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울산 ‘라틴커피’ 노현일 대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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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0   |  발행일 2016-06-10 제42면   |  수정 2016-06-10
“라틴아메리카 커피에 올인…울산공단 곳곳 원두향으로 채워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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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공단에 ‘커피인문학’을 전파하고 있는 노현일 로스터. 그가 슈베르트 악보가 펼쳐진 그랜드피아노 앞에서 갓 추출한 커피를 음미하고 있다.

울산에도 ‘커피문화’가 있을까.

대다수 ‘자동차, 배, 석유는 있어도 커피 문화는 글쎄…’ 하는 반응인 것 같다. 그런데 남구 선암동, 온산공단과 울산시 접경에 자리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커피 전문 ‘라틴커피’의 노현일 대표(59)를 만나면 ‘글쎄’란 단어는 유보해야 될 것 같다.

그는 믹스커피 수준의 커피문화가 점령하고 있는 울산 커피계에 커피 탐험가처럼 등장했다. 상당수 공단의 직원들은 아직 원두커피보다 달달한 다방커피에 익숙한 게 현실. 생활 수준이 다른 도시에 비해 높은 울산이라지만, 커피는 여전히 생활 중심권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는 원두 커피향이 공단 곳곳을 파고드는 울산을 꿈꾼다.

에스프레소에 ‘그라파’(와인증류주)를 섞어 식전 공백에 마실 정도로 그는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광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커피를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라틴아메리카 품종커피 전문 커피숍 ‘라티노’(라틴사람)를 2011년 남구 신정동에서 론칭한다. 지난해 ‘라틴커피’로 상호를 달리해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그는 ‘품종커피’의 선두주자다. 지구촌에 유통되는 모든 커피를 다 상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현재 한국 커피문화가 국가별 커피에 너무 매몰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특징이 희박할 수밖에 없는 ‘국가별 커피’에서 벗어났다. 국가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농장으로 농장에서 특정 품종으로 더 특화시키기 위해 품종 중심으로 커피를 팔겠다는 전략이다. 특정 지역 커피를 품종별로 잘게 쪼개 맛의 스펙트럼을 세분화시키겠다는 것. 가령 하와이 커피를 얘기하는 데서 벗어나 하와이 코나 지역에서 자라는 티피카종의 맛을 얘기하는 식으로 커피를 팔겠단다.

그는 지금 라틴아메리카 커피에만 올인한다. 상당수 커피숍이 묻지마 식으로 카페라테, 카푸치노, 아메리카노 등을 백과사전식으로 팔고 있을 때 그는 라틴커피만 특화시켜 ‘학술논문’처럼 팔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생두를 직접 수입해서 로스팅하고 그 원두를 건네받은 핸드드립 전문가 강유임씨가 최상의 원두커피를 작품처럼 제공한다. 갓 볶은 원두는 품종별로 디자인된 포장지에 들어간다.

스페셜티 전문점보다 한 발 더 나간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로스팅한 원두를 받아 사용하는 걸 납득하지 못한다. 비록 한국이 커피 원산지는 아니지만, 바리스타라면 당연히 자기가 선택한 생두를 생산하는 현지 농장을 한번이라도 찾아가 보는 게 기본적 열정이란다.

◆1부 인생은 성악가였다

커피쟁이가 되기 전 그는 성악가였다. 영남대 성악과를 졸업한 그는 부산시립합창단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고 1989년 트렌토 음악원을 졸업한다. 1996년부터 10년간 영남대 성악과 강단에 섰다. 그 과정에 모두 12차례의 독창회를 갖는다. 그런데 성악은 1% 부족했다. 그를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 47세가 되던 어느 날 매우 황량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음악으로 대성할 가능성도, 음악을 계속해야 될 에너지도 찾을 수 없었다. 속으로 ‘쉰에 음악을 그만두자’고 결심한다. 각종 커피머신을 구비한 그의 레슨실은 점차 원두커피 시음공간으로 변한다.


‘커피광’아버지 영향…초등4년때 맛 경험
伊 성악 전공 유학에도 뭔가 황량한 느낌
95년 커피명가 안명규 대표와 운명적 만남

‘쉰에 음악 관두자’ 결심 실행 과테말라行
2006년부터‘커피 볶는 사내’로 인생2막
라틴커피 수입 전문으로 커피숍도 운영



95년쯤 운명적인 사람을 만난다. 바로 한국 원두커피문화 개척자 중 한 사람인 ‘커피명가’의 창업자 안명규 대표였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경주시 감포 바닷가에 있었던 레스토랑 ‘지중해’. 그는 10회 정도 그 레스토랑에서 노래를 불렀다. 안 대표는 그의 팬이었다. 두 사내는 커피와 음악을 공유하며 도반이 된다. 마치 존 레논과 밥 딜런이 뉴욕에서 만나 전자기타와 마약을 주고 받는 식이었다. 그는 커피명가의 드립커피를 퍽 즐겼다. 그의 화두는 점차 음악에서 커피로 변한다.

2006년 사직서를 던진다. 그리고 과테말라로 가서 1년간 음악선교사가 된다. 물방울만 한 커피 지식을 가진 그는 과테말라에서 비로소 바다를 본다. 한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한 지역에도 얼마나 많은 커피 농장과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는지에 충격을 받는다. 책 속의 커피 지식은 조족지혈이었다.

