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스위치] 훈민정음 소재 장편소설 '2061년'으로 돌아온 이인화 작가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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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24 08:02  |  수정 2021-06-27 13:52  |  발행일 2021-03-24 제13면
"대구경북은 한글의 본향…훈민정음 해례본 안동·상주본 다 지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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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화 작가는 "6개월23일간 구치소에 있었다"며 "그중 2주간을 카메라 있는 독방에 있었다. 용변 보는 것도 다 감시하는 데다가 이불만 만지면 (간수가) 뭐라고 한다. 자살이라도 할까봐. 너무너무 괴로웠다. 그런 방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1년이나 있었다"고 말한 뒤 씁쓸한 웃음을 날렸다.

천재 소설가, 스타 교수로 각광 받다가 어느 순간 이른바 '적폐'로 내몰려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던 소설가 이인화(본명 류철균·55)가 돌아왔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2061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 SF 스릴러 장편 '2061년'을 들고서. 소재는 세종대왕 이도(1397~1450)가 만든 문자 훈민정음. 소설가 겸 국문학자인 그가 대학에서 디지털미디어학부를 운영하며 쌓은 지식과 경험, 상상력을 총동원해 탄생시킨 작품이다. 그런데도 발간해 줄 출판사가 없어 발행인도, 저자도, 교정도, 교열도, 편집도 한 사람, 작가 자신이 도맡아야 했다. 1인 출판사에서 발간한 이 신작은 발간 한 달 만에 4쇄에 들어갔다. 이 작가를 지난 16일 서울시 목동에 있는 집필실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어려운 시절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는 고향분들이 너무 고맙다"며 대구·경북민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드러냈다.

신작 배경은 AI가 지배하는 시대
반격 노리는 인간이 1896년으로 가
데이터 원형 해례본 차지하려 다퉈

디지털 뉴딜 예산 年 20조원 규모
대구경북에 AI 전산센터 구축하고
음식디미방 등 디지털로 전환해야


▶지난 4년간 침묵 끝에 내놓은 소설 '2061년'이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소설이 어려워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너무 고맙다. 책을 출판해보니 매우 매력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책을 내고 여러 북클럽에 e메일을 보냈다. 서평을 받기 위해 열 곳에 보냈는데 다하겠다고 했다. 큰 용기를 얻었다. 출판사들의 반응하고는 달랐다. 독자들은 '이인화 작가님의 책이라면 해야죠'하면서 아무도 거절 안 했다. 정말 감동 받은 것은 '경남 김해 열쇠도장 코너'라는 주소를 받았을 때다. 귀한 독자님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모든 독자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학교를 떠난 이후 어떻게 살았나.

"5년 전부터 외톨이가 되었다. 직장도 없어지고 사람들과의 연락도 일절 끊어졌다. 등산만 다녔다. 취재하러 안동 등(대구경북지역)을 두루 다니고. 글을 쓸 수 있었고 가족이 곁에 있어 줘 버텨낼 수 있었다."

이 작가는 2017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학점 특혜를 준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교수직에서 해임됐다.

▶특검 조사가 많이 힘들었겠다.

"나 하나로 끝내자 하다 이렇게 됐다. 내 불찰이다. 'K무크 시범 강의'에 일반인을 포함해 2천956명이 수강신청해 289명이 학점을 신청했다. 처음부터 거의 다 패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체육과 출신인 학장이 체육특기생 한 명 통과시켜 달라고 해서 조교에게 그대로 지시했다. 그때부터 형극이 시작됐다."

▶작품의 메시지는.

"미래가 굉장히 무섭게 느껴진다. 팬데믹 시대에 인공지능이 직업을 다 없앤다는 뉴스가 연방 나오고. 근데 우리는 희망이 있다. 미래는 무섭기도 하지만 우리 안에 매우 익숙한 것 중에 미래를 뚫고 나갈 힘도 있다. 겨울이지만 그 겨울 안에 여름이 있다. '이도 문자가 그것이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2061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반격을 노리는 인간의 여러 세력이 인공지능 디지털 데이터의 원형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차지하기 위해 1896년의 조선으로 돌아가 격돌하는 이야기다. (나는) 인공지능들이 결국은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 이도문자 데이터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런 보물을 갖고 있으니 이것을 잘 가꾸어 후손들에 물려주면 된다."

