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대구 중구 삼덕동 한정식 ‘꽃자리’박연주 오너 셰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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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9   |  발행일 2015-05-29 제41면   |  수정 2015-05-29
철저한 제철 식재료에 단순한 양념과 레시피…‘울림이 있는 힐링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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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의 음식은 결코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약선음식적 제철 식재료를 중심으로 요리하기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다. 돼지 수육도 더 좋은 맛을 위해 제철 나물 5종류를 매칭시켰다(사진 맨 위). 수십 가지 식재료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명품죽은 3번 대수술 회복 과정에 그녀가 체득한 요리술의 결정판으로 평가받는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꽃자리’오너셰프 박연주씨(58)는 작고한 구상 시인의 명시 꽃자리의 한 구절을 별처럼 품고 산다. 식당 상호도 시 제목에서 따왔다. ‘꽃자리’는 대구시 중구 삼덕동3가 동덕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제철 힐링푸드 전문 한정식집이다. 그동안 기자가 여러 식단을 경험했지만 꽃자리만큼 제철 식재료에 충실하고 단순한 양념과 레시피를 갖고 거문고 농현 못지않은 울림을 주는 곳도 드물었다.

박연주씨는 대구대교구 여성교육관에서 무려 8년간 자원봉사로 식사를 책임졌다. 원칙이 있었다. 일단 제철 식재료 중심이고 매일 칠성·팔달·번개시장 등으로 직접 장을 보러 나간다는 것이다. 좋은 식재료를 위해 대구 인근 농가는 물론 제철식재료 특산지를 유람했다. 그 과정에 발효음식에 푹 빠진다. 교육생의 건강을 위해 된장과 간장은 직접 담갔다. 여름철 주방은 50℃에 육박했다. 조금만 건드리면 쓰러질 지경이었다. 음식 문제로 신부와 말다툼도 벌였다. 남의 건강을 챙기려고 악바리처럼 일을 했는데 되레 자신의 건강은 극도로 나빠졌다. 갓 결혼해 집과 교구의 일을 병행하던 중이었다.

◆ 내 요리의 스승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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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생활 중 얻은 건강식단 지식에
요리솜씨 좋아 힐링푸드 전문가 변신
소금·탄수화물 농도 낮은 음식 추구

식단의 전채로 오방색 샐러드를 내고
마무리는 송이·호박·들깨 든 탕과 명품죽으로


2002년 임파선이 망가져 첫수술을 받는다. 2005년 난소암 수술을 받고 마지막엔 뇌막괴사증 때문에 반신불수가 된다. 5년6개월간 무려 세 번의 대수술을 받는다. 이 무슨 청천벽력. 건강을 잃자 자원봉사도 허무했다. 대구의 삶을 정리했다. 치료를 위해 상경한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온갖 항암·힐링·자연치유·대증요법 등에 관련된 전문서적을 탐독한다. 당연히 평소 식단은 포기해야 했다. 예전에는 혀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탐식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었다. 몸이 좋아하는 식단을 찾아가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박연주 음식라인’이 형성된다.

소금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면역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선 색깔별 채소와 과일을 먹어야 했다. 그다음에는 일반 곡물과 식물, 가축과 가금류, 어패류, 과일 등을 어떤 비율로 먹어야 하는지 연구해나갔다. 양념과 식재료의 궁합, 식재료간 궁합을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장, 간, 암, 대장, 당뇨 등 암 종류별 표준 식단도 짰다. 그런 음식 덕분에 예전의 건강을 되찾게 된다.

회복 과정에 축적된 건강식단에 대한 지식이 결국 그녀를 치유음식·계절음식 전문가로 만들어버렸다. 대교구 식사 경험 때문에 자연스럽게 요리전문가가 돼 있었다. 그 요리솜씨에 힐링푸드적 안목까지 가미됐다. 환자들부터 그녀의 자연식단에 관심을 가진다. 결국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연주자연식’이란 업장을 연다.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에겐 건강을 지키는 식단, 환자에겐 항암 효과가 있는 식단, 나은 사람을 위해서는 회복하는 식단을 개발했다. 또한 24절기별 달라지는 식재료를 갖고 ‘절기밥상’도 소개했다.

보통 1개월 단위로 식단을 짰는데 요리법도 매일 다르다. 오늘 참기름을 사용했다면 내일은 들기름을 사용하는 식이다. 투병 중인 재벌가 요인들이 은밀하게 자주 그녀를 노크했다.

대다수 암에 걸리면 제대로 정신도 못 차리고 몸을 만들지 못한 채 막바로 항암치료에 돌입한다. 우린 아직도 암에 걸리면 도대체 식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겨를이 없다. 그냥 약에만 의존한다. 식이요법은 나중에 생각한다.

회복 환자를 위해 일반죽에서 미음까지 다양한 죽도 개발한다. 그 과정에 수십가지 재료가 엄선된 명장죽이 탄생한다. 연주자연식의 효자상품이었다. 죽을 만들 때 쌀과 찹쌀의 비율도 죽 종류별로 다르다. 일반죽은 1대 1, 전복죽은 6대 4, 채소죽은 7대 3이다.

