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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처럼, 책도 배달된다?
이승준 북클로스 대표(42)는 책썰매에 책을 싣고 배달하는 책산타클로스다. 지난 5월17일, 마흔 두 번째 생일을 기념해 개업했다. 북클로스는 세계 최초의 주문식 이동서점인 셈이다.
그는 빨간 모자에 빨간 셔츠, 빨간 바지를 입고, 등엔 ‘책 배달, 책 산타’라는 글자와 휴대폰 번호를 크게 써서 다닌다. 봄·가을엔 손목까지 오는 춘추 산타복을 입고, 겨울이면 완벽한 산타클로스복장을 할 작정이다.
이 대표는 고객이 언제, 어디서 카카오톡이나 카카오스토리, 전화 등으로 책을 주문하면 금방 달려간다. 책 가격도 싸다. 5권이면 10%, 10권이면 15% 할인해 주며, 신간과 베스트셀러는 20% 할인해 판매한다. 대구에서는 전 지역으로 다 배달이 되는데, 단 2권 이상이어야 한다. 먼 곳은 택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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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산타클로스 이승준씨가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서 바퀴가 달린 이동식책장을 끌고 시험운행하고 있다. |
◆ 책을 짜장면처럼 배달판매
“하루 순수익 10만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5만원 정도인데, 개업 100일을 맞아 목표는 이루었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20권은 팔아야 합니다.”
개업 4개월이 지나자 카카오스토리 친구를 통해 단골도 많이 생겼다. 대구시내에 있는 한 미용실 사장은 한꺼번에 20권의 책을 구매했다. 미용실 사장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알아서 배달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대구지역 코스모스서점, 한일서점, 한빛문고, 기독서점 등에서 책을 가져와 1대 1로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다.
“교보나 영풍 등 대형서점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대구지역 중·소서점을 휩쓸어버렸어도 저항 한번 제대로 못했잖아요. 제가 주먹이라도 한번 휘둘러봐야 안 되겠습니까.”
그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중·소 서점이나 헌책방에선 “잘 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격려도 많이 해 줬다.
“처음엔 동성로에 좌판을 깔고 책을 팔려고 하니 다들 영업에 방해가 된다고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단 한 곳. 중앙치안센터 부근 동남필방 사장이 허락을 해 거기에 좌판을 깔았습니다. 하지만 비나 눈이 오면 장사를 할 수가 없었지요.”
그때 그는 ‘총각네 야채가게’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고객에게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로 성공신화를 일군 한 세일즈맨의 수기인데 ‘책도 직접 배달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바로 실천하게 됐다.
“어르신 단골이 많습니다. 직접 서점을 가기도 번거롭고, 인터넷주문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어르신은 주로 전화로 주문을 하는데, 자신보다 손자손녀에게 책을 선물로 사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 주식 대박 이후 나락
그가 책 배달업에 나서게 된 사연은 무얼까. 그는 한때 잘 나가는 대기업사원이었다. 포항고와 경북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97년 현대전자 본사에 입사해 고(故) 정몽헌 회장의 비서실에 근무했다. 당시 코스닥 투자가 열풍처럼 번졌는데, 우연히 주식 책을 사보다 주식에 빠져들었다. 회사는 IMF를 겪으면서 하이닉스로 합병됐고, 그는 KCC이지스 농구단의 전신인 현대 글로비스농구단 홍보팀으로 발령이 났다.
평소 농구 같은 운동보다 책과 테이프, CD 등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업무는 ‘따분함’ 그 자체였다. 게다가 주식으로 수억을 벌자 월급도 시시하게 보였다. 총각이었던 그는 2000년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10억으로 20억을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장외주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뜻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수억원의 빚더미를 안은 채 쪽박을 차게 됐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해, 그는 서울 남산타워 12층으로 올라가서 창문을 열었다. ‘못난 짓’을 하려는 순간 어느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그 할머니의 눈빛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와 너무 흡사해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산타처럼 빨간옷 차림…
신간 등 최대 20% 할인
대형서점과 맞짱 선언
카카오톡·전화 주문받아
대구 어디든 배달 판매
이동식책장 시범운행
“책을 잘못 읽으면 죽고
책 볼 기회 놓치면 실패
난 주식책 읽고 죽을 뻔”
영덕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면서 천재소리를 듣던 그는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와 함께 살며 명문 포항고를 다녔다. 할머니는 똑똑한 손자를 귀여워했고 남들은 마마보이라고 하지만 그는 그랜드마마보이라고 실토할 만큼 할머니를 따랐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하지만 다시 살아가려고 마음을 먹으니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는 길거리에서 ‘깨달음을 버려라’라는 책을 접하고 계룡산으로 들어갔다. 깨달음을 버리기 위해 계룡산에 있는 한 명상센터에서 3개월간 마음수련 공부를 했다. 하지만 거꾸로 깨달음이 왔다.
