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2]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21> 조정일이 만난 영천 육회

  • 사진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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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19   |  발행일 2012-11-19 제13면   |  수정 2021-06-02 16:36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21] 조정일이 만난 영천 육회
영천 편대장 영화식당에서 판매하는 영천 육회. 한우 엉덩잇살을 잘게 썬 후 다진마늘, 파, 미나리, 깨, 참기름을 버무려 즉석에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달짝지근하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21] 조정일이 만난 영천 육회
◆Story Memo
논어 향당편에는 공자의 식습관을 기록한 부문이 나온다. ‘밥은 정미된 흰 쌀밥을 좋아하고, 회(膾)는 가늘게 썬 것을 드셨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공자가 먹었다는 회(膾)는 생선회가 아닌 육회(肉膾)를 말한다. 공자가 즐겨 먹은 육회가 유명한 곳이 영천이다. 육회가 영천의 대표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한우 생산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육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는 1년 내내 손님들의 발길로 북적인다. 특히 영천 육회는 기름기가 적은 한우의 엉덩잇살(함박살)을 주재료로 쓰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미나리, 파, 마늘 등 갖은 양념을 버무려 먹으면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맴돈다. 또 반드시 하루정도 숙성시킨 후 내놓기 때문에 육질이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작가,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21편은 영천 육회에 대한 이야기다. ‘한우 엉덩잇살로 만든 육회’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보태 흥미롭게 풀어냈다. 등장하는 인물 역시 재미를 더하기 위해 가공의 캐릭터임을 밝혀둔다.

 

 

 

#1

아재는 회(膾)를 구하는 것을 포기했다. 내키지 않는 걸음을 겨우 나선 새벽길이었다. 말로만 듣던 바다를 실제로 본다 싶어 들뜨는 기분도 뭐 없지 않았지만, 하룻길로는 바다가 멀었다. 바다 무섭다고 도망 온 사람이 활어(活魚)를 구해오라며 자식을 바다로 내몰다니. 영천장을 지날 때 해가 이미 절반을 지났으니 일찍 포기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실컷 장구경을 하고 돔배기나 좀 사갈까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얼음 풀린 뒤로 지금껏 회타령하는 아버지, 오래 병 앓아 까탈 맞은 늙은이를 소금에 절인 고기로 달랠 자신이 없었다. 묵은 콩 석 되가 들어있는 등짐만 버거웠다. 해가 뉘엿거리며 낮아지고 있었다. 아재는 장터를 빠져나와 걸음을 서둘렀다.

‘이게 전부 보리숭어 때문이지. 아버지가 뱃일 할 때 맛봤다던 그 놈의 숭어회.’

어릴 때부터 배를 탄 아버지는 왜구(倭寇)가 무서워 바닷가 고향을 떴다. 대마도에 끌려갔다 가까스로 풀려난 이후 영천에 들어와 살았다. 뱃일도 왜구도 지긋지긋하다는 사람이었지만 그 비린 입맛은 오래갔다.

때마침 바람 든 보리밭 쪽이 수런수런했다. 이삭이 패고, 여물어가는 낟알들이 눈깔을 들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재는 보리밭 쪽으로 눈을 부라렸다.

고랑이 긴 보리밭. 그 끝에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얼굴을 무릎에 묻고 울먹이고 있었다. 곁에는 고삐와 채찍이 놓였고.

보현산(普賢山) 수리사라는 절에 사는 아이라 했다. 그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먹고 자고 한다고. 오늘 아침도 산에서 소를 먹이고 있었는데, 무슨 귀신에라도 씌었는지 영천장 가는 약초꾼들을 따라 구경을 나섰다는 것이다. 소를 그대로 몰고 말이다. 그러다 쇠전(우시장)을 지날 때, 갑자기 황소가 고삐를 끊고 내빼더라는 거였다.

“그 놈이 저를 내다 팔려는 줄 알고 겁을 집어먹었던 거구나?”

“흥정을 걸어오는 사람들은 있었어요. 값을 많이 쳐주겠다고. 하지만 스님 허락도 없이 어떻게 소를 팔아요?”

아이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소가 달아난 길을 짚어오다가 그만 지치고 막막해져 버렸던 것이다.

“스님이 알면 쫓겨날 텐데 저는 어떡하면 좋아요?”

“그 커다란 짐승이 일부러 숨은 것이 아니면 금방 눈에 안 띄겠냐.”

