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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유영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
이제는 점차 어스름해지는 어린 날의 기억 속, 그 시절 아버지가 애지중지하시던 낡은 전축은 여전히 나의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젊은 시절 고향 노래자랑대회에서 트로트 한 자락 목청껏 부를 만큼 멋쟁이였던 아버지는 낡은 전축과 함께 몇 장의 트로트 LP판을 소장하셨다. 간혹 술 한잔 기분 좋게 걸친 날에는 레코드판을 전축 위에 올리고 주현미며 현철이며, 나훈아와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종종 듣고는 하셨고,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 옆에서 화려한 무대복의 가수들이 새겨진 레코드집을 보며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트로트 가락을 흥얼거렸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기억 속의 낡은 전축은 어느새 우리 집에서 사라지고,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트로트 노랫소리 또한 더 이상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 시절 내가 듣던 음악은 트로트가 아닌 팝송이니, 락이니, 발라드니 하는 자못 세련된 이미지의 대중가요들이었다. 간혹 방송이나 길거리에서 들리던 트로트는 고리타분한 노래, 노인들이나 좋아하는 노래로 인식되어 나에게서는 더욱 멀어졌다.
이러한 나의 오래된 트로트에 대한 편견이 요즘 많이 깨지고 있다. 최근 들어 트로트는 대세가 되었다.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이라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이 트로트 열풍을 광풍으로 바꿔버린 듯하다. 송가인, 임영웅, 이찬원 등 오디션 프로그램의 주역들은 전 세계 한류를 이끄는 K-pop 가수들보다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이 회자되고, 그들이 불렀던 노래는 도심의 길거리와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득 채우고 있다. 중장년층만이 좋아한다는 트로트의 편향된 이미지도 어느새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는 노래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볼 때, 나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트로트는 일제시대 일본풍의 엔카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왜색풍이라 하여 탄압 받던 시절도 있었고, 뽕짝이라는 다소 비하적인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민족이 겪어왔던 굴곡의 현대사를 트로트가 또한 함께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는 없다. 일제시대 민족의 슬픔은 '목포의 눈물'이나 '황성 옛터'와 같은 노래들이 달래주었고, 6·25전쟁의 수난은 '굳세어라 금순아'나 '단장의 미아리 고개'와 같은 노래들이 함께했다. 60년대 이후 급격하게 이루어진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네 삶의 애환 또한 이미자나 나훈아와 같은 트로트 가수들이 부른 노래가 대신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90년대 이후 우리 대중음악계의 성장과 다양화가 트로트를 위축시키기도 했지만, 장윤정으로 대표되는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의 계속된 등장은 트로트의 생명력을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있다.
요즘 영탁이라는 트로트 가수가 세대를 아우르며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노래 중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노래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가사에 의해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가 높다. 또한 그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부른 '막걸리 한잔'은 걸쭉한 특유의 목소리와 함께 옛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기에 중장년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나는 이것이 지금의 트로트 광풍을 이끄는 힘이라 생각한다. 영탁의 트로트 속에 세대를 아우르며 시대를 반영하는 트로트의 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트로트가 새롭게 다가오는 요즘, 돌아가신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트로트 한 자락이 듣고 싶은 날이다.
조유영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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