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服父情’…대구시장 선거 김부겸 예비후보자의 아버지 김영룡씨가 말하는 ‘내 아들 김부겸’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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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04   |  발행일 2014-04-04 제37면   |  수정 2014-04-04
시국사건으로 구속되고 나온 부겸이를 야단친 적이 있어요
그러나 아들의 애국심과 정의감까지 말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게 부모 마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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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예비후보의 부친인 김영룡씨가 아들로 인해 고초를 겪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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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김영룡씨(오른쪽)가 아들인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예비후보와 함께 앞산 충혼탑을 찾아 나란히 걷고 있다. <뉴시스 제공>

정치인의 아버지로 유명한 사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대인(김홍조 옹)일 게다. 김 옹은 거제도에서 멸치어장을 운영하면서 평생 YS의 정치적, 경제적 후견인이 됐다.

지난달 24일,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예비후보가 서문시장에서 대구시장 출마선언을 앞두고 앞산 충혼탑에 참배를 했다. 그때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김 후보와 나란히 동행한 사람이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김 후보의 아버지인 김영룡씨(77·예비역 공군중령)다.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결혼해 19살에 김 후보를 낳았다. 부자(父子)는 연령차이가 20살도 나지 않은 데다 아들이 아버지의 모습을 쏙 빼닮아 ‘형제 같다’ ‘같이 늙어간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군인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젊은 시절 3번이나 감옥을 들락거리며 체제에 저항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연유로 아버지는 독재정권으로부터 말 못할 고초를 겪기도 했다.

3선의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아들은 순탄한 삶을 거부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말렸다. 아들이 대구로 와 총선에 나갈 때도, 대구시장에 출마한다고 할 때도 가장 많은 반대를 했다.

지난달 28일 김영룡씨를 만났다. 왜 군복까지 입고 나와 아들과 함께 충혼탑을 찾았는지 궁금했다. 김씨는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했으나 삼고초려 끝에 성사됐다.

-상주가 고향인 걸로 알고 있다. 언제 대구로 이사왔나.

“김해김씨로, 윗대부터 상주에서 살았다. 나는 상주농잠고를 나와 공군하사관에 지원했다. 당시 장기하사관을 대상으로 야간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한 제도가 있었는데, 사천비행장에 근무하면서 해인대학(경남대 전신)을 졸업했다. 졸업 후 공군간부후보생으로 임관해 소위가 됐는데, 그때가 1968년이다. K2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대구 봉산동 대구경찰국장 관사 방 한 칸을 빌려 셋방살이를 했는데, 가족 5명이 모여 살았다. 그때 부갬이(김부겸)는 5학년이었을 것이다. 상주 남부초등학교에 다니다 대구초등학교로 전학시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결혼을 한 이유가 있나.

“어머니가 42살에 나를 낳았다. 부모님이 환갑때 결혼했다. 내가 외동아들이었으니 부모님께서 손자를 보기 위해서 일찍 결혼시켰는데, 다행히 첫 아이가 부갬이었다.”

-김부겸 후보가 집안의 사랑을 많이 받았겠다.

“그랬다. 부모님이나 집사람이 다 키운 거나 진배없다. 나는 직업군인 특성상 아들과 함께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떤 아들이었나.

“갓난아이 때부터 영리했다. 상주 남부초등학교에서도 공부를 무척 잘했다. 어릴 때 집 앞을 지나가던 한 노스님이 부갬이를 보고 ‘앞으로 큰일을 할 아이’라고 해서 상당히 기대가 컸다. 대구로 전학시킨 것도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만 4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바람에 또래에 비해 체력이 약했다. 경북중학교에 지원했는데, 체력장 시험 20점 만점에 3점밖에 얻지 못해 떨어져 후기인 대구중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도 대구고등학교에 다니다 한 해 재수를 하고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가정교육은 어떤 식으로 했나.

“대구에서 셋방살이를 하면서 가정교사를 둘 형편이 못 돼 틈틈이 내가 공부를 가르쳤는데 엄격하게 시켰다. 부갬이가 공부를 잘했지만 예의바른 사람으로 클 수 있도록 때론 회초리를 들기도 했다.”