아재는 아이와 함께 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소 발자국은 금세 발견됐다. 점점 산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벌써 혼자 절에 돌아가 있을지도 몰랐다. 아이는 조금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아재는 어딜 가시는 길이지요?”

아재는 소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회를 구하러 영일(迎日)로 가다가 숭어는커녕 바다도 구경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간다고.

“생것! 아버지가 생것이 먹고 싶단다. 생것을 먹으면 아픈 게 싹 나을 것처럼 말한단다.”

그때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산그늘 한 군데를 가리켰다.

커다란 참나무 뒤로 불그레한 소 꽁무니가 보였다. 두 사람은 양쪽에서 포위해가며 소를 제압하기로 했다. 아재는 등짐을 벗고 다가갔다. 다리가 좀 떨렸다. 소 뒷모습을 보는 건 질색이었다. 이웃집 소를 빌려 쟁기를 달다가 뒷다리에 배를 걷어차여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길질을 당하더라도 피할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하며 다가갔다. 이제 세 걸음 정도면 코뚜레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소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바람이 쌩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가 아재의 뺨을 찰싹 갈겼다. 소가 꼬리를 휘둘렀던 것이다. 아재는 정신이 번쩍 났다. 아픔은 겁을 없애주었고 목적을 상기시켰다. 아재는 한 손으로 소코뚜레를 잡아채고 한 손으로 쇠뿔을 움켜잡았다.

그 틈에 아이는 고삐를 단단히 걸어 맸다. 놀란 기색이던 소는 아이의 손길을 느끼고 고분고분해졌다. 아이는 소머리를 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소는 혀로 아이를 핥았다. 아재한테도 둘의 깊은 정이 전해져왔다.

“거 봐라. 금방 찾았지. 해 떨어진다. 어서 소 몰고 가거라.”

아이는 연거푸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아재가 등짐을 메고 막 걸음을 뗄 때, 아이가 말했다.

“저도 아재를 도와드리고 싶어요.”

아재는 대답 대신 웃었다.

“아까 회를 구한다고 하셨죠? 제가 회를 드리겠습니다.”

“놀리지 말거라. 바다에 나가야만 얻을 수 있는 회를 네가 어디서 가져온다고.”

아이가 소의 볼기를 어루만졌다. 기분이 좋다는 듯 소가 꼬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우둔(牛臀)살을 드릴게요.”

“회를 준다더니 소 엉덩잇살을 주겠단 소리냐? 하하하, 됐다, 됐어.”

“바다에서 얻는 것을 어회(魚膾)라 하고, 이것을 육회(肉膾)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아재는 아이가 하는 말을 계속 들어보았다.

“소는 오직 풀만 먹고 이런 거대한 몸을 가졌지요. 풀을 먹으니 그 성품과 고기가 과연 순하답니다. 사람은 소의 안팎과 머리부터 꼬리까지를 모두 먹는데, 이 우둔살이 얼마나 높고 깨끗하냐면, 한 번도 땅에 드러눕지 않은 살입니다. 소는 볼기를 우뚝 세우고 들로 나가고, 일을 마치고 지쳐있을 때에도 볼기를 늦추지 않습니다. 쉴 때도 서서 쉬고 잘 때도 무릎을 겨우 굽힐 뿐, 함부로 눕지 않고 언제든 볼기를 높이 두지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소는 때리기 좋은 꼬리를 가졌지요. 파리 따위를 쫓는 것이 아닙니다. 철썩철썩, 제 스스로 볼기를 때리고 또 때리지요.”

“왜 자신을 때릴까?”

“깨어있으라는 뜻이지요. 그래서인지 기름기 하나 없이 순전히 붉은 살로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 맛이 어떠하겠습니까?”

말을 재미있게 하는 아이라 생각하면서도, 아재는 왠지 숙연해졌다.

“보현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우리나라가 한 짐승의 모양을 띠고 있는데, 그 중에서 운주, 팔공, 보현에 둘러싸인 영천 땅은 그 짐승의 볼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보현산 풀을 먹고 사는 소의 볼기살은 나라 안에서도 으뜸간다 하겠지요.”

그렇지만 볼기는 짝을 이루고 있다. 아재가 물었다.

“오른쪽 볼기가 좋을까, 왼쪽 볼기가 좋을까?”그 말을 듣고 아이가 다가왔다. 아재 귀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어느 쪽 볼기가 맛이 좋은지 말해주었다. 아재는 그럼 그쪽 볼기를 떼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왜 귓속말을 하니?”

“소가 듣잖아요.”

