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새끼 안고 웅크린 어미의 뼈

  • 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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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22   |  발행일 2021-07-22 제22면   |  수정 2021-07-22 07:52
삼국유사 '혜통항룡'에 실린
어미수달의 근원적인 사랑
인간의 패륜이 판치는 시대
죽음을 불사하는 피의 사랑
큰 감동과 울림으로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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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승려 혜통(惠通)은 씨족이 자세하지 않다. 출가하기 전 집이 남산 서쪽 기슭 은천동 어귀에 있었다. 하루는 집 동쪽 개울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서 죽이고, 동산 가운데 뼈를 버렸다. 다음날 아침에 그 뼈가 사라졌으므로 핏자국을 따라 찾아갔더니, 그 뼈가 전에 살던 굴로 돌아가서 다섯 마리의 새끼를 안고 웅크리고 있었다."

삼국유사 '혜통항룡(惠通降龍)'조의 들머리 글이다. 감동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혜통이 승려가 되기 전, 살생을 일삼으며 어미 수달을 죽이고 그 뼈를 동산에 버렸다. 다음날 그가 뼈를 버린 곳으로 가보니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가니, 그 뼈가 다섯 마리 새끼를 안고 웅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연은 혜통이 그 모습을 보고, "놀라고 감탄하며 머뭇거리다가 문득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뼈'의 사전적 의미는 '척추동물의 살 속에서 그 몸을 지탱하는 단단한 물질'이지만 그 이상의 뜻이 잠복해 있다. '이야기의 기본 줄거리' '어떤 의도나 저의'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뼈는 근본이며 핵심이기도 하다. 새끼를 안고 웅크리고 있는 어미 수달의 뼈 또한 그러하다. 새끼를 지키고자 하는 어미의 근원적 사랑이 읽히기 때문이다. 이성과 논리를 뛰어넘는,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뼈의 사랑, 그것이 바로 어미의 사랑이다.

여기, 내가 경험한 이야기 하나가 있다. 군대 생활을 할 때였다. 영내에 자전거 수리소가 있었는데, 그 한쪽에서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대여섯 마리가 되었던 듯하다. 조금 자란 그 새끼 고양이는 참으로 귀여웠다. 영외에 사는 군인들이 어미가 없는 틈을 타서 그 새끼 고양이를 한 마리씩 갖고 갔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상사도 한 마리를 가져왔다. 그런데 그 상사는 마침 급한 일이 생겨 새끼 고양이를 사무실에 두고 퇴근했다.

다음날 아침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은 원래 무기고여서, 밖으로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유리창에 핏자국 몇 줄기가 나 있었고, 철창에는 짐승의 털과 살점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순간, 어젯밤 여기서 일어났던 일이 전광석화처럼 나의 뇌리를 스쳤다. 돌아온 어미 고양이는 새끼가 사라진 것을 알고 그 새끼를 찾아다녔을 것이고, 사무실에 갇혀 있던 새끼 고양이는 목이 터져라 어미를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미는 새끼 소리가 나는 철창으로 달려들어 머리와 몸을 부딪쳤을 것이다. 밤새도록!

나는 새끼 고양이를 안고 나가 사무실 뒤쪽에 있는 족구장으로 갔다. 그 어미가 잘 볼 수 있도록 한가운데에 두었다. 그리고 30m쯤 떨어진 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 새끼 고양이를 주시하였다. 10분이 지났을까. 족구장 뒤쪽 야산에서 걸레같이 생긴 짐승 하나가 기어 나와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새끼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그 짐승은 새끼를 물고 쏜살같이 숲속으로 도망쳤다.

올해 3월 말쯤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자식을 판매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한 일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후베이성의 한 직업대학에서 여대생이 아이를 낳은 후 기숙사 담장 밖으로 그 아이를 버린 일도 있었다. 우리는 흔히 짐승만도 못한 일이라며 인간의 패륜을 나무란다. 어쩌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앞에서 전한 수달과 고양이의 자식 사랑이 더욱 감동적으로 전해지는 오늘날이다. 그 사랑은 죽음을 불사한 피의 사랑이며, 죽은 후에도 남아 있는 뼈의 사랑이다.
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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