-아들이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세 번이나 구속됐는데.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해 매우 기뻤다. 2학년 때 과가 나눠지는데 법대에 가서 판·검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하지만 정치학과로 간다기에 장래가 걱정이 돼 말렸다. 당시는 서슬 퍼렇던 유신시대였다. 하지만 부갬이가 ‘이런 시국에 판·검사를 해서 뭣하겠습니까. 사회대에 가서 정치쪽으로 공부하겠습니다’라고 했다. 1977년쯤 부갬이가 처음 시국사범으로 구속되고 나오자 심하게 혼을 냈다. 하지만 다 커버린 아들의 애국심과 정의감을 말릴 수 없었다. 나는 현역장교 신분이 노출될까봐 교도소에 면회를 갈 수도 없었다. 아내와 며느리가 아들 뒷바라지를 다 했다.”

-아들로 인해 피해를 본 적은 없는가.

“서울에서 부갬이와 같이 생활할 때 경찰들이 집 주변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명색이 군인인데 서로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80년 부갬이가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연루돼 수배자가 되자 나도 국군보안대에 끌려갔다. 현역 중령의 몸으로 대구 중구 공평동 건물에 연행돼 열흘 넘게 집에 가지도 못하고 조사를 받았다. 피 묻은 작업복을 입혀 겁을 줬는데 ‘자식을 잘 못 키웠다’는 반성문을 쓰라고 하는 등 온갖 치욕을 당했다. 보안부대 끌려가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중에 부갬이가 경찰에 자수했다고 하더라.”

-군복을 벗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다. 전두환 군부시절, 대구경북지역 5관구 계엄사령관이 학생 운동을 하는 자식의 아버지는 모두 옷을 벗기라고 했다. 중학교 동기인 5관구사령부 법무참모가 계엄사령관을 통해 나에 대해 구명을 해줬다. 진급심사 때마다 나는 성적이 좋아 진급누락 같은 건 없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누군가 ‘아들 때문에 진급을 못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더라.”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19세때 金 예비후보 낳아
어릴 때 한 老 스님 曰
“앞으로 큰 일 할 아이”

‘운동권 아들’로 마음고생
아들이 5·18때 수배되자
군인인 나도 보안대 끌려가
‘자식을 잘못 키웠습니다’
강제 반성문 쓰는 등 고초

아들 국회의원 첫 당선때
수많은 유권자 만나 지지호소
재선의원 누르고 기적 당선
감격에 겨워 밤새 눈물 펑펑

‘대구’에 또 출마했는데
처음엔 ‘고난의 길’ 극구반대
아들 지극한 대구사랑에 감동
군복 입고 아들 도우미 나서


-10월 유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유신에 대해 찬성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자식이 유신에 저항했으니 좋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군인의 신분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자식이 정의롭게 살자고 하는데 부모가 따라줄 수밖에 없지 않느냐.”

-김부겸 후보가 경기도 군포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 어떤 역할을 했나.

“정말 어렵게 당선됐다. 선거 때 많은 사람을 만나 아들을 도와달라고 했다. 당시 군포종합운동장에서 합동유세를 했는데 그때마다 유세장에 갔다. 내 아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월등하게 연설을 잘하더라.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유세 후 유세장에서부터 4㎞ 가까이 행진했는데 수많은 사람이 따라왔다.(당시를 회상하며 김옹은 눈물을 흘렸다) 처음엔 지지율이 20%밖에 안 됐는데 갈수록 지지율이 올라가 마지막 날 지지율이 상대후보와 비슷해졌다. 결국 재선의원을 상대로 260표 차이로 이겼다. 그날 밤새도록 울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그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정치인의 아버지로 아들에게 어떤 정치인이 되라고 강조하나.

“군대생활을 오래하면서 느낀 건데 정치인은 무엇보다 국가관이 뚜렷해야 하고 애국심이 있어야 한다. 올곧은 방법으로 민주화와 국민화합을 위해 열심히 하다보면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겠나.”

-공군중령으로 퇴역하고 난 뒤엔 무엇을 했나.

“대구 성서공단과 구미에서 각각 모 기업체 총무부장과 관리이사를 했다.”

-김 후보와는 떨어져 살았겠다.