과테말라 그의 집에서 40㎞ 떨어진 안티구아. 숱한 커피농장을 투어하면서 수시로 생두를 사와 프라이팬에 볶아 커피를 뽑아 먹고 그 느낌을 기록했다. 안티구아 보르봉 품종도 농장마다 맛이 달랐다. ‘커피는 이렇다 저렇다’ 확신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란 걸 깨닫는다. 과수원마다 사과 맛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과의 맛은 이렇다’고 절대 단언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커피 현장 공부차 30회 이상 안티구아로 건너갔다. 그는 커피 볶는 사내로 변해 있었다.

2009년 신정동 그의 스튜디오는 라틴커피 전문 수입업체 사무실로 개조된다. 그해 9월 안 대표와 라틴커피투어에 나선다. 멕시코 국경 근처 우에우에테낭고 지역에 있는 농장 ‘인헤르토’, 그곳은 두 사내에게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거기에서 무려 7년간 과테말라 올해 최고 커피 품종에 선정된 ‘파카마라’를 친견하게 된다. 현지 농장주도 농장부터 방문한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둘은 20일간 과테말라를 비롯해 엘살바도르, 파나마, 자메이카, 쿠바, 멕시코 등을 순례한다. 지난 4월 그는 또 라틴아메리카 농장 순례에 나선다.

“안 대표가 제 커피의 초석이다. 항상 고맙게 여기고 있다.”

2003~2005년 뉴욕 커피품평회에서 세계적 선풍을 일으킨 ‘게이샤’ 품종을 주목한다. 이 품종이 2011~2012년 국내에서도 돌풍을 일으킨다. 그도 2011년 2월 과테말라로 가서 게이샤를 찾았다. 안티구아 옆 도시 아카테낭고의 농장 ‘일리바노’에서 80㎏의 게이샤를 울산으로 수입한다. 고가라서 그런지 판로가 막막했다. 그해 5월 부산 해운대 신세계백화점 센텀점 커피페어 행사에 참여해 게이샤를 직접 볶아주며 적극 홍보에 나선다. 그걸 계기로 신세계백화점 협력업체가 된다. 지금도 백화점 지하 2층 식당가 입구에서 원두커피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 내가 생각하는 한국 커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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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출근하듯 노현일 대표가 들어가는 로스팅룸. 많을 때는 하루 40㎏, 월 550㎏을 볶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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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알버트 커피잔에 담긴 과테말라 보르봉.

현재 일반 커피숍에서 다양한 고급 품종 커피를 취급하기 힘든 이유는 뭘까?

“일단 볶은 원두의 유통기한이 보름 정도로 무척 짧고 그래서 재고관리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손님의 90% 이상이 커피가 아니라 대화 때문에 숍에 온다. 그들에겐 1만원 넘는 커피는 부담이다. 한 잔에 2천~5천원이 대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직 핸드드립 전문점이 대중화되기 어렵다.”

현재 그가 취급하는 커피는 게이샤(과테말라 파나마 에스메랄다), 파카마라(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콜롬비아 슈프리모, 과테말라 보르봉, 파나마 베를리나, 과테말라 리바노, 온두라스 웰체스, 그리고 브라질 보르봉·과테말라 티피카·코스타리카 카투라·인도 로브스타를 황금비율로 섞은 라틴블렌딩커피 등 모두 14종.

그 중 몇 종을 시음해봤다.

일반 가게의 커피가 냉동사과 같다면 그의 커피는 방금 딴 과즙 흥건한 청송얼음골사과 같다. 원두향이 ‘기승전결식’으로 감지된다. 여느 커피는 그냥 ‘탄내’가 주조향이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디저트용 커피로 차와 커피를 혼합한 듯한 ‘커피체리차’를 내민다. 보이차, 홍차, 원두커피를 섞어놓은 것 같았다. 원두향 묻은 혀가 더 차분해진다.

현재 품종별로 1.2㎏를 볶아 1㎏은 백화점에서 유통시키고 나머지 200g은 커피숍에서 소진시킨다. 그는 로스팅한 지 2일 이내의 ‘겉절이 커피’, 3~5일의 ‘잘 익은 커피’, 열흘이 넘은 ‘묵은지 커피’ 등으로 분류한다. 그는 맛있다고 저렴하다고 한꺼번에 많이 살 필요가 없단다. 맛의 유통기한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커피맛의 결정 변수는 뭘까.

“일단 생두가 70%, 로스팅이 20%, 추출이 10%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 변수가 있다. 바로 마시는 사람의 심리상태다. 가령 부모님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세계 최고의 커피도 가장 쓴 커피가 될 것이다.”

좋은 커피는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 좋은 마음은 좋은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커피는 항상 문화와 공존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좋은 문화를 위해 계절별 살롱음악회를 기획한다. 오는 8월1일부터 1주일간 새로운 라틴커피 시음회를 겸한 음악회를 가질 계획이다.

“90%를 차지하고 있는 믹스커피 시장도 향후 55% 정도로 하락할 거고 그럼 10% 정도에 불과한 원두커피 마니아 수도 35% 정도로 늘어날 것이다.”

그는 언젠가 품종 전문 커피시대가 오리라 믿는다. 지금처럼 어느 곳이나 엇비슷한 커피가 아니다. 여기는 이맛, 저기는 저맛, 하지만 우열은 따지지 않고 어떤 특징만 존중하고 소비하는 ‘각인각색 커피문화시대’를 갈구하는 것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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