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30) 대구시 수성구 숯불갈비 한정식 전문 ‘안압정’의 김옥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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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10   |  발행일 2014-01-10 제41면   |  수정 2014-01-10
감미로운 안창살과 팔도 산해진미…웰빙 넘어 힐링의 맛 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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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엄선해 온 ‘육·해·공’ 식재료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져 있는 ‘안압정’ 한상차림. 음식의 맛 이전에 멋과 친절이 얼마나 외식산업에 중요한 지를 엄격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분명 ‘웰빙’보다 ‘힐링’의 시대가 된 것 같다.

식당도 그렇다. 그냥 제철음식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게 건강에 어떻게 좋은지를 알고 싶어한다.

대구에 많은 숯불갈비 전문 한정식 전문점이 있다지만 다들 왠지 무미건조해 보인다. 메뉴라인이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정성보다는 ‘설정적’이다. 우리가 휘둘리고 있다는 기분이다. 다양한 반찬이 아무리 푸짐하게 나온다 해도 나올 때 차라리 집 근처 보리밥, 아니 돼지국밥 한 그릇이 그립다면 그 한정식은 ‘작전세력’이다. 둘러보면 그런 한정식 투성이다.

그런데 수성구청 맞은편 대구도시철도 2호선 수성구청역 4번 출구 입구에 있는 안압정은 ‘진검승부사’ 같다. 한때 한강 이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식당 1순위였다. 서울서 내려온 상당수 대기업 이사들도 여길 ‘묻지마 회식장소’로 만족해한다.


청도 청매실·제주 해초·삼천포 멍게…
전국 각지 돌며 친환경 식재료 확보

78년 구미에 시집 와 떠맡은 갈빗집
대기업 품질관리제도 도입해 대혁신

10여가지 재료 넣어 특허 낸 물김치
송이국·겨울냉이 등 계절요리 일품


◆ 비원에서 안압정으로… 갈빗살 신드롬 진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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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문화의 신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대구시 수성구 한식당 ‘안압정’의 김옥순 사장이 “요즘 외식문화가 웰빙에서 힐링으로 건너간다”면서 착한 식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장보다 CEO 같다.

예순을 갓 넘긴 김옥순씨. 외식업계에선 ‘여걸’로 통한다. 개인적으로는 ‘식품계의 유관순’으로 부르고 싶다.

방금 수술을 해도 손님한테 절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임팩트 강한 빨간색 립스틱, 원색의 의상… 푸드스타일은 물론 디자이너 유전자도 갖고 있다. 그래서 밥상이 더 육감적이고 원색적이고 탄력적이다. 김씨는 세상이 ‘웰빙’에서 ‘힐링’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 확보를 위해 전국을 다 뒤지고 있다. 전남 구례와 청도의 청매실·쇠비름·참비름·가지·머위·도토리·민물새우, 제주도산 붉은 해초와 콜라비, 거제도산 산양산삼, 삼천포산 소라·멍게, 무주와 문경산 오미자, 전남 영암산 무화과, 전남 고흥산 유자와 갓, 경기도산 쌈채, 전남 청산도산 톳, 영주산 청국장, 전남 화순산 죽염, 대구시 동구 반야월산 연근 등을 구해온다. 산지별 식재료 현황판도 자신 있게 입구 정면에 부착해 놓았다. 완벽한 오픈 주방이다. 방역 소독필증서·영업 OJT교육·보건증·위생교육 대장을 카운터 뒤에 항상 비치한다. 행정관청 위생과 직원이 오면 즉시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녀는 요리를 하나의 구원이자 천직으로 여긴다. 서빙하는 여직원도 식구란다. 그들을 부를 때 ‘아가야’란 호칭을 사용한다.

“직원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 주어야 그 기운이 손님한테 고스란히 전달된다. 마음이 음식에서 멀어지면 아무리 좋은 식재료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항상 직원 교육에 매진한다.”

몸이 피곤하면 요리도 피곤하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은 휴무. 현재 모두 23명의 홀서빙 멤버가 있고 다들 ‘알프스 소녀’ 같다. 이들이 모두 38개의 테이블을 종횡무진하면서 미소를 날린다. 서빙을 할 때 손님들에게 각 식재료의 원산지가 어디고, 효능이 어떻고, 어떻게 먹는 게 가장 좋은가를 알려준다. 그걸 좀 피곤해하는 이도 있지만 이젠 다들 고마워한다.

남자 화장실 언저리도 패션잡지에 나올 것 같다. 장미꽃, 고흐의 카페 테라스 그림이 있는 액자, 크림과 로션, 치약과 칫솔, 가글용품까지 항상 비치돼 있다.

본채와 별채 연결 공간 인테리어도 고궁박물관의 쉼터 같다.

곳곳에 화초가 놓여 있다. 꽃동산 같다. 이번 겨울에는 어른 주먹만한 석류와 모과를 옹기에 수북하게 넣어놓았다.

