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서복' 공유,"내 삶의 가치가 뭐냐고요? 하루하루 감사하게 지내고 소중히 잘 써야겠다고 생각"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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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3   |  발행일 2021-04-23 제39면   |  수정 2021-04-2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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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지키려는 이유는 내 목숨이 너에게 달려 있어서다." 배우 공유가 연기한 기헌은 영생의 열쇠를 쥔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의 곁을 지키는 전직 정보국 요원이다.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던 기헌은 서복을 안전하게 이송하면 자신의 시한부 삶을 연장해주겠다는 거절할 수 없는 임무를 제안받았다. 뇌종양 말기 판정을 스스로에 대한 형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삶의 욕망을 갈구했던 기헌. 죽지 않는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인 서복을 통해서만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멀리 도망칠 수 있기에 그와의 특별한 동행을 시작한다. '불신지옥' '건축학개론'을 연출한 이용주 감독의 신작 '서복'은 '죽지 않는' 복제인간과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험난한 여정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공유는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고 삶을 마주한 기헌의 변화와 성장을 입체적으로 담았다. 주인공들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위해 "절박한 상황에서 오는 예민함과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기헌을 몰아붙였다"는 공유는 영화의 관찰자이자 화자로서 또 한 번 관객을 친절하게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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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복제인간 서복과
죽음 앞둔 남자의 험난한 여정
SF물 좋아하는 편 아니지만
근미래 다룬 작품에 관심 끌려

어둠 속 단절한 고통스러운 삶
수척하고 퀭한 모습 보여주려
4개월간 식단 조절하며 관리해
눈에 핏대 서고 담 걸릴 정도로
첫 등장 신에 심혈 기울여 촬영
박보검 매서운 눈빛연기도 매력"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서복'은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영화다. 시나리오의 어떤 점에 마음이 동했나.

"SF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요즘 흥미롭게 봤던 작품이 과거나 현재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근미래를 다룬 작품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복제인간을 소재로 다룬 '서복'은 SF물이면서 근미래적이라는 점이 관심을 끌었고, 시나리오를 읽고 나선 단순한 킬링 타임용 영화가 되지 않을 거란 믿음과 기대감이 생길 만큼 날카로운 주제 의식이 매력적으로 돋보였다. 마치 나 스스로에게 '그래서 너는 왜 사는데, 왜 살고 싶은데'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두 소재와 주제를 섞어서 제대로 만들어낸다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롭고 신선한 영화가 탄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기헌은 관객이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다. 당신은 얼마나 기헌 캐릭터에 공감했나.

"기헌에게 공감하지 않았다면 '서복'을 하지 않았을 거다. 특히 공감했던 건 연구소에서 만난 기헌과 임세은 박사(장영남)가 대화를 나누는 신이다. '임상실험이 실패하면 나는 어떻게 되냐'라고 물으니 임 박사가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라고 말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인다. '사람들 참 겁 많죠? 욕심도 많고.' 나는 임 박사가 기헌에게 건네는 이 대사가 '서복'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죽음을 앞두고 삶이 간절한 기헌의 마음에 탁하고 박힐 수밖에 없다."

▶유한한 인간 기헌과 죽지 않는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무한한 존재인 서복 캐릭터의 완벽한 대조가 눈길을 끈다. 캐릭터 접근을 위해 중점을 둔 건 뭔가.

"모든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산다. 그렇더라도 극중 기헌처럼 죽을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건 특별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그게 얼마만큼의 고통일지 제대로 헤아리진 못하지만 기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기존 성향이나 성격에서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봤다. 작은 일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평범하게 대했던 일들을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접점을 찾는 게 늘 힘들지만 극중 캐릭터로 몰입돼 가는 과정은 언제나 즐겁다. 접근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민과 불편함을 언제부턴가 즐길 줄 알게 됐고 이를 통해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번에는 기헌의 외적인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봤다. 그의 전사(前事)를 영화에서 다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어둠속에서 단절된 채 어떻게 고통스럽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수척하고 퀭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4개월에 걸쳐 식단 조절까지 했다. 사실 더 확실히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지칠까봐 감독님이 만류하셨다."

▶첫 등장 신의 이미지를 그래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편집된 부분이 좀 많았다고 하던데.

