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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락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
우리나라의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그 전문에는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한 사람의 시골 선비를 기억한다. 정재화(1905~1978)가 바로 그다. 그는 자가 자실(子實), 호가 후산(厚山)인데 성주에 살았다. 전통지식인으로서 세상을 떠날 때가지 상투를 틀어 보발(保髮)을 했으며, 한문으로 의사소통을 했고,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출입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생애는 1910년 경술국치, 1919년 3·1만세운동, 1945년 민족해방, 1950년 6·25전쟁, 1970년대의 조국 근대화를 고스란히 경험했다.
특히 해방은 그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주었다. 일제는 단발령·창씨개명 등으로 그의 삶을 압박해 왔는데, 해방은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가 해방 후 시골에 살면서 대한민국의 정치형태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민주공화국의 깃발을 도안하고, 거기에 설명을 덧붙였다. '민주공화국기도설(民主共和國旗圖說)'이 그것이다.
민주공화국기는 동양의 5색을 바탕으로 했다. 5색은 중앙-황색, 동쪽-청색, 서쪽-백색, 남쪽-적색, 북쪽-흑색이다. 그는 중앙의 황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각 방향에서 저마다의 빛깔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공(工)자의 형태로 사방이 서로 어울리며 중앙으로 힘이 향하게 했다. '민주'와 '공화'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헌법 전문에서 제시한 '자율과 조화'를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빛깔로 '자유'로우면서도 황색을 중심으로 '질서'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자 한 것이다.
정재화는 도설에서 "천지를 국가에 견준다면, 중앙은 정부에 비견할 수 있어 사방과 서로 교류하면서 힘을 아우른다. 안을 포함하면서도 또한 밖으로 통하고 있으니, 이는 정부를 보호하는 지극한 뜻"이라고 하면서 사방의 백성들이 그들 고유의 빛깔로 자유로우면서 중앙의 정부를 중심으로 조화로워야 한다고 했다. 사방의 색은 더욱 확장되어 세계와 결부되기도 했다. 인류의 공영을 이렇게 나타낸 것이다.
나는 여기서 자유와 질서에 입각한 인간의 공존을 다시 생각한다. 자유는 인류가 지향하는 최대의 가치에 다름없다. 그러나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만 강조한다면 방종과 일탈로 흐르게 된다. 사회질서는 무너지고 공동체는 파괴된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도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는 때로 법률을 만들어 개인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4월15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러졌다.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180석,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103석이 그 결과였다. 나는 여기서, 현대 한국인은 평등의 가치를 더욱 존중한다는 것과 진영 논리에 입각해 상대의 생각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진영논리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타도해야 할 적쯤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조화와 공존은 요원한 딴 나라 이야기다. 내가 시골 선비 정재화의 민주공화국기도설을 떠올리며 '민주'와 '공화'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우락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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