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드럼의 매력에 흠뻑...보청기 낀 85세 할머니 "인생의 리듬을 두드려요"

  • 도성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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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17 10:15  |  수정 2021-08-18 08:51  |  발행일 2021-08-18 제13면
외손녀 권유로 드럼 배우는 대구 북구 침산동 정란 할머니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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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녀에게 드럼을 배우며 환하게 웃고 있는 정란 할머니.


팔순이 넘는 나이에 드럼 배우기에 나선 정란(85·대구시 북구 침산동) 할머니를 보면서 '인생의 리듬'을 느낀다.

정 할머니가 드럼을 배우게 된 것은 음대에서 관현악을 전공한 외손녀 김윤지(23)씨의 권유 때문이다. 김씨는 마림바, 드럼 등 큰 악기를 보관하면서 때론 개인 연습실로 사용하기 위해 외할머니 집 부근에 연습실을 구했는데 "레슨을 해 줄 수 없느냐"는 이웃들의 요청에 개인 레슨을 시작하게 됐다. 악기를 배우며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며 즐거워하는 수강생들을 보며 김씨는 외할머니가 떠올랐다고 한다. 지역문화센터에서 영어, 한글, 서예, 사군자, 수영, 고전무용 등 다양한 강좌에 적극 참여해 온 외할머니가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뜸해진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거리낌이 없던 정씨도 처음 외손녀로부터 드럼 레슨을 권유 받았을 때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고 한다. 리듬에 맞춰 손과 발을 동시에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드럼은 젊은이들에게나 어울리는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보청기에 의지할 만큼 청력도 좋지 않았다. 첫 레슨 시간에 마지 못해 드럼 앞에 앉게 된 정란 할머니는 드럼을 그리 오래 배울 생각은 없었다. 악보를 잘 볼 줄 모르는 데다 반주 음악에 맞춰 드럼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보청기를 낀 상태에서 박자를 맞춘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 할머니가 드럼을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좋아하는 옛노래를 찾아 직접 편곡까지 한 외손녀 김씨의 정성이 통해서인지 정 할머니는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드럼의 매력에 푹 빠져 들기 시작했고, 나날이 실력도 늘고 있다.

배우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겨왔던 정 할머니는 평생 배움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지역문화센터는 더할 나위 없는 배움의 장소였다. 그는 어릴 때 다니던 학교를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6·25 전쟁 때 자원 입대한 큰 오빠가 전사했고,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여동생을 돌보며 가사일을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배움에 대한 열망에도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던 정씨는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박사 학위를 취득하자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자 50대 후반에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했다. 불합격하면 부끄러울 것 같아 자녀들 몰래 면허시험에 응시했는데, 당당히 합격해서 아들로부터 차를 선물로 받았다.

이후 정 할머니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한글과 한자를 익히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서예로 다 쓸 만큼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운전을 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러 곳을 다니며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평소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라며 자녀들을 가르쳐 왔다"는 정 할머니는 자신이 배운 만큼 그걸 다시 나눌 수 있어 더 감사하다고 했다.

정 할머니는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로 평소 수영과 등산, 걷는 것을 즐기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많은 힘을 얻는다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정씨의 리듬감 있는 인생을 통해 어느새 우리는 함께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게 된다.
글·사진=도성현 시민기자 superdos@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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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경북본사 1부장 임성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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