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5) 대구 달성군 우록리 ‘진달래 피는 마을’의 최진달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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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2-28   |  발행일 2012-12-28 제42면   |  수정 2012-12-28
95년부터 절망에 빠진 환자들에게 희망 주려 ‘채소수프’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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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창 분야 인간문화재 이수자인 최진달래씨가 자신이 직접 만든 들깨 꽃 부각을 권하고 있다. 식탁 가운데 메인 메뉴는 솔잎 향기가 스며든 양념돼지갈비. 항상 좋은 재료만 고민하다보니 식당 문을 닫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정도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도 맛있는 식당보다 제대로 된 식당으로 평가받는 걸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우미산 자락에 야생초처럼 피어있는 식당, ‘진달래 피는 마을’을 찾았다. 식당 입구 맞은편 정자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해 먹을 무청을 켜켜이 걸어 시래기로 말리고 있었다. 양이 엄청나다. 이걸로 채소수프뿐만 아니고 시래기밥까지 만들고 있다. 꼭 시래기 덕장 같다. 식당 초입에서 주인이 묵나물을 만들기 위해 근처에서 수확해 온 채소와 나물류를 다듬고 있다.

최진달래(65).

이름이 참 운치있다. 그런데 식당을 꾸려갈 자태가 아니다. 5년전 시조창 분야에 입문, 2009년 전남 광주 전국 가사가곡경창대회 국창부에서 장원, 2011년 경남 고성에서 대상부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지난해 인간문화재(10호 시조창) 이수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식당 홀에 악보가 펼쳐져 있다.

일단 물부터 한 잔 부탁했다. 식당에서 물비린내가 나는 맹물을 그대로 주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일본에서는 거의 보리차를 즐겨 내놓는다. 전채 요리 먹는데 방해되는 허브차도 별로다. 옥수수차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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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먹을 무청을 원두막 그늘에 빼곡하게 걸어놓았다. 이 집에서는 시래기로 시래기밥과 채소수프를 해먹는다.
돼지·오리구이 할 땐
솔잎 수북하게 얹어
 
닭백숙엔 흑미 사용해
오골계처럼 ‘검정빛’


강원 곤드레밥 같은
시래기밥은 ‘특별식’


민들레·제비꽃으로는
나물샐러드 만들고
아까시꽃은 튀김으로,
호박꽃은 만두에 활용


쑥·톳나물·취나물로
경단 만들어 내고
뽕잎차도 직접 덖어

 


◆ 경남 하동의 음식이 몸에 스며들었다

경남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났다.

“여성의 손맛은 거의 친가와 외가, 그리고 시어머니의 손맛과의 투쟁 속에서 탄생하는 겁니다. 친가에서 이런 맛을 배우다가 시어머니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죠. 지혜로운 며느리는 그 갈등을 실력쌓기 기회로 활용하죠. 제 외가엔 온갖 장류와 젓갈류, 김치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버전이 독마다 가득했어요. 도대체 저 맛은 어떤 경위로 태어난 걸까? 저는 외할머니한테 칭찬받으려고 이런저런 재료를 갖고, 제 식대로 요리를 만들어 드렸어요.”

모친은 초여름에 하동식 나물찜을 잘 해먹었다. 고사리, 숙주, 죽순, 방아잎, 조개 등을 다지고 거기에 들깨·찹쌀가루를 섞어서 간을 하면 끝이다. 재료는 사갖고 와서 해먹는다.

“대구는 경남과 달리 토종 허브의 대표격인 방아잎을 별로 사용하지 않더군요. 정말 지역색이 있는 것 같아요. 단골을 위해 방아잎을 심어서 맛을 보여드렸는데 별 반응이 없어요. 경남은 방아를 일상식으로 즐겨요. 장어탕 요리나 된장찌개에도 방아잎을 듬뿍 넣습니다.”

그가 자랑하는 독특한 김치가 있다. 바로 콩잎김치다.

“서울 등지에서는 콩잎김치를 낙엽김치라 해서 거의 먹지 않죠. 그런데 이것만큼 경상도 색깔이 확 드러나는 메뉴도 없을 겁니다. 일단 뻣뻣한 콩잎과 그 속에 숨은 퀴퀴한 채즙을 씻어내야 합니다. 콩잎은 많이 삶아야 부드러워집니다. 그 다음 찬물에 담가 돌로 눌러둡니다. 맑은 물이 나올 때 꼭 짜서 양념장(멸치액젓·까나리액젓·새우젓·마늘·파·생강·설탕 적당량)을 한잎 한잎 들춰가면서 켜켜이 재워둡니다.”


◆ 대구로 내려온다

2006년 우록에 들어와서 평생 동지 같은 터전을 찾았다. 그게 지금의 진달래가 피는 마을이다.

2001년 시내 중앙시네마 바로 옆에서 한우 전문 만포장 갈비집을 운영했다. 상당히 잘됐다. 하지만 도심은 인연이 아니었다. 어느 날 유방암을 앓는다. 사진찍기 좋아하는 장남과 남지장사 벚꽃 구경하고 내려가던 중 운명적으로 이 집을 만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이 실현됐다. 처음부터 음식이 주가 아니었다.

“저는 95년부터 지역에서 채소수프사업을 시작했습니다.”

80년대 일본에서도 채소수프 신드롬이 불었다. 그게 대구까지 스며든 것이다.

