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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문화원 월월이청청 보존회원들이 포항을 비롯한 동해안 지역의 여성 전통놀이인 ‘월월이청청’을 재현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포항을 비롯한 동해안 지역에는 여성들의 전통 군무(群舞)인 ‘월월이청청’이 전해 내려온다.
월월이청청은 보름날 마을 아낙네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추는 춤으로 전라도의 강강술래와 비슷하다.
여성을 상징하는 달이 가득 차는 보름날,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라는 주장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왜적이나, 평상시 왜구를 경계하기 위해 생겼다는 의견도 다수다.
‘2014 스토리의 寶庫 영일만을 가다’ 4편은 옛 여인들의 신명나는 축제이자 동해안의 대표적 민속놀이인 월월이청청에 관한 이야기다.
#1. 휘영청 떠오른 달
안방에 앉아 있던 을선은 내심 조바심이 치미는 것을 느낀다. 서편 하늘의 거먕빛 석양이 스러진 지는 한참 되었다. 그녀는 눈길을 돌려 방문 바깥을 힐끗 내다본다. 돌담이 둘러쳐진 마당 위의 하늘은 군청색이 시나브로 짙어지고 있다. 다행히도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명한 하늘이다. 조금 지나면 그토록 기다리던 둥글고 큰 보름달이 남쪽 하늘을 밝히며 두둥실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아랫목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시어머니는 이따금 일렁이는 등잔불 아래서 무심한 듯 바느질에만 열심이다. 열다섯 나이에 시집와서 어느덧 이태가 지났지만, 시어머니가 어렵기는 처음이나 매한가지다. 시어머니 성정이 사납거나 며느리에 대한 심술이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집처럼 돌봐야 할 시댁 가족이 많아서 시집살이가 힘들거나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것도 아니다. 사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정이 깊은 시어머니였다.
실상 따져보면 그건 시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을선 스스로의 마음에 똬리 튼 자격지심 때문인지도 몰랐다. 시집 온 지 두 해가 지나도록 무슨 까닭인지 아기가 들어서지 않았다. 더욱이 시어머니는 일찍 혼자가 된 청상과수였고, 어릴 적부터 어부로 잔뼈가 굵은 남편은 자손이 귀한 집안의 장손이었다. 그런 연유로 을선은 항시 시어머니나 남편을 대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 죄스러운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내심으론 하루라도 빨리 시어머니 손에 금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겨주고 싶었다.
을선은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오늘 낮에 동네 어부들과 함께 고깃배를 타고 나간 남편을 떠올렸다. 평소 무뚝뚝한 남편은 집을 나서기 전에 요즘은 달빛이 밝은 보름 전후여서 고기떼를 찾아 멀리 난바다까지 나갈 거라고 말했다. 짐작건대 아마 내일 오후쯤이나 되어야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어서 나가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느냐?”
멀리 바깥에서 희미하게 여인네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는 듯했다. 잠자코 바느질에 열중하던 시어머니가 문득 을선을 향해 꾸짖는 투로 말했다.
“오늘이 음력 이월 보름이지 않느냐?”
을선은 시어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갔다. 사실 을선이 먼저 말을 꺼내진 못했지만 마음은 바깥으로 쏠려 있던 터였다.
“속히 가서 달님께 소원을 아뢰어라.”
시어머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을선은 쪽마루를 건너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하며 사립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남쪽 하늘엔 이미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고 있다.
#2. 만월의 영험함을 믿다
하늘에 떠오른 둥근 달빛이 희푸르다 못해 사뭇 요기마저 띤 듯하다. 멀리 바다에서 인어가 노래를 부르듯 파도소리가 아련하게 밀려온다. 꿈길처럼 몽환적인 달빛이 온 천지에 가득한 마을 안길을 달음질치며 복례는 오늘 낮에 동네 앞 우물가에서 잠깐 먼발치로 보았던 만수란 청년을 떠올린다. 동네 아낙들 이야기에 의하면 이웃한 뒷마을 청년으로 고깃배를 가진 선주 집안의 삼형제 중 차남이라고 했던가.
