 1시간에 2만원 정도면 적정선.
역에서 청령포까지 걷는(약 50분) 열혈 여행자도 많다. 오전 10시에 영월역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대구에서 출발하는 강원도 눈꽃열차 상품을 이용하면 그나마 편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상] 대구 당선인들의 당찬 출발 알림···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증 교부식](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606/news-m.v1.20260608.b15f2d693d2847bbb7551e6037890bb9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