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과거청산의 모범국가 독일?

  • 이유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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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21-06-23 07:23  |  발행일 2021-06-23 제면
집시·게토민 등 나치 희생자

1980년대 가서야 배상 논의

나치 처벌도 대표적 인물만

배상은 개발원조 명목으로

과거청산 모범적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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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지난 5월28일 독일 연방 외무부 장관은 1904년부터 1908년까지 독일 서남아프리카 식민지, 오늘날의 나미비아 지역에서 자행된 헤레로족과 나마족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사과했다. 당시 7만명의 헤레로족과 나마족이 식민지배에 저항하다 처참하게 학살당해 거의 절멸의 위기에 직면했다. 독일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기까지 100년이 걸렸고, 앞으로 30년 동안 11억유로의 지원을 약속했다.

옛 제국주의 국가 중에 과거 식민지 시대에 행해진 범죄행위에 대해 이렇게까지 명쾌하게 범죄를 인정하고 배상을 약속한 나라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번 사과를 계기로 독일이 과거청산의 모범국가라는 신화는 더욱더 강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비성찰적인 태도와 독일의 과거 만행에 대한 속죄적 태도를 많이 비교하고 일본이 조금이라도 독일에서 배우기를 희망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비교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단 서독의 괄목할 만한 나치 과거 극복의 성과나 통독 후 동독 사통당 독재에 대한 꼼꼼한 과거 청산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과거 청산이 모범적이지만은 않다. 서독 정부는 1950년대에 이미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보상했고, 이스라엘 국가에 대해서도 폭넓게 지원했다. 하지만 독일 출신 유대인이 아닌 수많은 동유럽 유대인 피해자가 보상을 신청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1980년대 가서야 당시 집시로 불리던 신티와 로마족, 안락사 희생자, 게토 주민, 강제노동자, 동성애자, 병력거부자와 탈영자 등 나치 지배의 다양한 희생자들이 배상의 대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가해자와 나치의 처벌의 측면에서 볼 때는 대표적인 인물 몇 명을 제외하면 그다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1945년부터 2005년까지 총 3만6천393명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6천656명만 판결을 받았고, 그중 4천666명은 서독 정부가 수립되기 전 전승국의 지배하에 재판을 받았다. 나아가 옛 나치들이 정계의 고위층까지 진출하여 출세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통독 이후 연방의회는 1992년과 1994년 '사통당 독재의 역사와 결과를 청산하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운영하였고, 1998년에는 '사통당 독재 청산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였다. 이 재단은 희생자와 희생자 단체들을 지원하고 보상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통일 직후에는 동독 국가안보부(슈타지) 문서를 확보하고 희생자들에게 열람을 가능케 함으로써 슈타지 정보원으로 복무했던 사람들의 정체성을 밝히고, 마녀사냥처럼 슈타지와 연루된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데 바빴지만, 10만5천명의 피의자 중 막상 실형을 산 사람의 수는 46명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대부분 국경에서 도주자에게 직접 발포하였던 군인이나 경찰들이었다.

이번에 발표된 독일의 나미비아에 대한 사과와 배상도 문제가 있다. 헤레로족과 나마족을 대표하는 단체들은 100여 년 전 제노사이드의 희생 당사자인 자신들이 양 정부의 협상에서 제외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들은 어떻게 희생자가 제외된 상태에서 희생자를 위한 협상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또한 이번 사과에서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그때의 행위는 확연한 제노사이드라고 표현하였다. 굳이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희생자들이 합법적으로 배상을 요구할 수 없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정부가 약속한 11억유로는 엄밀하게 볼 때 배상이 아니다. 이 금액은 개발원조란 이름으로 앞으로 30년 동안 지불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유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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