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4] 스토리의 寶庫 영일만을 가다<11> 죽도시장

  •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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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14   |  발행일 2014-10-14 제13면   |  수정 2021-06-15 16:48
나룻배 타고 오가던 그곳, 포항경제를 펄떡이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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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의 해산물은 신선함과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취급하는 해산물의 종류도 다양해 동해안뿐만 아니라 서·남해안에서 나는 모든 해산물이 거래된다.

 

#1.동해안 사람 풍속도를 엿볼 수 있는 곳

만일 당신이 세상을 떠도는 여행자라면 둘러보아야 할 장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세상에 남긴 문화예술이나 유적·역사적 건축물이 그 하나이고, 둘째는 오랜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비경과 다양하고 낯선 풍광이다. 그리고 셋째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온갖 생산소비품의 유통지인 시장이 될 것이다.

앞선 두 가지가 고답적이고 정태적인 관광명소라면 가장 치열하고 직접적인 삶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는 명소는 전통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른바 전통시장에는 자연이나 역사에서는 접할 수 없는 당대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생활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 푼이라도 값을 깎으려는 손님과 셈이 빤한 상인의 흥정이 마치 한 토막 즉흥연극처럼 이루어지고, 먹을 것과 입을 것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농수산물과 소비재가 좌판을 그득 메운 채 인연 맞는 손님을 기다리는, 어쩌면 매일같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풍속도를 엿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주변 하천 복개전에는 갈대 우거진 섬
광복 후 귀국인 좌판 벌이며 첫 형성
6·25때 완전 소실됐다 피란민이 재건
산업화 인력 유입으로 절정기 맞아

포스코와 더불어 포항경제 쌍두마차
새 생명의 물길 ‘포항운하’ 개통으로
크루즈 연계 ‘문화관광 시장’ 변신 중


특히 시장 중에서 삶의 활기를 가장 역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역시 바다와 인접한 수산시장일 것이다.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기원(起源)했다는 말에서 보듯 어느 곳보다 활달한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게 수산시장인 까닭이다.

이러한 수산시장 가운데 동해안 최대 규모의 시장을 꼽으라면 단연 포항의 죽도시장을 들 수 있다. 포항시 북구 죽도동에 있는 죽도시장의 정확한 명칭은 ‘포항죽도시장 활성화구역’으로 죽도시장, 죽도농산물시장, 죽도어시장 등이 연합하여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대지 면적만도 13만2천㎡에 건물면적 6만5천㎡ 규모의 시장으로 수산물, 건어물, 활어회, 농축산물, 채소 및 과일, 가구 및 잡화를 취급하는 2천500여개 점포에 4천500여명의 상인이 종사하는, 소위 ‘없는 것이 없는’ 방대한 규모의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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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의 어물전 상인이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죽도시장 상인들은 사람 사는 향취가 묻어나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지역경제를 이끌었던 포항의 상징 

 

이 죽도시장은 요즘은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포항 명물이자 겨울 별미인 ‘과메기’와 시원한 맛이 일품인 ‘포항물회’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며, 고래고기와 ‘무색·무미·무취’의 3무(無)라는 삶은 개복치의 진기한 맛을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 바다와 접한 곳이니만치 모든 해산물의 신선도가 뛰어난 건 물론 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취급하는 해산물의 종류도 다양해서 동해안뿐만 아니라 서해와 남해안에서 나는 모든 해산물이 거래된다.

농산물 역시 풍부하다. 새벽 3시면 농산물 도매시장이 열리고, 지역소매상에게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공급된다. 그뿐 아니다. 시장 주변에는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수제비골목’과 닭에 관한 모든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속칭 ‘닭골목’, 곰탕과 돼지국밥, 보신탕 등의 국밥집이 10여개 늘어선 ‘해장국골목’, 담백한 맛이 일품인 문어를 가마솥에 삶아내어 판매하는 가게가 늘어선 ‘문어골목’ 등도 죽도시장의 명물로 시장 방문객에겐 빼놓을 수 없는 순방코스가 되고 있다.

하지만 죽도시장이 처음부터 이처럼 크고 번화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시초가 있듯 죽도시장도 처음엔 조그마한 난전에 불과했다. 죽도시장이 들어선 자리 역시 죽도(竹島)란 이름이 말해주듯 늪지에 갈대가 우거진 작은 섬이었다. 그러다가 후일에 칠성천과 양학천 등의 주변 하천이 복개되면서 육지로 편입된 것이다.

