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Briefing
예천 출신의 도시복(都始復·1817~91)은 조선 후기의 이름난 효자다. 명심보감 효행편에 소개될 만큼 효심이 남달랐다. 숯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형편이었만, 그의 어진 효심에 하늘과 짐승까지 감동했다고 한다. 명심보감에는 ‘솔개가 날라준 고기’ 이야기를 비롯해 ‘한여름 호랑이를 타고 얻어온 홍시’ ‘한겨울에 얻은 수박’ ‘실개천에서 잡은 잉어’ 등 네 가지 이야기가 상세하게 실려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3년 시묘살이를 하며 애통해했는데, 호랑이도 그의 효심에 감동해 곁에서 지켰다고 한다. ‘경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라’ 17편은 명심보감에 실린 효자 도시복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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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가 날라준 고기’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형물. 도시복이 어머니의 식사가 늦어질까 걱정하던 차에 솔개가 고기를 가로채 집으로 날라 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
#1. 하늘이 낳은 효자…솔개가 날라 준 고기
여름이 깊어가는 음력 유월. 길손이 소백산 아랫녘 고개를 넘고 있었다. 다리는 절뚝거리고, 얼굴은 부어터지고 피멍이 들었다. 마침 목이 말라 물이나 얻어 마실 생각에 산골마을로 들어섰다.
어느 초가집 앞에 시원한 물이 솟는 샘이 있었다. 길손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초가집 마당을 훔쳐보니 한 노인이 싸리나무 가지로 빗자루를 만들고 있었다. 길손은 한숨 돌릴 겸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예천장(醴泉場)에 나갔다가 우스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천에 도효자(都孝子)라는 사람이 있다던데, 영감님 아시오?”
노인도 안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이기에 이름을 효자라 지어 부른답디까. 허허,듣기에 민망합니다.”
“영감님 생각도 그렇지요? 하늘이 낳은 효자랍니다. 그 효심에 날짐승 길짐승들까지 감동을 한대요.”
노인이 웃음을 거두고 혀를 차면서 물었다.
“어쩌다가 얼굴을 상했습니까?”
“내가 그 도효자 때문에 얼굴이 이 모양이 됐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길손이 말한 이는 예천 사람 도시복이다. 1817년 5월15일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야목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몹시 가난했다. 그럼에도 부모를 모시는 정성이 남달라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도효자라 불린 것이다. 명심보감 속편(明心寶鑑 續篇) 효행편에도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복은 젊을 때 숯을 구워 팔았다. 예천에 장이 설 때마다 지게에 숯을 져 날라 양식과 바꿔 왔다. 집에서 장터까지 오가는 길이 백리(百里). 새벽에 나서 서둘러야 해 지기 전에 집에 도착했다.
그날도 어머니에게 드릴 고기를 사서 첩첩산중을 헤치고 오는 중이었다. 어머니가 시장해할 것을 걱정하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덮쳤다. ‘어~’ 하는 사이 솔개 한 마리가 지게머리에 매달아 놓은 고기를 낚아채 가는 것이었다. 시복이 쫓아가 봤지만 공중으로 솟구쳐 산을 넘어가버린 솔개를 어떡하겠는가. 울면서 집에 돌아가는 수밖에. 시복이 빈손으로 돌아온 까닭을 설명하자 아내가 천만뜻밖의 말을 했다.
“쌀을 씻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나와 봤어요. 커다란 솔개가 지붕에 앉아 있기에 기절할 뻔했지요. 솔개는 곧 날아가고, 정신을 차리고 봤더니 마당에 고기가 떨어져 있었어요. 그것으로 국을 끓여 어머니 저녁을 먼저 올렸어요.”
시복은 고개를 들고 솔개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깊은 산골의 하늘은 이미 칠흑 같았고, 별들이 몰려나왔다. 이제부터 솔개를 원수로 삼으려던 시복은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시복의 어머니는 병이 잦았다. 시복은 저를 고생스럽게 기르다 어머니가 일찍 병을 얻었다 여기며 애달파했다. 부지런히 일했지만 약값을 대기에 바빠 살림은 늘 궁핍했다. 어머니는 정신도 온전하지 못했다. 그래도 시복은 어머니가 원하는 일이라면 소홀함이 없도록 신경을 썼다.
