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리의 공예 담화(談話)·(끝)] 금속공예 배우던 젊은날, 내 마음속에 들어온 반지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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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4   |  발행일 2020-02-14 제40면   |  수정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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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업으로 얇은 금판을 투각하고 말아 땜 해 붙여 만든 금속공예가 우진순 작가의 반지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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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열린 '대구아트페어'에 참가한 '갤러리 바움' 부스 모습(위)과 이정규 작가의 작품들.

15년 전쯤의 일이다. 대학원 동기들과 나는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작품 감상 소감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어떤 작품이 가장 인상적인가'에서 '어떤 작품을 제일 사고 싶은지'로 이어졌다. 단 '돈이 있으면'이란 전제와 함께. 별반 다르지 않은 주제일지 모르나, 후자는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과 경제적 교환 가치를 고려하게끔 하기에, 엄밀히 구분된 주제였다. 만드는 행위에 몰두하여 스스로를 제작자의 역할에만 가둔 탓도 있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던 학생 시절이었기에, 나는 '나도 구매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야 처음 하게 되었다.

그날의 대화에서 나의 '원 픽'은 이후 '나중에 돈 벌면 꼭 사고 싶은 작가의 작품'이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의 대학원 시절 은사님이자, 금속공예가인 우진순 작가의 반지였다. 0.3㎜의 얇은 18kt 금판으로 제작된 반지는 윗면과 아랫면을 관통하는 기하학적 패턴이 정확히 일치하며, 윗면과 아랫면 사이에 빈 공간이 인상적인 반지였다. 작가만의 고유한 기하학적 조형성과 독창성이 엿보이는 이 반지는 판에 구멍을 뚫어 세공 톱으로 잘라내는 투각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이 기법은 금속공예 입문자들이 가장 기초적으로 배우는 기술이다. 가장 기본적인 기초 기술로, 가장 고난도의 작업을 요구하는 디자인의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이 진정한 고수의 품격이 느껴지는 부분이며, 정밀함과 완벽함이 주는 감동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그 반지는 나의 오랜 선망이자 욕망의 대상이었다.


대학시절 감상한 은사 우진순 작가展
기하학적 조형성·독창성으로 인상적
돈 벌면 꼭 구매할 작품에 꼽았던 기억

세월 흘러 나이 드신 선생님 활동 중단
이젠 구매할 여력돼도 구할 수 없게돼
직접 찾아 정중히 요청 소장작품 수락

희소성·고유성·장인정신 자체가 명품
수제 현대 예술 장신구의 사회적 가치
소비도 점진적으로 정교해지며 변화



시간이 흘러 나는 공예 시장에서 구매자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 작가의 작품을 갤러리에서 구매하는 것과 달리, 선생님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예 불가능했다. 안경을 두 개 겹쳐 끼고도 하셨던 톱질을 이제는 버겁다면서, 선생님은 일흔을 앞두고 작업을 중단하셨다. 작품 활동을 하던 시절에도 고난도 작업의 성격상, 제작했던 작품의 수량이 여타 작가들에 비해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백화점에서 줄 서서 구매한다는 핸드백이 희소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내 마음속의 반지는 희소성의 최고봉을 찍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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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우진순 작가가 착용한 우 작가의 반지.

재작년 봄, 선생님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편지 한 통을 써서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제작이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에 하나를 팔라고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거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의 진심을 담아 글로 적어 갔다. 다음 날, 선생님은 전화를 주었고, 나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그렇게 나에게 온 반지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최고의 명품(名品)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고, 후대에 물려 주고 싶으며,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물건이다.

공예가의 이름은 하나의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있다. 희소성, 고유성, 장인 정신 등과 같은 공예의 본질적 속성은 공예가의 작품을 명품으로 정의하고 포용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사회에서 대중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명품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난 물건이나 작품'이다. 명품이라는 우리말에 대응하는 영어의 '럭셔리(Luxury)'는 욕망의 대상이지 반드시 소유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기에 호사품이나 사치품의 뜻을 내포한다. 현대 소비 사회에서 '럭셔리'란 사용성과 상품의 질, 독창성의 가치와 같은 상품의 기능적 가치와 정체성과 유희성과 같은 개인적 가치에, 과시적이고 특권적인 사회적 가치가 결합되어 있으며, 여기에 재화의 가치가 더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명품이란 단어는 '뛰어난 물건이나 작품'의 뜻보다는 영어의 럭셔리의 개념이 짙게 정착되어, 값비싼 해외 패션/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몇 해 전 드라마 속 대사에 등장한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이란 표현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최고급 소재를 사용하여 수작업으로 장인이 만든 최상급 제품을 뜻하는 명품에 대한 찬사적 표현으로 통용되었다. 이런 브랜드들은 장인 정신에 기반하여 소량 생산의 원칙을 전략으로 소비의 고급화와 차별화를 광고하며 우리 사회에 침투했으며, 종종 단순한 상품의 소비를 넘어서 상징의 소비가 된다.

핀란드에 있는 동안 나는 후기 산업 사회를 일찍이 경험한 유럽인들은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개성을 반영하는 제품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무조건 따라하기 식의 유행이나 '잇백(it-bag)' 문화와 정반대인 그들의 마인드는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쿠션 하나를 구입해도 자신의 정체성을 물건에 투영하는 모습이 당시 나에게는 근사하게 느껴졌고, 한국 사회와는 꽤 거리가 먼 모습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거리감이 이제는 다소 덜 느껴질 만큼, 우리 사회에서도 소비의 가치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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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들을 이미 충분히 가진 소비자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소수의 상징으로 소비의 욕구가 자극되고 이러한 사회적 가치가 명품을 완성시킨다고 했을 때, 우리 사회에서도 그 대상이 공예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들이 포착되고 있다. 2010년부터 대구아트페어에 참가하고 있는 '갤러리 바움'의 대표이자 장신구 작가인 이정규 작가는 페어를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목격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회화 작품들 사이에서 굳건히 10년째 현대 예술 장신구를 소개해 온 갤러리 바움은 대구아트페어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신구 전문 갤러리이다. 화각을 비롯하여 볼드하게 사용되는 고급 원석들이 특징인 이정규 작가의 작품을 찾는 고정 고객들도 대구아트페어를 통해 생겼다고 하며, 지난 페어에서는 멋쟁이만 소화할 수 있는 이 작가의 우아한 작품들이 대구에서 주인을 찾아간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한편, 긍정적 신호는 소비자의 변화만이 아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명품 브랜드 작가'라는 타이틀로 우수한 공예 작가들을 선발하고, 이들의 작품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명품 브랜드 작가로, 독창적인 실리콘 장신구를 선보이며 국내외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권슬기 작가가 위촉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공예의 가치를 이해하고 진정한 명품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더 많은 소비자들로 인해, 우리의 소비 사회에서도 명품의 의미가 새롭게 인식되고 그 중심에 공예가 위치하기를 희망해 본다.

계명대 공예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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