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4] 스토리의 寶庫 영일만을 가다<6> 포항이 만든 산림녹화 기적 ‘오도리 사방사업’

  •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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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29   |  발행일 2014-07-29 제13면   |  수정 2021-06-1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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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기념공원을 찾은 관광객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오도리 순시기념 조형물을 둘러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 동상 옆의 벽면에 새겨진 ‘치산치수’라는 글자가 당시 사방사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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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의 사방기념공원은 영일지구 사방사업의 역사성과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조성됐다. 공원의 비탈면에 조경수로 꾸며놓은 ‘사방기념공원’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 스토리 브리핑

2007년 문을 연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 사방기념공원에는 국토를 푸르게 가꾸려던 이들의 열정과 땀이 서려있다. 

사방기념공원은 국내 산림녹화의 대표적 성공사례인 오도리 사방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지금까지 방문객 50만명을 넘어섰고 일본과 중국, 몽고,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도 사방기술을 배우기 위해 다녀갔다. 

기념공원에는 치산녹화 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가족 관광객을 위해 다양한 휴식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다.
오도리의 사방사업은 1971년 포항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발단이 됐다. 

그 후 73년부터 77년까지 5년간 연인원 360만명을 투입해 영일만 일대 4천538㏊를 울창한 산림으로 변모시켰다. 

현재는 국내외 사방사업의 롤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스토리의 寶庫 영일만을 가다’ 6편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포항 오도리 사방사업에 대한 이야기다.


#1. 불모의 산지를 녹화하라

옛날 중국에 ‘우(愚)’씨 성을 쓰는 노인이 있었다. 노인의 집 앞에는 높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노인은 산의 흙을 바지게에 담아 멀리 나르기를 거듭했다. 이웃사람들이 그 연유를 물었다. 노인은 산이 길을 막아 불편하므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노년에 언제 바지게로 그 산을 다 퍼 옮기겠냐며 노인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그러자 노인은 제 평생에 다하지 못하면 자식이 할 것이고, 자식이 못 다하면 손자가 할 것이니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마칠 날이 있지 않겠느냐며 대수롭잖게 대꾸했다. 이후로 어떤 일이든 정성과 노력을 다하면 성취 못할 일이 없다는 뜻의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비구름이 잔뜩 드리워진 하늘 아래 높다랗게 솟아난 민둥산과 그 아래의 허허벌판을 바라보는 박상현 경북도 산림국장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가을을 재촉하는 소나기가 내리는 가운데 벌겋게 맨살을 드러낸 산의 경사면을 따라 곳곳에서 빗물과 함께 싯누런 토사가 쓸려 내려오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황량해질 정도로 말 그대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나지 못하는 불모의 산지였다.

“저 사막이나 다름없는 벌거숭이산에다가 무슨 수로 사방(砂防)사업을 하고 산림녹화를 한단 말인가.”

사실 그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사업이란 건 관련 학과 교수나 기술자들뿐만 아니라 인근주민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이 지역에 무려 50여 차례의 사방사업을 실행하였으나 모두 실패한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주고 있었다.

양 미간을 찌푸리던 박 국장은 자신이 일생일대의 기로에 봉착한 것을 깨달았다. 이번 사업을 성공리에 마치든지, 아니면 사표를 던지고 공직생활을 마감하든지 양단간 결정을 내려야 할 터였다.


#2. 우공이산의 교훈을 되새기다

일의 발단은 불과 보름여 전인 1971년 9월17일에 있었다. 뜻하지 않게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과 가까운 영일군 기계면 문성리에 우수 새마을 시찰을 나왔던 것이다. 그날 시찰을 마치고 가까운 의창면(현재의 흥해읍)에 들르게 된 박 대통령은 바닷가와 접한 오도(烏島) 마을을 둘러보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사방사업을 실행하라는 막중한 지시를 내렸다.

후일 들려온 얘기에 따르면 당시 영일지역은 한·일 항공기가 오가는 항로였고,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지나던 박 대통령이 푸르고 울창한 일본의 산에 비해 나무가 없어 황토색 속살을 드러낸 경북지역의 산을 보고 충격을 받아 영일만 지역의 산림녹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박 대통령은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여느 대통령보다 국토의 산림녹화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산림의 황폐화는 잦은 홍수와 가뭄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국토를 푸르게 하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가 없는 것이다. 강산이 푸를 때 국민의 생활도 그만큼 풍성하고 여유로워질 것이라는 게 박 대통령의 선구적 판단이었다.

그런 까닭에 가난하고 헐벗은 국민을 위하는 정책만큼이나 헐벗은 국토를 가꾸는 일도 중요한 정부시책으로 삼았다. 박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10년 이내에 국토 녹화를 완성할 것’을 발표했으며, 치산녹화 7개년 계획(1965∼71)과 수계별 산림복구 종합계획(1967∼76)을 비롯하여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새마을 붉은 땅 없애기’와 ‘마을 산 푸르게 가꾸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력 있게 벌여나갔다. 67년에 산림청을 개청한 뒤에도 국토산림녹화에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판단이 들자 농림부 소속이던 산림청을 힘이 있는 내무부 소속으로 바꾸었다. 산림청의 새 적임자로 손수익 경기도지사를 임명하는 획기적인 인사 조치를 내린 일도 그 한 예였다.

