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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며 오늘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를 살피고, 집을 나설 때에는 지갑보다 마스크가 먼저이며, 손 소독제가 보이는 곳에서는 무의식적으로 펌프를 누르고 있는 삶이 우리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웃과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이가 확진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평소 실천하지 못했던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이 코로나19라는 보이지 않는 공포에 어느새 길들여져 가고, 사회 곳곳에서는 혐오와 갈등, 집단히스테리와 같은 문제들이 분출하고 있음을 보면서 나는 다시금 연대와 포용이 가진 힘을 떠올린다.
우리의 고전문학에서 전염병과 관련되어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아마 향가 '처용가'일 것이다. 이 노래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조에 전하는데, 동해 용왕의 아들인 처용이 역신(疫神)에게 아내를 빼앗긴 후 춤을 추며 부른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용은 늦은 밤까지 서라벌 거리를 노닐다 집에 들어와 자기 아내와 동침을 하고 있는 사내를 발견한다. 보통의 남자들이라면 눈이 뒤집힐 만한 사건이지만, 용왕의 아들은 역시 행동 또한 범상치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물러나 춤을 추고 이 노래를 지어 불렀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의 전개가 심상치 않다. 처용이 춤과 노래를 부르자 역신이 처용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리고 역신은 처용의 그림만 보아도 그 집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다.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문 앞에 처용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붙여놓고 역신이 들어오지 않기를 기원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질병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부족했던 옛사람들의 생각이 그들의 상상력과 어떻게 결합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역신이 처용의 비도덕적인 아내를 침범한 것처럼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을 사회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에서 찾고자 했던 전근대 사회 특유의 사고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전염병에 대한 이러한 신비적 관념들은 질병에 대해 가지는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일 터이다. 그러나 '처용가'에 나타나는 처용의 체념은 역신에 대한 단순한 굴복이 아니다. 처용의 승리는 두려움과 공포의 존재인 역신까지 껴안는 포용에서 나오며, 이는 지금의 현실에도 되새길 만한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에 의해 지역사회의 어려움은 날로 더해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혼란과 공포를 틈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모습들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타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사람들 또한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타인을 위해 선뜻 성금을 기탁하는 사람들, 지역 경제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임대인들, 의료진이 부족한 대구로 몰려드는 전국의 수많은 의료인들, 대구의 어려움을 함께하고자 팔을 걷고 나서는 타 지자체들, 이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포용이 우리 사회를 유지해 나갈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힘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매일 빠르게 늘고 있는 확진자들의 수를 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쉽게 극복되지 못할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는 나날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질병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고, 이러한 질병들을 우리는 숱하게 이겨내 왔음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타인과의 연대와 포용이 있었음을 기억하도록 하자.
조유영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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