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5] 김천 고대국가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10> 고소산성

  • 임훈
  • |
  • 입력 2015-07-08   |  발행일 2015-07-08 제13면   |  수정 2021-06-16 17:59
구전으로 전해오던 지석묘 산재…혹시 예가 小國 중의 小國 문무국의 城인가
20150708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의 백운산 줄기에는 감문국 산성으로 알려진 고소산성이 위치해 있다. 오랜 세월 방치돼 상당부분이 무너졌지만 여전히 당당한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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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감문면은 김천에서 가장 많은 지석묘(고인돌)가 산재해 있어 특정 세력이 존재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고소산성 입구에 위치한 지석묘의 모습.

김천 문무리∼상주 이화리 고갯길은
삼한시대 감문국-사벌국 국경 추정
교통요충지로 감시·대피에 최적지

험한 계곡 따라 오른 백운산 중턱엔
골짜기 형태 살려 축조된 돌 성벽이…
부채꼴 모양으로 敵 감시·공격 유리
 

 

김천의 고대 읍락국가(邑落國家) 감문국(甘文國)은 산성(山城)을 국가방어의 거점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천시 개령·감문면 일원의 속문·고소·감문 산성은 감문국의 대표적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감문국 북쪽에 위치한 공통점이 있다. 이들 산성에서는 감문국의 거의 모든 영역을 조망할 수 있어 군사적 활용 가치가 높다.

학계는 해당 산성을 삼국시대나 그 이후인 6세기 전후의 것으로 간주한다. 소국의 인력으로 산성축조와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반면 향토사학계는 앞서 언급된 산성들이 감문국의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개령평야의 수확물을 노리는 부족이나 세력확장을 노리는 외부세력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산성을 축조했다는 주장이다.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 10편에서는 김천시 감문면의 대표적 산성유적인 고소산성을 탐방했다. 고소산성 인근의 지석묘(고인돌) 유적과 함께 김천의 또다른 소국으로 알려진 문무국(文武國)의 흔적도 살폈다.

 

# 옛 산성과 소국의 흔적을 더듬다

고소산성은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일원에 위치해 있다. 백운산 자락 능선, 해발 330m가량의 비교적 낮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백운산 정상부(해발 618m)의 속문산성보다는 낮은 곳에 있지만, 감문·어모면 일대를 관찰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또한 감천의 지류인 감문천과 남쪽에 위치한 감문산성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전략적 거점이다.

고소산성은 속문산성과 상호 보완관계였다. 속문산성이 위치한 백운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고소산성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속문산성에서는 고소산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무성한 풀숲에 가려 볼 수 없지만 산성이 축조됐을 당시에는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학계 또한 고소산성을 인근 백운산에 위치한 속문산성의 보조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5년 김천시와 경북대가 추진한 ‘감문국 유적정비를 위한 정밀 지표조사’에 따르면 산성에서 출토된 기와의 연대를 확인한 결과 두 산성의 축조시기는 6세기 전후다. 또한 고소산성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백운산에 위치해, 주변 산성을 관할하는 본부 역할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적에 패한 감문국의 군대가 백운산 능선을 따라 이동한다면 손쉽게 속문산성으로 후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소산성이 또다른 소국의 영역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김천에서는 고소산성 주변이 문무국의 영역이었다는 구전이 전해내려오기 때문이다. 감문국보다 더 작은 소국이 감문면 문무리 일원에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천시 감문면은 김천에서 가장 많은 지석묘가 산재해 있어 특정 세력이 존재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문무국이 존재했다는 고소산성 인근에도 수많은 지석묘가 있다. 산 전체에 옛 사람들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다.

특히 고소산성 입구에서는 눈에 확연히 띌 정도의 큰 고인돌을 볼 수 있다. 커다란 바위를 옮겨 고인돌을 만들었을 정도로 큰 세력이 문무리 주변에 살았던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편 문무국의 중심 도읍지는 여산(余山)으로 전해진다. 여모·여무·여산골로 불렸고 현재는 상여·하여 마을로 나뉘어 있다. 현재 김천에는 문무국 외에도 어모·배산국 등이 존재했다는 구전이 전해내려온다. 안타깝게도 옛 문헌에는 문무국 등의 김천지역 소국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반면, 구전이지만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 향토사학계 의견이다.



