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외식상권 이야기 - (4) 중구 대봉도서관 앞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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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30   |  발행일 2015-10-30 제41면   |  수정 2015-10-30
2년 사이 음식점 폭발적 증가…젊은층 트렌드 푸드 거리 ‘대구의 경리단길(서울 용산구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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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가 되면 비로소 불야성을 향해 눈을 뜨는 대구 중구 대봉동 봉리단길. 2년새 ‘상전벽해’란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상권이 비약성장했다. 다른 골목과 달리 고기류부터 크래프트맥주, 만두 전문점까지 다양한 메뉴가 입점해 있다.

“어, 어, 어! 여 미친 거 아이가!” 2년새 많은 음식점이 들어선 대봉도서관 앞 길을 지나던 한 행인이 탄성을 지른다. 행인의 반응처럼 요즘 대구시 중구 대봉도서관 앞 ‘봉리단길’이 상전벽해의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거리 이름은 두 가지. 봉리단길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젊은이들의 새로운 ‘트렌드 푸드 스트리트’로 각광받는 걸 빗대는 과정에 생겨난다. 또 다른 이름은 ‘대로수길’. 서울 홍대거리의 높은 임차료를 견디지 못해 피해온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새로운 빅상권으로 발돋움한 서울 강남 가로수길을 염두에 두고 ‘대봉동 가로수길’을 대로수길로 작명한 것.

원래 이 거리는 80년대초까지만 해도 경북고와 대구상고의 주무대. 수성학군이 뜨기 전 대구 최강 학군이었다. 하지만 1984년 9월 대구상고가 상원고로 교명을 바꿔 달서구 상인동, 이듬해 경북고가 수성구 황금동으로 이전한 후 썰렁해진다. 두 학교가 떠난 자리에 청운맨션, 대봉도서관, 2000년대 들어 대구상고 자리에 센트로팰리스가 들어선다. 수성구에 고급 아파트가 생기기 전 대봉동은 대구·대봉·청구·대구맨션 등이 포진하면서 ‘1급 주택지’로 각광받는다. 그 옆에 중식당 ‘만리장성’, 일식당 ‘다미초밥’ 등이 있어 탈 동성로 상권 중 가장 핫한 곳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초 수성구에 대구 첫 고급빌라인 경일원과 녹원맨션 등이 들어서면서 상당수 대봉동 부자는 수성구로 거처를 옮긴다. 특히 수성구 들안길 및 외곽지 상권의 급부상 등으로 인해 대봉동 상권은 갈수록 추락한다. 나중에는 교학사, 희망서적 등 10여개의 대형 서적총판이 밀집하게 돼 일명 ‘책총판거리’로 탈바꿈한다.


1999년쯤 삼겹살 전문점
‘오늘은 특별한날’ 필두로
현재 73개 업소가 영업 중
20∼30대가 주단골층
식당 종류 다양한 것도 특징
낮에는 유동인구 적어
메이저 브랜드 커피숍 없어


◆ 대봉상가번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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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에 맨처음 등장한 현 대봉상가번영회 천종순 회장(왼쪽), 초벌 삼겹살 돌풍을 일으킨 ‘소금쟁이’의 윤재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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탭을 통해 맥주를 받아내고 있는 수제 맥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크래프트 이버 펍 ‘퍼센트’의 태영성 사장.

그런데 이 거리가 최근 2년새 ‘빅뱅 먹자골목’으로 급부상. 급기야 지난 5월 ‘대봉상가번영회’가 발족한다. 현재 61개 회원업소가 있다. 기타 12개 비회원업소가 모여 있다.

이 거리에 맨처음 등장한 업소는 1999년쯤 문을 연 삼겹살 전문점 ‘오늘은 특별한 날’(사장 천종순). 천 사장은 부산의 모 언론사에서 정년을 하고 대구로 와 대봉도서관 바로 옆에서 식당을 오픈했다가 1년전 현재 자리로 옮겼다. 삼겹살집이지만 포스는 일반 백반정식집 못지않다. 공기밥 대신 15분 걸리는 즉석 뚝배기밥을 내 밥 맛있고 반찬 탄탄한 고깃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0년 또 한 명의 무시무시한 내공의 셰프가 이 거리에 나타난다. 현재 남쪽끝에 있는 이자카야 스타일의 퓨전주점인 ‘이노사케’를 오픈한 이태운 오너셰프(37). 그는 지난 10년간 중식당 ‘예궁’ 등 주방에서 빡센 나날을 보내왔다. 수성대 조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구의 백종원’이 되리란 결심을 하고 서울발 프랜차이즈에 도전장을 냈다. 이노사케는 소고기다다키와 생연어사시미가 인기 메뉴로 등극. 오는 11월 지역에선 처음으로 자기 식당 이름을 건 ‘전속주’를 출시한다. 이 셰프는 이노사케의 파워를 이 동네에서 계속 증식시키고 싶었다. 일본식 화로구이 전문점 ‘화친도가’와 전통주를 취급하는 한식주점 스타일의 ‘이가(李家)’를 연이어 론칭한다. 이 거리에 무려 3개의 업장을 직접 관장하고 있다. 리모델링한 한옥이 인상적인 이가는 14종류의 막걸리와 12종류의 청주를 베이스로 아스파라거스등심말이 등을 인기 메뉴로 팔고 있다.

