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동백섬 해파랑 길, 도시 빌딩과 공존하는 푸른 바다…'여름날의 수채화'

  • 김찬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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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23   |  발행일 2021-07-23 제36면   |  수정 2021-07-23 09:03
최치원이 달맞이 길 절경에 감탄
동백섬 남쪽 암벽에 '해운대' 새겨
해운대해수욕장과 고층빌딩 장관
데크길 걷다 만나는 APEC 하우스
韓 정자 현대적 표현 오션뷰에 감탄
유리 강판 아래 바닷물 넘실대는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도 추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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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섬에서 본 해운대해수욕장.

해운대 동백섬 해파랑 길. 그 나무 그늘은 7월의 꽃 무덤이었다. 우리가 잠든 사이 찬란하게 반짝이다가 아침이면 사라져 버리는 별처럼. 꽃은 시나브로 피었다 지고 이제 땅위에 시간을 깔고 누웠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일어나 같이 걷자. 그러나 너는 일어날 수 없다. 아직 남은 너의 아름다움, 향기를 배낭에 넣어 걸어가야겠다. 구부려 흙을 한 주먹 쥐어본다. 비로소 의식에만 갇혀 있던 나의 것들이 해방감을 느낀다.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에너지가 나를 훅하고 치고 간다. 내가 나의 것이라고 했던 것들. 그 사소한 욕망과 소유들. 그것들이 분출하는 무한에너지 물결에 떠내려간다. 바로 무의식이다. 오늘은 그간 기피해 왔던 무의식과 의식이 서로 직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자유와 정신적인 요소를 찾아서 나의 가치를 확인하는 트레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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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 길에서 본 엘시티더레지던스와 해운대.

불과 몇 분 걷다가 숲이 끝나고 그 엄청난 엠파이어 빌딩들이 나타났다. 그 영원으로 출렁이는 부산 앞바다, 광안대교가 바다 위를 지나고 광안리와 해운대 쪽 뭍으로 거대한 아파트 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애면글면 탄성을 지른다. 시내를 거닐 때는 전혀 몰랐는데 이렇게 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지는 해안선을 압도하며 초고층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마치 디즈니랜드의 환상처럼 경관을 만들고 있다니. 이제 인간은 과학과 기술이 신의 경지까지 이르게 됐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구조를 거의 다 파악했다고 한다. 정말 엄청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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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동백섬 트레킹 로드.

광안리 뭍 너머로 이기대 도시자연공원과 오륙도가 초여름의 수채화를 그린다. 그냥 바다는 일렁이고 순간순간 요동하는 물결은 영원한 바다를 이룬다. 저 바다 위 허공은 우주의 바다다. 바다와 허공은 쌍생아다.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르다. 길 아래 데크길로 관광객이 걷고 있다. 그렇다. 누구라도 걷고 움직인다. 누리마루 APEC하우스가 보인다. 아름다운 바닷가에 한국 전통 건축인 정자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돔 모양으로 채광과 환기가 좋고 오션 뷰가 감탄스러운 건물이다. 2005년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 장소다. 지금은 코로나로 출입이 금지되고 있지만 누리마루 내 큰 회의장 자리마다 참가 국가 이름이 적혀 있다. 그리고 회담할 때 먹었던 음식이나 기념품이 전시돼 있다. 밤에는 누리마루 지붕으로 불빛이 들어와서 다양한 색채가 광휘를 연출한다고 한다. 예쁜 글씨 팻말이 있다.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뒷모습 / 나태주). '맑은 날에는 잠시 잊혀지더라도 흐린 날에는 가장 소중한 우산처럼.'(사랑 / 양광모). 동백섬은 걸어온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섬이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친다.

길을 비틀어 운대산으로 간다. 정상 부근에 신라 말의 대문호였던 최치원의 동상과 비석이 있다. 최치원은 우리 역사 산맥의 큰 봉우리, 문필봉이다. 자는 고운·해운 ·해부이며, 시호는 문창(文昌)이다. 경문왕 8년(868년) 당시 12세의 나이로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 당나라로 떠나는 최치원에게 아버지 견일이 "10년을 공부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고 하지 마라. 나도 아들을 두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바다 건너 먼 이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불과 12세 아들에게 아버지는 서슬퍼런 엄명을 내렸다. 최치원 스스로도 아버지 말씀을 뼈에 새겨 "다른 사람이 백을 하면 나는 천을 한다(人百己千)는 심정으로 학문에 정진했다"고 밝히고 있다. 6년간 학문을 닦은 후 당의 빈공과에 장원급제해 관리 생활을 했다. 광명 2년(881년)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7월8일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었는데 그중 "천하의 사람이 너를 죽이려고 의논할 뿐 아니라 땅속의 귀신들까지 너를 죽이려고 의논했다(不惟天下之人 皆思顯戮, 仰亦地中之鬼 己議陰誅)"는 대목을 읽던 황소가 놀라 앉아 있던 의자에서 그만 넘어졌다고 한다. 당에서 크게 문명을 떨친 후 헌강왕 10년(884년) 음력 10월에 귀국, 신라 조정에 중용됐다. 그 후 한국사에 너무나 비중이 큰 사산비문(四山碑文)을 지었고, 진성여왕 8년(894년) 시무(時務) 10여조를 상소해서 아찬이 되었다. 그러나 진골 귀족들이 득세하고 도적떼가 발호하는 신라 말기에 나라는 이미 공정과 정의, 화랑정신은 사라지고 타락과 부패 범죄의 소굴이 됐다. 자신의 이상을 펼치지 못하자 최치원은 관직을 버리고 산천 유람을 했다. 부산 동백섬과 해운대는 최치원이 현재 달맞이길 일대의 절경에 흠뻑 빠져 동백섬 남쪽 암벽에 '해운대'라는 세 글자를 새겨 그것이 지명의 유래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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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APEC 정상회의 장소인 누리마루 APEC 하우스.

