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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수 시인이 서재 ‘달북’에서 자신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뒤로 친구가 그려준 문 시인의 초상화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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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수 시인의 시집들과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
글을 쓰는 이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특히 수많은 팬들이 있는, 글 쓰는 솜씨가 탁월한 이가 그 일을 겪는다면. 이런 끔찍한 상상(?)을 하면서 문인수 시인(73)을 만났다. ‘이 사람’ 인터뷰를 하기 전 몇차례나 만나서 사전 인터뷰를 해왔던 기자는 이런 생각이 상상으로만 끝나서 다행이라는 기쁨을 안고 취재를 마쳤다. 그전 몇 차례의 만남에서 문 시인은 “몸이 아프니 정신도 집중이 잘 되지를 않네. 글을 더 이상 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수시로 쏟아냈다. 그랬기에 무거운 가슴으로 그를 만나러 갔는데 한두 달 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는 모습과 “시선집과 산문집 한권은 내야 되지 않겠나”라는 의욕이 기자의 돌아오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선생님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몇 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아서 지난해까지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차도가 있어서 생활하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발병 당시 빨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천성이 워낙 게으른 탓으로 미뤘던 것이 화근이 되었지요. 그래도 가족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이 정도에서 안정되고 있어 다행입니다. 가족들에게 이래저래 많이 미안합니다.”
“요즘 팔다리 힘없어 아내가 대신 글 받아 써줘
돈도 잘 못벌어다 준 남편인데, 자랑스러워 해
중학교 때부터 詩 써왔지만 나이 마흔에 등단
2004년‘홰치는 산’으로 전국에 알리는 기폭제
늘 그리운 고향, 진정성 있게 다뤄 좋은 평가”
“소재·배경 무엇이든지 간에 서정 빠진적 없어
시집 12권 중 유일한 시조집‘달북’에도 애정
형식에 가두어 두니 새로운 즐거움에 행복감
후배 덕 마련한 서재 이름도 ‘달북’으로 지어
모아둔 詩 중 추천받아 시선집도 만들 계획”
▶특히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셨는데…. 어떤 점이 미안하다는 말씀인지요.
“평생 돈 한번 제대로 벌어주지 못하고 이제는 이렇게 아프기까지 하니…. 요즘 아내가 제 팔·다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팔에 힘이 없어 글을 잘 쓰지 못하니 아내가 대신 제 글을 받아서 써주지요. 저의 직장생활은 1992~98년 영남일보에서 기자로 일한 것이 전부입니다. 늘 글 쓴다는 핑계로 돈을 벌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쓰고 다녔지요. 그런데 아내가 이런 저를 원망하지 않아 더 미안합니다. 저 같은 남편이 없었으면 어떻게 그렇게 큰 문학상 시상식에 초대받고 남편과 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겠느냐면서요. 아내는 상금보다 저와 시상식에 같이 간 것을 행복해하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문 시인은 한국의 주요 문학상과 문화상을 두루 수상했다. 2000년 김달진문학상을 받은데 이어 2007년에는 3번이나 최종 후보에 올랐던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목월문학상을 받았다. 이외에 노작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대구문학상, 금복문화예술상 등을 받았다. 2008년에는 만해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2009년에는 시집 ‘배꼽’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시집’에 선정되기도 했다.
▶문인수 시인을 ‘문단 밖의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나이 마흔에 뒤늦게 문단에 나온 것도 늘 시단의 중심에 들어서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시를 써왔고 이후에도 꾸준히 작업을 했지만 문단에 끼이질 않고 혼자 지냈지요. 그래서 아는 시인도 없고 문단에 등단할 생각도 별로 없었습니다. 1985년 ‘심상’으로 등단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문단활동을 했지만 저의 성격상 혼자 시 쓰고 혼자 노는 것을 즐기는 습성을 쉽게 떨칠 수는 없었습니다.”
▶뒤늦게 문단에 나온 이유가 있는지요.
“아내(전정숙·69)의 잔소리(?)가 좀 자극이 됐다고나 할까요. 신문에 난 문학상 시상식, 시인 인터뷰 등을 저에게 보여주면서 ‘당신도 시를 쓰면 이렇게 한 번 나와봐야 되지 않느냐’며 넌지시 권유를 하더군요. 등단과 외부 문학활동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제 욕심도 살짝 자극했지요. 그때는 아내의 말이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최고의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아내가 고맙지요.”
▶2000년 김달진문학상을 받으면서 전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2004년 출간된 ‘홰치는 산’이라 말씀하셨는데요.
