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5] 김천 고대국가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20> 유물로 본 감문국 ②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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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16   |  발행일 2015-09-16 제24면   |  수정 2021-06-17 14:56
5세기 뚜껑굽다리접시의 화염무늬…가야양식과 감문국 고유특성 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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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개령면 양천리에서 출토된 5세기 제작 뚜껑굽다리접시. 좌측 굽다리접시(높이 25㎝)의 기둥에 난 화염무늬 창은 가야식 토기와 김천 감문국 토기의 특징이다. 아래 사진은 김천시 감문면 삼성리에서 출토된 6세기 제작 뚜껑굽다리접시(높이 17㎝)로 신라화된 경향을 보인다. 기둥의 화염무늬 창은 사라졌고, 접시의 모양도 1세기 전의 것과는 다르다. <‘영남 문화의 첫 관문, 김천’ 특별전 도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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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읍락국가(邑落國家) 감문국(甘文國)은 3~4세기경 신라에 편입된 이후에도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했다. 이는 5세기까지 신라의 중앙집권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감문국 등 옛 읍락국가의 정체성은 한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실제로 토기 등 경상도 지역 신라 유물에는 각 읍락국가의 독자성이 잘 남아있다.

하지만 6세기 이후 경주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면서 경상도 각 지역의 유물도 신라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감문국의 유물 또한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지 않았다.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 20편은 감문국 출토 유물에 관한 둘째 이야기다. 특히 신라 편입 이후 감문국 토기의 변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

신라 병합후에도 독자성 지키다
6세기 중앙집권·경주영향 확대로
토기 기둥과 접시모양 확 달라져
화염무늬 구멍 사라지며 신라化

개령면 양천리 가는고리귀걸이
고령 대가야 지산동 유물과 흡사
옛 김천의 정치·문화 면모 보여줘

 

 

◆ 토기에 깃든 감문국의 문화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은 국력의 크기와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 강대국은 군사적 패권은 물론 경제·문화적 측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있다. 수백여년 전 대항해시대 당시 서양 나라들 역시 식민지에 대한 군사·경제적 진출에 앞서 종교·문화적 측면에서 해당 지역을 장악한 경우가 많았다.

삼국시대 신라도 마찬가지다. 삼한시대 진한지역을 바탕으로 일어선 신라는 국력을 확대해 나가면서 주변 읍락국가들을 복속시켰고, 문화적 측면에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 때문에 신라 편입 전후 각 읍락국가의 고유 문화는 신라식으로 변화했다.

김천지역의 읍락국가 감문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천 출토 감문국 유물의 상당수는 독자성을 지니고 있지만, 후대로 갈수록 신라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05년 10월,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린 ‘영남 문화의 첫 관문, 김천’ 특별전은 감문국 유물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김천시 감문·개령면에서 출토된 5~6세기 토기 상당수가 대중에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접시, 귀걸이 등의 유물이 전시됐는데, 제기(祭器)나 무덤에 넣을 부장품으로 생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전시된 감문국 유물 상당수는 감문국의 중심지인 김천시 개령·감문면 일원에서 출토됐다. 개령·감문면 일원에는 5~6세기경 조성된 고분군이 산재해 있는데, 당시의 토기들이 발견되고 있다. 물론 출토 토기 상당수는 감문국 멸망 이후의 것이지만, 해당 유물에는 멸망 이후 감문국의 신라 편입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감문국과 신라, 가야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감문국이 향유했던 독자적 문화를 엿보기에도 손색없다는 평가다.

실제로 상당수 감문국 토기가 제작된 5세기 신라는 중앙집권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읍락국가가 있던 지역의 유물에는 특유의 지역색이 남아있을 수 있었다. 비록 신라에 의해 나라의 운명을 다했지만 옛 소국(小國)의 독자적 문화가 토기를 매개체로 명맥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감문국의 토기도 신라의 영향을 받았지만, 특유의 지역색을 담아낼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신라 토기와 비슷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학계는 김천출토 감문국 토기를 ‘가야양식’이나 ‘재지(在地)양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김천지역이 낙동강 유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삼국시대 토기 양식은 주로 ‘신라양식’과 ‘가야양식’으로 나뉘는데 낙동강을 경계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다. 낙동강 서편의 김천에서는 신라와 가야 양식이 섞인 형태의 토기가 출토됐다. 경주의 것과 비슷하지만 김천지역만의 특징이 오롯이 담겨있다.