그녀는 골고루와 아무거나의 차이를 구별해 설명한다.

“예전 어머니가 음식투정 하지 말고 아무거나 잘 먹으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거나가 아니라 골고루 잘 먹으란 뜻이겠죠. 현재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식단은 제대로 된 식단보다는 맛있는 식단을 의미하죠. 골고루란 평소 먹지 않았던 식재료를 섭취해보란 말이죠. 요가 등을 통해 평소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을 발달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죠.”

◆ 대구로 내려와 꽃자리 한정식 시대 열다

몸이 회복돼 대구로 내려온다.

서울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파티마병원 근처에 연주자연식을 연다. 죽이는 음식과 살리는 음식, 암환자 표준식단 등의 주제로 강의를 하러 많이 다녔다.

“지역의 의사는 참 보수적이죠. 그들은 그들나름대로 환자식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제 시각에서 보면 안 맞는 게 많은 것 같더군요. 의사도 잘 치료하려면 치료받는 환자가 제대로 된 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몸만들기 식이요법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한 것 같아 제가 많이 개입했죠.”

수성구 두산동에 ‘청기와’란 숯불갈빗집을 연다. 시래기찌개와 열무김치로 대박이 났다.

육수를 낼 때도 그녀는 다른 식재료를 섞지 않는다. 양파육수에는 양파, 멸치육수에는 멸치, 무육수에는 무만 넣는다.

“초보자일수록 특별하고 실험적인 맛을 내기 위해 이상한 식재료를 마구 섞죠.”

5년 뒤 두산오거리 근처에서 암소한우 숯불갈빗집 ‘그린힐’을 연다. 그녀는 직접 소를 엄선해 도축한 뒤 발골도를 잡고 손수 고기를 발라냈다.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 아이들이 유학을 하고 있는 호주로 가서 1년 넘게 육가공과 푸드코디네이션을 배운다. 암처럼 치열하게 살았다.

◆ 꽃자리 한상차림

그녀의 요리 노하우의 결정판인 꽃자리.

죽음 직전에까지 가본 그녀이기에 더욱 신명을 쏟는 밥상을 낸다. 그래서 일반 손님은 안 받고 예약한 사람 위주로 식당을 운영한다.

일단 전채로 오방색 샐러드를 낸다. 과일과 채소는 불기운을 조금 머금으면 소화력이 증진된다. 양배추, 브로콜리, 파프리카, 토마토 순으로 프라이팬에 넣으며 간접직화방식으로 볶아준다. 30초 내로 끝낸다.

제철나물이 줄줄이 나온다. 일단 홍어와 비슷한 맛을 내는, 90일간 냉동숙성시킨 간잽이를 낸다. 그 곁에 특수작물인 삼채, 죽순, 고구마줄기를 얹는다. 데치는 온도도 각기 다르다. 삼채는 85℃ 정도, 고구마줄기는 100℃ 이상이어야 제 색깔이 난다. 죽순은 소금·식초를 조금 넣고 삶아서 1시간 동안 독성을 제거한다.

참문어가 소화 잘 되게 비트·양배추·파프리카 채를 곁들인다. 돼지 아롱사태 수육 곁에 두릅, 방풍나물, 어느리, 가죽나무, 쑥갓 등을 놓는다. 나물은 참·들기름만으로 무쳐 낸다.

명이와 두릅 장아찌도 새콤달콤하지 않다. 설탕 대신 문경의 산촌에서 빚은 백야초효소 등을 이용해 일주일간 피클처럼 만든다. 모둠버섯도 남다르다. 능이·석이버섯은 향이 다른 것보다 더 진하다. 이유가 있었다. 수분관리를 잘한 덕이다. 가을철에 대량 구입해 냉동고에 저장하는데 이때 수분을 머금도록 한번 데친 뒤 보관한다. 그래야 나중에 사용해도 향이 죽지 않고 피어난다. 효소를 베이스로 한 가지불고기도 그녀가 여러 가지 메뉴를 연구하다가 마지막에 선택한 버전이다. 국물맛이 참 감미롭다.

그녀는 요리하면서 항상 ‘소금과 탄수화물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또한 ‘음식은 과학과 식품예술의 조화’라고 믿는다. 대장금의 맘으로 요리하고 피카소의 맘으로 식단을 꾸미고 싶단다.

후식 때 나오는 겉절이 배추도 극소량의 달인 멸치육수와 액젓과 생강향 때문에 샐러드와 김치를 동시에 만끽하는 것 같다. 김치를 먹었는데 혀가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송이와 호박, 들깨가 들어간 탕, 그리고 명품죽으로 식사를 끝낸다. 판박이 된장찌개에 밥은 피하고 싶단다. ‘염도와 탄수화물 농도를 올린다’는 염려 때문이다.

예약 필수. 대구시 중구 삼덕동 230-3. (053)252-6263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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