안압정은 지금 전국 갈비업자들이 제일 부러워하면서도 겁을 낸다. ‘오감(五感) 감동전략’ 때문이다. ‘마음사냥’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시각(視覺)을 중시한다. 보기 좋아야 먹기 좋다. 손님은 모두 룸으로 안내된다. 방마다 맷돌분수 등을 오브제로 한 ‘미니 정원’이 감실처럼 설치돼 있다.


◆ 독보적인 품질관리 시스템

안압정에는 아줌마, 아저씨란 호칭이 없다.

선생님, 주임님 등으로 바뀌었다. 여기서는 영업보다는 ‘경영’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항상 남보다 ‘반 보’ 앞서간다. 안목 덕분이다. 구미 해운대 갈비와 금오산맥, 수성구 비원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1978년 시집 온 구미시 원평동 해운대 갈빗집에서 일을 낸다. 그녀의 나이 26세. 그 식당은 원래 시댁 식구가 꾸려가던 곳이었다.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그녀가 떠맡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식당이 아니었다.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만 했다. 맨 먼저 ‘조명 혁신’에 돌입했다. 형광등 불빛이 식당 분위기를 창백하게 만든다고 보고 즉각 햇빛에 가까운 백열등으로 교체했다. 다음은 경직된 식당 조직을 타파했다. 주방장 1인 천하 식당 시스템에 제동을 걸었다. 식당 정보 공유화를 개선한다. 매주 토요일 밤엔 어김없이 팀장이 모여 분임조 회의를 하고 월 2회 총회를 연다. 한국표준협회 관계자들의 노하우도 빌렸다. 그 노하우가 안압정 식단 표준화를 완성시킨다. 삼성반도체, LG 등 국내 굴지 기업 혁신 프로그램의 하나인 품질관리(QC)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조직도 육부, 영업, 경리, 관리, 교육, 식사, 세척, 조경 등 팀제로 나눴다. 종업원이 곧 사장임을 주지시켰다. 식당도 오픈형으로 개조하고 식기도 도자기로 교체했다.


◆ 밥상에 계절을 담다

안압정 메뉴라인은 계절이 항상 담겨있다.

음식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항암쌈채에다 10여가지의 재료를 넣어 6시간 달인 맛국물로 만든 특허 낸 물김치다. 토마토 청국장은 토마토 속을 파내고 그 속에 청국장을 담은 건강 음식이다.

최근엔 석류를 이용해 떡을 만들었다. 후식으로 나온 녹차주먹밥과 송이를 듬뿍 넣은 송이국은 향기가 야물다. 사계절 메뉴가 서로 자기 영역을 지키고 있다. 그건 그녀가 직접 식재료를 동시에 장악할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하다. 요즘 별미는 겨울냉이와 메뚜기. 튀긴 메뚜기는 선산 해평들에서 잡아둔 걸 그녀가 직접 요리해서 낸다. 하절기엔 민물새우도 볶아 낸다. 천연수제 요거트도 별미.

안압정 비장의 무기인 한우 안창살. 수십 년간의 그녀만의 노하우가 묻어 있다. 맛소금에 살짝 찍어 먹도록 한다. 참기름, 소스 등이 가미되면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

87년엔 계절별 사이드 메뉴 개발에 나선다.

그걸 위해 계절별 해조류 현황 분석에 들어간다. 1주일 두 번 밤 새워가며 삼천포 해안을 뒤진다. 꽃게 사러 군산 가고, 좋은 갓김치는 순천 등지서 공수해왔다. 달성군 가창면 정대 골짜기에서 무공해 채소, 대구 인근 전통시장에서 전통 먹거리를 구해 온다. 식단이 확 달라졌다. 일식집에서도 제대로 갖추기 힘든 돌미역, 고시래기, 돌가사리, 젓갈, 훈제 연어, 홍어, 해삼 내장, 멍게, 해파리 등이 기본 찬으로 얹히는 ‘안압정 해조종합세트’가 탄생된다. 대구에선 처음 시도한 차림이다. 그 반향은 86·87년 한국표준협회 주최 전국 서비스 부문 대상, 88년엔 세계품질관리 대회 금상 수상으로 드러났다. 이후 주차난 때문에 88년 11월15일 구미시청 근처에서 초대형 구미 금오산맥 시대를 열지만 운이 받쳐주지 않아 구미시대를 접는다. 대구로 들어와 90년 수성못 옆에 레스토랑 ‘상류사회’를 열지만 자기 일이 아니었다. 재차 92년 3월 수성구 만촌동에서 ‘비원 시대’를 열었다. 룸은 사랑방형으로 개조하고 해조류에 이어 무공해 채소 버전을 소개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돼 95년 12월 조카 김명희씨한테 물려주고 잠시 침잠기를 거쳤다가 99년 9월 안압정을 오픈한다.

전국을 돌아다녀 봤지만 맛과 멋이 안압정처럼 조화롭게 뭉친 곳은 참으로 드물다.

푸드에 패션과 디자인을 수놓았기 때문이다. 한정식은 1인분에 수코스 3만원, 희코스 5만원. 갈비안창살(100g) 4만5천원, 생갈빗살(100g) 4만2천원. 매주 일요일 휴무. (053)743-3369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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