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9) 대구시 북구 대현1동 ‘피터스 커피’의 강병희호

  • 이춘호
  • |
  • 입력 2013-12-20   |  발행일 2013-12-20 제41면   |  수정 2013-12-20
실험실 같은 곳서 생두·로스팅과 전쟁…
자신만의 더치커피 레시피(과테말라 4 : 인도 2 : 만델링 2 : 예가체프 2 비율 혼합) 공개
20131220
더치커피 전도사로 최근 도전장을 낸 피터스 커피의 강병호 사장. 10여시간 더치커피액을 추출받고 있는 30개의 용기를 보관하고 있는 진열장이 그의 분신처럼 보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강병호, 그의 아지트는 어두컴컴하다.

1970년대 애송이 바이어의 사무실 같다. 현실보다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의 파워가 9할 이상 점령한 그런 분위기랄까. 경북대 기숙사 바로 북쪽 담장 근처 대현1동 자율방범대와 붙어있는 건물 2층 PC방 옆 8평 규모의 ‘피터스 커피’. 종일 거기서 커피향 가득한 놀이를 한다. 여느 커피숍처럼 접근할 수 있는 코너는 아니다. 정말 커피 마니아만 알음알음 찾아온다. 대구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다. 수면 아래 바리스타로 활동했으며, 대구보다 서울·경기권에서 더 알려져 있다. 이젠 땅 위로 올라와 매미처럼 울고 싶단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처음엔 실험실에 들어온 것 같았다. 정면 진열장에 더치커피 추출기가 한약방 약재장에서처럼 놓여 있다. 구석으로 돌아가며 메조로버일렉(스위스산), 말코닉(스위스) 등 4종의 그라인더, 로스팅 기기 등이 세팅돼 있다. 생두는 케냐, AA, 만델링, 콜롬비아, 브라질, 예가체프, 시다모, 과테말라, 인도, 볼리비아, 부룬디, 탄자니아, 코스타리카 등 20여종이다.


◆ 첫키스와 같은 커피와의 만남

대구에서 태어났다.

생애 첫 커피와의 만남은 2008년 7월. 38세였다. 정말 늦깎이 바리스타다. 연조로 보면 애송이급. 하지만 집중한 시간을 보면 절대 밀리지 않는다.

부산 엘리스커피(광안리해수욕장 근처)가 그를 유혹했다. 첫키스와 같았다. 그 전의 커피는 쓰고, 담배 냄새도 나고, 좀 플랫된(가버린) 커피였다. 그냥 멋으로 먹는 수준이었다. 내밀한 역사, 문화 질감 등은 전혀 느낄 수가 없는 처지에서 만난 그날의 커피. 충분히 그의 삶을 바꿔놓는다.

그해 9월부터 매주 토요일 부산에 가서 6시간 수업을 듣고 마지막 완행 열차를 타고 침산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행복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전 세계 커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기본기를 터득한다. 커피숍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냥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매주 10만원 정도의 원두를 구입해 왔다. 가정용 그라인더와 드리퍼 등은 집에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나중에는 커피 값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나름 다른 커피가 그리워서 로스팅까지 배운다. 부산시 장전동의 커피숍 ‘커피가 사랑하는 남자’의 오너가 친한 동생이었다. 거기서 커피 볶는 걸 배웠다. 한 400㎏(한 자루가 60㎏) 정도 태워먹었다.

“쓴맛인지 잘 탄 맛인지 잘 굽힌 건지 그 미묘한 차이를 처음에는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굽히면서 생두에 균열이 가는 미묘한 소리의 본질도 터득해야만 했다. 1분이 아니라 1초 상간에 맛이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었다. 속으로 ‘이건 예술의 영역’이라고 탄성을 내질렀다.

“불이 있고 생두가 있습니다. 태우는 것과 굽는 것의 차이는 뭔지 몰랐어요. 속까지 익혀야 하는데 그럼 전도열과 대류열을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데 그걸 하루아침에 알 수가 없죠.”

사실 비싼 로스팅 기계 매뉴얼대로 하면 얼추 평균적 맛은 나온다. 기계만 좋으면 해결되는 것인가. 거기서 만족하면 절대 프로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분 단위로 원두의 단면적을 분석했단다. 그러면 1분마다 2만원 정도가 날아간다.

“커피 로스팅은 12~15분 사이에서 승부가 결판납니다. 적당한 온도는 기계마다 특성이 다르니 일일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 좋은 로스팅 기계를 위해 애장 승용차 처분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입하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만족할 수 없었다. 자기 혼자 음미하기 위해 1천만원짜리 로스팅 기계를 사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미쳤다고 쏴붙였다. 6개월간 아내와 논쟁을 했다. 통장에는 잔고가 바닥권. 지인한테 무조건 돈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6명으로부터 200만원을 얻었다. 자신이 40대 생일선물로 받을 돈을 아내한테 다 주겠다면서 아내와 지인으로부터 목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누가 커피 샘플을 달라고 했다. 그게 판매로 이어졌다. 6개월 만에 빚을 다 갚았다. 고마운 지인들한테 평생 커피는 공짜. 36세에 결혼하고 41세에 첫딸을 봤다. 지금은 43세다. 자기 커피로 처음 돈을 번 건 41세부터다.

“커피 맛은 건강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건강하지 않으면 혀도 제대로 설 수 없기 때문에 절대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결국 좋은 커피 맛을 위해서는 제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커피를 통해서 저를 발견한 것이죠.”