# 고소산성을 가다

고소산성으로 향하는 길은 매우 험하다. 고소산성이 위치한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산길을 찾는 주민이 급감하면서 산성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산성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 무성하게 우거진 수풀이 산성을 짙은 녹음 아래 숨겼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이 아니면 여간해서 산성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문무리 서북편의 산 능선을 따라 산성을 찾아나섰지만, 애초 우려대로 산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곳곳에 돌을 쌓아 만든 축대를 볼 수 있었지만, 성벽의 흔적으로 보기에는 그 규모가 작고 너무 초라했다.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었고, 결국 산성 찾기를 포기한 채 하산했다.

산을 내려오자마자 인근 지리에 밝은 문무리 주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을회관에서 터줏대감 노인을 수소문했지만, 정작 산성에 대해 잘 아는 이는 드물었다. 다행히 산성의 내력을 아는 한 주민의 도움을 얻어 정확한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산성 아래 지석묘 유적에서 산을 오르면 산성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었다.

몇몇 주민 또한 산성의 존재해 대해 알고 있었다. 문무리의 한 주민은 “돌 모양이 모두 다른데 어찌나 촘촘히 박아놨는지, 성이 매우 튼튼하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과의 만남 후 다시 산을 올랐다. 사람의 왕래가 없어서인지 산성으로 향하는 길은 이번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가파른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자 곳곳에서 돌을 쌓아 만든 석축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로 인해 무너진 산성의 돌들을 후대의 주민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석축 위에는 화전민이 집을 짓고 살았을 법한 집터도 남아 있다.

계곡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능선 부근에 위치한 고소산성의 동편 성벽에 도착할 수 있다. 성벽의 가운데는 물의 흐름 때문인지 무너져 있다.

성벽의 위용은 여전하다. 일부 성벽의 높이는 여전히 5m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형태도 온전하다. 부채꼴 모양으로 계곡을 둘러싼 성벽의 형태는 적에 대한 감시는 물론 공격에도 유리해 보인다.

‘감문국 유적정비를 위한 정밀지표조사’에 따르면 고소산성의 남아있는 성벽 대부분은 돌로 만들어졌다. 토성인 감문산성과 토성·석성이 혼재된 속문산성과는 달리 대부분 돌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골짜기 형태를 그대로 살려 축조한 점도 독특하다. 물론 남쪽 성벽의 경우 자연경사면의 흙을 파내 조성해 돌로 만든 동편 성벽과는 구별된다.

고소산성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고소산성은 교통로에 대한 감시기능과 유사시 군사와 백성이 대피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산 속에 방치돼 있지만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에서 상주시 공성면 이화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위치해 있다. 삼한시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감문국과 사벌국의 국경인 셈이다.

한편 오랜 세월 탓에 산성유적 상당수가 훼손됐지만 전문가들은 산성의 복원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의 지역 관광콘텐츠 개발 붐으로 자칫 잘못된 산성유적 복원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남지역 산성을 연구한 조효식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무리하게 산성을 정비·복원하는 것은 반대”라면서 “원형을 간직하는 복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글=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도움말= 조효식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 참고문헌= ‘유적으로 고찰한 감문국’‘(진·변한사 연구) 진·변한의 성립과 전개’‘계명사학 제23집’‘국역 김천역사지리서’‘디지털김천문화대전’‘대구·경북 신석기 문화 그 시작과 끝’‘신라문화 제38집 별쇄본. 삼국사기 열전에 보이는 4~5세기 신라인의 활약상’‘김천시사’‘감문국 유적정비를 위한 정밀지표조사’
▨ 자문단 △문재원 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이석호 김천향토사연구회 회장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권태을 경북대 명예교수
공동기획 :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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