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예술의 뿌리를 찾아-대구예술의 토양을 만든 예술인 .5] 소설가 현진건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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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14   |  발행일 2014-05-14 제22면   |  수정 2014-05-14
한국이 낳은 걸출한 소설가…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 열어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삭제하고 보도한 언론인
빈곤속에서도 양심지켜…민족의 슬픔 흠뻑 쏟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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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앞줄 맨 왼쪽)이 가까운 문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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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 있는 현진건 문학비의 제막식 모습. <대구소설가협회 제공>


최근 대구지역 문단의 문제점의 하나로 소설분야가 점점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모든 문학분야의 공통된 점일 수도 있지만, 특히 소설분야는 원래 작가들이 소수인 데다 인터넷 등의 발달로 소설 등의 긴 글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줄고, 또 이를 쓰려는 지망생들도 점차 찾기 힘든 실정이라 여러 측면에서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지역소설계의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고, 지역작가들이 펴낸 소설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최근 지역소설계가 이처럼 위축돼 있지만, 근대문학이 꽃피던 1920~30년대로 눈을 돌리면 한국이 내놓은 걸출한 소설가가 있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현진건이다.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나 43년 타계한 현진건은 ‘B사감과 러브레터’ ‘빈처’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소설가이자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잘 알려진 언론인이다.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있으면서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세계를 제패했을 때 손 선수의 사진 가슴 부분에 박힌 일장기를 삭제해 문학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애국운동을 실천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문단에서 현진건을 평가할 때 흔히 ‘한국 근대단편소설의 기초를 세운 선구자’ ‘리얼리즘의 개척자’ 등의 표현을 쓴다. 20세의 젊은 나이로 단편소설 ‘희생화’를 ‘개벽’지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한 그는 4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20여년간 많은 명작을 남겼다.

대구시사편찬위원회에서 펴낸 ‘대구시사(大邱市史)’에서는 현진건에 대해 “남다른 민족적 비애를 안은 채 빈곤 속에서도 끝내 청빈과 양심을 지켰던 그는 문학을 통해 민족의 슬픔을 흠뻑 쏟아놓았다”고 기술했다.

아버지가 우체국장을 지내는 등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현진건은 일본과 중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기도 했다. 21년 ‘빈처’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끈 그는 22년에 ‘백조’ 동인이 되었다. 백조는 현진건이 박종화, 이상화, 나도향, 홍사용 등과 창간한 문예지로 당시 국내 문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그는 백조 동인 중에서도 한국의 어두운 현실을 첨예하게 형상화하는 데 남다른 개성을 보였고, 철저한 리얼리스트로서 이땅의 비애를 발굴해 작품화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그의 대표작 ‘운수 좋은 날’에서는 하층계급의 생활을 파헤치며 눈물겨운 현실을 비판했다. 선명한 묘사, 정확한 표현, 빈틈없는 구성 등으로 사실성이 강한 작품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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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은 체호프의 작품을 애독했고, 그에게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의 체호프’라는 격찬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단편소설뿐 아니라 장편소설과 수필도 썼는데, 특히 그가 쓴 ‘백두산 기행’은 당대의 명문으로 꼽혔다.

현진건의 소설은 그의 삶과 일치해 더욱 빛을 발했다. 현진건은 소설을 쓰는 한편 언론에 관심을 가져 조선일보사에 들어갔다가 나와 최남선이 경영하던 잡지사 등을 거쳐 동아일보사에서 근무했다.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하던 1936년, 이른바 ‘일장기말살사건’으로 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 투옥까지 됐다. 그는 동아일보에서 나온 뒤 양계 등을 했으나 실패하고, 오랜 실직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이러한 현진건의 활동에 대해 대구시에서 펴낸 ‘대구의 문화인물’ 현진건편의 집필위원을 맡은 류덕제 대구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문학으로는 식민지 민족현실을 고발하고 제국주의의 억압을 극복하는 꿈을 그렸으며, 삶으로는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비분강개를 표출했다”며 “문인으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식민지 현실을 직시하고 꼿꼿한 자세로 일관한 그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고 밝혔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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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소설가협회가 대구시의 지원을 받아 현진건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마련한 문학기행에 참여한 시민들이 기념촬영한 모습. <대구소설가협회 제공>