하루는 시복이 마당에서 보리타작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얘, 시복아. 너 일은 안 하고 왜 거기 서서 빈둥빈둥 거리냐. 저기 텃밭에 널어놓은 보리는 언제 타작할 거냐!”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은 배추밭이었다. 시복은 어머니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배추밭으로 들어갔다. 속이 막 차오르고 있던 배추를 도리깨로 쳐서 남김없이 뭉개 버렸다.
“잘한다! 우리 시복이가 일을 참 잘한다!”
배추통을 퍽퍽 칠 때마다 시복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방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시복은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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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복이 어머니를 위해 엄동설한에 수박을 구한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형물. |
#2. 한겨울에 때아닌 수박
이런 일도 있었다. 음력 섣달. 문 밖에 잠시만 서있어도 이가 덜덜 떨리는 한겨울 날. 어머니가 수박을 먹고 싶다고 했다. 아내의 만류에도 시복은 옷을 두껍게 껴입고 집을 나섰다. 일단 나오긴 했지만 정해놓은 데는 없었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 여름 수박밭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요, 내년 여름 수박밭을 미리 다녀올 수도 없었다.
시복의 발길은 안동 풍산 들판으로 향했다. 수박이 유명한 곳이었지만, 거기라고 사정이 다를까. 사람들에게 수박밭을 물었더니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봤다.
어느 밭 한가운데서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는데 머리 위로 까마귀가 날아갔다. 부리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까마귀야, 네 입에 문 것이 무엇이냐. 섣달 겨울날 개구리를 잡았느냐, 대추알을 주웠느냐. 무얼 입에 물고 가느냐. 늙은 어미한테 주려느냐. 까마귀야, 까마귀야. 그러면 네가 효자다. 네가 효자다.”
시복은 까마귀를 부러워했다. 무심코 까마귀가 날아간 쪽을 따라갔다. 그렇게 하염없이 걸었더니 다 무너져가는 원두막이 한 채 서 있었다.
시복은 제 눈을 의심했다. 난데없이 원두막 안에 푸른 넝쿨이 이리저리 펼쳐져 있는데, 그 한가운데 수박 한 덩이가 달렸지 않은가. 시복은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정말 수박이었다. 시복은 누가 주인인지 모르는 원두막에 대고 큰 절을 올렸다.
수박을 안고 돌아오는 시복을 보고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니는 씨앗을 발라주기 바쁘게 붉게 익은 수박을 입안에 감추었다. 그러나 서너 조각 입에 대고 물리니 시복은 또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는 이토록 지극한 보살핌을 받다가 시복이 서른 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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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효공원에 조성된 호랑이 조형물. 왼쪽으로 효자각이 보인다. 효공원은 명심보감에 실린 도시복의 효행을 재조명하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명심보감에는 시묘살이를 함께 하거나 한여름에 홍시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호랑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
#3. 한여름에 호랑이를 타고 얻어 온 홍시
“엄동설한에 수박이라니. 웃기지 않습니까?”
길손은 콧방귀를 꼈다. 그는 예천장터에서 이런 얘기를 듣고 사람들과 시비가 일었다고 했다. 도효자에게 생긴 일을 믿지 않는 그에게 사람들이 나서서 여러 얘기를 더 보탰나 본데, 들으면 들을수록 그는 더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주먹다짐까지 갔다는 거였다.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하나같이 이상하게만 들렸던가 봅니다?”
“거짓말도 그럴싸하게 꾸며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참 믿기지 않는 얘기지요. 겨울에 수박이라니. 맞습니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아예 나서질 않았다면 그 수박은 절대 못 구했을 겁니다. 그런데 찾다가 찾다가 보니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로 생기기도 하나 봅니다. 허허.”
길손은 씩씩거렸다.
“생각해 보십시오. 솔개가 제 먹으려고 생선을 채 갔지, 효자를 위한답시고 그랬겠습니까. 솔개가 다리에 힘이 빠져서 놓쳤는지 어쨌는지 우연히 그 집 마당에 떨어진 것이면 말이 되지만.”
노인은 여전히 웃음을 띤 채 말했다.
“솔개 마음을 사람이 알 수는 없지요. 하늘이 도왔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신기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덕분에 어머니를 잘 대접해드렸으니 솔개가 고마울 수밖에요.”
“영감님도 설마 그 말을 믿는 건 아니지요? 그런 효자가 세상천지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모조리 불효자가 되게요. 부모에게 불효하기로 작정한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갑자기 길손이 꺼이꺼이 울었다. 노인은 영문을 몰라 당황했지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길손이 울음이 섞인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효도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은 내가 효도할 때를 기다려주지 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죽어 저세상에 가서나 뒤늦게 효도를 하겠지요. 내일이 어머니 제삿날입니다. 난 비쩍 마른 조기나 한 마리 겨우 상에 올리고 곡이나 할 뿐입니다.”
