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신문기자에서 요리사로’ 대구 중구 대봉동 ‘카페 프란체스코’ 전경옥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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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23   |  발행일 2014-05-23 제41면   |  수정 2014-05-23
펜 대신 프라이팬 잡은 그녀의 이탈리아 요리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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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기내 식당만한 좁디 좁은 공간에서 펜 대신 프라이팬을 들고 인생2모작을 시작한 전경옥 오너셰프. 전직 저널리스트란 훈장을 미련없이 버리고, 그냥 이웃집 아줌마처럼 수더분한 자태로 단골을 맞고, 그들이 참 편하고 맛있다란 인사를 하면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이 금세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커피 한잔을 든 그녀의 표정이 파스텔화처럼 풋풋하다.


전경옥.

한때 대구·경북지역에서 유명 논객이었다.

1982년 ‘우리의 맛’, 94년 ‘종부’ 등에서 한식의 비밀을 탐색했다. 2002년부터 5년3개월간 ‘전경옥입니다’란 270여편의 기명칼럼으로 두터운 팬층도 확보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다른 길을 걷는다. 펜을 버리고 ‘프라이팬’을 잡았다. 대구 수성구 지산동 ‘파파호두’에서 잠시 동생의 일을 거들기도 했다. 지금은 대구시 중구 대봉동 패션디자이너 박동준 빌딩 6층 카페 프란체스코의 오너셰프. ‘시늉만 내다가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퇴직 언론인에겐 묘한 ‘직업병’이 있다. 자기 몸값을 시세보다 더 비싸게 매긴다는 것. 화이트칼라에서 블루칼라로 전향하는 이는 아주 드물다.

“원래 카페 프란체스코는 제 친구가 운영했어요. 건물주인인 패션디자이너 박동준씨와도 서로 친구사이인데 어느 날 이 카페의 남다른 조망과 프랑스풍의 공간미에 반해 나도 이런 카페를 갖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그런데 친구는 ‘돈이 안된다’고 만류하더군요.”

2011년 4월에 카페를 인수한다. 마냥 낭만적이기만 한 전직 저널리스트는 자기한테 어떤 시련이 닥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밤이면 대구 도심의 야경을 360도로 만끽할 수 있고 앞산까지 정원처럼 펼쳐져 있으니 커피 마시면서 음악 듣고 책도 읽으며 멋지게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픈 당일은 빌딩 1층 분도 갤러리 오픈 행사와 맞물려 매우 바빴다. 징조가 좋아보였다. 7년간 단골층도 있으니 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매상이 뚝 떨어졌다. 엄청 당황했다.

“저는 지인에게 오픈 사실도 거의 알리지 않았습니다. 식당 홍보를 민폐라고 생각했죠. 하루 만에 손님이 끊기니 온갖 생각이 다 들더군요.”

카페 주변 상권을 분석해봤다. 카페가 오픈할 당시 이런 스타일 카페는 근처에선 처음이었다. 그런데 7년이 지나면서 주변 상권이 많이 달라졌다. 수성못 주변 커피숍, 대명동 카페골목, 방천시장 김광석 벽화길, 도심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등. 자연히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더군다나 여기는 6층이고 유동인구도 별로 없다. 장기전에 돌입한다.

◆요리학원에서 요리를 배우다

요리할 줄 아는 매니저만 믿고 자신은 경영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생각이 달라진다. “주인이 반드시 요리를 할 줄 알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최고의 요리학교인 르꼬르동블루의 기술을 익혔던 매니저에게 한 수 배웠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기 음식이 아니었다. 좀 더 새로운 걸 배우기 위해 대구 현대백화점 요리 강좌도 들었다. 사실 그녀는 80년대 중반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게 요리 공부를 더 수월케 했다. 문제는 양식이었다. 2개월 정도가 지나면서 주방에 들어가서 아주 기초적인 스파게티를 만든다.

“어떤 요리를 할 줄 안다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엄청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레시피대로 한다고 고수의 맛이 절대 안나죠. ‘숙달’과 ‘숙련’이란 변수 때문이죠. 같은 악보라도 가수 실력에 따라 부르는 수준이 다 다르잖아요. 음식도 그런 것 같아요. 식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원산지에 관한 지식도 갖고 있어야 하고, 특히 그 식재료 가격도 천차만별이라는 사실, 적당한 가격에 맞추려면 어떤 가격대의 재료를 누구로부터 구입해야 하는지, 그리고 재고관리도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 모두 염두에 둬야하는데, 머리가 띵해지더군요.”

인건비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아프지만 매니저도 내보냈다. 2012년 2월말부터 오너셰프로 변신한다.

음식 종류가 너무 많았다. 확 줄였다. 맛도 좋아야 하지만 건강한 음식에 초점을 맞춘다. 비트 물을 들인 무·오이 피클도 직접 만들었다.

“단골층 연령이 좀 높습니다. 정통 이탈리아식은 그들에게 너무 느끼해 부담스러워해요. 덜 느끼하게 하기 위해서 청양고추를 스파게티 등에 넣었습니다. 이탈리아 건고추인 페페론치노는 맵기만 하죠. 일반 청양고추는 매콤하지만 칼칼한 맛이 남는 게 특징입니다. 페페론치노를 포기했어요. 오레가노도 향이 너무 강해 반만 넣었어요. 처음엔 올리브오일도 가능한 적게 사용했습니다.”

샐러드 드레싱에도 변화를 주었다.