현진건에 대한 관심 새로워질까
현진건문학상·문학주간 등 기념 사업 다각도 확대

내달 개관 대구문학관
명예의 전당도 계획
업적 새롭게 조명 기대

현진건은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서울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대구에서는 서울문인으로, 서울에서는 대구출신으로 외면해 그의 문학적 성과에 비해 후세에 큰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현진건의 집안은 대대로 서울에서 산 무반(武班)이었다. 현진건의 아버지가 대구 우체국장으로 근무했고, 임기를 마친 후에도 대구에 눌러살아 현진건이 대구에서 태어난 것이다.

대구시 중구 계산동2가 169번지는 현진건의 생가 터가 있던 곳이다. 근처에 있던 이상화 고택은 보존 결정이 났지만, 현진건의 생가 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울에서 그가 살았던 고택도 2000년대 초반 철거됐다. 이 고택에서 현진건은 역사소설 ‘무영탑’을 썼고, 장결핵으로 숨질 때까지 살았다. 1996년 조성된 대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 이상화, 이장희, 백기만 시인의 시비와 함께 현진건 문학비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 예술가들의 작품과 유적, 유품 등을 알뜰히 보존하는 것과 비교하면 현진건 등의 예술인들에 대해 한국이 얼마나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역의 한 중견소설가는 “대구를 넘어서 한국문단사에 큰 족적을 남긴 현진건 선생에 대한 지자체, 시민들의 관심 부족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반성하며 “대구문인, 나아가 대구예술인의 저력을 보여주는 현진건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그의 문학정신을 제대로 이어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구시와 지역문단에서 현진건의 문학적 업적과 치열했던 삶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2009년에는 대구지역 소설가들이 중심이 돼 ‘현진건문학상’을 제정했다. 대구소설가협회가 주축이 돼 제정을 추진, 2009년 지역소설가 이수남씨를 첫 수상자로 선정한 뒤 지난해까지 송일호, 문형렬, 오을식, 박향 등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수년간 지역문인들의 많은 노력으로 현진건문학상이 마련됐지만 상금이 200만원으로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안타까움도 쏟아졌다. 동인문학상과 동리목월문학상이 5천만원, 이상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이 3천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지역문인들의 하소연이었다.

지역의 한 문인은 “지역출신의 예술인인 이상화 시인상의 경우 제정이후 28회, 이인성미술상은 13회나 수상자를 냈을 뿐만 아니라 상금도 이보다 훨씬 많다. 상을 제정한 지 얼마나 됐고 상금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그만큼 현진건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구의 자랑거리인 선생의 위상을 빨리 되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대구시에서 현진건 현창사업에 관심을 보여 지난해부터 현진건과 관련한 사업들을 다각도로 확대해 나가고 있어 앞으로 현진건의 업적이 재평가를 받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대구소설가협회의 주관으로 현진건 문학강좌, 문학기행, 작품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현진건의 문학정신을 고취시키고 문화예술 도시 대구의 위상을 제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구소설대학, 중·고등학생들에게 창의와 인성교육을 위한 소설문학 및 문학강연을 연 것은 물론, 8월 초 현진건 문학주간을 운영하고 현진건 작품의 초판본과 희귀본 등을 전시하는 작품전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외에 현진건 문학작품 독후감 공모, 현진건 문학신인상 공모도 실시했다. 현진건문학상의 시상금도 1천만원으로 올리고, 현진건 청소년문학상을 공모한 뒤 공모작들을 모은 작품집도 발간했다.

오는 6월 개관 예정인 대구문학관에 이상화, 이장희와 함께 현진건을 대표작가로 선정해 명예의 전당도 만들 예정이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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