노인은 길손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뒤란으로 사라졌다. 길손은 혼자서 울 만큼 울다가 눈물을 닦았다. 생판 모르는 마을에 들어와 남 앞에서 처량한 꼴을 보인 게 부끄러웠다.
길손이 다시 길을 떠나려 할 참에 노인이 나타났다. 작은 광주리를 내밀었다. 홍시 몇 알이 들어 있었다.
“영감님. 음력 유월에 웬 홍시입니까? 이게 정말 홍시가 맞습니까?”
“어머니 살아계실 제 밥은 못 넘기고 홍시가 먹고 싶다고 해서 난처한 때가 있었지요. 지금 이때였는데, 다행히 강원도 강릉 땅에서 홍시를 구했지요. 음력 유월에 홍시라니 나도 참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배웠지요. 가을에 딴 감을 토굴에 넣고 잘 간수하면 몇 개는 건질 수 있다는 걸. 가져가서 어머니 제사상에 올리시오.”
길손은 마을을 빠져나와 고갯길로 접어들었다. 그때 마침 나뭇단을 지고 내려오는 아이가 있어 물어봤다.
“저기 샘터 가에 서있는 초가집 사는 어른이 누구시냐?”
“도시복 어른 댁이지요. 우리 마을에서는 도효자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는 그대로 마을로 내려가고, 길손은 한참 마을을 내려다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효자 어른….’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초가집을 향해서 허리를 숙였다. 그런 다음 홍시가 짓무르지 않게 조심히 안고 고개를 넘어갔다.
실제 명심보감에는 도시복이 한여름에 호랑이를 타고 얻어 온 홍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병든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어갔다.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해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난데없이 홍시를 찾았다. 그때가 음력 6월, 한여름이었다. 가을에야 나는 홍시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시복은 감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홍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둑했다. 속상한 마음에 힘없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채만 한 호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막았다. 호랑이는 긴 꼬리로 제 등을 툭툭 치며 타라는 시늉을 했다. 해치려는 뜻이 없다는 것을 안 시복은 조심스럽게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시복을 태운 호랑이는 산속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한참을 달린 호랑이가 멈춘 곳은 강원도 강릉의 어느 외딴집이었다. 깊은 밤중이었지만 시복은 주인을 찾아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했다. 얼마 후 주인이 제삿밥을 차린 음식상을 내왔다. 그날은 마침 주인의 아버지 기일이었다. 상을 받은 시복은 눈을 의심했다. 음식상 위에 홍시가 탐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너무 기쁜 마음에 시복은 주인에게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어떻게 한여름에 홍시가 있느냐”며 주인에게 되물었다. 주인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홍시를 몹시 즐겼다고 했다. 이를 잊지 못해 제사 때 쓰려고 매년 가을에 홍시를 따 토굴에 저장해 왔다고 했다. 이맘때면 대부분 홍시가 상하지만, 그나마 예닐곱 개는 건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 상하지 않은 홍시가 쉰 개가 넘어 마침 의아해하고 있었다고 했다. 주인은 시복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라며 홍시를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담아주었다. 홍시를 구한 시복은 그길로 문을 나섰다. 그런데 호랑이가 제 갈 길을 가지 않고 여전히 마당에 엎드려 시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복은 다시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쏜살같이 집으로 향했다. 기뻐할 어머니의 얼굴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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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위해 한겨울에 잉어를 구해준 도시복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형물도 효공원에서 볼 수 있다. 명심보감 조형물에는 도시복과 잉어 이야기가 상세하게 적혀 있다. |
#4. 도시복 스토리가 담긴 효공원
시복이 살던 집과 자주 거닐던 곳은 효공원(孝公園)으로 조성되어 지금도 도효자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효공원은 도시복의 효행을 재조명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됐다.
목조 초가 형태의 도시복 생가와 샘터, 장독대 등을 복원하고 효자각, 홍살문 등을 세웠다. 특히 명심보감 효행편에 수록된 솔개가 날라준 고기, 호랑이를 타고 얻어 온 홍시, 한겨울에 얻은 수박, 실개천에서 잡은 잉어 등 네 가지 스토리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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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일· |
글=조정일 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공동기획:Pride GyeongBuk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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