아이는 한쪽 눈을 찡긋하고 다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느 한쪽이 더 낫다는 말을 소가 들으면, 그게 마음에 계속 남아있을 거니까요.”

아이는 참나무 잎을 몇 개 따서 손에 쥐었다. 아재더러 눈을 감으라고 했다.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21] 조정일이 만난 영천 육회
육회에 사용되는 살코기는 도축 후 하루 동안 숙성시킨 후 내놓는다. 이 때문에 육질이 상당히 부드럽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2

아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아이는 참나무 잎으로 싸맨 우둔살 한 뭉치를 내밀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슨 방법으로 살을 베어냈을까, 어리둥절했다. 소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못 들었다. 두 주먹은 될 만큼 살을 떠냈는데도, 소 볼기는 달라진 점이 없었다. 아재가 자꾸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소가 눈을 껌벅거리며 돌아봤다. “하룻밤 뒀다가 드세요. 살이 놀랐으니까 진정이 되면요.”

아재는 고마워서 콩 석 되를 주었다.

“콩을 푹 삶아서 먹여야겠어요. 그러면 금방 새 살이 자라나지요.”

아이는 소 등에 올라타고 풀피리를 부르며 산으로 들어가고, 아재는 소 볼기살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아재는 볼기살을 앞에 놓고 고민했다. 병 깊은 아버지가 이 날고기를 잘 드실까 하고. 회라고 인정해줄지 걱정이었다.

산딸기, 영산홍보다 더 짙은 빛깔과 순한 성질을 그대로 가져가야 한다. 본래 지닌 맛, 생것, 살아있는 맛을 주는 것이 회이므로. 그러면서 보다 먹음직스럽게. 변화를 줄 방법이 없을까. 아재는 눈을 감았다.

‘좋아지고, 좋아지고, 대단히 좋아지고, 지극히 좋아지고, 아! 그림이 그려졌다.’

아재는 눈을 뜨고 볼기살을 잘게 잘게 썰었다. 마늘을 다져넣고 참기름을 담뿍 넣고 간을 맞추고 미나리와 파를 찢어 조물조물 나물을 하듯이 무쳐냈다. 한 번도 땅에 드러눕지 않는 소의 볼기살에 양념 옷을 입혀 넓은 접시 위에 폈다.

“아버지, 회 잡수시오.”

낑낑거리고 누웠던 아버지가 회라는 말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상은 당기고 몸은 가져가고, 입에 넣기 바쁘게 젓가락을 또 찌른다.

“생것이 그리 좋아요?”

까다로운 병자의 입에 맞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육회 한 접시가 순식간에 바닥났다.

“생파는 달고요, 생미나리는 봄기운 확 풍기지요, 어울리지요?” 한 접시 더 무쳐 내오니 아버지는 육회를 밥에 올려 두 그릇이나 비벼먹었다. 양이 찼는지 드러누워 배를 두드리다가 잠이 들었다.

아재는 아버지가 남긴 육회를 맛봤다. 어제 소꼬리에 얻어맞은 뺨이 아직 얼얼해서 천천히 오래오래 씹었다. 순하고 연한 살이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자리를 떨쳐 일어났다. 크게 보탬은 안됐지만 간혹 나와 밭일도 거들었다. 마을사람들에게 아재가 효자라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 귀한 회를 구해왔다고. 아재는 끝까지 소의 볼기살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묻지 않았고, 회를 구해오란 말도 다시는 안했다. 아버지는 여름과 가을을 잘 살고, 땅이 얼기 직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해 콩 농사가 잘 되어서 장사를 치를 때는 궁하지 않게 사람들을 대접했다. 마을사람들은 마지막까지 효자노릇을 한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아재는 병든 아버지에게 숭어회를 맛보이지 못한 일이 서러워 펑펑 울었다. 아재는 마을사람들에게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먹은 것은 숭어회가 아니라 소의 우둔살이라고. 그런데 누구 하나 아재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우둔살의 별미를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그 뒤 육회를 즐기게 되었다.

이듬해, 보리가 팰 무렵. 아재는 보현산에 들어가 수리사를 찾았다. 절은 한두 곳이 아니었지만 수리사는 없었다. 보리사(菩提寺)라는 데를 가서 물었더니, 인근에서 그런 절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보리사에서도 소를 키우지 않았고 그런 아이가 없었다.

아재는 그 말을 듣고도 한참동안 법당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심우도(尋牛圖) 속 아이와 소를 발견하고 웃으며 돌아갔다.
 

공동기획 : pride GyeongBuk
조정일(극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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