“저는 사업성이라거나 마케팅 같은 걸 싫어해요. 그냥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프를 만들어 절망에 빠진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맘만 가졌어요.”

채소수프는 무·우엉·당근·표고버섯·무청을 끓여 만든다. 이후 그녀의 방식은 다른 업체에서 많이 베껴 가버렸다.

그가 유기농의 현실을 고백한다.

“다들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하는데 실제 현실은 너무 어렵고 불가능한 것 같아요. 농약을 완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농약을 가장 아름다운 양만큼 사용해서 농사를 짓는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현재 토질은 갈수록 유기농을 거부합니다. 유기농은 천사고, 일반농은 악마로 봐선 위선적 농법이 기승을 부릴 거라고 봐요.”

◆ 돼지·오리·닭 솔잎향을 품다

돼지·오리구이와 닭백숙에 솔잎을 사용한다. 솔잎은 뒷산에 무진장하게 있다.

일단 가열한 돌판에 돼지와 오리를 올리는데 그 전에 숯불에서 초벌구이를 한다. 그 다음 고기를 돌판에 올리고 솔잎을 수북하게 올리고 뚜껑을 닫아 식탁에 낸다. 뚜껑을 열고 10여분 만에 먹으면 새로운 고기맛을 경험할 수 있다. 오리의 경우 양파·당근·새송이 등을 고명식으로 얹고 부추를 양념해서 올려준다. 이집 닭백숙은 좀 검다. 일단 흑미를 넣기 때문에 닭이 오골계처럼 검정빛이 난다. 죽도 찹쌀·수수·녹두·맵쌀·해바라기씨·마늘·대추·뽕나무가지로 끓인다.

단골만이 골라 먹는 ‘특별식’이 있다. 바로 시래기밥이다. 꼭 강원도 곤드레밥 같다.

“결혼초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에서 조금 살았어요. 그때 뒷산에는 곤드레가 지천이었어요. 지인들이 모이면 툭하면 곤드레밥을 해먹습니다. 5명이 조금씩 뜯어오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죠. 그런데 타지에서 곤드레밥을 먹어보면 나물도 너무 적어 곤드레밥의 기운을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가 우록 골짜기에서 개발한 것이 시래기밥입니다.”

◆ 제철 반찬자랑

이집 반찬은 사철 무엇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봄이면 마당 곳곳이 쑥·냉이·민들레·원추리·제비꽃의 영토가 된다. 이웃 어른이 ‘제초제로 다 죽여버려라’고 해도 그녀는 빙그레 웃는다. 풀과의 ‘공존’이 그녀의 존재이유.

텃밭에도 제초제를 안 뿌린다. 올해도 고추·들깨·상추·대추·고구마·호박·쑥갓·파·부추·배추·가지·오이를 수확했다. 민들레와 제비꽃, 그리고 매실진액을 갖고 나물샐러드를 만들었다. 아까시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따서 튀김가루를 묻힌 뒤 튀김을 낸다.

올해 그녀 덕분에 호박꽃만두도 맛볼 수 있었다. 일반 둥근호박꽃은 매우 커서 적합치 않다. 그래서 단호박을 심었다. 그 꽃은 크기가 알맞다. 7월 중순~8월 중순에 따서 수술을 떼내고 만두소(돼지고기·숙주·마늘·참기름 등)를 넣고 꽃잎에 밀가루 무쳐 채반에 쪄내면 완성이다. 단골은 “호박꽃도 이렇게 먹을 수 있구나”라면서 신기해 한다.

‘나물경단 3인방’도 주 레퍼토리다. 쑥은 삶아서 다진 뒤 거기에 으깬 두부를 넣고, 된장과 참기름 등을 조금 넣고 경단처럼 만든다. 톳나물과 취나물도 응용해 오디즙이 들어간 경단도 요리해 봤다.

시간이 나면 차도 직접 덖는다. 뽕잎은 나물로도 좋고 뽕잎차로도 덖어 먹으면 된다. 하동 기질이 저절로 스며나온 탓이다.

그녀는 갈수록 식당하는 게 너무 힘이 든단다.

“몸에 좋은 식재료를 찾으니 원가 부담이 너무 커 수익이 생기지 않아요. 별로 남는 게 없이 좋은 식단을 차려주면 감동하는 기색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사람들의 혀는 거의 화학조미료에 중독돼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화학조미료 없이 된장국을 끓여주었는데 한 손님이 무슨 된장이 이렇게 맛이 없느냐 ‘식당은 일단 맛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남 넣는 걸 팍팍 넣어라’고 다그쳤습니다. 정말 그날은 식당을 그만두고 싶더군요. 맛있는 식당은 살고 제대로 된 식당은 죽으면 국민 건강은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이 집은 남편(장병하)과 장남(장승훈)이 도와주지 않으면 굴러가지 못한다. 농번기에는 모두 멀티플레이어로 변한다. 텃밭과 산에 가서 밭 매고 마당의 풀도 뽑고 장도 수시로 봐야 한다.

그녀는 수행승처럼 식사를 한다. 1식 3찬 정도만 챙긴다.

“너무 많은 식재료가 올라오면 진미는 사라지고 말죠. 김치·된장·시래기국만으로도 훌륭한 밥상이죠. 최근 신혼부부 장바구니를 보고 놀랐어요. 거의 인스턴트 음식이더라고요. 아이 미래가 걱정되더군요.”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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