‘진짜 나는 나쁜 놈이었구나. 돈만 아는 형편없는 놈이었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 놈이었다’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쁜 놈’이 ‘나뿐인 놈’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는 앞으로 ‘나뿐인 놈’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하산했다.
◆ 2권의 책이 인생을 바꾸다
35세 되던 해 그는 경북대 북문 앞에서 조그만 분식점을 열었다. 친구들에게 “이제 홀딱 망해 바닥이다. 결혼 부조하는 셈치고 돈을 달라”고 구걸하다시피 했다. 돈을 보태주는 친구, 간판을 달아주는 친구, 청소를 해준 친구 등 친구 덕에 다시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식당도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묵과 떡볶이를 팔면서 매출이 오르고 결혼도 하게 됐다. 하지만 아이를 낳자 생계가 빠듯했다. 벌면 바로 빚을 갚아야 했기에 낮에는 보험과 보일러공을 하고, 밤에는 식당과 댄스바에서 알바를 하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마침 묻어놨던 주식이 조금 올라 빚도 일부 청산했다.
그러나 어떤 직업도 그의 왕성한 ‘지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만의 일을 해 보겠다고 설득했다. 그가 간 곳은 서점이었다. 그는 대학입시시험을 바로 앞에 두고도 책만 읽은 책벌레였다. 대구시 중구 코스모스서점에서 일을 하면서 1년 반 동안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책만 읽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일본의 사토 도미오의 ‘인생은 말하는 대로 된다’와 마쓰다 미쓰히로가 쓴 ‘실전 청소력’이란 2권의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2권의 책이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 말만큼 소중한 게 없습니다. 부정적인 말, 험담을 하면 들어오는 복도 나갑니다. 또 몸과 주변을 늘 청결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뭔가 일이 안 풀릴 땐 청소를 하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남아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서 시간이 남는 것입니다. 책 볼 기회를 놓치는 자는 실패하고, 책 볼 기회를 잡는 자는 성공합니다.”
◆ 책수레를 한국의 명물로 만들겠다
그는 어느덧 책전도사가 됐다. 그는 책은 반드시 사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이 책이고, 책이 의식의 본류를 형성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책을 사 놓고도 보지 않는 사람에겐 독서치료도 병행한다. 그는 사람마다 필요한 책이 다르다고 말한다.
“책을 잘 못 읽으면 죽습니다. 읽지 말아야 할 책,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있는데 저같은 경우엔 주식 책을 읽지 말아야했습니다.”
그는 오토바이로 책을 배달하다 최근 뭔가 색다른 방법으로 고객에게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민 끝에 대구시 남구 이천동 ‘밍키의 다락방’이란 DIY공방을 찾아 이동식책장을 주문했다. 네 바퀴가 달린 널빤지에 책장을 만들고 지붕을 얹었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해 차양막도 설치하고, 책장 속에는 스피커와 앰프를 넣어 음악도 흘러나오게 했다. 박상민 DIY공방 대표가 이 대표의 뜻을 알고 재료값만 받았다.
그는 추석을 앞두고 이동식책장을 끌고 대구 동성로에서 시험운행을 했다. 앞으로 이동중 오카리나도 연주하고,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거리에서 강연도 할 예정이다.
“처음엔 쪽팔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권의 책이 인생을 바꾸듯 제 인생관도 바뀌었습니다. 북클로스를 대구의 명물, 한국의 명물로 만들 겁니다.”
책수레를 끌고 가는 그의 어깨가 그렇게 당당해 보일 수 없다. (010-8369-5055)
글·사진=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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