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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책 '삐딱하게 보는 민주주의 역사'의 프롤로그에는 영화 '기생충'이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중요한 예로 등장한다. 〈CJ ENM 제공〉 |
"앞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는 힘없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자 몫 없는 이들에게 몫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민주주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직 우리 사회에는 '소극적 자유의 추구'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한 이들이 많이 있으며, 그들에게 더 많은 시선을 돌려야 한다."(321쪽)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 문장에 담겨 있다.
'삐딱하게 보는 민주주의 역사'의 저자는 고등학교 역사 교사다. 왜 '삐딱하게'일까?
저자는 "삐딱하게 보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삐딱하게 본다는 것은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민주주의 핵심 요소는 '평등'에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이나 선입견들을 뒤집으며 민주주의와 그 역사를 바라본다.
'시민 혁명이 민주주의를 만들었을까(1장)' '민주주의는 민주적이었을까?(2장)' '서양인들이 민주주의를 만들었을까?(3장)' '부르주아가 민주주의를 만들었을까(4장).' 책은 크게 네 개의 질문을 던지며 각각의 장을 시작한다.
이 네개의 질문 안에 △네덜란드 독립 혁명과 네덜란드 민주주의 △링컨에 대한 유감: 미국 혁명은 민주 공화국을 만들었나 △민주적으로 결정된 더러운 전쟁, 아편 전쟁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전쟁하는 나라, 미국 △메소포타미아와 이슬람 민주주의 △라틴아메리카 독립 혁명과 민주주의 △여성 운동은 민주화 운동이다: 서프러제트 덕을 본 남자들 △노예들이 만든 민주주의 등의 제목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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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갑 지음/ 노느매기/ 336쪽/ 1만6천원 |
저자는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인식돼 온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민주주의의 이중성을 미국 민주주의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혁명전쟁을 통해 세계 최초의 민주 공화국을 건설했다고 하나, 그것은 미국인들 중 일부만을 위한 민주주의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318명의 노예를 소유했고,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이 쓴 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라고 했으나 200명이 넘는 흑인 노예를 소유했으며, 흑인 노예에게서 얻은 자신의 자식 5명을 노예로 삼았다. 이처럼 미국 혁명이 만든 민주주의는 매우 불완전한 것이었다."(77쪽)
흔히들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으로 '다수결의 원칙'을 꼽는다. 그러나 '민주적이지 않았던 민주주의 역사'의 한 부분이 다수결의 원칙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아편전쟁'이다. 역사 속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아편전쟁도 상당히 민주적으로 결정됐던 것이다. 1840년 영국 의회는 262대 271표, 단 9표 차이로 아편전쟁을 결정한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이익만이 영원하다.' 그들이 자유주의적·민주적 선택을 하건, 혹은 비민주적·침략적 선택을 하건 그들은 이 격언을 충실히 따랐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늘 민주적 제도와 절차를 지켰다. 아편전쟁이건 거문도 점령이건, 영국의 지도자들은 의회에서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거쳐 의결해서 결정했다. 그들은 민주적인 제도 아래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결정했던 것. 그것은 민주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탁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다."(129쪽)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구 중심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역시 민주화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종교도, 민주주의도 '지배'를 합리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왜 우리의 뇌리에는 '민주주의는 아테네'라는 등식이 각인돼 있을까. 결국 아테네를 기억하는 이유는 아테네가 승리자이자 제국이었기 때문이다. 아테네가 '가장 훌륭한 민주주의 사회'여서가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한 민주주의 사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77쪽)
책의 프롤로그에는 영화 '기생충'이 중요한 예로 등장한다. "'기생충'은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로 들렸다. 계층 간 평등이 무너지고 계급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게 된다면 민주주의 체제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봉합돼 있던 평화가 깨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 말이다."(5쪽)
저자는 우리가 민주주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민주주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공부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민주주의 역사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더 삐딱해질 필요가 있다. 3·1운동 이후 수많은 '운동' '항쟁' '혁명'을 거치며 발전하고 공고해져 왔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정치 세력 혹은 어느 정부가 세워지느냐는 것이 민주주의의 목표가 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또한, 특정 인물이나 정당을 지지하고 수호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주요 과제가 아닌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주의는 체제 그 자체나 체제 수호의 논리가 아니라 민중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며 몫 없는 이들에게 정당한 몫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319쪽)
'민주주의'는 진영의 틀 안에 가둬 '아전인수'식으로 해석될 것도, 가진 자들에 의해 '내로남불'식으로 이용될 개념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존재해야 할 시스템이자 하나의 가치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계속해서 민주주의의 장점과 맹점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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