“영일지구는 20∼30도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뿐만 아니라 토양학적으로도 식목이 불가능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슨 수로 사방사업과 산림녹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연한 인력과 자원, 시간의 낭비일 따름입니다.”

박 국장은 며칠 전 관련학계의 권위자로 알려진 최 교수에게 영일사방사업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들었던 비관적인 어조의 대답을 떠올렸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로부터 이곳 영일지구는 바다 밑의 개펄이 솟구쳐서 형성된 이암(泥岩) 성분의 토양인 관계로 염분이 많은 것은 물론 쉽게 풍화가 이루어졌다. 게다가 타 지역에 비해 강수량이 적어 건조한 데다가 사시사철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친 해풍의 영향으로 풀 한 포기 자라나기 힘든 곳이었다. 지난 50여 차례의 줄기찬 사방사업의 실행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불모지로 방치되어 있던 지역이었다.

“분명히 방법은 있을 것입니다. 우공이산이란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토질이 아니라 안 된다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더욱 큰 난관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몸을 돌려 빗물로 질퍽해진 산길을 내려올 때 옆에서 우산을 들어주던 젊은 직원의 위안조 말이 박 국장의 귓전을 스쳤다. 우공이산이라고 했던가. 박 국장은 불현듯 마음속에 잊고 있던 용기가 새롭게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박 국장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렇다. 세상에 사람이 마음먹고 못 이룰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건 이루고 못 이루고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용기와 의지를 어떻게 끌어내며 그걸 성공의 견인차로 사용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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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기념공원에는 당시 근로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디오라마가 전시되어 있다. 주민과 현장 일꾼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을 위대한 사업이다.
 

#3. 사방사업의 모범사례로 주목받다 

 

73년, 드디어 사방공사가 전개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공사는 난관에 부딪혔다. 풀 한 포기 자라날 수 없도록 흉물스럽게 속살을 드러낸, 가파르고 험준한 산 경사면에서 벌이는 공사인 터라 애초부터 중기의 사용이 불가능했다. 어렵게 도로를 개설한 산비탈 아래까지는 트럭이며 리어카, 우마차 따위를 동원할 수 있었지만 그 위로는 경사가 심해 접근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

결국 의논 끝에 산중턱 위의 땅 깎기와 석축, 흙 쌓기는 모두 사람의 손으로 해나가기로 결정되었다. 공사 관계자의 독려 속에 현장에 투입된 남자들은 모두 허리에 밧줄을 맨 채 비탈면에서 암벽등반을 하는 듯한 자세로 삽질과 곡괭이질을 하며 어렵사리 작업을 진척시켜나갔다. 한편으로 제방석축을 쌓을 돌 역시 일일이 남자들이 지게로 져 날라야 했다. 아울러 부녀자들은 함지에 담긴 흙을 머리에 이고 높은 산 정상부까지 나르는 힘든 노동이 매일처럼 이어졌다.

이처럼 험난한 작업과정을 거치면서 산의 등고선을 따라 수십 개의 층층대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산복공사 시 잔디 이식공법인 소위 ‘줄떼공’을 시공하고, 이식한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질 좋은 객토를 넣는 작업이 벌어졌다. 또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수종인 사방오리나무, 리기다소나무, 상수리나무, 해송 등을 선별하여 식목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계단의 경사면이나 언저리에는 쉽게 뿌리를 내리는 싸리나 아카시아 풀씨를 파종했다. 아울러 조금만 비가 내려도 토사가 생겨나는 계곡은 골짝을 따라 길게 석축을 쌓음과 동시에, 수분 유실과 토사 방지를 위한 여러 대책이 강구되었다.

불굴의 의지만 있으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고 했던가. 전체 면적 4538㏊에 이르는 산지에 총 38억2천800만원의 예산, 그리고 연인원 360만명이 동원된 5년에 걸친 사방사업은 마침내 77년 그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힘든 여정을 마다 않고 직접 현장방문을 해가며 관심과 독려를 아끼지 않은 박 대통령과 경북도, 산림청을 비롯한 관계기관의 지원과 협조, 영일주민들과 현장 일꾼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을 위대한 사업이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국토에 대한 사랑과 산림녹화에 대한 남다른 의지나 관심이 없었다면 영일지구는 아직도 불모의 황폐한 모습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영일사방사업은 세계 사방공사와 산림녹화사업에 경이적이고 획기적인 모범을 보여준 사례가 됐다. 무엇보다 식물자원의 무분별한 소비로 날로 황폐해져가는 지구를 살릴 새로운 대안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장래 우리의 후손에게 남겨줄 중요한 유산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글=박희섭<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기획: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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