“선거 때가 되면 군포에 가서 도와줬다. 군포에는 노인들이 5천명 정도 산다. 게이트볼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아들을 홍보했다.”

-2년 전 김 후보가 군포에서 대구로 올 때는 말리지 않았나.

“왜 안 말렸겠나. 군포에 있으면 4선, 5선도 가능한데 엄청 말렸다. 그런데 부갬이가 ‘아버지, 국회의원 4선, 5선하면 무엇하겠습니까. 해묵은 영호남 지역감정은 그대로고, 고향 대구의 GRDP가 수년째 전국꼴찌인데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라고 하더라. 나 역시 대구에서 40여년간 살아보면서 아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2년 전 총선 때도 아들을 위해 발 벗고 선거운동을 하러 다닌 걸로 알고 있다.

“대구 수성갑 지역에 노인정이 230군데 되는데 전부 세 번 정도 방문했다. 처음엔 ‘김부겸이 전라도 사람 아이가’ 하면서 씨도 안 먹히더니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라.”

-당시엔 배우인 손녀 윤세인씨가 함께 해 3대가 같이 선거운동을 했다. 수성갑에서 40.4%를 얻었는데, 낙선하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

“세인이가 많이 도와줬다. 나도 지하철에서 명함을 많이 돌렸다. 처음부터 힘든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조순형씨도 20%도 못 했지 않나. 처음엔 왜 대구에 와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생각했는데 차츰 나아졌다. 선거에는 졌지만 희망이 보였기에 그렇게 낙담하진 않았다.”

-대구시장 출마 때는 어땠나.

“시지에 살면서 대구시장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대구시장에 나오면 나랑은 인연 끊는 줄 알아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 제가 안 나가면 안 될 입장입니다’라고 하더라. 국회의원만 하고 끝낼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입장에서 아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지 않느냐.”

-지난 24일 김부겸 후보가 대구시장 출마선언을 할 때 군복을 입고 함께 충혼탑에 참배하고 서문시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까지 갔다. 왜 군복을 입었나.

“지난번 수성갑 국회의원 선거 때는 안 입었지만 이번엔 내가 자발적으로 입었다. 부갬이가 250만 대구시민의 수장이 되려면 적어도 선배 호국영령께 먼저 참배하고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이 되려면 대구시민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데 밀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건강해 보인다.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나. 김부겸 후보 부부가 기독교 신자인 걸로 알고 있는데 같은 교회에 다니나.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걷는다. 하루에 1만~2만5천보 걷는 운동을 7년째 하고 있다. 교회는 부갬이 내외가 다니고, 집사람과 나는 절에 다닌다. 젊을 때 불교에 심취해 부대 내에서 불자회 회장도 하고, 불사도 하곤 했다. 지금 만촌동에 있는 절에 다니고 있다.”

-대구는 보수적인 도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도 짙고,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두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 역시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농촌출신이다. 박 대통령은 보릿고개를 해결하기 위해 새마을운동을 시작해 배를 곯지 않게 했다. 박 대통령이 유신만 고집하지 않았다면 부하인 김재규의 총탄에 서거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때 공약했던 것을 지켜야 한다. 낙후된 대구의 발전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들이 대구에서 두 번째 도전을 한다. 김 후보가 대구시장을 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왜 시장이 돼야 하나.

“12년 동안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했다. 부갬이는 몸소 실천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대구의 발전을 위해선 여야가 따로 없다. 선거 때마다 낙점만 받으면 시장이 되는 도시는 발전할 수 없다. 대구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부갬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어떤 정치인이 됐으면 하나.

“부갬이는 중도, 온건, 합리적인 면이 있다. 청렴결백하고 올곧은 길을 가며 진심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싶다. 인생은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를 시작했으면 고통과 어려움도 겪어야 한다. 꿋꿋하게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아들과 손녀가 TV에 자주 나와 좋겠다.

“허허허, 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스트레스다. SBS방송 ‘잘키운딸하나’ 드라마에 손녀가 나온다. 그런데 세인이 인물은 나랑 부갬이보다 며느리를 더 닮은 것 같다.”(웃음)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알림=위클리포유는 6·4지방선거 공정보도와 관련, 다른 정당의 대구시장 후보가 최종 결정되면 후보자와 관련한 인물을 발굴해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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