"기헌이 어떤 인물인지 확실하게 설명하고 각인시킬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급적 편집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눈이 빨갛게 핏대가 서고 담이 걸릴 정도로 정말 고통스럽게 그 장면을 찍었다. 기헌이 느끼는 고통을 관객도 온전히 느꼈으면 해서다. 그런데 전날 과음을 해서 숙취로 괴로워하는 모습 같다는 모니터 결과가 나왔다.(웃음) 그 점이 더 아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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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기헌의 관점을 통해 서복을 바라보게 된다. 안내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았을 듯한데 그 부분에서 이용주 감독과 주로 나눴던 대화는 뭔가.

"기본적으로 감독님은 나를 믿고 맡길 때가 많았다. 감정이 폭발하는 신들을 찍을 때라든지, 내가 하고 싶은 대사 같은 게 있으면 편히 하라고 하셨다. 다만 '서복'은 생각보다 그게 쉽지 않았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다 보니 대사나 행동에 있어 좀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기헌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고 해서 마냥 다크하고 말수도 없는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의 느낌은 피하길 바라셨다. 게다가 인간미까지 주문해서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밝은 캐릭터로 나왔다."

▶기헌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괴롭고 고통스러운 한편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시한부 판정을 자신에게 내린 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살고 싶어한다.

"그게 인간 아닐까.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 초연하고 용감해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기헌 역시 보통 인간이기에 살고 싶다는 본능이 앞설 수밖에 없다."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삶의 가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서복' 시나리오가 내게 던졌던 질문이다. 바꿔 말하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냐'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누구도 쉽게 명확한 답변을 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죽을 때까지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설령 죽기 직전이라도 깨닫게 된다면 그건 굉장한 복이다. 나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사는 삶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쓸데없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았고 지나간 과거를 끄집어내 허우적댄 적도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잘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내일보단 당장 오늘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잘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서복을 바라보는 기헌의 시선은 차츰 실험체가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서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대사가 인상 깊었다.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안가에서 처음 서복과 사적인 시간을 갖는다. 그때 라면을 먹는 서복의 모습을 보면서 그 또래 남자애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 복제인간이라고 하니 반신반의한다. 그리고 실험실 안에서 매일 주사맞고 책을 보는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일상을 보낸 그가 안쓰럽다는 생각도 했을 거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긴 여정을 떠나게 되면서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관계는 더 돈독해진다. 그러다 서복이 대뜸 '민기헌씨는 엄마가 없나요? 안됐네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심쿵해졌다. 이후 기헌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처음으로 서복에게 털어 놓게 되고, 그 과정에서 '민기헌씨가 민기헌씨를 살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요?"라는 서복의 인상적인 대사가 등장한다."

▶왜 그 대사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나.

"서복은 복제인간이지만 '구원'이란 단어로 은유될 만큼 신격화돼 있는 대상이다. 때문에 마치 신이 유약한 인간에게 '내가 너를 살릴 만한 가치가 있냐?'고 물어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복 프로젝트의 모든 일을 관장하고 있는 신학선 연구원(박병은)의 머리를 처참하게 땅에 찧게 만든 장면이 대표적이다. 앞서 죄를 받기 위해 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 장면에서 박보검 배우의 눈빛 연기가 유독 돋보였다. 그와의 호흡은 어땠나.

"나 역시 보검씨가 그간 해왔던 역할들에서 볼 수 없었던 눈빛을 봤다. 그전까지 그의 선한 눈매를 여러분이 많이 좋아하고 그런 게 부각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면 '서복'에선 그의 눈빛이 매섭게 보여지는 흥미로운 순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되게 무표정한데 눈빛은 무척 차갑고 매서웠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순 없지만 설득력이 꽤 느껴지는 그 눈빛이 정말 좋았다. 보검씨가 전역하고 나서 그 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면 되게 멋질 것 같다. 연기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도 잘 챙기고 애교도 많은, 정말 예뻐하지 않을 수 없는 후배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에서 성취감과 의미를 찾는다는 당신에게 '서복'은 어찌 보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인 셈이다.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늘 그랬듯 후회없이 매진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이게 과연 스크린에 어떻게 옮겨질까 궁금하고 막연했는데 스태프의 무한한 상상력과 열정, 노력으로 탄생한 공간 덕분에 촬영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진짜 기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함께한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나의 고민과 두려움은 계속되겠지만 적절한 시기에 내 인생에서 한번쯤 짚어 볼 필요가 있었던 주제와 이야기를 만났다는 점에서 '서복'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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