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14> 주왕산 절골 협곡과 주산지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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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19   |  발행일 2016-07-19 제13면   |  수정 2021-06-17 18:06
절골, 볕은 넉넉하고 바람은 살랑살랑 ‘선한 공간, 꿈 같은 골이다’
20160719
무인기 드론으로 촬영한 주산지. 주왕산 영봉에서 뻗어 나온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인 저수지로, 조선 경종 임금 때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해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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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수직을 이루는 암벽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장관을 연출하는 절골 협곡. 협곡은 주왕산의 몸통을 이루는 거대하고 치밀한 응회암지대에 등골처럼 고랑 져 있다. 작은 사진은 절골 협곡에서 관찰되는 응회암.

 

아껴 거닐고 싶은 그윽함이다. 고요하고 맑아 저절로 숨이 깊어진다. 볕은 넉넉히 스며들고 바람도 들랑날랑하는 고즈넉하고 방순한 계곡이다. 그러나 벼랑 높고 골 깊은 협곡이다. 단애들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끝 모르게 이어진다. 그 몸짓은 단호하나 눈길은 따스하니, 에워 서나 겁박이 아니고 바투 섰으나 쟁투하지 않는 선한 공간이다. 내내 꿈 같은 골이다. 단번에 심장으로 돌진해 들어와선 오래오래 떠나지 않는 심상이다.

좁고 깊은 절골 협곡
수직의 경사…벼랑높이 50m 이상
대문바위까지 5㎞ 이어지는 골짜기
응회암지대에 등골처럼 고랑져 있어

‘하늘그릇’ 주산지
절골 들머리서 1㎞ 아래쪽에 위치
암석층 빈 공간에서 흘러내린 물로
300년간 한번도 바닥 보인 적 없어

 

 

 

#1. 절이 있던 골짜기, 절골 협곡

주왕산의 남동쪽 자락에 절골이라는 계곡이 있다. 옛날 계곡 깊은 곳에 운수암(雲水菴)이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때는 골의 이름도 운수동(雲水洞)이라 했다. 절은 사라지고 차츰 이름도 잊혔지만 그 기억만은 남아 계곡의 이름이 되었다. 절골. 그나저나 구름과 물의 골짜기라니, 옛 사람들은 너무 은근하지 않나.

바투선 벼랑, 올찬 암벽이다. 18세기 학자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은 이 골짜기에서 ‘좌우로 철벽이 하늘에 닿았고’ ‘해와 달은 중천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고 했는데 정녕코 사실이다. 그러나 눈길 가 닿는 단애의 정수리께는 대체로 동글동글해 구름이 흐르기 좋겠고, 계곡은 먼 데서 오는 빛들을 함빡 껴안을 만큼 여유가 있어 아늑하다.

벼랑의 높이는 거의 50m 이상이다. 단애들은 10~20m 거리를 두고 서있다. 경사는 거의 수직을 이루고 횡단면은 수직에 가까운 V자형이다. 이러한 계곡이 북동방향으로 대문바위까지 약 5㎞나 이어진다. 좁고 깊고 긴 골짜기, 절골은 협곡이다.

절골 협곡은 주왕산의 몸통을 이루는 거대하고 치밀한 응회암지대에 등골처럼 고랑 져 있다. 약 6천만 년 전 수 차례의 화산폭발이 있었고, 그때 엄청난 두께로 쌓인 화산재가 굳어진 것이 주왕산 응회암이다. 응회암은 식으면서 수축되어 단단해진다. 동시에 수축할 때 발생하는 힘이 수직의 규칙적인 절리를 형성한다. 대기나 물에 시달린 절리의 면이 어느 날 뚝 떨어져 내리면 이 과단성 있는 낙하는 단호한 단애를 남긴다. 이러한 낙하는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되었고, 그로 인한 지형의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 주산천 물길이 만드는 것들

절골을 따라 주산천(注山川)이 흐른다. 주왕산 최고봉인 왕거암의 남쪽, 신술골과 갈전골의 물줄기가 합해져 절골을 적신다. 천의 이름은 주아산(注兒山)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주아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명칭이 나올 만큼 오래된 산이다. 그 이름은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골짜기 동쪽에 있는 해발 745m의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산천은 이리저리 굽으며 제 몸 닿는 곳마다 흔적을 남긴다. 물길의 가장 깊은 곳을 연결한 선을 ‘최심하상선’이라 한다. 물은 굽이져 흐르고 ‘최심하상선’은 양쪽 기슭에 번갈아 나타난다. 이 선에 인접한 곳은 침식을 받아 깊은 소를 만드는데, 절골에서는 폭이 3~8m인 소가 20개 정도 관찰된다. 소가 깊어지는 동안 그 맞은편에는 모래나 자갈 등이 쌓인다. 평면이 초승달 모양인 이러한 퇴적 지형을 ‘포인트 바’라고 한다. 침식을 받은 곳은 후퇴하고, 퇴적된 곳은 전진한다. 침식과 퇴적에 의해 최심 하상선은 이동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하천은 더욱 구불구불해진다.

