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난’ 전라도밥상에 딴죽 좀 걸겠습니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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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5-31   |  발행일 2013-05-31 제36면   |  수정 2013-05-31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식객단, 전라도밥상 탐사하고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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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기운을 찾기 힘든 여수 유명식당의 돌게간장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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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한정식의 명맥을 잇고 있는 예향 한정식의 한상차림

지금 우리는 전라도밥상에 최면이 걸려 있다. 더 이상 전라도에선 음식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경상도, 특히 대구밥상은 최악의 밥상으로 몰매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음식칼럼니스트급 나그네식객들은 간판 달린 유명식당의 내공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이제 전국의 식재료가 실시간으로 이동한다. 지역색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물론 전라도도 마찬가지다. 1만원 미만의 식단은 대구나 전라도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대구가 더 나을 수 있다. 관광객이 붐비는 식당은 최악이라고 보면 된다.

◆비빔밥은 전주의 독점물이 아니다

기자는 13년 전부터 전라도밥상의 진화과정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조선 때 ‘골동반’ 등의 이름으로 등장한 비빔밥.

사람들은 전주비빔밥만 안다. 전주는 가족회관, 한국관, 성미당 등 6개 업소가 클러스터 형식으로 똘똘 뭉쳐 있다. 가족회관의 김영임씨는 전주비빔밥 1호장인으로 선정됐다. 전주 식당가에서 맨 처음 비빔밥을 선보인 건 1968년(전주 덕진구청 영업신고일시 기준).

하지만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비빔밥을 내놓은 도시가 있다. 바로 경남 진주다. 진주시 대안동에 있는 ‘천황(天凰)식당’. 진주MBC 남쪽 중앙시장 내 수정탕 앞에 꼭 일제 때 여관풍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예전 상호는 ‘대방네’. 영업신고증엔 1965년으로 신고돼 있지만, 1915년 진주시 수정동 나무전거리에서 출발한 유서 깊은 식당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빔밥 전문식당이다. 시할머니(강문숙)에서 시어머니(오봉순)를 거쳐 넷째 며느리인 김정희씨로 손맛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6·25 때 화재로 인해 재건축됐는데 페인트 글씨체의 옛 송판간판, 지금은 볼 수 없는 표면이 울퉁불퉁한 곰보유리창은 근대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다. 60년이 다 돼 가는 나무 식탁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람 손때가 묻어 퇴락미가 완연하다. 샘과 임시 콘크리트 수조, 장독대, 살평상, 찬장, 뒤주, 음식 출입구 선반에는 다이얼전화기까지 있어 미니 향토박물관 같다. 처음부터 비빔밥을 팔지 않고 나무전거리 상인을 대상으로 허름한 백반을 팔다가 사람이 너무 많이 붐벼 먹기 편하게 비빔밥 형태로 변형시켰다. 진주비빔밥도 물론 진주 제사음식의 변형태로 분류된다. 각종 식재료가 꽃처럼 화려하게 놓여 있다고 해서 ‘화반(花飯)’으로 불렸다. 진주향토음식연구원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군인들의 비상식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진주비빔밥의 가장 큰 특징은 보탕인데, 여기선 소피(선지)가 들어간다. 전주에서는 콩나물국이 나온다. 전주식에 비해 밥 위에 올라가는 고명도 어른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식감이 좋게 짧게 자른다. 배추, 데친 고사리, 일명 속데기로 불리는 김자반, 그리고 육회가 눈길을 끈다. 잘 비벼지게 마른 문어와 홍합으로 만든 포탕 국물을 한 숟갈 올린다.

안타깝게도 전주비빔밥은 월드마케팅에 성공했지만 진주에서는 타지전파를 게을리해서 전국적 인지도가 너무 낮은 게 안타깝다. 물론 이 음식도 진주교방한정식 상에 올랐던 음식이다. 참고로 평양비빔밥에는 육회가 들어가지 않고, 해주비빔밥은 고추장 대신 간장 양념이 올라간다.

그런데 최근 전국 최고의 비빔밥집이 울산시 남구 신정3동에 있다는 게 확인됐다. 바로 1924년 개업한 함양집이다. 강분남-안숙희-황화선-윤희·윤정아씨로 대가 이어졌다. 진주비빔밥과 비슷하면서도 고명으로 전복, 물미역 등이 올라가는 게 특징이다.

이젠 전주비빔밥 타령만 해선 안 된다. 진주비빔밥, 울산 함양집, 그리고 육회비빔밥으로 유명한 전북 익산의 황등비빔밥, 또한 현재 현대백화점 식당가에서 인기 캡인 개정의 대구식 전주비빔밥도 있다. 달성군의 사찰비빔밥, 문경의 사찰비빔밥도 유명세를 갖고 있다.