봉리단길 초기 3인방 오너셰프 중 마지막 사장은 초벌구이 삼겹살 전문점 ‘소금쟁이’를 2011년 6월 오픈한 윤재철씨(46). 그는 식당을 대학이라 여기고 젊은시절부터 중구 삼덕동에서 외식의 노하우를 몸소 체험한다. 22세에 이 바닥에 나타나 24세 때 삼덕소방서 뒷길에서 ‘올드 스탠드’란 커피숍 사장이 돼 8년간 운영한다. 지역 와인바의 신지평을 연 ‘WES’를 삼덕동 관음사 앞에 세팅한다. 어느 날 그는 20대 고객 상대의 외식업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30~40대를 겨냥한 삼겹살집을 해보고 싶었다. 그는 ‘20대는 새로운 메뉴와 분위기에는 빨리 적응하면서도 쉽게 식상해 하고 쉽게 단골집을 떠나 새로운 곳을 잘 옮겨간다’는 걸 눈치챈다. 그렇게 해서 찜한 공간이 한적한 주택가 이면도로 같은 봉리단길. 밤이 되면 주차전쟁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허름한 삼겹살집 시대를 접고 ‘카페같은 삼겹살집’을 기획했다. 일단 도자기 화로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가스 대신 참숯을 사용했다. 그는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굽는 것보다 주인이 석쇠에서 초벌해서 내주면 그림도 더 좋고 양질의 고기맛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스테이크용 그릴을 주문제작한다. 초벌시간은 5~7분. 고온에서 짧은 시간 앞뒤만 한번씩 굽고 손님 테이블에서 가위로 잘라 재벌을 해준다. 사실 여기로 오기 전 그는 삼덕동에서 이 버전의 삼겹살집을 1년간 실험적으로 운영했다. 그때 단골이 대봉동으로 따라왔다. 요즘 아내와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현재 삼겹살 취급업소는 이밖에도 노천 드럼통, 정육, 돈꾸앙 등이다.

◆ 스타벅스는 덤비지 않는 먹자타운

아무튼 지금 여기는 20~30대가 주 단골층을 이루지만 50~60대도 눈에 자주 띈다.

이 거리 상권을 분석한 결과, 체인점과 본점의 비율은 30대 70. 자기 건물을 소유한 식당주는 없다. 모두 임차인이다. 초창기에는 평당 지가가 500만원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1천만원을 훨씬 상회했다. 보증금의 경우 5천만~1억원, 월 임차료는 250만~500만원에 달한다. 또한 재개발 아파트도 추진 중이어서 향후 이 거리의 명운도 불투명한 상태. 흥미로운 사실은 이 정도로 거리가 뜨면 스타벅스, 다빈치 등 공룡급 커피브랜드가 뛰어들기 마련인데 여기는 이상하게 그렇지 않다. 대봉도서관 정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카페 C, 모스그린, 205 등 마이너 브랜드 커피숍만 포진해 있다. 이유는 뭘까? 이 거리는 대낮에는 유동인구가 너무 적고 손님도 퇴근 이후에 집중된다. 또한 가게 평수도 다들 협소하다. 타산이 맞지 않아 메이저 브랜드 커피숍이 덤벼들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카페 C’는 요즘 매주 토요일 방영되는 TBC 리얼인터뷰 ‘통’의 인기 리포터이자 일가족 ‘콜롬비아 이민기’로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커피 마니아 이재선씨가 후발주자로 이 거리에 가세하면서 차린 커피숍. 여기는 다양한 브랜드 원두를 믹싱하지 않고 콜롬비아 한 종만 사용해 ‘싱글 오리진 커피숍’으로도 불린다. 이재선신체극 대표이기도 한 그는 최근 남산동에도 ‘남산 Responce’란 2호점도 오픈했다.

이 거리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식당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

지난 3월 기존 문어집에 들어온 ‘가족뜰’은 정기환·김영희·정성윤 가족이 운영하는 만두 전문점이다. 소고기 전문점은 ‘소와 나무’, ‘흑우바비큐’, ‘그릴바 8’, ‘한끼야끼’, 양꼬치는 ‘고양’과 ‘미스타양꼬치’, ‘뭐양’, 곧 출시 중인 부산발 ‘징기스’는 양고기 전문점으로 등장할 태세다.

국수는 서문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대한칼제비’, 막창곱창은 의외로 부진해 도서관 입구 ‘단지막창’만 하나 있다. 족발은 ‘대봉족’, 해산물은 ‘또오징’, ‘대봉머구리’ ‘회소랑’ ‘어부해산물’ 등이 있다.

퓨전주막도 강력한 세를 형성하는데 그중에서도 수제맥주의 맛을 보여주는 맥주전문점도 몇 개가 있다. 2013년 6월에 문을 연 크래프트 비어 펍인 ‘퍼센트(Percent)’. 금융맨에서 펍의 주인으로 변신한 태영성 사장(41)을 만나면 에일 맥주와 라거 맥주의 차이를 알려준다. 또한 수제하우스맥주인 크래프트맥주와 그냥 독일 스타일인 생맥주인 드래스트 맥주의 차이도 배울 수 있다. 현재 카운트 뒤편에 모두 10개의 수도꼭지처럼 생긴 탭이 있는데 가장 향미가 풍부한 건 벨기에 맥주인 ‘대동강’이다. 이 밖에 ‘탭스’ ‘쇼디치’ ‘비턴’ ‘빅토리’ 등에서도 수입산 맥주와 크래프트맥주를 즐길 수 있다. ‘방 드라쿱’은 와인 전문점이다. ‘대구육회’와 ‘바른생활’은 생고기와 육회를 판다. 또한 ‘조가박가’는 철판볶음, ‘만복국수’는 쌀국수와 홍탁삼합, ‘소기찬’은 고기와 해산물을 동시에 낸다. ‘모던술상’ ‘정선생’ ‘전국지’ ‘대화’ 등에서는 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문제는 여기도 주차문제. 이른 저녁부터 주차단속을 하니 임차인들은 죽을 맛이란다. 재개발 과정에 고만고만한 주머니 사정인 임차인들의 권익이 희생되지 않아야 될텐데….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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