아래 트레킹 로드로 내려와 걷는다. 해변이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데크길은 그야말로 멍을 때린다. 최치원의 해운대 각자(刻字)도 살펴보고 전망대에서 촬영도 한다. 출렁다리도 건넌다. 중간중간에 투명 강화 플라스틱이 설치돼 다리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느낌과 다리가 흔들리는 스릴에 오금이 저린다. 고개를 들면 해운대해수욕장과 근대 도시의 상징인 고층 빌딩이 눈을 어지럽힌다. 그 아름답다는 해운대 백사장을 걷는다.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만든다. 발자국은 내 가슴에도 곰비임비 흔적을 남긴다. 가슴에 찍힌 발자국은 정말 비감이다. 곧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과 바람과 밀려오는 바닷물에 나의 발자국이 지워진다 해도. 형언할 수 없는 이 비애스러움은 오래오래 나의 감정에 남아 바다와 파도 소리를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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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씨클라우드, 엘리시아, 파라다이스 호텔이 보이기도 한다. 지난번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전국에 알려진 엘시티 아파트가 머리끝에 우뚝 선다. 미분양이라 입주를 해달라고, 부산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부신 시민들이 탄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입주한 것이 부동산 투기로 둔갑했다. 이제 공작 조작해 남을 중상모략하는 풍토는 정말 종을 쳐야 한다. 사람은 신구의(身口意, 육체·입·뜻) 삼업으로 가장 큰 죄 열 가지를 짓는다고 한다. 그중 네 가지는 입으로 짓는 죄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다. 망어중죄(妄語重罪, 거짓말하는 큰 죄), 기어중죄(綺語重罪, 꾸며서 말한 큰 죄), 양설중죄(兩舌重罪, 이간질한 큰 죄), 악구중죄(惡口重罪, 악담과 욕설한 큰 죄)를 지은 자는 발설지옥(拔舌地獄, 혀를 빼서 넓히고 그 혀 위에 나무 심고 밭을 가는 지옥)에 간다고. 그렇지만 이미 지옥도를 그리고 있는 중생에게 이런 십악(十惡)의 경고음이 마음에 참회의 기름을 부어 줄 수 있을까. 도무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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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해수욕장은 남해안에서 해수욕 기간이 가장 길어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수심이 얕고 조수의 변화가 심하지 않아 해마다 1천만 명이 넘는 피서객이 찾는다. 매년 해수욕장 개장에 맞춰 다양한 행사와 축제가 개최된다. 미포 횟집거리를 지난다. 파도는 끝없이 밀려오고 간간이 바람도 불어오고 시간은 염치없이 달아난다. 백사장길이 끝나고 해변의 숲이 남국의 풍경 같아 눈빛이 뜨거워진다. 어디서 새소리가 들린다. 그 청아한 소리에 몰두하는데 갑자기 앵앵 앵앵 119구급대 사이렌 소리가 온몸에 스파크를 일으킨다. 얼마 전이었지. 경기도 이천 쿠팡 대화재로 김동식 소방령이 동료를 먼저 대피시키고 돌아가신, 그 의로운 죽음이 눈물샘에서 실루엣을 그린다. 달려가는 소방차에 기도를 드린다. 그분은 약속의 땅, 모든 것이 평화로운 그곳에 가셨을까. 도로로 나와 차를 이용해 청사포에 도착, 다릿돌 전망대를 걷는다. 투명 강판 유리 아래로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이때는 허공을 걷는 환상방황으로 자신을 탁 놓아 버릴 수 있었다. 주로 데이트족이나 가족단위의 행락객이 많다. 당신과 우리는 행복해요. 아름다운 바다 위, 가슴으로 한 번 더 우리를 봐요.


☞문의: 해운대 종합관광안내소 (051)749-5700
☞내비 주소: 해운대해변로 264(해운대해수욕장)
☞트레킹 코스: 더베이 101 쪽 동백섬 입구 - 누리마루 APEC하우스 - 최치원선생 동상 - 동백공원 출렁다리 - 해운대 백사장-해운대 달맞이길 -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인근 볼거리: 장산산림욕장, 해운대 전통시장, 솔밭 예술마을, 해운대 광장, 죽도 공원, 문탠로드, 해월정. 해운대 관광 유람선, 송정해수욕장.

글·사진=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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