전주보다는 목포·강진이
진정한 ‘서민 한정식’…
삭힌 홍어·젓갈·장아찌
묵은지·간장게장 등이
한상에 올라야 남도밥상

여수권 최고 유명식당의
돌게간장백반엔 실망감
가벼움으로 급조된 느낌
사람 들끓는 ‘유명 맛집’
가급적 피하는 게 좋을듯

비빔밥도 전주만 찾지만
진주·울산에 ‘最古’존재
대구‘개정’·달성‘사찰’
문경‘사찰’도 못지않아

◆남도의 맛을 찾아서

남도 맛 전도사로 유명한 시인 송수권이 펴낸 남도맛기행서인 ‘풍류맛기행’(2003년 고요나라 刊)에서는 남도 맛의 요체가 절임과 삭힘이라고 했고, 그래야 음식이 건건하고 얼큰해지고, 그로 인해 진정한 맛인 ‘개미(‘맛’의 전라도 방언)’가 생긴다고 봤다. 이는 제대로 된 판소리에서 발견되는 소리의 ‘그늘’에 해당된다. 절임과 삭힘은 발효의 원천이고, 남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발효음식을 갖고 있다. 송 시인은 가장 남도스러운 맛 중 하나로 ‘목포3합(홍어·묵은지·돼지편육)’을 꼽았다. 홍어는 두엄 속에 삭혀야 비로소 ‘지린맛’이 생긴다. 지린맛은 갯벌맛과 함께 ‘곰삭은 맛’을 연출한다. 보성 벌교의 참꼬막, 영암 독천의 갈낙탕, 장흥의 매생이, 목포의 홍어, 무안 세발낙지 등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남도 한정식’도 지역색을 갖고 있다. 경상도한정식은 ‘거문고’ 같고 남도한정식은 ‘가야금’ 같다. 전주한정식은 엄격히 말해 남도 한상차림의 본령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시각적이고 화려해서 술안주상 같은 ‘교자상 버전’이다. 남도한정식은 서민식 한정식이다. 화려하지 않고 정겹고 수수하고 맛깔스럽다. 어떻게 보면 전주식이 영국·일본·중국 자기풍라면 남도식은 ‘막사발’에 가깝다. 강진한정식은 서민식이다. 흡사 허름한 밥집의 백반정식 같다. 강진은 포구를 끼고 있어 해물이 많다. 참고로 여수한정식을 대표하는 한일관은 특이하게 회요리를 한정식 한상차림으로 개발해 성공한 식당이다.

정리하자면 제대로 된 남도의 맛은 전북보다 전남, 전남 중에서도 강과 바다(남해보다 서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목포와 강진의 밥상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나주의 곰탕도 남도의 맛에서 조금 벗어난다. 적어도 삭힌 홍어, 젓갈, 장아찌, 묵은지, 간장게장 등이 한상에 올라가야 남도밥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강진군 강진읍에 전주시내 전주비빔밥 전문점처럼 운집한 3대 한정식이 있다. 청자골 종가집·명동식당·해태식당이다. 해태식당은 90년대 초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소개했다. 하지만 강진 한정식 붐을 일으킨 사람은 현재 한정식 ‘예향’을 꾸려가고 있는 김정운씨. 명동도 85년부터 23년간 운영하다 수하 사람에게 맡긴 것이다. 그녀는 85년 명동식당을 인수했다. 법정 스님, 소설가 박완서 등이 거길 스쳐갔다. 강진 근처에는 탐진강과 서·남해가 만난 마량포구에서 재첩, 짱뚱어, 낙지, 바지락, 숭어, 장어, 은어, 대합 등이 많이 잡혔다. 이젠 갯벌이 많이 매립돼 수산물이 예전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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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남 보성군 벌교의 한 꼬막정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대구식객단.
◆전라도밥상도 검증하라

지난 월요일 폭우를 뚫고 순천정원박람회 관람을 겸해 대구식객단과 전라도밥상 탐사에 나섰다.

기자는 좀 충격을 받았다. 전체 업소를 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전라도밥상에 밀려드는 알 수 없는 암운(暗雲)을 예감할 수 있었다. 여수권에서는 최고로 유명한 여수시 봉산동 H 돌게간장백반의 차림새를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 식당은 지난 여수박람회 때 전국에서 밀려든 손님 때문에 대박이 났다. 그 일대가 간장게장골목으로 돌변했다. 식당 옆에는 포장용 간장게장 작업장이 보였다. 평상복 차림으로 급히 움직이는 몸짓에서 알바생의 고단함이 감지됐다. 기존 남도밥상에선 상상도 못할 한없이 경박스럽고 가벼운 밥상이 급조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대다수 외지 관광객은 최면에 걸린 듯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를 한다.

몇 년 전 해남 최고의 해물탕집을 검증해 봤다. 소라, 산낙지, 꽃게, 백합, 새우, 오징어, 바지락, 미더덕, 보리새우, 대하, 대맛 등 20가지 이상 해물이 들어갔지만 무슨 일인지 해물탕 특유의 맛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유는 콩나물 때문인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콩나물 탓인지 콩나물국인지 해물탕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곁반찬도 너무 부실했다. 남도의 맛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도 맛집정보에는 유명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휴가철 전라도에선 유명한 식당은 가급적 피해라. 덜 유명한 데서 의외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해남의 천일식당과 강진의 해태식당이 한때 ‘양대 남도한정식’으로 불렸지만, 이젠 사람으로 들끓는 바람에 예전만 못하다. 오히려 전남 담양의 전통식당과 충북 보은의 경희식당이 미식가에게 사랑받는다. 가기 전에 놀러 갈 곳의 문화해설사, 마을이장, 문화원 관계자에게 맛집정보를 요청하면 유명하지 않아도 ‘착한식당’을 알려줄 것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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