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미성년’ 염정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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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9   |  발행일 2019-04-19 제43면   |  수정 2019-04-19
“스카이 캐슬 도도한 엄마와 정반대 주부”
“남편 불륜에도 학업열중 딸 위해 담담하고 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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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이야 사랑이야, 분명하게 말해. 그거에 맞게 해줄테니.” 남편 대원(김윤석)이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상대 여자가 아이까지 임신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 영주는 애써 담담한 척 혼란스러운 자신의 감정을 추스린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생 딸 주리(김혜준)를 위해서라도 가족의 균열을 봉합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 그다. 배우 김윤석의 첫 연출작 ‘미성년’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통을 겪는 다섯 인물의 이야기다. 그 한축에서 염정아는 엄마와 아내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영주를 연기했다.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알기에 냉정하고 침착하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해나가는 인물이다.

팬덤 현상까지 불러왔던 ‘스카이캐슬’의 한서진(염정아 분)이 자식을 욕구 실현의 대리자로 생각했던 것과 비교하면, 영주는 좀 더 현실에 맞닿아 있는 인물이다. “모정에 많이 치중했던 전작의 인물들과 달리, ‘미성년’의 영주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여자, 영주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 염정아는 “그 점에서 깊이 고민하면서 연기했던 점이 달랐다”고 말했다. 데뷔 30년을 바라보는 염정아에게도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오랜 연기생활을 통해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연기적 디테일을 김윤석 감독을 통해 배워나갈 수 있었다”는 점을 꼽는다. “마치 신인 배우로 돌아간 듯 하나하나 배우고 깨우쳐 나갔던 시간들이 정말 새롭고 신선했다”는 염정아. 이번에도 그는 또 한명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보란 듯이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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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은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영화다. 어떤 점에서 끌렸나.

“김윤석 선배의 첫 연출작이라는 점이 일단 크게 작용했다. ‘범죄의 재구성’(2004)에 함께 출연한 적은 있지만 같이 합을 맞춰본 적은 없고, 사적으로도 잘 아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영주 역할을 부탁한다며 내게 시나리오를 보내셨다. 친분으로 배역을 주는 분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읽고 출연하겠다고 했다. 시나리오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이야기 구조라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배우가 아닌 감독 김윤석과의 만남인데 어땠나.

“미팅자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영화에서 보던 분과 너무 달라 솔직히 좀 놀랐다. 카리스마 넘치던 배우 김윤석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매너는 물론이고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감독님이 그 자리에 앉아 계셨다. 일적인 부분에서도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디테일하게 꿰뚫고 계셨다. 정말 신기했다.”

▶연기자 출신 감독이라는 점이 부담감으로 작용하진 않았나.

“첫 촬영 때부터 너무 떨었다. 감독님은 내가 연기를 잘하는 줄 알고 캐스팅하셨을 텐데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감독님은 풀리지 않는 게 있으면 이해하기 쉽게 내 입장에서 잘 이끌어주셨다. 가족 같은 현장분위기 때문에 갈 때마다 즐겁기도 했지만 연기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현장분위기도 전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다.

“배우가 최상의 연기를 표출해낼 수 있게 분위기를 잘 만들어 주셨다. 영주 역할이 녹록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촬영에 임해보니 너무 어려웠다. 어떻게 표현하고 조절해야 영주 캐릭터에 제대로 녹아들지를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그걸 다 해결해 주셨다. 예를 들면, 영주가 운전을 하는 중에 뒷자리에 앉은 딸 주리가 ‘아빠가 (바람을 피운 게 창피해서 자신이 불러도) 도망갔다’며 우는 장면이 있다. 그 말에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계속 숨만 고르고 있었다. 나름 그 상황에 맞게 연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픽하고 한 번 웃어보면 어떨가요’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남편의 행동이 어이없고 딸 앞에서 부끄러운 심정을 표현하는 건데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싶었다.”


“상대 배우 김윤석 선배 첫 연출작
평소 친분 없지만 제의받고 결정
내 입장서 디테일하게 이끌어줘”

“엄마이지만 여자 ‘영주’ 이야기
남편 의지하고 사는 평범한 주부
불륜녀 조산 죄책감, 복합적 감정
분노 폭발보다 절제 연기 어려움
의견 개진보다 감독 100% 신뢰”

“드라마 이후 젊은 팬 많아져 신기
아이가 친구 준다고 사인 받아가
‘맘마미아’같은 뮤지컬영화 욕심”



▶실제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다. 극 중에서처럼 담담하고 태연한 영주의 행동이 이해되던가.

“나라면 영주처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영주는 굉장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그리고 평생 남편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니까 모든 재산이 남편 명의로 되어 있어도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자신이 그동안 순진하고 멍청했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그럼에도 딸이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할 학생이니 엄마입장에선 영주처럼 애써 담담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상황을 스스로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영주는 머리채를 잡아 당겨도 시원찮을 불륜녀 미희(김소진)가 조산해 입원한 병원에 손수 만든 죽을 들고 방문한다. 어떤 마음이라고 생각했나.