광복 후 일본에서 귀국하여 갈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죽도와 칠성천 주변을 따라 천막을 치고 좌판과 노점을 시작하면서 점차 시장의 형태를 갖춰갔다. 이후로 농수산물의 판매가 증가하고 수백명의 도소매상인이 모여들면서 시장은 점차 번성기에 접어들었지만 아쉽게도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으로 인해 죽도시장은 완전히 소실되고 말았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장은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피란민이 하나둘 생계를 위해 장터에 모여들면서 죽도시장은 다시금 살아나기 시작했다. 비록 당시엔 도로 및 운송수단이 열악했고, 칠성천이 복개되기 전이라 중앙동, 남빈동에서 시장에 오려면 나룻배를 타야 했으며 송도, 해도에서 올 적에도 나룻배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뒤따랐지만 채소와 과일 등 포항과 인접한 8개 군에서 생산된 물품이 모여들면서 시장은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여기에 죽도동 유지와 상인들이 부흥회를 조직하여 시장 재건에 나서면서 시장은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어 갔다.

다음 해인 1955년에는 도소매상이 500여개로 급증하고, 노점도 1천여개 증가하면서 명실상부한 경북 굴지의 상설시장으로 거듭 태어났다.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당시의 여천장과 포항장의 명성을 되살리는, 경북과 포항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특히 포항과 가까운 영덕과 강구, 울진, 구룡포 등 동해안 인근지역을 아우르는 도매시장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한편으론 전국에서 손꼽히는 어시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여기에 1970년 초에 포항제철(포스코)이 완공되고, 산업화 인력의 유입에 따라 포항지역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죽도시장은 절정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 포항제철과 형산강을 사이에 둔 죽도시장은 사람들에게 포항 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로까지 불리게 되었다.

이즈음 죽도시장은 또 한 번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게 된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시장인 까닭에 구획정리도 안 된 비좁은 골목에다 수도며 위생시설 등이 형편없었다. 게다가 도시인구의 증가에 따라 나날이 늘어나는 새로운 업종과 상인, 몰려드는 손님을 감당해내기엔 시장으로서의 터전이 비좁았던 것이다. 곧 황대봉씨(대아가족 명예회장)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주도하는 구획정리사업이 벌어졌고, 당시 채소밭이던 8토지(현 개풍약국∼오거리)를 시장 부지로 편입시키면서 죽도시장의 규모를 확장하는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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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적한 쇼핑환경을 위해 현대식 아케이드로 새 단장한 죽도시장은 포항운하관과 크루즈관광이 연계된 문화관광 시장으로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다.
 

#3.죽도시장,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거듭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의 모든 전통시장이 그렇듯 죽도시장 역시 침체의 늪에 빠져들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편리성과 청결함을 앞세운 대형백화점이나 기업형 마트, 편의점 등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전통시장의 존립을 위협해왔던 것이다. 게다가 교통 혼잡과 낙후된 시설, 지나친 호객행위 등으로 소비자들도 죽도시장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넘어서는 게 바로 역사와 전통의 힘인 것이다. 또 위기는 때때로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이를 계기로 죽도시장은 새로운 시장의 면모를 선보이기 위해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장을 활성화시킬 방안을 끈질기게 모색했다.

먼저 예전의 번잡하고 구차하던 모습을 말끔히 정리하고 단장하는 한편 전통시장의 특징과 우수성을 최대한 살리는 일에 앞장섰다. 손님들에게 쾌적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시장거리를 현대식 아케이드 구조물로 개조하고 주차장을 넓히고 만남의 광장과 해상무대를 마련했다. 또한 전자상거래를 위해 인터넷 쇼핑몰 구축에도 착수했다. 아울러 상거래의 기본인 신뢰와 질서, 규범을 지키자는 친절교육도 실시되었다. 숙원사업이었던 동빈내항의 악취도 포항운하가 개통되면서 말끔히 사라지게 되었다. 외려 포항운하관과 크루즈관광을 겸하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겸비한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거듭날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이제 앞으로 죽도시장은 경북 동해안의 문화와 관광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물질적 소비와 판매만 넘쳐나는 단순한 유통시장 구조에서 벗어나 옛날 우리 선조가 그러했듯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밀린 회포를 풀고, 식어버린 가슴을 따스한 정으로 데우고, 먹을거리와 즐길 거리가 흔전만전 넘쳐나는, 경상도 속담에 ‘남이 장에 간다 하니 똥장군 지고 따라간다’는 말처럼 장이라면 무조건 따라 가보고 싶은 그런 흥겹고 신기하며 맛나고 재미나며 풍성한, ‘사람 사는 향취가 묻어나는’ 그런 전통시장의 맥을 이어갈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류의 새롭고 독특한 ‘시장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그런 경이로운 장터가 되리라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글=박희섭<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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