절골 협곡을 오르는 길은 주산천 물길과 함께하는 길이다. 큰 오르막 없는 완만한 길이다. 길을 막는 암괴 무리들을 피해가는 데크처럼 꼭 필요한 곳에만 보행 보조 시설이 있을 뿐 대부분이 자연 그대로의 ‘길 없는 길’이다. 발 딛기 좋은 암반을 고르고, 누군가 미리 공들여 놓아둔 징검다리를 건너고, 때로는 직접 다릿돌을 놓아가며 걷는 길이다. 천사 김종덕은 ‘가운데 물을 따라 길이 나 있다’고 했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도 참으로 그러하다. 앞선 사람의 흔적을 따르는 길이고, 사라진 흔적을 찾아 나아가는 길이다. 그렇게 오늘의 흔적을 더하는 길이다.

#3. 돌들의 협업, 주산지

절골 들머리에서 1㎞ 정도 아래쪽에 동쪽으로 파고든 또 하나의 골짜기가 있다. 계류가 흘러내려 주산천에 합해지는 모습은 신술골이나 갈전골의 물줄기와 마찬가지지만 그 골짜기의 끝은 완전한 별세계다. 그곳에는 주왕산 영봉에서 뻗어 나온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인 작은 못 주산지가 있다. 200여 년 묵은 왕버들이 물속에 뿌리박고 서있는 신비의 세계다.

산책로가 주산지의 절반을 감싼다. 촉촉하고 청량하게 그늘진 길이다. 왼쪽 하늘가에는 단풍이 물들면 용이 승천한다는 별바위가 내려다보고 있다. 별바위에서 가까운 동쪽 능선에 주아산 745m 봉우리가 솟아있다. 주산천과 주산지는 그 이름의 기원이 같은 듯하다. 별바위의 서쪽 아래, 해발 400m 즈음의 계곡을 막아 물을 가둔 것이 주산지다. 조선 경종 원년인 1720년 8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10월에 완공한 농업용 저수지다.

주산지는 주왕산 응회암으로 빚은 ‘하늘그릇’이다. 응회암층 위, 고도 500m 이상의 능선부에는 퇴적암과 안산암질의 용암이 쌓여있다. 이들은 월외리 너구동 주변과 이전리 동쪽의 능선부에 주로 분포하는데 너구동에서 가장 잘 발달하여 너구동층이라 부른다. 이는 응회암이 주왕산의 큰 덩어리를 만든 이후 다시 퇴적의 시간을 겪고, 다시 화산 분출의 사건을 겪었음을 의미한다. 주왕산 응회암에서 부석의 분포와 방향 등을 연구한 결과 학자들은 화산의 분출구가 가메봉의 남동쪽 수㎞ 떨어진 곳이었다고 추정한다.

너구동층 퇴적암과 주왕산 응회암의 상부층은 암석중의 빈 공간이나 틈의 비율이 높다. 그래서 비가 오면 암석층의 빈 공간은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었다가 조금씩, 조금씩 흘려보낸다. 그렇게 흘러내린 물은 주왕산 응회암층에서 중심부의 치밀하게 굳어진 층 속에 가두어진다. 그래서 주산지의 물은 단 한 번도 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 주산지는 지난 300여 년간 골짜기 마을의 농토를 적셨고, 지금은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주산지를 바라보면 가슴에 하늘을 담는 그릇 하나가 생긴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전임길 객원기자 core8526@naver.com
 

▨ 참고= △청송국가지질공원 및 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주왕산지
공동기획: 청송군 


■ 절골계곡에 있던 운수암...지금은 기록만 남아있어

절골 협곡과 주산지는 청송 부동면 이전리(梨田里)에 위치한다. 옛 지명은 이전평(梨田坪)이다. 주산천의 하류, 지금은 사과밭 빼곡한 땅이 옛날에는 배 밭이었던 걸까. 어쩌면 도화처럼 이화의 낙원이었을지 모른다. 해동지도에 이전평역(梨田坪驛)이 나오는데, 현재의 914번 지방도가 과거에도 영덕으로 이어지는 길이었고 이전리는 역참 마을이었다. 주산지의 마르지 않는 물이 늘 이전리의 농토를 촉촉이 적셨으니, 산 넘는 길손도 목 축여 쉬기 좋았을 것이다. 절골 계곡에 있었다는 운수암은 ‘순조가 즉위한 지 9년이 되는 1808년에 이르러 161년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창건은 인조 때인 1648년 즈음일 게다. 암자는 화재와 중창을 거듭했다고 하는데 그 마지막은 알 수가 없다.

 

☞여행정보

청송읍에서 31번국도 포항방향으로 가다 주왕산휴식소에서 부동면 방향으로 간다. 

914번 길로 주왕산 방향으로 가도 되고, 908번 길로 부동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도 된다. 

이전리에서 절골로 계속 오르면 절골 탐방 안내소다. 

주차장은 협소한 편이다. 

절골로 오르는 길에 상이전 마을에서 절골교 지나 우회전해 들어가면 주산지다. 

이곳 주차장은 넉넉하다. 

절골계곡은 완만하지만 강우 시에는 절대 진입하면 안 된다. 

불어난 물은 길의 흔적을 삼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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