햇볕에 그을린 우람한 팔뚝에 남자답지 않게 깊은 눈길과 우뚝한 콧날을 가진 청년이었다. 오래전부터 몇 번 동네 어귀를 지나가는 길에 곁눈질로 본 적이 있지만, 청년의 얼굴을 볼 때마다 괜스레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끼곤 했다. 속마음 같아선 저런 청년을 만나서 한 평생 가시버시로 오순도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녀의 나이 이제 열여섯, 엄마 말마따나 곧 시집을 가야할 나이였다. 그녀의 언니 금순이도 열다섯 들던 해에 매파의 소개로 시집을 갔다. 차례가 되어선지 요즘 들어 집안을 찾아드는 친지들 입에서 간간이 복례의 혼례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인근 마을의 만수란 총각이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또 어린 계집이 벌써부터 외간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느냐며, 내숭스러운 계집이란 타박을 받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남모를 안타까움과 속절없는 애달음만 생가슴에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 올렸다.
오늘 아침 나절에도 행여 청년의 얼굴이나 한번 볼세라 바다에 나가서 갯바위 해초를 따는 척 오락가락하였지만 청년은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자태를 보이지 않았다. 돛폭이 바람을 안듯 아쉬움을 품고 돌아왔지만 하루 종일 청년의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이월하고도 보름날이다. 복례는 자신을 유난히 아끼는 할머니에게서 들은 얘기를 떠올린다. 할머니는 이월 대보름에 마을여인들이 넓은 마당에 모여서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함께 춤을 추는 게 언제부터 생겼는지, 왜 그렇게 춤을 추는지 말해주었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살던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해는 남자의 상징이었고 달은 여인의 상징이었단다. 즉 여인의 몸을 상징하는 달은 다산과 풍요를 관장한다고 사람들은 믿었지. 해서 오래전부터 젊은 여인네들은 집안의 자식이 귀하거나 생산이 풍요롭지 못하면 달님을 향해 소원을 빌었단다. 특히 음기가 강하다고 알려진 이월 대보름이나 정월 대보름, 가끔씩은 팔월 보름달을 택해서 자기의 소원을 빌었지. 그렇게 만월의 영험함을 믿고 각자의 소원을 빌던 여인네들이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한 자리에 모여서 둥글게 원무를 추며 소원을 비는 걸로 바뀌게 된 것이란다. 그게 월월이청청의 유래인 셈이지.”
얘기 끝에 할머니는 복례에게 한마디 의미 있는 귓속말을 남겨주었다. “마음에 둔 남자를 얻고 싶으면 월월이청청을 할 때 남 몰래 속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소원을 이룰 수 있단다. 그건 이 할미가 약속할 수 있단다.”
#3. 달빛 아래 어우러지다
해변과 이어진 마을 앞 공터에 나갔을 때 이미 보름달은 남산에서 한 뼘 넘게 떠올라 있다. 하나둘 모여든 처녀와 젊은 아낙들이 공터에서 서로 손을 잡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그속에는 옆집의 새댁 을선이도 보이고, 남달리 색을 밝힌다는 소문이 도는 건넛집 강구댁도 있다. 또 어릴 적부터 복례의 친구인 용희와 일년여 전에 시집을 갔다가 아이를 가져 며칠 전에 친정으로 온 명옥이도 있다.
모두들 달빛을 어깨에 받으며 흥겹게 원무를 돈다. 복례는 누군가 선창한 노래를 따라하며 자연스레 을선과 명옥이 사이에 끼어든다. 대보름 달빛이 여인들을 비추고, 구경나온 남정네들이 여인들의 춤사위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개중에는 중년의 동네 남정네와 코흘리개 아이들도 있고, 장가 못간 떠꺼머리총각도 있다. 달이 중천으로 높이 솟아오르고, 원무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강구댁의 선창소리가 간드러지게 치솟았다.