그는 커피가 맛있으려면 생두가 첫째란다. 다음은 로스팅, 다음은 그라인딩이란다.


◆ 생두와의 전쟁

생두와의 전쟁.

이게 바리스타의 처음이자 마지막 싸움이다. 이건 돈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나름 엄선한 생두 수t을 냉장보관하고 있다.

그는 대구 바리스타와 공감대 형성이 너무 어려웠단다.

“다들 매우 보수적이더군요. 자기 정보를 남과 절대로 공유하지 않으려고 해요. 고수가 있다고 하면 자꾸 누구보다 더 나은지 테스트하려고만 해요. 자기 건 안 보여주고 남의 것만 참견하려고 합니다. 몇 가지 재주로 조금은 버틸 수 있어도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바닥에서는 모두 고수이면서 모두 아마추어이기 때문이죠. 자신의 부족함이 보여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고, 자신의 장점만 부각하고 싶다면 결국 고사되고 맙니다.”

그는 노하우라는 것도 비밀도 없다고 본다.

“모든 원천 기술을 알려줘도 절대 흉내를 내지 못합니다. 제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결국 마인드가 있는 사람은 본질의 노하우에 다가갈 수밖에 없어요.”

그는 생두를 구하기 위해 직접 커피 산지를 찾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맘 맞는 바리스타끼리 모여 좋은 원두를 서로 확보해주고 교환도 하고 상호 논평도 해준다. 자기만 부지런하면 인터넷에 공개된 올해 최고의 생두와 원두 정보를 알 수 있다.

현재 그의 생두 수준은 스스로 10점 만점에 7~9점 급으로 평가한다. 일반 정체불명 고속도로 휴게소 커피를 3~4점 정도, 일반 업소는 5.5점으로 보면 될 것 같단다.

원두 가격의 경우 1㎏ 기준 1만8천~6만원선. 보통 1년이 유통기한이라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로스팅 한 날로부터 2주를 넘겨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산소와의 접촉으로 인해 산패되기 때문이다.


◆ 더치커피에 올인

더치커피에 올인하게 된 계기는 뭘까.

어느 날 친한 동생이 더치커피 추출하는 기구를 선물했다. 그는 더치커피의 간편성을 발견하게 됐다.

“더치커피 문화는 자못 호기심적이라고 봅니다. 옛날 왕이나 접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먹어 보려고 야단인 것 같습니다. 물론 아메리카노보다 더치커피를 먹으면 좀 더 세련돼 보이고 패셔너블하게 보인다는 문화풍속도가 더치커피 붐을 선도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 더치커피가 빵 터졌다. 서울은 더욱 폭발적이었다. 2008년에는 바리스타 자격증 따기가 유행이었다. 2010년까지 학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자기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먹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결국 가정용 로스팅 문화가 정착된다. 더치커피는 그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

그가 자신만의 더치커피 레시피를 알려준다.

장치는 3단 구조로 돼 있다. 제일 위 칸에는 2천㏄ 용기, 중간에는 300g용 그라인드된 원두용기, 추출액을 받는 3ℓ짜리 컨테이너.

“수돗물에는 염소가 있어 세균번식을 막아주지만 고유의 맛이 덜합니다. 염소제거 필터가 달린 정수기 물을 사용하고 그걸 점적인 형태로 10~12시간 떨어뜨립니다.”

원두 200g에 물 2천㏄를 넣으면 추출액은 1.8ℓ가 나온다. 묵을 쑬 때처럼 계속 지켜봐야 한다. 물이 일정하게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물이 위에 고여있으면 맛이 없어진다. 추출이 아니라 침출되기 때문이다.

추출 후 2일간 냉장 보관을 한다. 배송 받은 뒤 냉장 보관하면 한 달 정도는 먹을 수 있다. 더치커피는 상온에 두면 자칫 상할 수 있다.

아메리카노의 경우 신맛이 인상적이다. 현재 과테말라·인도·만델링·예가체프, 4대 2대 2대 2로 혼합한다. 이 비율로 더치커피를 뺀다.

“커피 초보자는 처음에는 모두 마일드하게 먹으려고 합니다. 이때 남미계열(콜롬비아, 과테말라)을 접하죠. 그 다음에는 케냐와 예가체프(에티오피아), 고수급으로 가면 쓴맛과 초콜릿 맛이 지배적인 만델링(인도네시아)에서 만나는 것 같아요. 커피맛은 신맛·단맛·쓴맛의 절충선에서 결정나는 것 같아요. 신맛은 2~3, 단맛은 6~7, 쓴맛이 1 정도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맛과 관련해 영원히 답은 안 나오겠죠. 그 답을 향해 가는 것, 그 속에서 연륜과 깊이가 한계적으로 오겠죠. 고수는 이 괴로움을 운명이라면서 즐길 겁니다. 어느 수준을 넘으면 누가 더 고수냐를 절대 묻지 말아야죠. 서로의 차이, 그래요. 스타일만 확인하면 끝입니다.”

요즘 그는 원하는 이에게 더치커피를 배달해주고 있다. 피터스 커피 쇼핑몰(www.peterscoffee.co.kr)을 통하면 된다. 틈틈이 중학생 커피반, 교도소 등을 찾아서 커피를 알리고 있다.

‘좋은 아버지는 빨리 죽는 아버지’란 쇼펜하워 어록을 던진 그가 “정말 자식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멘트를 끝으로 인터뷰를 끝냈다.

그의 커피에는 왠지 ‘유목민’ 냄새가 어른거린다. 010-8856-9433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