“그가 어떤 마음을 먹고 병원에 갔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영주의 고해성사 장면을 통해 대략 짐작해볼 수는 있다. 실질적인 피해자는 영주지만 어찌됐든 화가 나서 밀치는 바람에 미희는 아이를 조산했고 그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론 두 사람이 너무 미운 나머지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일종의 자기합리화인 셈이다. 아무튼 영주의 방문은, 네가 밉지만 나는 죽까지 만들어서 찾아왔으니 ‘너보다 나은 사람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가 망가져 있는 모습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감독님도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말씀을 못하셨을 만큼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는 신이라 모두가 엄청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보통의 경우라면 한 번쯤 남편과 불륜녀를 향해 감정과 분노를 폭발시킬 법도 한데 영주는 시종 냉정함을 유지한다. 답답하진 않았나.

“영주는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설정 그대로다. 누구보다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여있는 인물이지만 정해진 분량안에서 그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관객에게 전달해야 했다. 답답하다는 느낌보다는 솔직히 좀 어려웠다. 드라마는 호흡이 기니까 연기적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데 영화는 정해진 회차마다 중요한 감정과 포인트들을 압축적으로 캐치하면서 표현해야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런 메커니즘을 잘 알고 계시는 감독님이다. 미리 영주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해주셨고 지금처럼 담담한 여자로 비쳐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배우로서 욕심을 낼 부분도 있었을 텐데. 감독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적은 없었나.

“이번 현장에선 없었다. 무조건 감독님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간혹 어떤 연기에 대해 ‘정아씨, 이건 이렇게 해보는 게 어때요’라고 물으면 그게 너무 좋았다. 감독님을 100% 신뢰할 때 느낄 수 있는 일이다.”

▶화려하고 도도했던 ‘스카이캐슬’의 한서진과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다.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외적 이미지를 설정하는 건 연기에 도움을 주고 보조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목소리의 톤과 말투, 제스처가 달라진다. 영주는 보통의 평범한 주부라 한서진처럼 외형적으로 화려하게 꾸밀 필요가 없었다. 외려 남편의 불륜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을 테니 그 느낌을 주기 위해 피부를 건조하게 보이도록 분장에 신경을 썼다.”

▶누군가 연출제안을 한다면 해볼 의향은 있나.

“연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글 한 줄 쓰는 것도 힘들고 생각하는 수준도 중학생에 가까운 나는 절대 못한다 (웃음). 사실 김윤석 감독님은 원래 연극연출을 하셨던 분이다. 그래서 모니터 앞에 있는 모습을 보면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다. 연기하는 틈틈이 연출도 계속하셨으면 좋겠다.”

▶‘미성년’을 포함해 최근 여성 캐릭터들이 중심이 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 변화가 느껴지나.

“예전보다 소재나 장르적으로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스카이캐슬’ 이후 출연제의가 부쩍 늘었다. 늘 엄마 역할만 하다가 ‘뺑반’에선 커리어가 확실한 멋있는 캐릭터도 만났다. 되게 신선했다. 하지만 엄마 역할 만큼 편한 것도 없다. 그리고 엄마 역할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니다.”

▶‘스카이캐슬’은 당신의 필모에서도 특별한 의미일 것 같다. 이후 달라진 게 있다면 뭔가.

“젊은 팬들이 생겼다.(웃음) 분명 다른 배우들을 따라다니던 팬들일 텐데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있는 거다. 아직도 남의 일처럼 적응이 안되고 신기하다. 요즘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가 학교 친구들 준다고 사인을 많이 받아 간다. 그만큼 ‘스카이캐슬’은 나에게 굉장히 큰 선물 같은 드라마다. 되게 행복했던 작품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여전히 남들이 부러워할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 비결이 뭔가.

“별다른 비결은 없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체중 유지를 위해 덜 먹는다. 집에선 하루에 한 번씩 마스크팩을 이용하고 정기적으로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는다. 솔직히 예전에는 이렇게 관리를 하지 않아도 메이크업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됐는데, 이젠 메이크업으로 커버되는 시대가 아니다. 카메라 성능이 너무 좋아져 잡티까지 리얼하게 잡히니 관리를 안 할 수가 없다.”

▶연기를 떠나 자연인 염정아의 개인적인 관심사는 무엇인가.

“언제나 가족과 연기다. 그리고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 편에 숙제처럼 남아 있다. 단순히 여행갈 때 필요해서인데, 요즘은 휴대폰으로 모든 통역이 가능하지만 직접 외국인들과 편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다.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제 더 나이를 먹기 전에 가족들과 자주 여행을 다니고 싶다.”

▶차기작은 최정열 감독의 ‘시동’이다. 여기서도 택일(박정민)의 엄마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역할은 뭔가.

“하고 싶은 걸 말하는 것보다 좋은 작품을 기다리는 게 더 현실적이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맘마미아’나 ‘라라랜드’ 같은 뮤지컬 영화를 해보고 싶긴 하다. 음악과 로맨스를 함께 보여준다는 게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 국내에선 잘 시도되지 않는 장르라 만나기가 더 힘든 게 사실인데, 그런 작품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노래와 춤을 배워서 도전해보고 싶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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