이재환 경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감문국이 가야권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출토 유물의 경우 가야와의 유사성이 있다. 또한 김천지역만의 특색도 분명히 있는데, 이는 옛 김천지역의 정치·문화적 면모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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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개령면 양천리 출토 가는고리귀걸이. 감문국 귀걸이는 신라보다 가야의 것과 형태가 비슷하다. ‘영남 문화의 첫 관문, 김천’ 특별전 도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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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대가야 지산동 고분군 출토 귀걸이의 모습. 감문국 귀걸이와 그 모습이 흡사하다. <경북대박물관 제공>
◆ 신라의 성장으로 사라진 지역색

대표적인 5세기경 감문국 토기로는 김천시 개령면 양천리 출토 뚜껑굽다리접시를 꼽을 수 있다. 접시의 모양이나 기둥의 구멍이 신라의 것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해당 접시의 기둥에 난 구멍은 ‘화염무늬’인데, 감문국 토기의 특성으로 꼽힌다. 물론 화염무늬 구멍은 경남 함안 출토 가야 토기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대가야 유적인 고령 지산동 고분 출토 토기도 감문국 토기와 비슷한 것이 많다. 기본적으로 곡선이 완만한 데다 접시 기둥에 난 창의 모양도 김천의 것과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감문국 토기는 가야양식과 신라양식의 조합에서 탄생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야적 전통과 신라의 영향력이 감문국 토기의 모양에 영향을 미쳤다.

감문국의 토기는 옛 김천지역이 가야와 신라문화가 교체하는 장소였음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신라 병합 이후에도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이 밖에도 개령면 양천리 출토 가는고리귀걸이의 경우 신라보다는 대가야의 것과 가깝다.

반면 6세기 감문국 토기의 경우 5세기의 것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야양식이 섞인 감문국 토기 고유의 특성이 사라지고, 급격히 신라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대표적인 6세기 감문국 토기로는 감문면 삼성리 출토 뚜껑굽다리접시를 꼽을 수 있다. 접시의 모양이나 기둥의 모양이 신라의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감문국 출토 유물의 변화를 바탕으로 감문국 멸망 이후의 신라의 중앙집권화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6세기 들어 중앙집권을 완성한 신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각 지역의 항토색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6세기의 신라는 경주를 제외한 전국을 4개 지방으로 나누고, 각 지방마다 군주(軍主)를 파견해 통치권을 행사했다. 옛 감문국 지역에서 생산되던 토기 또한 정치체제의 변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신라화된 것이다.

경상도 각 지역의 토기가 지역색을 잃은 것은 감문국의 사례뿐만이 아니다. 경북지역에서도 여러 사례가 발견되는데, 의성 조문국 출토 유물의 경우에도 감문국의 것과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신라의 중앙집권 전까지 감문국이 있던 김천지역과 조문국이 있던 의성지역 토기는 다른 모습이었다. 같은 신라였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감문국 출토 유물을 통해 감문국과 신라의 역사를 유추해 볼 수 있었지만 아쉬운 점은 있다. 감문국 출토 유물이 태부족인 탓에 김천지역 읍락국가의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학계의 지적이다. 이재환 경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그나마 확보한 감문국 유물마저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감문국 유적의 발굴·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공동 기획:김천시


▨ 도움말= 이재환 경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 참고문헌= ‘유적으로 고찰한 감문국’ ‘(진·변한사 연구) 진·변한의 성립과 전개’ ‘계명사학 제23집’ ‘국역 김천역사지리서’ ‘디지털김천문화대전’ ‘대구·경북 신석기 문화 그 시작과 끝’ ‘신라문화 제38집 별쇄본. 삼국사기 열전에 보이는 4~5세기 신라인의 활약상’ ‘김천시사’ ‘감문국 유적정비를 위한 정밀지표조사’‘대구·경북 문화재 약탈 스토리(영남일보)’

▨ 자문단 △문재원 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이석호 김천향토사연구회 회장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 △노중국 계명대 사학과 명예교수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권태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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