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8)대구 달성군 가창면 ‘큰나무집’의 조갑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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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4-19   |  발행일 2013-04-19 제42면   |  수정 2013-04-19
“남편에게 밥상 내듯 손님에게 냈을 뿐인데 ‘백숙 명인’까지 됐네요”
한약재 황금비율 찾고
흑깨로 블랙푸드 접목
궁중백숙 신지평 열어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8)대구 달성군 가창면 ‘큰나무집’의 조갑연
20년 이상 대구 궁중한방닭백숙의 신지평을 열어온 조갑연 오너셰프가 사찰요리 버전에 충실한 착한 밥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대구는 자타가 공인하는 ‘닭의 고장’.

삼계탕, 튀김닭, 찜닭, 백숙, 옻닭 등 온갖 버전의 닭요리가 대구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대구의 백숙문화는 오랜 역사를 갖고 새로운 삼계탕 문화와 만나서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 예전의 백숙은 삼베보자기에 찹쌀 등 온갖 잡곡을 넣고 솥에 넣어 푹 고아냈다. 그런데 밋밋한 백숙문화를 한 단계 버전업시킨 식당이 있다. 바로 대구 궁중한방백숙의 신지평을 연 가창 우록리 큰나무집이다. 그 집의 여사장 조갑연씨(62)는 부산 아지매 같은 억척스러움과 여걸스러움을 겸비하고 있다. 백숙집 아줌마에서 백숙분야 명인이 된 뒤 전통음식연구가로 변신하고 있는 조씨의 ‘식당론’을 들었다.


◆백숙명인…처음에는 천을 만졌다

처음부터 닭백숙에 올인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청송군 안덕면에서 태어났다. 대구로 올라와 봉제공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1988년 클레임에 걸려 쫄딱 망한다.

“열심히 해도 망한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당시 복현동 서민아파트 작은 평수가 900만원에 팔리던 때에 1억1천만원이나 손해를 봤습니다. 정말 천을 보기도 싫더라고요.”

남편과 우연히 가야산에서 닭백숙을 먹었는데 관심이 있어 주인이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순간적으로 닭백숙이라는 게 참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으로 기력을 보충해줄 수 있는 메뉴라는 생각을 한다. 즉시 대구시 북구 복현동 영진전문대 근처에 성화궁중약백숙을 차린다. 1989년 봄이었다.

당시 대구의 닭백숙은 버전이 천편일률적이었다. ‘일반인들은 그런 백숙에 질렸을 것이고, 당연히 새로운 버전으로 가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고 분석했다.

지역 한정식당가에서는 궁중요리가 유행했다. 그렇다면 일단 닭백숙을 하되 ‘궁중버전’으로 가자고 맘을 다져 먹는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라디오 프로에 나온 이화신 한의사가 남녀노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 한약재를 소개해서 그걸 메모해둔다. 번쩍, 답이 나왔다.

“그래, 제가 파고들어야 할 메뉴가 궁중한방닭백숙이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녀는 당귀, 황기, 청궁, 백작약, 감초 등 아홉가지 한약재를 선별한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약재배합 비율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다양한 조합의 양을 물에 섞어 일일이 먹어보면서 테스팅을 했다.

“한약재는 약재이기 때문에 향이 너무 강하면 안됩니다. 황기가 순하면서 깊은 맛이 있었어요. 당귀는 향기가 짙어 주연이 될 수가 없었죠. 하지만 황기가 주가 되면 닭 특유의 비린내가 납니다. 황금비율을 찾았습니다.”

한약재를 넣고 끓여보니 육수가 붉은 톤으로 변했다. 호감 가는 식감이 아니었다. 또 고심을 한다. 그때 블랙푸드가 유행한다는 걸 알게 된다. 블랙푸드에 관련된 책을 탐독했다. 그렇게 해서 골라낸 것이 바로 검정깨였다.

이젠 시식이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이를 불러 두 종류의 백숙을 먹였다. 아이가 “옆집 치킨은 조금만 먹으면 질리는데 엄마 건 둘 다 맛있고 자꾸 당긴다”고 했다. 용기백배했다.

처음에는 냄비에 끓였다. 그런데 국물이 농밀하지가 못했다. 그래서 찾은 게 압력솥.

나름대로 장사가 잘됐다. 하지만 계절별 영업이어서 들쭉날쭉했다. 일본은 겨울에 닭을 더 찾는데 한국은 이열치열식의 대명사가 백숙으로 각인돼 있다보니 동절기에는 매출이 급감했다. 우연한 기회에 현재 자리의 땅주인이 자기 집 언저리 촌집에 들어와서 백숙을 하는 게 더 좋겠다고 권유했다. 혼자 집을 보러왔는데 식당 자리로는 최악이었다. 폐가 직전의 농가는 실개천에 둘러싸여 손님이 차를 갖고 접근하기에 어려웠다. 그런데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가 그녀의 맘을 사로잡았다. 나무의 싱그러운 그늘이 자신을 위로해줄 것 같아서 묻지마식 계약을 한다.

90년 여름에 이사를 왔다. 41세였다.

그녀의 억척기질이 발동했다. 일단 차가 들어오려면 일정한 폭의 농로가 확보되어야만 했다. 구불구불한 30여m의 도랑을 반듯하게 복개하는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인다. 주민들이 안 보일 때 새벽같이 일어나 플라스틱 관을 묻고 지나가는 포클레인 기사를 불러 흙을 덮도록 했다. 몇달 죽도록 일을 했다. 그야말로 돌과의 전쟁이었다. 어느 날 손가락 지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러 나가니 지문이 없다고 해서 되돌아올 정도였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8)대구 달성군 가창면 ‘큰나무집’의 조갑연
큰나무집 별채에 마련된 사찰밥상의 메인 메뉴인 남자밥.


