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나라 곳간이 위태로운 이유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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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26   |  발행일 2021-03-26 제22면   |  수정 2021-03-26
우리나라에 숨겨진 빚 많고

가계부채 증가 속도 빨라져

고령화·저출산도 발목 잡아

재정악화보다 더 심각한 건

공짜에 길들여진 국민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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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업 객원논설위원

지금 우리나라는 국가부채 논란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2019년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가채무비율을 40% 선으로 유지하겠다고 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 확대를 주문하며 "미국은 107%, 일본은 220%인데 한국에서는 국가채무비율을 40% 안팎에서 관리하는 근거가 뭐냐"고 언급해 논란에 불을 댕겼다.

코로나19로 인해 재정지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2020년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6.4% 증가했고, 올해 들어서는 국민 위로금 지급에 기본소득제 이슈까지 등장했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으로 이끄는 정부정책에 대해 학계와 언론은 적신호를 보내고 있으나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의 사례처럼 과도한 국가채무는 예외 없이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달콤한 정부지원금 뒤에 숨은 우리나라 국가재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인식은 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와 달리 '숨겨진 나랏빚'이 많다. 무엇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에서 빠진 공기업의 부채다. 외국에는 공기업이 거의 없는 반면 우리나라는 거대 공기업의 비중이 높은 데다 부채가 많고, 국가가 채무를 보증하는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공기업까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챙겨봐야 한다. 또한 공무원·군인 연금은 적립금이 이미 소진된 상태라 모자란 금액은 국고보조를 받아 지급하고 있고, 국민연금 고갈에 따른 국고에서 지불해야 할 우발 채무까지 포함하면 국가부채비율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채무 총량기준에서 보면 국제 비교에서 국가채무비율 40%라는 숫자는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둘째, 가계부채는 전문가들이 크게 우려하는 위험요인이다. 가계부채는 2020년 1분기 기준으로 GDP 대비 97.9%였고 올해 이미 100%를 돌파했다. 증가속도는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계부채가 국가부채에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가계부채가 부실화되면 기축통화국도 아닌 우리가 해결하는 과정에서 대규모의 국가부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7년 미국의 정부부채는 GDP 대비 64%였지만,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2012년 100%까지 급상승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작년 말 한국 민간 부채 위험 수준을 10년여 만에 최고 단계인 '경보'로 올렸다.

셋째, 경제성장이 계속 침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국가재정에도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는 GDP 증가속도가 더 느려지고 증세가 없다면 세입도 감소한다는 뜻이다. 부채상환 능력은 떨어지고 세입과 세출이 일치하는 균형재정과도 거리가 멀어진다.

넷째, 이미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고령화는 의료복지 지출과 국민연금 급여액을 증가시키고, 저출산에 따른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세수기반 축소와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 감소를 초래한다. 마지막으로, 재정이 거덜 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국민의식의 후퇴다. 지난해 1차 지원금 때만 해도 '전 국민 지급' 찬성이 30.2%로 '하위 70% 선별 지급' 29.8%와 엇비슷했다. 올 들어 4차 재난지원금 때는 전 국민 지급이 68.1%로 선별 지급 30.0%의 두 배를 넘어섰다. 작년 5월 지원금이 풀리자 최대 수혜 품목은 와인이었고 판매량이 전월 대비 777% 급증했다. 둘째가 맥주였다. 한번 맛본 공짜가 양잿물도 마시게 한 것이다. 나라 곳간은 쌓기는 힘들어도 날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권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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