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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
"낙동강 칠백 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몸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간다. 강을 따라 바둑판 같은 들이 바다를 향하여 아득하게 열려 있고 그 넓은 들 품안에는 무덤무덤의 마을이 여기저기 안겨 있다."
이것은 조명희(1894∼1939)의 '낙동강' 서두다. 내가 처음 이 작품을 접한 것은 대학 2학년 시절 '원본한국근대소설의 이해'(1983)에서였다. 교과서에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어 생소하기만 했던 작품, 하지만 낙동강을 끼고 살아온 나에게 아늑하고 포근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다음 구절 "이 강과 이 인간! 지금 그는 서로 ○○○○○○ 않으면 아니될 건가"를 보자 나는 망연자실했다. 이 작품 100여 군데 걸쳐 단어 및 구절이 삭제돼 있어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학원 시절 '낙동강-조명희선집'(1988)에서 나는 복자(覆字) 처리되었던 글자들이 그대로 살아있는 '낙동강'을 만날 수 있었다. 앞 문장에서 검열로 지워진 '영원히 떨어지지'가 복원되었는데, 일제의 무자비한 검열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박성운은 농업학교를 마치고 군청 농업조수를 했지만 3·1운동에 참가해 1년 반 옥고를 치른다. 이후 그는 고향을 등지고 북간도 노령·베이징·상하이 등지를 떠돌다가 귀국한다. 그리고 이 땅의 해방을 위해 투쟁에 나선다. 야학을 열어 농민을 교육하고 소작조합을 만들어 동양척식회사의 횡포에 맞서 싸웠다. 그는 일본인이 국유지를 그들의 소유로 하자 이에 항거하다가 선동혐의로 잡혀가 검찰에 가혹한 고문을 당한다. 병을 얻어 간신히 풀려났지만 결국 고문의 여독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박성운의 운구 행렬에 수많은 사람이 와서 그의 죽음을 통한해 하며 그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가려고 한다. 특히 박성운의 애인이었던 로사는 '나는 폭발탄이 되겠나이다!'라고 다짐한다.
이해의 첫눈이 푸뜩푸뜩 날리는 어느 날 늦은 아침, 구포역(龜浦驛)에서 차가 떠나서 북으로 움직여 나갈 때다. 기차가 들녘을 다 지나갈 때까지 객차 안 들창으로 하염없이 바깥을 내다보고 앉은 여성이 하나 있었다. 그는 로사다. 아마 그는 돌아간 애인의 밟던 길을 자기도 한 번 밟아보려는 뜻인가 보다. 그러나 필경에는 그도 머지 않아서 다시 잊지 못할 이 땅으로 돌아올 날이 있겠지.
로사는 박성운의 장례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북으로 떠난다. 그것은 '박성운이 밟던 길을 자기도 한 번 밟아보려는'데 있다. 낙동강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기에 되찾아야 할 우리의 강토였다. 로사는 박성운의 뜻을 이어 조선의 로자 룩셈부르크가 되어 혁명의 폭발탄이 되고자 했다. 로사의 북행은 새로운 혁명의 출발과 완수를 예고한다. 그것은 실천하고 행동하는 민중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를 통해 리얼리즘 문학의 전망을 구현해내고 있다.
조명희는 '낙동강'을 발표한 다음해 사회주의를 제대로 배우고자 소련으로 망명했다. 그는 다시 이 땅에 돌아와 민중혁명을 통해 우리의 국권을 되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939년 '일제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소련 당국으로부터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그의 작품들은 소련과학원 동방출판사에서 '조명희선집'(1959)에 묶여져 나왔다. 여기에 검열 이전의 '낙동강'이 실려 있다. 이 작품집이 국내에 유입 소개됨에 따라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낙동강'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낙동강'은 리얼리즘 문학의 수작이자 우리 근대문학사의 한 좌표에 해당한다. 이제 우리는 검열의 시대에서 벗어나 교과서에서도 이 작품을 다뤄야 하지 않을까?
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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