밀양땅땅 한 선비와 월월이청청
그집 언니 시집가니 월월이청청
시집가던 사흘 만에 월월이청청
참깨 닷말 들깨 닷말 월월이청청
강구댁의 선창소리에 맞춰 다른 이들의 흥겨운 후렴소리가 장단을 맞췄다. 다음 차례가 된 이는 을선이다. 그녀는 하루 빨리 아이가 생겼으면 하는 일념으로 평소 알고 있던 ‘대문열기’ 선창을 부른다.
서울이라 남경사여 대문 쪼끔 열아주소
대문이사 있다마는 열쇠없사서 못열겠네
열쇠야 없스나따나 아무나따나 열아주소
아무나따나 들가거라 대문 좀 열어주이소
다음에 선창을 이어받은 여인은 복례다. 그녀는 이웃 마을 만수 청년과 백년해로하게 해달라는 사모의 정을 담아 한 곡조를 구성지게 뽑아낸다.
금상비단 외기낭게 월월이청청
뿌리없는 낭글숭거 월월이청청
서울에라 올라가니 월월이청청
해캉달캉 열렸더라 월월이청청
그녀의 선창에 따라 후렴구로 월월이청청 장단이 거듭 이어졌다. 곧 명옥의 선창이 이어진다. 명옥은 언제나처럼 고혹적인 음성으로 ‘달넘기’를 부른다.
달넘자 달넘자 어와칭칭 달넘자 달넘자 달넘자 어와칭칭 달넘자
니가 무신 반달이고 초생달이 반달이지
달넘자 달넘자 어와칭칭 달넘자 달넘자 달넘자 어와칭칭 달넘자
니가 무신 온달이고 보름달이 온달이지
달넘자 달넘자 어와칭칭 달넘자 달넘자 달넘자 어와칭칭 달넘자
은쟁반 같은 보름달이 온누리에 환한 빛을 뿌리는 가운데 월월이청청 노랫소리가 빠르고 높게 치솟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합세한 여인네들로 이제는 큰 원이 그려진다. 가일층 신명이 더해진다. 이제 무대는 넓은 해변 백사장으로 옮겨진다. 밤이 시나브로 깊어지며 더욱 새하얘진 달빛을 밟는 여인들의 발걸음도 더욱 흥겹고 속도감을 더한다.
여인들과 함께 원무를 추며 돌아가던 복례는 문득 저만치 떨어진 구경꾼들 속에서 만수란 청년이 맑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 자신을 향한 정겨운 웃음이었다.
을선 역시 둘러선 관객들 사이에서 난바다로 고기잡이 나갔던 남편이 환한 얼굴을 하며 자신을 지켜보는 모습을 보았다. 복례와 함께 손깍지를 끼고 있던 명옥이 손을 풀고 원에서 빠져나갔다. 복례는 명옥이 남편과 함께 다정히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았다. 푸른 달빛이 온 누리에 환했다.
박희섭<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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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2일 포항국제불빛축제를 관람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은 포항시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져 월월이청청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날 총 1천102명이 참여해 한국기네스에 등재됐다. <포항시 제공> |
동해안의 전통놀이인 월월이청청이 포항 시민의 높은 관심 속에 전승되고 있다. 포항문화원(원장 권창호)과 포항시민들이 월월이청청 보존에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이다.
포항문화원은 1981년 동해면 약전리와 발산면 주민들로부터 월월이청청의 가사와 춤을 발굴한 후 30여년 동안 보존 및 전승에 힘쓰고 있다. 2013년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해상누각에서 ‘월월이청청 열린교실’을 연 것은 물론, 올해에도 월월이청청 강좌를 꾸준히 열고 있다.
40여명의 포항문화원 월월이청청 보존회원들 역시 월월이청청을 계승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포항문화원에 모여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포항문화원에서 월월이청청을 지도하는 최경미씨는 “지역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대단하다. 매번 즐거운 마음으로 강의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8월2일에는 포항국제불빛축제의 주요 이벤트 중 하나로 월월이청청이 공연됐는데, 총 1천102명의 시민과 관객이 참여, 한국기네스에 등재되기도 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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