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경북도의 자주외교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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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2   |  발행일 2019-12-12 제31면   |  수정 2019-12-12
[영남타워] 경북도의 자주외교

인도도 아닌 것이, 차이나도 아닌 것이, ‘인도차이나’라는 지명은 참으로 이질적이고도 묘한 조합이라는 느낌을 준다. 총길이 4천20㎞로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메콩강. 이 강 유역엔 동에서 서로 ①베트남 ②라오스 ③캄보디아 ④태국 ⑤미얀마가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18세기 초 덴마크 지리학자 마르테브란은 이 지역을 인도와 차이나(중국) 중간에 있다 해서 인도차이나라고 명명했다. 과거 유럽인의 눈에 동양은 인도 아니면 중국이었을 테니 당연한 작명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인도차이나반도는 실제 인도·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캄보디아는 인도의 영향을 받았고, 태국인은 중국에서 남하했으며,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마르테브란의 초간편 발상이 실은 이 지역을 이해하는 본질이나 다름없다.

인도차이나반도 남단에는 또 하나의 반도가 아래로 길게 뻗어 있다. ‘반도의 반도’라고나 할까. 말레이반도라 불리는 이곳엔 ⑥말레이시아 ⑦싱가포르가 있다. 그리고 믈라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말레이반도와 마주 보고 있는 수마트라섬을 시작으로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쭉 뻗어 있는 열도가 ⑧인도네시아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인도’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영국 언어학자 J.R.로건이 ‘인도의 섬들’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였다. 유럽인의 인도에 대한 맹목적 동경을 또 한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실제로도 인도와 힌두교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인도네시아는 1만3천677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보르네오섬엔 말레이시아 일부 영토와 ⑨브루나이가 있고, 북동쪽 바다 건너엔 7천 개의 섬으로 이뤄진 ⑩필리핀이 있다.

지리적으로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 동남아시아 10개국 연합이 바로 아세안(ASEAN)이다. 1967년 창설됐으니 반세기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아세안이 최근 한국에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지난달 25~27일은 우리 외교사에 의미 있는 날이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 천명한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가 부산에서 열린 것이다. 미·중·러·일 4강에 끼어 태생적으로 단 한번도 자주적 외교를 펼친 경험이 없는 한국이 처음으로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장면이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요충지인 데다 특히 믈라카 해협은 석유수송선 통로로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곳이어서 이번 정상회의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하겠다. 경제의 탈(脫)중국화는 말할 것도 없지만.

사실 신남방정책의 개척자는 ‘경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북도는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2017년 베트남 호찌민에서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개최했다. 신라역사와 한국문화, 여기에 경제까지 가미된 복합상품을 수출한 것이다. 지방 외교사에 기억될 만한 독특한 장면이다. 새마을운동 세계화 사업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아시아-아프리카 15개국 55개 마을을 대상으로 주거환경 개선 및 소득증대 사업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 중에는 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라오스·캄보디아가 포함돼 있다. 적잖은 외국 지도자들이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면서 새마을운동에 대한 문 대통령의 부정적 선입견마저 바꾸지 않았던가. 2010년부터 경북도체육회는 인도네시아 서자바주와 체육교류사업을 하면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이끌어내 자원부국의 경제·통상·문화의 문을 여는 기폭제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들 사업은 현재 예산이 깎이는 등 사업이 위축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보면 수긍하지 못할 바도 아니지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찾기보다 포기하는 방향으로 도정이 이뤄지는 듯해 씁쓸하다. 아무도 생각지 못할 때 선구적으로 아세안에 뛰어들었던 경북의 개척정신이 위축되면서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오히려 뒤쫓아가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최근 경북도청 앞마당에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간 공룡 조형물 한 점이 등장했다. 도청 공무원에게 ‘변화’를 주문하고픈 이철우 도지사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고 한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이 공룡 조형물이 ‘경북의 신남방정책’ ‘경북도의 자주외교’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됐으면 한다.

변종현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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