100% 레몬주스에 후추, 설탕, 소금,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등을 넣었다. 원래 레몬주스 다섯 스푼당 올리브유를 그 2배를 넣는데 그녀는 심플하게 하기 위해 1.5배 정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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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류가 총출동한 힐링 볶음밥인 ‘컬러풀그린필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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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김치그라탕.
2011년 친구가게 인수
“식당 홍보는 큰 민폐…”
 당시 개업사실 안알려
 야심만만 오픈했지만
 하루만에 매출 뚝 ‘쓴잔’
“매니저가 알아서 해?”
 현실은 녹록지 않아
“주인이 셰프가 돼야”
 요리와의 고된 전쟁끝
 힐링볶음밥·김치그라탕
 차별화한 신메뉴 내놓아


◆전경옥표 자작 메뉴

좀 감각을 익히자 자기 이름을 건 신메뉴를 개발하고 싶었다.

‘힐링 볶음밥’이라고 별명을 붙인 ‘컬러풀 그린 필라프’부터 요리했다.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빨강·노랑 파프리카, 당근, 블랙 올리브, 그린빈스, 버섯, 보라 양배추 등에 밥과 올리브오일을 넣고 볶아낸 물기 없는 볶음밥이다. 거기에 오레가노와 후추, 그리고 치즈를 얹고 오븐에서 6분간 구워내면 ‘그린 그라탕’이 된다. 그린 그라탕은 우연의 산물이다. 어느 날 주방 찬모와 점심을 먹을 때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볶아 먹었는데 매우 맛있다는 반응이 있었다. 거기에 색깔있는 채소류를 더 넣어 상품화했다. 채소류는 230g, 밥은 150g으로 정량화했다. 채식주의자 등을 배려한 힐링푸드였다. 처음에는 새우도 몇 마리 넣었다가 완전 채식버전으로 간다. 치즈도 임실치즈만 사용한다. 자신이 해외유학파 셰프도 아닌데 맛있게 먹어주니 그게 ‘존재감’이 되었다.

인기 메뉴 중에 ‘해물 김치그라탕’도 있다. 해물과 김치를 잘게 다지고 청양고추와 마늘을 넣고 올리브오일로 볶고 직접 만든 토마토 소스를 섞어 볶다가 위에 치즈를 얹어 오븐에서 6분 구워낸다. 조금 얼큰하고 매콤하다. 느끼한 걸 싫어하는 중년 남성을 겨냥한 메뉴다.

신개념 샌드위치로 알려진 ‘치아바타’도 식감이 풍성하다. 계란, 치즈, 햄, 휘핑크림, 후추, 토마토 등을 얹어 낸 건데 식재료 맛이 충돌하지 않게 배려했다. 치아바타 전용 빵은 대구에서 구입할 수 없어서 서울 전문업체를 통해 구입한다.

◆음식보다 더 힘들었던 커피 공부

처음에는 음식에만 끙끙댔는데 커피가 더 난해했다.

평생교육원 원장 시절 커피교실을 열었고 거기서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정도는 배웠다.

일반 커피류는 그래도 쉬웠다. 민트모카, 카라멜 마키아토 등 색다른 기능성 재료가 들어가는 건 처음 접하는 것이라 레시피를 자꾸 외우고 반복 연습을 해봐야 했다.

“한번은 한 젊은 친구가 내 커피 맛을 보더니 이 맛은 정통이 아니라고 정색하더군요. 식은땀이 났어요. 상대적으로 쉬운 아메리카노만 주문했으면 하는 맘이 간절했어요. 요리는 레시피가 머리에 들어와서 나름 장악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커피는 터득하는 데 참 힘이 들었습니다. 인건비 때문에 바리스타를 데려올 수도 없었죠. 한꺼번에 여러 잔을 주문하면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게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노는 먼저 만들면 위에 형성되는 흰 거품(크레마)이 순간 다 사라져서 안됩니다. 휘핑크림 얹는 법도 처음엔 감각 익히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휘핑기 작동 미숙으로 온몸에 커피 거품을 뒤집어 쓴 적도 몇 번이나 있었어요.”

순간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지’라며 씁쓸한 독백을 한다.

주방이 매우 좁다. 하절기엔 땀범벅이다.

“오븐을 잘못 사용해 화상을 많이 입었어요. 신문쟁이 때 제약조건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하절기엔 에어컨을 가동해도 땀이 비오는 듯하죠. 선풍기를 사용하고 싶어도 맛 때문에 사용 못해요.”

처음엔 육체노동을 벗하며 2부인생을 치열하게 살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많은 고생을 요구했다. 그녀는 현재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돼 있다. 왼손 손목 부위가 혹처럼 부풀어 올랐다. 왼손만으로 프라이팬을 잡기 너무 힘들어 양손으로 쥐고 움직인다. 하루 평균 12시간 일을 한다. 바쁘면 7시간 논스톱으로 일할 때도 있다. 피가 발로 몰린다. 금세 퉁퉁 부어오른다. 굽 낮은 구두를 신다가 그래도 아파서 구두를 없애고 쿠션있는 슬리퍼를 신는다.

평소 안면이 있는 원로 연극인 박경자씨가 대구에 왔다가 지친 그녀를 보고 “몸이 가장 힘이 들 때 인간은 가장 숭고해진다”고 위로해주었다. 그게 약이 되었다.

매일 칠성시장과 할인매장, 농협 등에서 직접 장을 본다. 물품 체크리스트가 250여종이 된다. 직원까지 집에 데려다 주고 오면 다음날 오전 2시 무렵 취침.

요즘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달라졌다. 무슨 위인이 아니다. 그냥 ‘세금 잘 내고 가족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영세 식당주’라며 활짝 웃는다.

빨강 앞치마 차림의 그녀가 ‘알프스 소녀’ 같았다.

휴일은 매주 일요일. 영업은 오전 11시30분~ 밤 11시30분. (053)423-9625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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