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검은 눈물'의 화가 김길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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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2   |  발행일 2021-01-22 제33면   |  수정 2021-01-22 08:38
"예술은 협상불가…이번생 아님 다음생에 인정받겠지"
뻔한 색깔과 구도, 곱상한 스타일은 예술 아닌 사업
타협하던 나와 절교…그림 모두 태우고 이름도 처단
예술은 우주와 동행하는 獨行…고립무원 작업 자처
아티스트, 지금 아닌 '너머'에 살아…불행이자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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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그동안 그린 1만6천여 점의 그림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새로운 신세기를 위해 자신과 결별한 김길후. 그는 사방무인이란 글씨를 붙이고 매일 고립무원의 경지를 만나려 한다. 21년 동안 모두 6권의 도록을 펴냈고 수록 작품 대다수는 팔지 않고 훗날을 대비해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 남북통일의 그날을 위해 팔만대장경을 염두에 둔 8만점을 휴전선 전 구간에 지구촌 작가들과 연대해 전시하고 싶은 대염원을 품었다.

나만의 1999년이 소멸되고 있었다. 평생 그려왔던 1만6천여 점의 그림을 모두 태웠다. 내 과거도 촛농처럼 검게 녹아버렸다. 미래로 광진(光進)하기 위해서였다. 제 몸에 불을 붙여 무명(無明)에 쌓인 생을 죽여버리는 '소신공양(燒身供養)'에 가까운 결단이랄까. 비통하면서도 장쾌했다. 그날 이후 밤이 되어도 어둡지 않았다. 어둠이 송진처럼 내뱉는 유현한 암광(暗光)이 내 양손에 붓으로 잡혔다. 한 손엔 천하자연(天下自然), 다른 손엔 예술을 잡았다. 얻는 게 아니라 사라진다는 것의 묘리, 그걸 체득하고 싶었다.

2013년 난 다시 백척간두에 올라선다. 나와 절교하기 위해서다. 세상을 능글맞게 저울질하던 이전의 내 이름(姓名)을 처단했다. 새로운 지평에 걸맞는 '김길후(金佶煦·61)'가 탄생된다. 나는 내게 독백한다. 금세기 최고 화가들과의 진검승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최소한 이 정도의 출전태세는 예의라 여겼다.

혈기방장한 애숭이 피카소. 그가 유럽을 호령하던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의 그림을 '올드(OLD)하다'면서 단칼에 정리해 버렸다. 난 그걸 피카소의 자신감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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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원죄와 불안을 주제로 한 '무제(Untitled)'


예술은 협상불가. 함께 갈 수 없다. 낡은 권위는 새로운 권위한테 길을 비켜줘야 한다. 예술은 우주와 동행하는 독행(獨行)이다. '쑥덕쑥덕'하는 영토에선 예술도 없다. 예술은 흥정이 아니다.

난 청결에도 관심이 없다. 목욕도 없다. 때가 일어나면 살비늘을 털어버리는 걸로 끝낸다. 아침이 오면, 바로 내 진지(아틀리에)로 간다. 하루 만의 유배. 벽에 부착된 석굴암 사진액자를 본존불 삼아 108배를 올린다. 한계에 대한 고백이고 초능력적 존재에 대한 구원요청이랄 수 있다.

내 작업실 한편에 붙여놓은 '사방무인(四方無人)'이란 글씨가 맹금류 부리처럼 날 지켜본다. 만사가 고독한 것이니 그 고독에 투자해야 된다. 사면초가, 아니 고립무원. 예술에겐 이게 신의 한 수. 항차 그게 누룩으로 작용될 것이다.

난 매일 붓을 들 때마다 내 운명에게 주문을 건다.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불후의 명작을 낳고 싶다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리고 각 나라의 국보. 그걸 누가 돈 주고 살 수 있겠는가. 인류의 자산 아닌가. 그러려면 만족은 없고 죽을 때까지 작업하는 수밖에 없다. 이승에서 그게 가능하면 그건 천복이고 잘 안 된다면 미련없이 다음 생을 기다려야 한다.

전시회. 그건 필요는 하지만 충분한 것도 아니다.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짓을 한다. 갤러리엔 각종 이권이 얽혀 있다. 온전히 작가만을 위한 갤러리가 아니다. 날 간절히 원하고 초대할 정도가 아니면 난 전시를 안하고 죽자고 그림만 그린다. 그리고 강태공처럼 때를 기다린다.

내 그림은 내 분신이다. 가져 가려는 이에게 엄청 비싸게 불러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든다. 21년간 6권의 도록을 만들었다. 수록 작품 대다수는 팔지 않고 모두 갖고 있다. 나는 잘 파는 작가로 만족하지 못한다. 영원히, 그것도 인류사에 남는 작품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뻔한 색깔, 트렌디한 패턴, 고루한 구도, 누가 잘 사갈 것 같은 곱상한 스타일…. 이런 등속은 예술이 아니라 사업이다.

중국의 뒷골목에 가면 원작보다 더 원작처럼 그려주는 모작쟁이가 무진장하다. 하지만 그들은 안다. 마지막 방점만은 절대 찍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이 남긴 작품은 결국 '골동품'으로 퇴락하고 만다.

아티스트는 '지금(NOW)'이 아니라 '너머(BEYOND)'에 산다. 그들은 여기에 없다. 불행이면서도 환희다. 아무나 너머를 살지 못한다.

대다수 작품은 가족의 몫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천의무봉에 달한 예술은 고향불가이며 가족불가! 모두의 길인 탓이다. 그 길은 온통 블랙으로 칠해져 있다. 그 빙하기 속에서 일어난 한 낭인 같은 사내, 그가 붓으로 부활해 금세기에게 도전장을 냈다.

글·사진= 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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