“이 시집은 이래저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시집입니다. 지역에서 낸 시집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이 시집이 문인수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1986년 펴낸 첫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부터 고향의 사람들, 풍경 등 고향을 주제로 한 작품을 꾸준히 보여왔지만 이 시집에 이르러 제대로 된 완성도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시집이 상당히 많이 팔리기도 했지만 동료 시인들이 시집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준 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고향의 이야기를 일관성있게 또 진정성 있게 다뤄온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향이 성주입니다. 고향에 이렇게 천착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고향을 떠나온지 50년이 넘었습니다. 성주농고에 다니다가 2학년때 대구고로 전학을 왔으니까요. 고향을 떠난지 오래되어서 고향이 더 그리울 수도 있지요. 어떤 이들은 자동차로 1시간 거리도 안되는 곳이 고향인데 왜 그리 호들갑을 떨듯이 ‘고향, 고향’하느냐고 놀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실제로 지금이라도 가고 싶으면 당장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고향은 제가 어릴 적 봤던 그 고향의 모습이 아닙니다. 풍경도 사람도 변했습니다. 제가 노래한 고향은 어릴 적 제가 뛰어놀고 자랐던 그 고향입니다. 이제는 가볼 수 없는 고향이지요. 그래서 어디에 있어도 늘 가고 싶고 노래하고 싶은 그런 곳입니다. 내 몸이 닿을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내 영혼이 가서 닿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요. 그래서 더 그리운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듯합니다.
“고향은 늘 그리운 곳이지요. 슬픔이 있었든지, 고통이 있었든지 과거가 되어버린 고향은 모두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고향은 어머니·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며 나의 몸이 발원한 곳이자 회귀해 가는 길의 끝에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향은 저에게 늘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가질 수 있다면 그리움은 없겠지요. 가지지 못하니 그 그리움의 두께가 두꺼워질 수밖에요.”
▶문인수 시인하면 서정시가 떠오릅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이런 서정성에 깊이를 더해준 것인지요.
“나의 시에서 서정이 빠진 적은 없습니다. 소재가 무엇이든, 배경이 무엇이든 서정이 깃들어 있지요. 서정은 지금도 나의 영혼을, 시심을 흔들어 깨웁니다. 서정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흡족함, 만족감을 느끼지요.”
▶2014년 나온 10번째 ‘달북’에도 애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6년 펴낸 시집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까지 12권의 시집을 냈는데 ‘달북’은 유일한 시조집입니다. 학창시절부터 간간이 시조를 써오기는 했지만 책으로 묶지는 않았습니다. 예전에 썼던 시조들과 계속 붙들고 있었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 시들을 시조로 새롭게 엮어서 낸 책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시는 자유로움이 특징이고 시조는 형식이라는 가둠의 특징이 있습니다. 자유로움 속에서 쓴 시가 아무리 갈고닦아도 마음에 들지 않던데 이를 시조라는 형식에 가두어두니 새로운 맛이 났습니다. 갇히는 재미와 묘미가 시조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주위에서는 왜 시조집을 내느냐고 타박을 주기도 했지만 이 잠깐의 외도에 만족합니다. 시조에서 새로운 재미를 만났으니 그것 자체가 행복이지요.”
▶서재를 ‘달북’이라고 이름 지은 것에서도 이 시조집에 대한 강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서재는 댁이 아닌 성안오피스텔(대구 달서구)에 따로 마련한 이유가 있는지요. 서재에 책이 족히 3천권 이상은 될 듯합니다.
“그동안 바빠서 책 정리를 못하고 집의 창고에 쌓아두었습니다. 책이 점점 많아지니 이를 어찌해야 될지 고민했는데 후배(신홍식 아동문학가)가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문화공간 아트빌리지에 한 코너를 내주었지요. 꽤 넓은 공간에 이렇게 좋은 서재를 만들어준 후배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곳에는 내 시집을 비롯해 내 시가 실린 다양한 문학잡지, 국내외의 다양한 문학인들의 시집과 소설집 등이 있습니다. 이곳에 자주 와서 책도 보고 글도 쓰고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자주 오지 못하는 게 아쉽지요.”
▶앞으로 시선집과 산문집을 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주위의 시인 몇명에게 의뢰해 저의 시 중에 괜찮은 시를 추천받아 시선집을 만들 계획입니다. 산문은 그동안 써둔 것이 꽤 많지만 글 같잖은 것들이 많아서 발간은 하고 싶은데 걱정입니다. 이 두 목표를 달성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문인수 시인은 1985년 ‘심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늪이 늪에서 젖듯이’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쉬!’ ‘배꼽’ 등을 펴냈다. 대구시인협회장을 지냈으며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목월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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