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다시 희망을 모아 꽃 피울 때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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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20-05-21  |  발행일 2020-05-21 제면
위안부는 보편적 인권 문제

반일·친일로 접근해선 안돼

잘못 바로잡아 '희움' 실천

30년 위안부 해결운동 의미

왜곡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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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연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외지인들에게 근대골목을 소개할 때 빠트리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있다. 바로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하 희움역사관)이다. 희움역사관은 "내가 죽어도 내게 일어났던 일은 잊지 말아 달라"며 5천여만원을 기탁하신 김순악 할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국내외 시민들의 모금 운동으로 건립됐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기부금과 시민 성금(브랜드 희움 수익금 포함)으로 건축비의 60% 이상을 충당한 희움역사관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시민단체, 시민의 연대와 협력이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된 곳이다.

희움역사관을 건립한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1997년 결성된 이래 대구경북지역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을 돕는 한편 증언집을 발간해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 중에서 문옥주 할머니의 이야기는 일본인 모리카와 마치코에 의해 '버마 전선의 위안부 문옥주'라는 증언집으로 만들어졌고,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는 작가 권윤덕에 의해 '꽃할머니'라는 그림책으로 만들어져 중국과 일본에 발간됐다. 시민모임의 활동은 그분들의 증언을 역사적 실체로서 자리매김하게 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시민연대로써 일본군 위안부 해결 운동을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대구에는 일본군 위안부 해결운동에 앞장서 온 시민모임과 희움역사관이 있다. 그리고 이용수 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는 몇 달 전에 대구지역의 유일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가 되셨다. 할머니가 제기한 문제로 논쟁이 한창인 이때, 김숨의 소설 '한 명'을 떠올려본다. '생존해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분뿐인 그 어느 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70여 년을 살아온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70여 년 전 기억들이 실제 사건임을 강조하기 위해 정대협 등에서 발간한 증언록과 방송·신문 등에서 발췌한 증언 316개를 소설에 직접 인용하고 미주 형식으로 증언자를 표기했다.

증언은 개인이 사회적 집단으로서 기억한다는 점에서 집합기억이지만, 개별적 증인에 의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복수(複數)적 성격을 띤다. '한 명'은 증언의 특성을 전면화함으로써 토막 나고 뒤섞인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숨은 "그 증언이 없었다면 이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증언한 그분들이 없었다면 일본군 위안부 해결 운동 또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증언은 30년간 묵묵히 할머니들과 함께한 이름 없는 활동가와 연구자, 증언을 지지하고 함께 연대해온 시민들이 없었다면 공론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와 특정 단체(혹은 대표)가 해결 운동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에게 공감하고 지지한 시민과 국내외 양심적 지식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세계적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개별 국가를 넘어선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반일·친일의 프레임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제기된 문제로 인해 30년간 일본군 위안부 해결 운동의 의미가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진상을 규명하고 잘못을 바로잡아 일본군 위안부 해결 운동의 희움(희망을 모아 꽃피움)을 실천할 때다.
배지연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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