◆생명의 은인은 제1호 손님

역시 한 명이 중요했다.

당시 생명보험이 호황기를 누렸다. 보험회사 소장들은 팀원을 독려하기 위해 대구 인근 닭백숙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개업한 날도 옛 대구생명의 모 국장이 집 근처로 지나가다가 돌부리에 차의 밑바닥이 긁혔다며 그녀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그런데 인연이 되려고 했던지 모 국장이 그녀의 해맑은 표정에 매료된 나머지, 행선지를 그 집으로 바꾼다. 당시는 정말 초라한 식당이었다. 간판도 없었을 정도였으니까.

“수중에 돈이 없었어요. 식탁을 구할 돈이 없어 133번 버스를 타고 칠성시장에 장 보러 나갈 때 눈에 띄는 내다버린 호마이카상, 선풍기 같은 걸 주워 사용했습니다. 모 국장이 나를 보고 이것도 식탁이냐면서 웃더군요. 그런데 전통의 기운이 묻어 있는 김치를 주니 금세 표정이 달라지면서 ‘아줌마, 이 식당 때문에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장담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최악의 서비스였다. 그런데도 첫 손님은 감동을 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남편한테 차리는 밥상을 손님한테 낸다는 그 맘뿐이었어요. 그리고 상술 어린 미소 대신 그냥 수더분한 시골 아낙네의 풋살구 같은 웃음을 자연스럽게 내보냈습니다.”

지역 보험사 직원 사이에 백숙 잘하는 집으로 입소문이 난다. 특히 1호 단골이 680여명을 데려왔다.

역시 겨울철엔 장사가 안됐다. 살림할 돈이 필요한 나머지 부업거리를 찾으려고 대구시 중구 달성공원 근처 직업소개소에도 갔다. 하지만 그곳은 술집에 나가는 여성을 찾는 곳이었다. 발걸음을 돌렸다.

가장 서러웠던 때가 있다.

“칠성시장에서 생닭을 사갖고 왔습니다. 우록으로 오는 직행이 없어 방천시장까지 와서 갈아 타야 하는데, 어느 날 검정 비닐에 담긴 찹쌀이 한 학생의 가방에 걸려 찢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쏟아졌습니다. 저는 울먹이면서 찹쌀을 한톨씩 주워담았습니다. 닭비린내가 거북해 승차를 거부하는 기사도 있었어요.”

2002년부터 고령의 성실축산, 축산과학원 등의 도움을 받아 토종닭 복원에 동참한다. 덕분에 2006년부터 토종닭으로 요리할 수 있게 된다. 매출이 폭증했다. 2008년 ‘우리맛닭’이란 인증서를 갖게 된다. 지난해부터 시래기찜닭, 영계찜닭, 부위별 백숙 등 6가지를 유통시키고 있다. 그런 공로 덕분에 지난해 대한명인회의 백숙분야 명인이 된다.

한약재 황금비율 찾고
흑깨로 블랙푸드 접목
궁중백숙 신지평 열어

토종닭 복원에도 동참
우리맛닭 인증서 취득
시래기찜닭·영계찜닭
부위별 백숙 등 6종류

최근 사찰요리점 변신
모든 식재료 직접 제조
무전·콩죽까지 낼 정도…
남·여 기능성 밥 눈길

◆밥 잘하는 여자로 변신

세상은 슬로푸드를 원했다.

내심 ‘밥 잘하는 집을 만들자’고 다짐한다. 그녀는 닭에서 ‘밥’으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한다. 연일 정체불명의 나쁜 식재료 보도에 충격을 받는다. ‘단골에게 나쁜 식재료를 주는 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안된다’고 다짐한다. 새롭게 음식공부를 시작한다. 음식궁합이 궁금해 대구한의대 김미림 교수한테 2년간 약선요리를 배운다. 경산시 하양읍 향림사 장아찌에 반해 장아찌 배우기에 돌입해 이젠 복숭아·민들레 등 희귀한 장아찌를 수시로 낸다. 공장에서 나온 조미간장도 못 믿어 직접 집간장에 갖은 채소를 다 넣고 달인다. 모든 재료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다음에는 사찰요리 공부에 들어간다. 현재 달성군사찰요리연구회 고문으로 있고, 지난해부터 달성군 사찰요리전문점이 된다.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고 상을 차린다. 참 어렵다고 했다. 김장은 통상 매년 3만포기 정도 한다. 천일염은 매년 신안군 하의도에서 400~500포를 갖고 온다. 백김치도 보리새우를 갈아 넣어 담근다. 청송·안동지역에선 ‘소적’으로 불리는 무전과 생콩을 불려 빻은 뒤 찹쌀과 함께 끓인 콩죽도 이 집에서만 볼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남자와 여자를 위한 기능성 밥을 개발한 것. 남자밥은 ‘기운’을, 여자밥은 ‘기혈’을 보강해준다. 남자밥에는 호두와 은행, 여자밥에는 검정콩과 대추 정도가 고명으로 올라간다. 사찰밥상이라 고기 대용으로 콩스테이크를 올린다.

아들이 닭에 더 집중한다면, 계절이 ‘씨앗’처럼 박혀 있는 ‘추억의 그 엄마표 밥’상을 재현해 보겠단다. 꼭 그렇게 되시길….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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