▶인공지능이 훈민정음을 선호한다?

"로마자 데이터들은 음성인식이 매우 어렵다. 어디서 끊어야 할지 원칙이 없다. 한글자가 음성인식이 한결 쉽다. 인공지능들이 결국은 '이도문자' 데이터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한국 자체가 엄청 귀중한 자산을 받았는데 본인만 모르고 있다. 한글은 소리의 제어계측이 가능하고 철자와 발음 기호가 같은 유일한 문자다. 한글 음성은 텍스트 입력 속도가 한자의 7배나 된다. 이건 엄청난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한글의 창제 목적과 원리를 밝힌 한문해설서)이 안동과 상주에서 발견되었는데.

"나라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없앨 때 경북은 두 개를 감추고 있었다. 파스파 문자 문헌을 가지고 있으면 다 죽이던 시절, 한글 문헌도 다 태워졌다. (집현전 학자였던) 신숙주·정인지·박팽년 집안이 (훈민정음 해례본) 한 부씩 받았을 터인데 그 책들은 어디 갔는지. 세종의 아들 문종시대가 끝나고 세조·성종 때 오면 이미 싹 타버리고 없다. 안동 광흥사가 간경도감 분소였는데 안동 답답이의 고집으로 지켜냈다. 이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와 비슷하다. 대구·경북이 없었으면 한글도 없었다. 해례본을 숨겨 놓고 한글을 발전시켰다. 이곳에서 내방가사며 한글 시조, 내간체 편지 등 한글 데이터가 엄청나게 많이 가꾸어졌다."

▶우리 선조들이 해례본을 불태우지 않은 힘은 무엇이라고 보나.

"서울이나 호서 지방은 벼슬할 기회가 많았다. 그쪽은 대개 집안이 영의정·좌의정을 했다. 이것이 자랑인데 경북은 아주 일찍부터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어서 우리 집에서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다가 집안의 격이고 사회적 신분이었다. 학문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다 해도 책을 태우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구·경북인만이 앞서 살았던 사람의 피땀과 눈물을 알아주었고, 세종의 피땀을 이해했던 것이다."

▶인공지능과 한글을 접목하기 위해 대구·경북이 어떻게 해야 하나.

"디지털 뉴딜 예산이 매년 20조원인데 대구·경북은 뭘 가져오고 있나. 방언연구 한다고 18억원 받는 것이 다 인 것으로 안다. 일단은 디지털 뉴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인공지능 학습데이터 구축에 한글 데이터를 다 넣어야 된다. 예를 들어 수유잡방·음식디미방 등의 콘텐츠, 정말 놀랍지 않나. 꿩 설렁탕 등 독창적인 요리 150개가 있으면 메타데이터가 거의 1천만개 나온다. 대구·경북이 가지고 있는 이 보물들을 디지털로 다 전환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 전산센터를 대구·경북에 세워야 한다. 초대형 인공지능 전산센터가 한국에도 나와야 하는데 그것을 한글데이터를 보존했고 한글을 브랜드화한 한글 본향인 대구·경북에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딴 데 주려고 하는 듯하는데 긴장해야 한다."

▶차기작도 배경이 대구·경북인가.

"안동의 독립운동가 김용환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노름꾼'(가제)을 준비 중이다. 구한말 유학자 서산 김흥락의 손자로, 평생 종가 재산 팔아 도박을 했다고 파락호로 손가락질 받다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광복 후 그 돈이 모두 독립군 자금으로 들어간 사실이 밝혀진다.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은 적폐로 찍혀 묻혀 있지만 김용환 공이 반세기 이상 지나서 알려지는 것처럼 내가 정성껏 열심히 하면 언젠가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는 용기를 갖게 됐다. 죽는 날까지 '작은 얼굴'로 조용히 숨어서 좋은 소설을 쓸 것이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

◆이인화(본명 류철균)= △196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이화여대 국문학과 및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이화여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학회장 역임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 '양귀자론'으로 등단 △제1회 작가세계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추리소설 독자상, 중한청년학술상,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영원한 제국' '초원의 향기' '인간의 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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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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